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기는 교회 2001-12-26 16:10:15 read : 1702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계 2: 1∼7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앞부분에서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에 각각 다른 말씀
을 하시고 끝에 가서 공통으로 빠짐없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기는 교회가
되어라"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에게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2: 7)고 하셨고,
서머나 교회에게는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2: 10)고
하셨고,
버가모 교회에게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
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2: 17)고 하셨고,
두아디라 교회에게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
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계2: 27) 고 하셨고,
사데 교회에게는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
서 시인하리라"(계3: 5)고 하셨고,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
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
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
에 기록하리라"(계3: 12)라고 하셨고,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
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하리라"(계3: 21)라고 하셨
습니다.
"이기는 자"라는 말씀이 나올 때는 앞이나 뒤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
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하는 말씀이 함께 나옵니다.
"이기는 교회가 되어라" 이 말씀은 성령이 모든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기는 교회가 되어라" 이 말씀은 성령이 한국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기는 교회가 되어라" 이 말씀은 성령이 특별히 목양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
니다.
우리는 무엇을 이겨야합니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기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우리는 무엇을 이겨야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요소들을 이겨야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는데 우리도 처음 사랑을 잊게 하는 것들을 이
겨야겠고,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 그리고 장차 올 고난 앞에 서 있는데 우리도 이런
것들 이겨야겠고,
버가모 교회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 있었고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
이 안에 있었는데 우리도 이런 것들을 이겨야겠고,
두아디라 교회는 음행과 싸우고 있었는데 우리도 이 시대의 퇴폐 풍조와 싸워
이겨야하겠고,
사데교회는 살았다 하나 죽은 자와 같은 교회였는데 우리도 이 무기력한 상태
를 이겨야하겠고,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거짓말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우리도 허위와 싸워 이겨 진
실한 교회가 되어야하겠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였으며 자신의 부족을 알
지 못하는 교회였는데 우리도 이와 같은 것을 이기고 뜨거운 교회, 자신의 부
족을 깨닫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그 다음에 한국 교회가 구체적으로 이겨야 할 시대적인 과제들이 있습니다.
먼저 교회 성장의 둔화, 정지, 또는 하향 추세를 이겨야합니다.
최근 교회에 대한 각종 통계를 보면 교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느려지거
나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을 공통적으로 볼 수 있습
니다. 교회의 통계는 대체적으로 정확하지 못하고 거품이 들어 있는 것이 일반
적인데 그런 가운데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교인수가 실제로는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추세를 이겨야합니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교회가 하향곡선을 그리면 그 나라 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윤리와 도덕이
하향곡선을 그리며 나가서는 그 시대 전체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지금은 교회가 양적인 성장 보다 질적인 성숙에 힘써야 할 때이고 넓이의 차원
보다 깊이의 차원에 주력해야 할 때인 것을 압니다. 봄이 되면 나무에 빠른 속
도로 파란 잎이 돋으며 푸른색이 퍼져 나가는데 한국 교회가 그런 시대는 지나
갔고 이제는 열매를 맺어야 할 때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교회가 성장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속도가 예전
보다는 빠르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가운데서 이뤄질 수 있습니
다. 교회의 성장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가운데서는 성숙도 힘들고 열매맺기도
힘이 듭니다.
우리는 교회 성장의 둔화, 정지, 하향 추세를 이기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합니다.
그 다음에 신앙을 경시하는 풍조를 이겨야합니다.
신앙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고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 경건하고 진지하게 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신앙을 위
해서는 목숨도 바쳐야합니다.
신앙이 그 시대 문화의 중심입니다. 그 시대,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신앙을 빼
놓는 것은 달걀을 말하는데 노른자위를 빼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뀌고 있습니다. 그저 이 세상을 구성하는데, 살아가는데 필요
한 많은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는데 왜 세례를 받느냐고 하자 "받아두면 좋을 것 같아
서요"라고 대답합니다. 신앙을 "더 가져두면 좋을 것 같이 보이는 것들 가운데
하나"으로 여깁니다.
요즘 사람들, 각종 카드들을 참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신용카드, 주유소에서 기
름 넣을 때 보너스 접수 기록하는 카드, 회원 카드, 할인 카드, 신앙을 그런 카
드들 가운데 하나로 여깁니다.
우리는 이런 풍조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신앙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겨야합
니다. 신앙상대주의를 이기고 신앙절대주의를 가져야합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박해에 이겨야합니다.
얼마 전에는 경상북도에서 단군상을 철거한 목회자들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목
회자들이 집단적으로 구속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틀 전에는 경건한 기독교교육기관을 지향하고 있는 포항의 한동대학 총장과
부총장이 법정구속 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법을 어겼기 때문이오" "재판에 제대로 출석하지 않기 때문이오" 이렇게 이야
기합니다만 교회 경시 풍조요, 새로운 형태의 박해입니다.
두 사건의 재판부 모두 피고인들이 법정출석을 기피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
런 조치를 취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재판부가 이런 이야기를 차라리 안 했으
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와 품위를 유지하는데 좋았을 것입니다. 지금 재판이 진
행되고 있는데 소환에 불응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그들에
게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했다면 "그렇군요. 저희가 대단히 잘못 했습니다"해야
하겠지요. 정치인들은 권력이 있다고 손을 대지 못하고 도주할 염려가 전혀 없
는 목사와 교육자들은 만만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종교인들과 교육자들
은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여기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사법부에 대해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 돈이 있으면 무죄가 되
고 돈이 없으면 유죄가 된다는 비난은 보편화 된 것입니다만 이제는 "유권(有
權) 속수무책, 무권(無權) 법정구속"이라는 말이 생길 판입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재판에 불응하면 속수무책이고 약한 사람이 불응하면 법정구속을 당
해야 하는구나!" 하는 뜻입니다.
하나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의 권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영적인 권세입
니다.
교회에 대한 이런 종류의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입니
다. 이런 풍조에 대해서도 이겨야합니다.
어떻게 이겨야합니까?
복음적인 신앙으로 이겨야합니다.
한국의 교회들뿐만 아니라 서양의 교회들도 성장이 멈춰진 추세를 보이고 있는
데 그런 가운데서도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복음적인 교회들입니다. 미국
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적인 신앙으로 교회 안의 좋지 못한 요소들, 성장을 가로막는 것들,
박해,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교회에게 "이기는 교회가 되어라"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
장과 3장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의 이런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게는 "처음 사랑으로 이길 수 있다"
서머나 교회에게는 "부활신앙으로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이 자신을 소개할 때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계2: 8)하셨거든요,
버가모 교회에는 "순교의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 버가모 교회에는 잘 알려지
지 않은 순교자 안디바가 있었거든요. 주님께서는 안디바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계2: 13)
두아디라 교회에는 "굳게 잡음으로 이길 수 있다", "다만 너희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계2: 25)라고 하셨거든요.
사데 교회에는 "믿음을 지키는 소수의 무리로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은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이 있는 것을 칭찬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런 믿
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빌라델리바 교회에는 "인내의 말씀으로 이길 수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열심으로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
개하라"(계3: 19)
이 처음 사랑, 부활 신앙, 순교의 믿음, 굳게 잡음, 믿음을 지키는 소수의 무리,
인내의 말씀, 열심을 하나로 요약하면 "복음적인 믿음", 이렇게 됩니다. "복음적
인 믿음으로 이겨라!"
전쟁을 하는데 여러 가지 무기가 필요합니다. 미사일도 필요하고 미국이 동해
에 배치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지스함도 필요합니다.
지난 월요일에 용인서지방 교역자들이 서산에 있는 공군 20전투 비행단을 방문
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신앙책자들과 어느 성도가 여선교회를 통해 기증한
좋은 과자 상자를 장병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기지 이곳 저곳을 안내하는 장교
가 "저 전투기는 한 대에 500억 원입니다"해서 모두 놀랐다고 합니다. 500억 원
이면 목양교회 같은 건물 네 채 지을 수 있는 액수입니다.
이제 국제공항이 인천으로 이전해서 저희 교회 위로 예전만큼 여객기가 자주
다니지는 않지만 국내선 항공기들은 계속해서 다닙니다. 여객기는 가격이 얼마
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비행기 값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는 비행기가 지나가면
본당 공사장 한 번 보고 비행기 한 번 보고, 몇 번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전투에서 최후 승리는 어떻게 거둘 수 있습니까?
소총을 든 보병이 기를 꽂아야합니다. 복음적인 믿음이 이 소총을 든 보병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에 현대적인 신학이론들도 필요합니다. 조직들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최후 승리를 거두는데 꼭 필요한 것은 복음적인 믿음입니다. 단순한 믿음입니
다.
목양교회를 소개하는 말을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렇게도 만들어 봅니다. 주보
의 열두 면 가운데서 목양교회를 소개하는 12면을 이번에 좀 새롭게 꾸며 보았
습니다. 여기서 빼놓지 않는 것이 "전통적인 경건에 충실한 교회"입니다. 전통
적인 경건, 이것이 바로 복음적인 믿음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적인 믿음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단순한 믿음 위에 서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 대단히 단순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다, 그 분
은 십자가를 지셨으나 부활하셨다. 그리고 재림하신다. 그 예수님을 믿어야 구
원 얻는다." 이것이 믿음의 원형입니다. 그 믿음 가지고 유대교를 이겼습니다.
그 믿음 가지고 네로의 박해를 이겼습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 왕이 되기 전에 막센티우스라는 정적과 싸우
는데 병력을 비롯해서 모든 면에서 불리했습니다. 결전을 앞둔 전 날, 어느 날
정오, 밝은 햇살 속에서 번쩍 하는 모습으로 십자가가 보이더니 "이것으로 이겨
라"하는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로 군기를 만들어 싸워 이겼습니다. 이
사건이 기독교를 공인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믿음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기시기 바랍니다.
이기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에 약속된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는
축복,
서머나 교회에게 약속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축복,
버가모 교회에게 약속한 만나를 받고 흰 돌을 받는 축복,
두아디라 교회에게 약속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는 축복,
사데 교회에게 약속한 흰옷을 입는 축복,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축복,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우리 이름을 시인하는 축복,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약속한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는 축복,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약속한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
니다.
그것보다 더 절실하고 절박한 것이 있습니다.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겨야합니다.
초대교회가 유대교의 박해, 로마 당국의 박해를 이기지 못했더라면 교회의 역
사는 피지 못한 꽃처럼 거기에서 끝났을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이 마르틴 루터에게 "당신이 주장한 것 다 취소해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협박할 때 루터가 그 협박을 이겨내지 못했더
라면 개신교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음 주일이 요한 웨슬리 회심 263주년 기념주일인데 요한 웨슬리가 그 시대의
타락한 풍조, 또 영국 구교회의 형식적인 신앙을 이기지 못하고 휩쓸려 버렸다
면 감리교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 시대의 풍조,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형태의
핍박, 신앙과 교회를 경시하는 풍조, 위축되어 가는 교세와 싸워 이기지 못하면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실감이 안 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교
회가 한 때 대단히 흥왕했었으나 이제는 사라지거나 명맥만 유지하는 곳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하는 고민은 햄릿에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이고 목양교회의 문제입니다.
목양교회 창립 40주년, 이기는 교회가 되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
다.
지난 주간에 기도원에 머물면서 목양교회가 걸어온 길을 정밀하게 살펴보았습
니다. 10년 전에「목양교회 30년사」를 기록하면서 느낀 것들을 정리하고 최근
10년 동안의 각종 통계와 겪은 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론이 창립 40주년
이 이기는 교회가 되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양교회 성전 신축, "우리는 이기는 교회입니다" 하는 의지의 표현이 되어야합
니다.
이기는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목양교회가 이기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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