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따기가 제일 좋은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주인이 없을 때입니다. 요즘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만, 저희들 어렸을 때는 참외밭에서 참외 서리도 했고 또 과수원에 들어가 사과를 따기도 했습니다. 주인이 없으면 참외 서리도 쉽고 사과도 쉽게 딸 수가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주인을 분명히 하지 아니하면 사탄이 우리 가정에 침투하여 행복의 사과를 따 가지고 갑니다.
오늘 본문 행복한 가정생활의 대전제를 선포합니다. "주인을 분명히 하라. 남편은 아내의 머리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 날, 21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날 - 부부의 날이라고 합니다. 홀로 사시는 분들은 영원한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구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청년들에게는 가정의 환상을 꿈꾸는 복된 시간이고 싶습니다.
불교는 가정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가는 종교입니다. 천주교는 가정없는 삶을 신성시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가정을 창조하심으로 그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막 시작하셨을 때에 가정을 축복하심으로, 물을 바꾸어 포도주 만드심으로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공동체 둘이 있습니다. 교회와 가정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다고 하면,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가정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선언합니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라.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무나. 네 몸과 같이 사랑할 이웃을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집안에 있다."
요리문답이 가르쳐주는 인생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 이것이 이땅에 우리가 살아가야 될 목적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세상에 신비가 많이 있습니다만 가정만큼 신비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에 부요에 주신 천국의 비밀, 교회에 주시는 천국의 비밀이 크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비극이 있다고 하면 천국의 환상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을 적당히 합니다. 교회를 천국으로 만들 꿈을 잃었습니다. 가정생활을 아무렇게나 합니다. 가정생활의 환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것, 이것은 사소한 일이거나 작은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에밀 디킨슨은 그런 시를 읊었습니다.
만일 내가 한 사람의 상심을 건질 수 있다면 내가 사는 것은 헛되지 않으리.
만일 내가 한 사람의 괴로움을 들어줄 수 있다면 내 목숨은 그것만으로 값이 있으리.
만일 내가 한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살아갈 이유가 되리.
내가 만일 한 마리 허덕이는 안락새를 구하여 그 둥지속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하물며 나로 인해 내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들과 더불어 오늘 하루를 살아갈
이유가 되리라.
오늘 본문 바로 앞 구절의 주제가 에베소서 5장 15절 이하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성령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지혜있는 사람은 돈을 잘 번다. 장사를 잘하고 사업을 잘한다.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기적을 행한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금식하며 기도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결론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지혜를 얻는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살아간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왜요? 우리는 짤막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그네 인생길에 허무한 것이라. 청춘도 한 때요 젊음도 한 때입니다.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이라고 하여 우리의 삶을 일생이라 합니다. 여기는 시행착오도 연습도 없습니다. 돈이 조금 모자라도 지식이 출중하지 못해도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화목하게 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령충만한 하나님 나라 - 천국은 가정안에서 이루어 질 때에 참된 천국이 된다고 오늘 본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왕이십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대전제가 있습니다. 가정의 머리가 있는데 남편은 아내의 머리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듯이 남편도 그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말씀이지요. 우선 이 말씀은 남편된 사람들에게 대단히 두려움과 경외감을 주는 말씀입니다. 인간인 나를 보고 예수님처럼 살라 말씀하십니다. 한없이 부족한 나를 향하여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 아내된 사람들에겐 무조건적인 존경과 순종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순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같은 사람인데 남자, 남편이 뭐가 그리 존경스럽겠습니까? 그러나 남편된 사람에게 복종해라.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지느니라.
가끔 머리가 둘 달린 뱀이나 원숭이가 발견되어집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한결같이 다른 동물들보다 그 수명이 ⅓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로 싸우다 지쳐서 죽어버립니다.
한자어 지아비 부(夫) 자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하늘천(天) 자 위에 점하나 뚝 찍어 놓은게 지아비 부(夫)자입니다. 남편은 하늘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땅위에 하늘 밑에 최고의 존재가 남편입니다. 대통령이 최고의 존재가 아닙니다. 직장의 상사가 최고의 존재가 아닙니다. 지아비가 최고의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아비가 내 머리다. 이건 선언이요 고백입니다. 그래서 남편을 황제처럼 섬기면 황후가 되고 남편을 종처럼 생각하면 자신은 시녀가 됩니다.
남편이 머리다. 이 말이 물론 아내들에겐 존경과 순종을 요구하는 말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남편된 사람에겐 권위를 부리라는 말씀이 전혀 아닙니다. 남편의 책임과 임무를 강조한 말씀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생 이빨을 뽑듯이 순종을 강조할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대신 사랑의 권리만 있을 뿐입니다. 아내를 사랑함으로 존경을 받고 앞장서 희생함으로 존경을 받도록 남편을 만드셨습니다.
어쩌면 세상에 나가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 두가지 사건으로 얼마든지 존경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기부금 한번만 깨끗이 잘해도 세상 사람들이 나를 존경해 줍니다. 전세계 인류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도 가정에서 아내로부터 자식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목회를 하는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 한번만 잘해도 교인들이 존경해 줍니다. 그러나 그 설교와 더불어서 인격이 따라주지 않을 때에 아내된 사람들이 자식된 사람들이 존경해 주지 못합니다. 설교만 잘하네. 그러면 끝나는 겁니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는 그 존경이 진짜 존경입니다. 그 존경이 진실에서 나온 존경, 참된 인격에서 나온 존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믿음 안에서 참으로 믿음직한 남편이 되어줄 때 아내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아버지가 기둥처럼 버티고 있을 때에 자식들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방황하는 자식, 남편 때문에 근심하는 아내, 그 가정이 어찌 천국을 이루어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남편이 머리다. 이 말씀은 가정의 독재자가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다.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머리되는 남편은 온가족으로 하여금 더욱 위에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그분의 뜻에 순종하도록 만들어갈 책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남편이 머리라는 말씀은 아내보다 남편이 우월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는 가정의 일정한 질서를 말하는 것 뿐입니다. 머리와 몸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머리에 이상현상이 생기지요. 급하게 외출할 때 머리는 다듬지 못해도 얼굴은 다듬고 나갑니다. 그만큼 얼마나 자신의 인격을 닦고 살아야 하는 것이 어려운가? 머리된 남편이 얼마나 어려운 삶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 얼굴이 이렇게 좀 잘 생겼습니다만은 얼마나 제 얼굴이 무능한지 모릅니다. 안경을 쓰는데 손이 씌워주지 아니하면 안경도 혼자 못씁니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을 먹지만 이 손이 먹여주지 않으면 한 수저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손발에게 순종하라 강요할 권리가 내 입에게 없습니다. 눈이 손보다 위대한 것 아닙니다. 입이 발보다 더 훌륭한 것 아닙니다. 역할 분담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세상적인 가치관과 성경적인 가치관이 충돌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기독교도 120년이 지났습니다. 샤머니즘적인 가치관, 동양적인 가치관, 유교적인 가치관이 - 기독교적인 가치관의 우리삶속에서 굴복되어져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충돌되어 질 때에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따를 때에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세상적인 가치는 남자들에게 사나이 대장부가 째째하게 가정에 신경을 써~ 그럽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아내를 사랑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갈 때는 남자로 나갑니다. 그러나 집안에 들어올 때는 남편으로 들어옵니다. 사자가 밖에 나갈 때는 맹수로 나가기 때문에 이빨을 세우고 발톱을 세워서 나갑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들어올 때는 발톱을 숨기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남편은 사랑함으로 살맛이 나는 존재이며 아내는 사랑을 받음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정원과 여자는 가꾸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원은 가꾸지 않으면 잡초로 우거집니다. 사랑받지 못한 아내는 잡초처럼 추해집니다.
얼마만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까? 28절 제 몸같이 사랑해라. 33절 자기같이 사랑해라. 그런데 살아 가다보면 남편이 아내가 내 몸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웃집 남자처럼 여겨집니다. 그래도 사랑해야 됩니다. 왜요? 성경은 내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내 이웃집 아주머니처럼도 여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습니다. 평생 원수처럼 여겨집니다. 그래도 사랑해야 됩니다. 왜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을 도무지 존경하지 아니하고 사랑해 주지 않는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주일 저녁 예배에 갔다오더니 싹싹해 졌습니다. 남편을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감동받은 남편이 ‘목사님께서 아주 귀한 말씀을 우리아내에게 들려주었구나.’ 큼지막한 선물을 가지고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우리 아내가 저녁 예배 갔다오더니 싹싹해 졌습니다. 내게 사랑을 부어줍니다. 남편을 공경하라. 남편을 사랑하라 말씀해 주신 것 같은데 자주 그런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목사님이 주보를 보더니 "저는 그런 설교를 한 적이 없습니다. 설교제목이 「원수를 사랑하라」였습니다."
어떻게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까? 주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같이 사랑하라고 얘기했습니다. 가끔 은혜를 받아서 부인이 남편의 발을 씻어주는 사람을 보았습니다만 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어주는 사람을 흔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아내의 약점을 덮어주라는 얘기입니다. 아내의 허물을 감추어 주라는 얘기입니다. 십자가 지고 피흘리기 까지 희생하며 사랑하라는 말씀이지요.
남자를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흙은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을 덮어버립니다. 녹여버립니다. 썩혀 버립니다. 아내를 만드는데 갈비뼈로 만들었습니다. 아담이 잠든 다음에 갈비뼈를 뽑아도 아담은 몰랐습니다. 그것은 잠든 게 아닙니다. 죽은 겁니다. 행복한 가정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남자가 한번 죽었다 깨어나야 가정의 행복을 세워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요술이 아닙니다. 마술이 아닙니다. 남자들의 노력에 따라서 가정의 천국이 건설되어질 수 있다는 얘기지요.
어떤 뼈라구요? 갈비뼈로 만들었습니다. 새끼발가락 뼈로 아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밟으려 하지 마십시오. 부인된 사람들이여! 여러분을 만들 때 하나님께서 남편들의 머리뼈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남편 머리에 걸터앉아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살은 썩지만 뼈는 썩지 않습니다. 변치않는 사랑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갈비뼈는 중심의 뼈입니다. 가정은 소중한 자리에 품고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다는 얘기지요.
머리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아내를 영광스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26-27절입니다. 우리의 문화는 아내 자랑하는 사람을 팔불출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팔불출이 십팔불출이 되어도 아내를 존귀히 여기고 세상사람들 앞에도 자랑하며 살 수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정에 어린 자녀들 앞에서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은 아내를 소중히 여길 때에 아내들이 우리를 공경하고 또 자식들이 우리를 공경해 준다는 얘기이지요.
어느날 아들이 밖에 나갔다가 헐레벌떡 아버지 앞에 달려왔습니다. "아빠, 세계 3대 악처가 누구예요. 서양의 2 악처는 알겠는데 동양 최대의 악처가 누군지 기억이 안나요?" 아버지가 아들 이마에 꿀밤을 주더니 "이놈아, 네 엄마 이름도 몰라?" 그럽니다.
진정 멋진 남편이 되시려면 돈벌고 사회생활하는 일에서 뿐만아니고 영적인 면에서도 가정의 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은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남편된 사람, 아버지된 사람의 모든 손 끝에 축복의 권세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때로 남편이 교회에 한번만 나와주어도 고마워하는 아내들이 있지 않습니까? 내 남편도 이제는 영적인 세계를 알기 시작했구나. 그들이 감격해 주는 것입니다. 돈벌이만 아는 남편, 잠자리만 아는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하여 그들은 감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번의 교회 출석을 통해서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헌신되고 말씀대로 살아가게 될 것이며, 교회의 기둥되어 살아갈 그날을 바라보며 눈물지어 감사하고 기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리된 남편은 아내를 내 울타리 안에만 묶어둠으로 내 집을 인형의 집으로 전락시키려 해서는 아니됩니다. 아내의 영적인 발전을 도와주십시오. 교회의 봉사하고 섬기는 아내를 바라보며 기뻐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간혹 아내의 기도를 막는 남편들이 있습니다. 이는 병실에서 산소호흡기 줄을 끊는 잔인한 남편과도 같은 것입니다. 불이 났습니다. 달려갑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습니다. 비상구가 보입니다. 문을 열고 달려가려고 하는데 자물쇠가 잠겨져있습니다. 아내의 기도는 가정을 살리는 가정의 비상구입니다. 남편을 축복하고 자식을 축복하는 천국의 호흡입니다.
철야기도하고 조금 늦게 들어오는 아내 때문에 길길이 뛰는 못난 남편이 되지 마십시오. '여보 내가 기도하지 못하니 당신이 밤을 세우며 기도해 주는 구려. 당신 때문에 내가 사업을 할 수 있고 내가 자신있게 밖에 나가 살 수 있어서 고마워요.' 얼마나 감동을 받겠습니까? 그때에 아내가 드렸던 모든 기도가 바로 여러분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다. 이는 아내된 사람이 어떻게 남편을 대할 것인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남편은 자기 갈비뼈를 찾아야 안식하고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여인들은 자신 갈비뼈의 고향을 제대로 발견할 때에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아내된 사람들의 주제가가 있습니다. 그 주제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남편 갈비뼈~
저녁이 되면 지친몸을 이끌고 갈비뼈를 찾아서 들어옵니다. 남자들은 직장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여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평안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집에 들어와서 쉬기 위하여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아이들만 오글오글 모여있습니다. 대뜸 입을 열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는!" "밖에 나갔나봐요" "안 계세요" 그 순간 이쪽의 갈비뼈가 쑥 빠져 나갑니다. 몸이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한쪽이 빠지니까 기울어져 빙그레 돌아서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입니다.
갈비뼈는 남자의 보화입니다. 남자들이 여러분을 사모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언제나 여러분들 남편이 여러분을 향하여 "당신은 나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올시다. 이 땅에 내가 살아가며 최고의 분복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내 아내로 보내주신 것이요. 이 세상에 살아가는 나의 최고의 행운이 있다고 하면 내가 당신을 만난 것입니다." 이 고백을 하고 살아가고 이 고백을 듣고 살아갈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피곤에 지친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 바가지를 긁으려 하지 마십시오. 어리석은 일입니다. 남자들을 일터에서 헤매다가 집으로 들어옵니다. 쉬기 위해서 옵니다. 평안을 위해서 안식을 위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돈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술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명예로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의 사람들의 수명을 조사해 보니까 우리나라에만 하더라도 남자들의 평균수명이 70살입니다. 그런데 여자들의 평균수명은 78살입니다. 평균적으로 보면 2-3살정도 남자들이 나이가 많습니다. 그렇게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10년을 더 살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 여자분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됩니다. 만약 자기 남편보다 몸이 약해서 먼저 죽는 부인이 있다면 세상 최고의 악처입니다. 아내들이여 오래 사십시오.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 때에 남자는 여인의 품에서 태어나 여인의 품에서 죽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배우자는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꿔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을 내 맘에 맞도록 바꿔서 살아가려고 하다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받았습니까? 아내를 내 입맛에 맞도록 바꿔서 살아가려고 하다가 지울 수 없는 결정적인 상처를 어리석은 남자들이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내 자녀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만든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쳐서 살아가는 것 아닙니다.
빌리 그레함의 부인, 루스 그레함의 말 가운데 그런 말이 있습니다. "내 임무는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지 남편을 개조하는 것 아니다. 믿지 않는 남편의 전도도 정말 그 영혼을 사랑해서, 그를 구원하기 위해 전도해야지 남편을 개조시키려 전도해서는 아니 된다고 말했습니다.
머리되는 남편앞에 아내의 최고의 덕목이 있습니다. 순종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은 복종하는 아내의 모습입니다. 위대한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왜소한 인격을 가지고는 절대로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교우들 가운데 대부분의 교우들이 목사에게 순종을 해 줍니다. 저는 고마워 눈물이 나지요. 나보다 분명히 많이 배웠습니다. 세상적으로 훌륭합니다. 참으로 탁월한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난 제가 하나님이 그에게 보내준 주의 종인줄 알고, 내게 말씀 먹여주시는 주의 종인줄 알고 저에게 순종해 줍니다. 제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그들이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감격하여 더 충성하리라 다짐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해 주지 못하는 교인들을 볼 때에 저 사람은 내게 보낸 내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 줄 때에 내게 보내준 아내구나. 하늘이 보내준 천사구나.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불순종한 아내를 볼 때에 내게 보내준 하늘의 천사가 아닌가 보다 할 때가 있는거지요. 그래서 현숙한 아내는 여호와의 선물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 아내의 그런 불순종한 모습을 볼 때는 남편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현숙한 여인은 여호와의 선물이라면 저 미련한 여인은 누구의 선물이란 말인가?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여인의 행복입니다.
하늘이 보낸 사람만이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못난 여자들, 보통 사람들 가지고는 순종이 안되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절대로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보낸 사람 순종하면 남편을 바라볼 때 그가 예수님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주께 하듯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 뜻에 순종하는 자에게 행복이 있습니다. 남편말에 순종하는 아내는 마음의 평화가 있습니다. 안식이 있습니다. 불순종하면 자기 마음에 벌써 불화가 생깁니다. 불편해 지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아내는 사랑을 받습니다. 불순종하는 아내를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남편이 못나고 부족해도 가정에서 남편은 존경을 받을 때에 세상 살맛이 나는 존재들입니다.
성경이 서로를 남편을 아내를 갈비뼈라고 얘기했습니다. 특별히 여인을 향하여 돕는 베필, 갈비뼈라고 얘기했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니까 ? (shut bone half) - 어떤 번역에 보니까 "꼭 맞는 짝"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양복을 맞추고 가봉하듯이 - 아내는 기성복이 아닙니다. 나는 내 남편의 맞춤복이다. 내 남편의 영적인 모자라는 부분을 내가 채워서 꼭 맞추어서 살아가는 게 아내의 본분이다. 남편의 육체적인면, 정신적인면, 모자라는 것 채우고, 허물 덮어가며 꼭 맞는 짝이 되리라.
오늘부터 부인들은 선언하십시오. 여보 당신은 내 머리예요. 나는 당신의 몸이예요. 당신을 세워주기 위하여 당신을 받쳐주기 위하여 나는 존재합니다. 당신은 머리요, 나는 당신을 받쳐주는 목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머리라는 게 목이 돌아가는데로 움직이게 되어 있는 거지요. 어리석은 여인들은 남편 위에 걸터앉아 살아가려고 합니다. 머리위에는 머리카락 밖에 없습니다. 머리카락은 쉽게 빠져 도망갑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에게 아내를 보내주시는데 세상 모든 동물들은 다 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아담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게끔 했습니다.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주니라. 그들이 짝이 다 있었지만 아담에게는 짝이 없었습니다. 기다리게 했습니다. 행복은 기다릴 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제트기가 나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데리고온 하와를 향하여 그는 고백했습니다. "이는 내 살중의 살이요 뼈중에 뼈로다" 내가 선택하고 골라잡은 것 같지만 하나님이 선물로 보내준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를 주문제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데리고 온 모습 그대로 사랑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배우자 불평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에게 불평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혜로운데 배우자는 미련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하나님을 미련하다 말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잘났는데 배우자는 못났다 생각하며 살아가시는 분 계십니까? 하나님을 못났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일학교에서 헐레벌떡 달려온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천국은 어떤 곳이예요." "얘야 천국은 우리 집과 같은 곳이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집에 계시거든, 예수님이 우리 집의 주인이거든. 우리 집은 천국이 아니겠니."
오늘부터 고백하고 살아가십시다.
나는 60억 인구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20억 크리스챤 가운데 가장 행복한 크리스챤이다.
우리교회는 이 지구상에는 모든 교회들보다 가장 행복한 교회다.
우리가정은 이 땅에 있는 20억 가정 가운데 가장 행복한 가정이다.
내 인생의 최고의 행운은 남편을 만난 것이요 아내를 만난 것이다.
당신이 내게 있는 것, 하나님이 당신을 내게 보내준 것,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최고의 분복이다.
당신으로 인해 나는 행복합니다. 여보 내 곁에 오래 살아줘요. 당신이 내 곁에 존재하는 하나만으로 인하여 나는 기쁨이 됩니다. 당신이 내 곁에 계신 것 하나만으로 내게는 행복이 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2)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