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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신앙의 용기
    2001-12-28 21:14:20   read : 2097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갈1:6-12

    스캔들 하면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연예인의 스캔들, 정치인의 스캔들, 그것에 대해 들으면 입이 근질근질하여 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리고 더 부풀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교회 밖에서 만나는 재미있는 교회이야기'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마틴 루터의 스캔들이라고 하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요새 많은 스캔들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마는 500년 전 마틴 루터의 스캔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번쯤 재미있게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1525년 6월 13일 수녀, 카톨릭 수녀 출신의 카타리나 본보라와 화촉을 밝혔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결혼입니다마는 500년 전 당시로 돌아가 볼 때에는 교회에서는 이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당시의 교회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이것은 스캔들이 틀림이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왜냐 하면은 카톨릭 수녀와 카톨릭 수도사가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에 있던 사람이 뛰쳐나왔고 수녀원에서 한평생을 살다 죽어갈 사람이 거기서 탈출해 나와 가지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것은 세계적인 스캔들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카톨릭적 개념으로 볼 때에는 수도사 와 수녀, 그것은 분명히 이것은 간음입니다. 이 결혼은 간음이요, 마틴 루터는 타락한 성직자라고 하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을 하고 있는 동료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필이면 농민들이 자유를 위하여 이렇게 싸우다가 실패해서 좌절과 패배를 겪고 있는 이 비참한 현실, 지금과 같은 때에 하필이면 결혼을, 자기 자신의 행복만 추구하고, 결혼을 해서 교회를 어지럽히느냐 하는 거죠. 종교개혁을 했다는 것만 가지고도 큰 사건인데 하필이면 안 해도 될 걸, 결혼까지 해 가지고 왜 이렇게 시끄럽게 만드느냐 이거죠. 다시 말해서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분들에게까지도 이 사건은 아주 골치 아픈 사건이요, 스캔들이 아닐 수 없는,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그렇게 인정된 것입니다.
    자 이제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 같은 사람은 아주 빈정대는 조소조의 글을 썼습니다. '장엄한 비극으로 등장한 종교개혁이 코메디로 막을 내렸다.' 이렇게 비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면 믿음으로 행해야 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복을 따른다면 사람이 날더러 뭐라고 하던 말던,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정하느냐, 어떻게 의롭게 여기느냐 그것만이 그의 관심이었습니다. 루터는 이 모든 비난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럴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떳떳하게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또 다른 얘기가 있습니다. 1520 년 초반부터 마틴 루터의 이 종교 개혁사상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되 특별히 루터 자신이 수도원에 있다가 뛰쳐나온 사람이기 때문에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들에게 종교개혁사상이 깊이 파급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도사들이 수도원에서 뛰쳐나왔고, 또 카톨릭 수녀원에서 수녀들도 탈출해 나오게 됩니다. 아홉 명의 수녀가 나왔는데 이 사람들은 자생할 능력이 없습니다. 수도원에만 있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서 일할 줄을 모른단 말입니다. 또 무얼 먹고 살겠습니까! 수도원에서 나오고 나면 말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부득불 저들에게 직장을 얻어주기도 하고 또 서로서로 짝을 맞추어 결혼을 시켰습니다. 수도사들과 수녀들과--- 이런 일들을 다해서 그 루터만을 쳐다보고 수도원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의 생애를,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겁니다. 그런데 아홉 명중의 여덟 사람이, 그 처녀들이 다 이렇게 저렇게 결혼을 했는데 한 사람이 남았습니다. 그게 카타리나입니다. 아무도 이 사람하고는 결혼은 안 하겠다는 거예요. 길다란 얼굴에 툭 튀어나온 이마, 또 볼품없이 길쭉한 코, 그리고 불 쑥 튀어나온 광대뼈, 아주 고집스럽게 생긴, 못생긴 얼굴이었답니다. 아무도 이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아서 이 마지막 여자는, 이 카타리나는 시집을 못 가게 되는데, 마틴 루터가 그러면 '내가 데리고 살 지.' 그래서 결혼을 했답니다. 이렇게 해서 카타리나와 결혼을 한 건데 이 세상은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그저 비난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이 카타리나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아주 현명한 부인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지성의 사람이요, 화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훌륭하게 루터를 내조해서 종교개혁을 성공하게 했다는 겁니다. 마틴 루터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을 이렇게 맡아 가지고 종교개혁을 할 때에 사방에서 루터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죽음의 공포 속에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가운데서 살아갔기 때문에 그는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겁니다. 언젠가는 큰 소리로 이렇게 소리를 지르더라고 합니다.
    "마귀야! 나 좀 잠 좀 자게 내버려둬라. 내가 내 죄를 많이 지은 죄인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이제 그만 좀 해라"
    무슨 말이겠습니까? 종교개혁을 하는 이 엄청난 사건을 놓고 밀고 나갈 때에 자기의 죄가 자꾸 생각이 나요. 과거의 죄, 현재 의 죄, 잘못한 것. 마귀가 계속 공격을 합니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죄인이다.' 루터가 중얼거리기를 '마귀야! 나 잠 좀 자자. 이제 그만 해 둬라. 내가 죄인이거나 잘 알고 있는데 그만 좀 해라.' 그러더라 는 겁니다. 이렇게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유명한 에피소드가 전해집니다. 어느 날 밖에서 돌아오니까 마틴 루터의 부인 카타리나가 상복을 입고 울고 있더랍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서 누가 죽었느냐, 왜 울고 있느냐 했더니 그 부인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돌아가셔서 상복을 입었습니다." 루터가 펄쩍 뛰면서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무슨 불경한 말이냐!"고 벌컥 화를 내니까 그 부인이 조용히 하는 말이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어째서 당신이 낙심하는 겁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면서 왜 피곤해 하는 겁니까?"
    여기서 용기를 얻어서 종교개혁을 완성했다는 게 아닙니까! 카타리나의 공이 큽니다.
    여러분, 루터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득의(以身得義)의 교리를 들고 오직 믿음으로 그 신앙을 가지고 종교개혁을 합니다. 그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신학화했습니다. 성경적 진리에 의해서 설명하고 철학적 진리에 의해서 변경했습니다. 루터 나름의 종교개혁적 개혁신학을 이루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믿는 대로 살았습니다. 믿음을 생활화했습니다. 신앙에 가장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그 하나가 주관적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신앙이 아니고, 내 마음대로 믿음을 스스로 자기가 자기 생각을 믿음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병 나을 줄 믿습니다, 복 받을 줄 믿습니다, 아들 날 줄 믿습니다 주여, 뭐 이런 거 그건 자기 마음 대로지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까지는 그거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저 내 나름대로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김치 국부터 먼저 마신다고 믿음이 되는 게 아니에요. 이런 주관적 신앙, 주관화 참 무서운 것입니다.
    두 번째 잘못된 것이 바로 추상화입니다. 지식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깨닫고 많이 기억하면 이게 마치 믿음인 줄 압니다. 그리고 성경진리에 감격하면 이게 무슨 믿음인 줄 아는데, 그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그건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합리적 이해가 절대로 신앙이 아닙니다. 그건 지식일 따름입니다.
    어느 의대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으시대는 두 명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두 학생이 병원의 복도를 걷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고 엉거주춤 걸어오는 것을 보고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분명히 류마티스 관절염이야!"
    그러자 다른 한 학생이 머리를 설레설레 저의며 말했습니다.
    "천만에! 디스크가 틀림없어!"
    그리고 나서 둘은 서로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옥신각신 싸우고 있는데 그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아주 힘겹게 물었습니다.
    "저--- 화---화장실이 어디죠?"
    여러분, 종교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당시 1500년대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그때 온 세계가 로마 카톨릭 손안에 있을 때입니다. 이걸 대항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킨다고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가능케 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자기 개혁이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을 바꾸려고 듭니다. 가정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나라를 바꾸고 어디 개혁, 개혁, 수 없이 개혁 소리를 들었는데 개혁된 것이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없어요. 왜? 자기 개혁이 없어요. 개혁이란 운동이 아닙니다. 자기 개혁을 이룰 때 거기서 그 감화가 번지고 퍼지고 파급효과를 이루어서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지도자란 누구를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자기 됨을 확실하게 지켜가고 있을 때 그에게 감동 받은 사람들이 그 주위에 목숨을 걸고 모여들어서 그 뜻을 받들어 나갈 때 여기에 개혁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이게 제도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에요. 몇 백 번 바꾸어도 소용없어요. 그건 역사가 중요한 것이에요. 인격적 감화가 없이는 절대로 개혁은 없습니다.
    그러려면 자기 개혁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 개혁은 곧 신앙개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의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 됩니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을 깨닫고 그 복음의 엄청난 다이나믹 파워, 그 능력이 내 안에 들어올 때 내 인격을 변화시키고 내 생각을 변화시키고 마침내 개혁이라고 하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기개혁, 신앙개혁 즉 의의 문제 이 문제가 최우선이요 근본이라는 것을 우리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교개혁이란 마틴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읽으면서 갈라디아서 속에 있는 복음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엄청난 진리를 깨달으면서 그 진리가 루터를 사로잡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이 폭발할 때 그가 수도원을 뛰쳐나올 수가 있었고 그 인격이 변화될 때 그 감화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성원하고 협력하고 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복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복음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됩니다. 믿음이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복음을 이해해야 됩니다. 믿음은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고, 복음은 내가 믿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습니까? 바로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복음을 'Good News'라고 합니다.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또 복음을 헬라어로 '유앙겔리온' 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에 전쟁을 하면 멀리 나아가서 전쟁을 합니다. 그 전쟁에 이기면 그 소식을 빨리 소식을 전하는 보발군이 있어요. 몇 일을 말을 타기도 하고 뛰어 오기도 해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소식을 고향이나 수도에 전하게 되면 온 나라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소식이 온 성에 퍼지면서 야단이 나는 거예요. 꽹과리 치고, 북 치고, 춤추고, 먹고, 마시고, 소리 지르고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놀랍고 기쁜 소식은 없는 거예요. 이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그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과 저주와 멸망과 죽음과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다 라는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기독교는 소식의 종교입니다. 이 소식 전하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와 바울은 이 소식을 전 세계에 전하였는데 이 소식을 받아들이면 그 나라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 소식이 120년 전 선교사들이 전해준 이 소식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는 "우리 인간은 완전 타락했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는 거예요. 죄의 종이 되어 죄의 길로 빠진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겉으로는 다 안 그런 것 같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좋은 것, 거룩한 것보다는 죄를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에 빠진 우리 인간이 죄의 맛을 들여 죄를 좋아하는 거예요. 이러한 우리 인간을 죄에서 건져내는 길은 복된 소식을 들어야 됩니다.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됩니다. 받아들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봅시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복음의 절대적 성격을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세요. 내가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으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 절대화, 진리의 절대화, 복음의 절대화,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은 이 현대의 큰 병인 상대주의에 빠져 가지고 말입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이래 생각하고는 근데 요것이 조금 더 좋은 거 같기도 하고, 이러면서 허우적거리고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강한 신앙적 용기를 보세요. 내가 전한 복음, 너희가 받은 복음, 이 복음 진리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 누구라도,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이 절대적 신앙, 이 절대적 확신, 이것이 그 마음속에 솟아오를 때 개혁의 용기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이 거룩한 진리가 나를 고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진리에 사로잡혔습니다. 내게는 선택이 없습니다. 그를 위해서 내가 있다는 겁니다. 내가 깨달은 진리, 내 학설,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의 진리가 나를 붙들어서 나로 하여금 오늘이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울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1장에 보면 아주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도대체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 그 자체가 이것 때문에 태어났고, 하나님이 이것 때문에 나를 이 세상에 이 시점에 보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보셨습니까?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에 나를 이 때문에 보냈다, 확신하십니까? 이 순간을 위하여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온 정력을 쏟아냅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이것이 개혁적 용기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 내 삶의 목적이 어디 있느냐가 중요해요. 나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할 때 비겁한 사람이 되요.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확신이 가면 엄청난 용기가 폭발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고, 그가 주시는 은총을 힘입을 때만이 우리가 깨끗하고 정결한 자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면하는 줄 믿습니다. 아들의 피를 보고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지 아니하고, 진노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너에게 아들이 있는가? 아들의 피가 있는가? 네가 아들을 믿는가?
    그렇습니다. 우리 할 일은 믿는 것입니다. 이 크고 놀라운 사실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자유케 하고, 능력 있게 하면서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이 놀라운 믿음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고, 승리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을 할례로 사인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몸의 할례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백성의 죄를 사한 다음에는 몸에다 사인하지 않고, 마음에다 사인하겠다. 그래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그전에는 몸에 사인 즉 할례를 해서 의인이 되었지만 이제는 몸에다 하지 않고 마음에다 한다."
    가장 큰 힘과 가장 큰 능력은 마음에 있습니다. 행복은 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있습니다. 기쁨은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제 아무리 천국같이 꾸며 놓아도 마음이 어두우면 지옥입니다. 아무리 햇빛이 비추어도 주의 보혈로 씻음 받지 않은 사람은 캄캄하기 그지없고, 아무리 여러분을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도 주님과의 만남이 없으면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무엇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은 다른 것 다 보시지 않습니다. 네 마음에 나를 믿는 것이 있느냐? 네 마음에 나를 사랑하느냐? 너 어렵고 괴롭고 속상할 때 "주여, 믿습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느냐? 그러면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너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요 힘있는 자다 라고 말하십니다. 그 사람을 아무도 이길 수 없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옵니다. 우리는 보화를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마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이것을 물질에서 찾으면서 이 사회가 걷잡을 수 없는 타락과 음란과 파멸로 가고 있습니다. 인간을 인간 되게 하고, 가치 있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능력 있게 하는 힘이 어디 있습니까?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믿는데 있는 거예요. 내가 믿으면 능력은 복음이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내 안에 들어올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서 내 안에 있는 죄를 이기고, 마귀를 쫓아내고, 자유함을 주며, 평안을 주며, 힘을 줍니다. 운동 선수에게 제일 힘드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안정만 찾으면 승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안정은 믿는 것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기술을 믿든지 무엇이라도 믿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영원히 믿을 수 있는 우리 주님을 내 안에 모실 때, 또 승리자 주님을 믿을 때 우리는 마음의 평안도, 안정도, 승리도 얻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종교개혁이란 믿음이 세 속화 된 것을 다시 재정비하는 것이에요. 종교개혁이라는 것은 복음진리 그 진수가 무엇이냐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요. 복음에 대한 재해석이요. 그리고 종교개혁이란 믿음을 구체화하는 것이올시다. 머리 속에 있던 신앙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실제의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자의 마음이요, 순교자의 마음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개혁을 외치는데 개혁되는 것이 없습니다. 왜? 자기 개혁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자기 개혁이 없느냐. 신앙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요 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기에 최종승리가 내 것이라고 하는 그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지막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이 종교개혁자의 용기, 이 믿음을 가지고 자기 개혁을 이룰 때에 가정도 사회도 세상도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개혁자의 위대한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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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격려하는 사람이 되라
    끝이 좋을 자신 있습니까?
    좁은 문에 집중하라
    대표선수 교인이 됩시다
    이러한 기쁨에 사는 자
    염려는 불신앙입니다
    너와 함께 하느니라
    신앙 성장의 방해물을 제거하라
    우리의 멘토 다윗
    은혜를 받아야 산다
    아름다운 면류관
    부지런히 가르치라
    성도의 기도
    하늘에 열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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