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과 속초 등 지역교회들도 산불로 피해를 입은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등 피해주민들을 위로했습니다.
이번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교인들은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교회의 관심과 사랑에 큰 위로를 느낀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한운용 서리집사 / 고성 천진중앙교회
"많은 성도들이 위로를 해주시고 그러죠.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픔이 컸지만 또한 주변에 계신 분들이 상당히 많은 노력을 해주셔서 감사드리죠."
고성과 속초 산불로 속초농아인교회와 임마누엘기도원 등 교회와 기독교기관건물 10여 곳이 전부 또는 전부나 일부가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화재로 예배처소를 잃은 교회들은 성도들의 가정을 방문하며 예배를 드릴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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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일꾼 자처하는 배용하 목사
배용하 목사가 트랙터로 밭을 갈고 있다. 배 목사는 이 마을에서 목사보다는 총무로 불리길 원한다.
[앵커]
우리 주변에 선한 이웃을 만나보는 시간. 오늘은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하나님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는 배용하 목사를 소개합니다.
이승규 기자의 보돕니다.
[기자]
완연한 봄기운이 충남 논산시 양촌리 마을을 감쌌습니다.
트랙터로 열심히 밭을 갈고 있는 배용하 목사는 마을에서 이장을 도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총무로 불립니다. 차가 없는 어르신이 많아 병원을 오고 가거나 마을에 비료를 나눠주는 일 등의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배 총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메노나이트 소속 목사이기도 한 배 목사는 적어도 이 마을에서는 젊은 청년, 총무라는 직함으로 불리길 원합니다.
[인터뷰] 배용하 목사 / 도서출판 대장간 대표
"(마을주민들이) 저한테 부탁할 때도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도 있지만 '총무님 이것 어떻게 해요', '이것 필요한데 이것 떨어졌어요'.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죠. 저는 오히려 그게 더 친근한 것 같아요."
배 목사가 아내와 이 마을에 정착한 지 9년째. 마을을 위해 특별하게 하는 일은 없지만, 항상 주민들과 호흡하며 그들의 필요를 살피는 일에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마을에 있는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작은 도서관을 만든 것도 그 이유입니다. 상대적으로 문화시설이 빈약한 지역에서 아이들이 책이라도 마음껏 보면서 뛰어 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학생들은 학교가 끝난 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보기도 하고, 주말에는 부모님과 하룻밤을 지내면서 북스테이를 하기도 합니다.
마을을 넘어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지난 2000년 인수한 도서출판 대장간도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역 중 하납니다.
배 목사의 요즘 관심은 자립입니다. 연령대가 높아진 시골에서 마을 기업 등을 만들어 어르신들이 자립해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는 겁니다.
[인터뷰] 배용하 목사 / 도서출판 대장간 대표
"우리 마을이 작긴 하지만 그런 분들과 함께 하나씩 하나씩 마음을 열고 친해지면 서로 믿고 그런 역할도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배용하 목사는 한국교회와 마을의 선한 이웃으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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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 목사 “부총회장 후보 될 마음 없다”
"지금껏 다른 분야서 교단 섬기겠다 기도" "옥한흠·김경원 목사, 주변 권유에도 고사"
"교갱협, 정치집단으로 오해 될 확신 때문" "이제 개혁 측에서 총회장 나올 때도 됐다"
▲이건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예장 합동(총회장 이승희 목사) 제104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로 거론됐던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담임, 교갱협 이사장)가 "부총회장 후보가 될 마음이 없다"고 했다.
이 목사는 9일 인천제2교회에서 열린 인천노회 제110회 정기회에서 "지금까지 사적, 공적 모임에서 본 교단 부총회장으로 출마할 것을 언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이 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목회자로서 총회장이 되겠다는 기도와 목표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교단과 총회를 섬기겠다는 기도와 행동으로 지금까지 지내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목사는 "교갱협 대표회장을 지내신 故 옥한흠 목사님, 김경원 목사님도 주위의 많은 권유에도 불구하고 부총회장 출마를 고사하셨다"며 "(교갱협) 대표회장이 (부총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자칫 (교갱협이) 정치집단으로 크게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셨다"고 했다.
특히 그는 "개혁 측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복음의 동역자로 받아들인 지 십여 년이 흘렀다"면서 "이제는 그 형제들 중에 총회장이 선출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목사의 이 같은 발언은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개혁 측 출신인 소 목사는 현재 강력한 부총회장 후보로 꼽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목사는 "지금까지 부총회장 출마를 거론한 적이 없었기에,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은 불출마 선언이 아니"라며 "다만 제 입장을 밝힌 것 뿐"이라고 했다.
앞서 이 목사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부총회장 선거 출마 의사를 묻는 질문에 "혼자 결정할 수 없다. 교갱협 대표회장을 지냈기 때문에 (교갱협) 임원들과 깊은 대화를 해봐야 한다"며 "그래도 평생 같이 했던 분들이 곁에 있는데 그 분들의 의견을 전혀 무시할 수 없다"고 했었다.
교갱협 한 관계자는 "확정된 건 아니나 (이 목사의 출마를) 요청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한편, 교단 한 관계자는 "언론 등이 이건영 목사의 출마 가능성을 보도하면서 그 스스로 입장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라며 "노회에서 밝힌 내용을 종합하면, 본인은 의사가 없지만 주변, 즉 교갱협 측 인사들이 강하게 권유할 경우 선거에 나갈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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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반대 종교계··미혼모에 대한 편견,차별도 없애야
낙태죄 폐지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두고 종교계는 낙태죄를 유지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낙태를 하지 않고 태아난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해 무관심하고 미혼모에 대한 편견도 심한 곳도 종교계 입니다.
종교계가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데도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영헉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16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미혼모·미혼부는 3만3천여명 입니다.
미혼모는 2만3천9백명, 미혼부는 9천여명 입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혼모, 미혼부를 포함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혼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는데 따른 엄청난 부담 뿐만아니라 편견에 시달려야 합니다.
[인터뷰]김혜경 부장/동방사회복지회
"사회인식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애요 결혼을 안한 상황에서 경제적 지원과 이런 것들이 충분히 지원된다 할지라도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날수 없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면서 본인도 불이익을 당하지만 키우고 있는 자녀도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을 해서"
종교계는 미혼모, 미혼부를 순결하지 못한 사람, 부도덕한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미혼모가 용기를 내 출산을 결정한다 할지라도 아이를 키우는 것이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결혼하지 않고 임신한 여성의 경우 결혼한 여성과 달리 출산전, 즉 임신중에는 복지혜택을 거의 받을수 없습니다.
[인터뷰]오영나 대표/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출산하고 나서는 이런저런 지원이 있는데 임신기에 지원이 아주 부족해요.미혼모는 임신을 통해 병원비 뿐만아니라 주거가 불안정한 경우도 있고 직장을 그만두니까 소득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고 이런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필요하게 되는데"
미혼모가 출산을 할 경우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받고 취업을 할 경우 차상위계층으로 지정돼 복지혜택을 받지만 아이를 양육하는데 턱없이 부족합니다.
미혼모에게 임신을 시킨 남성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됩니다.
지난해 남성들에게 책임을 지우자는 '힛 앤드 런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와 21만7천여명이 서명했습니다.
미혼모에게도 출산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지만 출산휴가를 내기전에 대부분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 입니다.
종교계가 낙태에 반대할 뿐만아니라 출산을 결정한 미혼모와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양육대책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오영나 대표/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지역사회속에서 미혼모가 고립돼서 살아가는게 아니라 여기도 가면 도와줄수 있고 서로 주고 받을수 있는 지역사회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살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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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전도의 바람이 불다
한국 감리교회, 베트남에서 현지 목회자 세미나 개최
빅세경 | psknada@naver.com
베트남기독연합감리교회는 한국감리교회를 자신들의 중요한 협력 파트너이자 좋은 롤모델로 생각하여 많은 면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의 수준 높은 신학교육을 베트남 목회자들에게 교육해 줄 것을 선교사와 베트남선교회 그리고 한국감리교회에 요청한 바 있다.
이 요청에 응답하여 2018년부터 3명의 선교사(강용준, 박세경, 명노일)와 베트남선교를 위해 조직된 베트남선교회(회장 임용택)가 기독연합감리교회의 목회자를 대상으로 목회자세미나를 연 2차례(연인원400명) 진행했다. 올 해는 지난 해 목회자세미나와 연속성을 갖되 한차례 더 늘려서 3회 목회자세미나(3,6,9월)를 개최하기로 하고 실천적 신학과목을 가르치기 위해 열심히 기도로 준비하고 모였다.
2019년도 베트남기독연합감리교단의 첫 번째 목회자세미나가 3월 25일(월)부터 29일(금)까지 호치민과 하노이에서 열렸다. 먼저 25일(월)과 26일(화) 이틀간은 호치민에 소재한 혹몽교회에서 열렸고, 28일(목)과 29일(금) 이틀 동안은 하노이 소재 제자교회에서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번 목회자세미나 역시 작년에 이어 베트남선교회의 전적인 후원으로 진행됐다. 강사로는 베트남선교회 회원이면서 수원목양교회를 섬기는 박성수 목사(선교학박사)가 “전도”라는 과목으로 많은 시각자료를 동원해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주셨다.
이번에 참석한 목회자 수는 호치민 100여명과 하노이 55명이었다. 하노이에 참석한 숫자가 적은 이유는 농한기의 시골 목회자들이 집에서 300-400km 떨어진 박닌지역의 광산에서 석탄을 채취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가난한 농촌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볼 수 있는 단면이기도 했다.
▲ 참석자 단체기념사진(호치민)
호치민에서 열린 세미나는 개회예배를 포함해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5시 30분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이었다. 오전 개회예배에서 티엔 뜨 목사(기독연합감리교단 총회장)는 개회설교를 통해 “베트남의 감리교회를 사랑하는 한국의 감리교단과 선교회와 목회자들이 올해도 세미나를 위해서 귀한 강의를 전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또 “참석한 목회자들이 전도의 의미와 원리를 열심히 공부해서 바울 같은 전도자가 되어서 우리 교단과 교회들이 더 크게 성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첫날 오전강의는 ‘전도’의 어원과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강사는 TV광고를 예로 들어가며 ‘전도’와 ‘광고’의 같은 점을 설명하여 목회자들의 집중을 이끌었다. 전도는 자신을 소개하고 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몇 명의 참석자가 나와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한 참석자인 쭝(Trung) 목사는 “자신은 22년 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술 먹고 소유했던 땅도 팔며 나쁜 일을 많이 했지만 예수 믿고 나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레 티 홍 여성 목사는 “나는 25년 전 예수님을 믿고 2번의 죽음도 이겨내고 한명의 전도자로서 남쪽 지역의 교회에 다니며 간증을 하고 있으며 지금은 3명의 아들이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소개했다.
첫날 오후에는 이곳 베트남에 맞는 전도전략을 세워야 하는 중요성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강사는 “한국의 전도방식과 원리는 자신이 전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베트남 상황에 맞는 전도전략을 짜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참석자를 8개조로 나눠서 조별로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주고 각 조별로 전도전략을 세우고 다음날 10개 조별로 발표하게 했다.
각 조별의 발표를 종합해보면 △전도를 위해 기도하라 △지역의 풍습과 문화를 연구해라 △잘 아는 사람에게 전도하라 △교회에서 전도를 훈련해라 △전도대상자를 위한 예배를 드려라, △전도대상자를 제자화(성경공부)를 해라 △연령대별로 전도하라 △자선사업을 지역인민위원회를 통해서 진행하라 등 8가지의 좋은 전도전략들이 나왔다. 박성수 강사는 이 전략들을 종합해서 다시 정리하고 코멘트를 해주었다.
이런 다양하면서도 현실적인 8가지의 전도전략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베트남의 교회도 과거처럼 핍박과 고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점차 개방적인 교회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기회였다.
이렇게 이틀 간 호치민의 목회자세미나를 마치고 강사들과 한국선교사들은 부(Vu) 목사(베트남기독연합감리교회 부총회장)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하노이로 이동했다. 28일(목)과 29일(금) 이틀간 하노이에게 열린 강의는 호치민의 학습 분위기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호치민에 참석한 목회자들이 적극적으로 질문도 하고 강의에 능동적으로 반응을 하는 반면 하노이는 그렇지 않았다.
하노이 세미나에 참석하는 목회자는 소수민족인 흐몽(Hmong)족이 약 90%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하노이에 사는 낀족(Kinh,주종족)의 목사, 전도사들이다. 아마도 민족성에서 오는 차이이겠지만 자유스런 분위기의 남쪽과는 다르게 수도가 있는 북쪽이 좀 더 경직된 경향을 보이는 사회분위기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강의내용이나 진행방식도 호치민에서 진행한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는데 강사는 세미나 참석 목회자들이 좀 더 자신의 의견을 말과 몸으로 적극적으로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보았다.
하노이 강의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강사가 참석자 반응을 이끌어 내려고 왜 ‘전도’를 전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려고 들었던 사례였다. 강사는 생수 500ml 물(영원한 생수) 한통을 손에 들고 “이 물을 먹기 위해서 우리 주위에 여러 가지 장애물(사탄의 유혹)이 있지만 이를 마시기 위해 가지러 가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몸으로 설명하면서 따라 해보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나서는 사람이 없었지만 몇 번을 반복하니 많은 사람이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몇몇은 이 장면을 자신들의 스마트 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 전도를 전하는 이유를 물병을 통해설명하는 강사(하노이)
강의를 모두 마치고 나서 하노이의 한 여성 전도사는 “전도의 원리에 대해 이렇게 배울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감사하고 이제는 나도 전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부(vu) 목사(부총회장)도 “이번 강의를 통해서 참석자들이 전도와 관련해서 베트남에 필요한 실제적인 전도원리와 전략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강의를 마치자 기독연합감리교단의 부총회장 부(Vu)목사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강의를 해주신 박성수 목사와 세 명의 선교사에게 선물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체참석자들과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목회자세미나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마무리되었다. 다음 2,3차 세미나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작은 시작이지만 이 목회자들을 통해 베트남에 전도의 바람이 불 것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에 열릴 9월 세미나에서는 2년 동안 참석하고 수료한 목회자들에게 한국의 베트남선교회와 베트남의 기독연합감리교회의 공동명의로 수료증을 전달할 예정이다.
▲ 강사 및 선교사들에게 선물전달하는 부(Vu) 부총회장(우에서 세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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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설교에 ‘맛’이 없자, 교인들은 자주 ‘외식’하기 시작했다
▲매일 먹는 집밥이야말로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때로는 ‘파격’이 필요하고, 기본적으로 ‘깊은 맛’이 있어야 한다. ⓒ픽사베이
시대를 읽어라
시대가 많이도 변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교인도 많이 변했다. 시대가 변하니 교인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설교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는 신학교가 시대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학도 많이 발전했다. 하지만 설교는 여전히 해석 중심이다. 설교에서 중요한 구성을 활용하지 않는다. 이는 설교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어릴 적 먹던 음식과 지금 음식은 바뀌었다. 사람의 입맛이 변한 것이다. 어릴 적에는 거의 한국식이었다. 이젠 양식, 일식, 중국식, 베트남식, 태국식, 멕시코식, 이슬람식 등 다양한 입맛을 무장해야 한다.
교인의 설교 입맛도 변했다. 이 말은 설교가 지금보다 발전해야 함을 뜻한다.
언젠가 신학교 설교학 교수의 설교를 받아 본 적 있다. 이 설교를 회원들과 나누었을 때 들은 말이 있다.
“설교학 교수의 설교는 10년 전과 변한 것이 없네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놀랄 것 없다. 30년 전과도 변한 것이 거의 없다. 나의 주변의 설교자들도 그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과연 설교자들은 교인의 설교에 대한 원함과 필요가 달라진 것을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말씀이 변하지 않아야 하듯이 설교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인가?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설교는 변해야 한다. 설교는 시대와 사람에 따라 변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구성과 적용 등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인들의 설교 입맛이 변했다. 변했음은 물론, 듣고자 하는 설교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교인의 입맛이 까다로워졌다는 것은 기존의 설교 구성 틀을 바꿔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변하고 있다. 사람이 변했기에, 세상이 변한 것이다. 그렇다면 설교도 변해야 한다. 하지만 설교는 변하지 않은 것은 놀랍고도 놀라운 사건이다.
설교에 대한 교인의 변한 입맛에 대한 해결책은 설교의 구성이다. 설교에서 중요한 요소는 세 가지다. 첫째, 성경 해석이다. 둘째, 설교의 문학적인 구성이다. 셋째, 설교 글이다.
설교는 성경 해석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의미(메시지)를 삶과 연결하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설교는 성경 해석에 머물고 있다.
가나안 교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100만 명이 넘었다는 말이 들린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150만 명을 넘어 2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는 글을 읽은 적 있다.
가나안 교인들의 대부분이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변화되지 않은 목사의 의식과 발전되지 않은 목사의 설교를 들을 수 없기에 가나안 교인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 들어섰다.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한 시대다
사람의 원함과 필요가 바뀌니, 변화를 원하는 사람에 의해 시대가 바뀌었다. 교인이 원하는 설교가 바뀌었다.
설교가 전에는 내용만 좋으면 되었다. 이젠 좋은 내용만으로는 안 된다. 통찰력을 요구한다. 구성을 통한 낯설음을 요구한다.
전에는 설교 글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젠 설교에서 글이 중요해지고 있다. 필자는 설교 글을 쓰면 쓸수록 설교에서 글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그리고 설교의 구성을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설교자는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글쓰기의 형식에 따라 설교할 줄 알아야 한다. 글을 쓸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지금은 내용보다 형식(설교는 구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내용이 형식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 형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글을 쓸 줄 모르면 알기 힘들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넘쳐나는 콘텐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하지만 글을 쓸 줄 모르면 어떤 내용을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인 강원국은, 그의 책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글의 ‘내용’과 ‘형식’의 중요성이 바뀌었다고 한다.
“과거엔 내용이 먼저이고 형식이 뒤따랐다. ‘무엇(내용)’이 우선이고, ‘어떻게(형식)’은 ‘무엇’에 종속되게 마련이었다. 이제는 형식이 ‘무엇’에 해당한다. 내용이 ‘어떻게’다. 글의 전개 형식을 ‘무엇’으로 결정하면 내용은 ‘어떻게’라고 채울 수 있다.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구슬이 서 말이다. 꿰는 게 문제다”
내용을 글로 꿰는 것이 중요하다. 내용이 좋으면 뭐하나? 꿰지를 못하는데, 설교에 사용된 내용이 좋으면 뭐하나? 내용을 꿰지 못하는데.
설교는 논리적인 글이어야 한다. 논리적인 설교를 만들지 못하는데, 진리가 교인들에게 들려지게 할 수 있는가? 불가능에 가깝다. 글에서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면 설교자는 설교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구성이 설교를 맛깔스럽게 해 준다
많은 설교자들이 성경을 해석한 뒤 단어나 구절을 설명한다. 그 다음 연관된 성경 관주를 사용해 설명을 뒷받침한 뒤, 당위적인 적용을 하는 것으로 설교를 한다.
설교할 때 이처럼 매번 같은 구성을 하면 매 번 같은 듣는 구성을 듣는 교인들이 설교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리더란 앞서가는 사람이다. 설교자는 설교를 듣는 교인들과 다른 것을 통찰력을 주는 사람이다. 변한 시기에, 바뀐 입맛을 맞출 수 없다면 교인은 설교를 마음으로 들으려 하지 않는다. 교인의 입맛을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 교회의 리더다.
자녀는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이 맛이 없으면, 잘 먹지 않고 깨작거린다. 교인은 설교자는 만들어주는 설교가 맛이 없으면 듣기를 거부한다. 사람이 맛있는 밥을 먹고자 하듯, 교인은 맛있는 설교를 듣고자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 안에 황홀함 이상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날마다 만나는 것은 예수님 안에 내 영혼을 톡 쏘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설교가 맛이 없자, 교인들은 설교의 외식이 일상화되었다. 외식을 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설교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설교의 구성이다. 설교를 잘 하는 설교자는 설교 구성의 개수가 많다. 설교를 잘 하지 못하는 설교자는 설교 구성의 개수가 적다.
필자의 아내는 밥을 먹을 때 반찬 가짓수가 많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외식할 때 식당도 반찬 가짓수가 많은 곳으로 간다. 설교도 구성이 많아야 맛있는 설교를 만들 수 있다.
▲김도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구성 요소의 개수를 많이 활용하라
설교에는 많은 구성 요소가 있다. 서론인 도입이다. 설교에서 도입을 할 때는 낯설게 해야 한다.
그 다음, 제목을 잡게 된 동기와 이유, 심화(Why로 질문), What으로 질문, 적용, How로 질문, 개념 활용 본문과 연결, 하나님 사랑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 현실과 연결, 삶과 연결, 영적 연결, 자기와의 연결, 전문가의 견해(인용), 명문장 사용, 책 인용, 단어 연구, 구절 설명과 연구, 등장인물 마음 연결, 제목의 마음 읽기,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 청중과 연결하기, 성경 관주, 예화 사용, 예수님의 비유법 중 한 단어 사용, 예수의 비유법 중 두 단어 사용, 결론 즉 마무리 등을 활용해야 한다.
필자의 책 중 하나의 제목은 《설교는 인문학이다》. 최근에 만난 꽤 많은 설교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
“설교는 인문학으로 해야 한다.”
이전에 설교는 무조건 신학적으로 해야 했다. 필자가 책을 썼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설교자들이 교인들이 인문학적 설교를 원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책 《설교는 인문학이다》는 설교에서 ‘설교 구성’으로 작성해야 함을 강조한 책이다.
인문학은 설교에 있어 구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에서 구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설교를 할 때 설교구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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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로 돈 벌 생각 마라” (에스겔 44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0. 에스겔 44장 요약
에스겔 44장은 하나님이 들어오신 동편 문에 대한 출입제한으로 시작된다.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와 바벨탑사건처럼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철저하게 구별하고 있다. 속도제한이 운전자의 안전운행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한계 곧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실존을 아는 것은 에덴의 조건, 곧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이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예배의 타락이었고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에 달려있다. 제사장에게 엄격한 자격을 요구하시는 까닭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가 바로 예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제사장에게 본래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책무가 있음을 밝히며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보장해주고 있다. 제사장은 목회로 돈 벌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예배자는 제사장이 고유에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마땅히 힘써야 한다.
1.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리
➀ (1절~3절)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찌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 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찌니라’
▶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 문을 통해 성소에 임재하신 후에 문은 폐쇄 되고 ‘아무 사람도’ 출입하지 못하게 제한되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은 하나님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 곧 인간의 한계를 증거 한다.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선악과 사건(창3:5)과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려했던’ 바벨탑 사건(창11:4)은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 노릇하려는 인간의 교만으로 인한 실낙원의 근본원인을 고발한다.
속도제한의 목적이 운전자의 안전운행에 있는 것처럼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을 구분하는 지혜가 행복한 삶의 조건임을 증거 한다. 3절 ‘왕인 까닭에’는 왕에 대한 예외규정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권세자조차도 하나님의 문으로는 출입할 수 없음을 나타내며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
➁ (4절~5절)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가 말하는바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의하고’
▶ ‘북문을 통하여 전 앞에 이르시기로’ 제사장이며 대언자인 에스겔조차 출입제한 규정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인간이 취할 마땅한 자세다. ‘전심으로 주목하여 전심으로 주의하고’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예배자인 인간의 관계 곧 에스겔 성전이 전하는 메시지는 참고사항이나 선택사항이 아니라 전심으로 주목해야만 하는 생사가 달린 필수사항임을 경계한다.
2. 레위인의 패역
➀ (6절~9절)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 이스라엘의 타락은 예배의 타락이었고 예배의 타락은 성전과 그 성전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타락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에서 범한 추악하고 역겨운 짓을 세 가지로 기록한다. (7절)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을 성소에 들인 것, (8절)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한 것, (9절)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한 것 등이다.
(막11: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누구나 성소에 들어갈 길이 열려있지만 아무나 성소의 일을 감당할 순 없다. 자기부인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무자격자들에 의해 예배가 타락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예배를 안 드린 것이 아니다. 온전하고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➁ (10절~11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 그 우상을 좇아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 (출32:1~4)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의 우상은 백성들의 강요로 시작되었다. (출32:21~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아론은 우상숭배의 원인을 백성들의 완악함으로 돌려 책임을 전가하려 했지만 백성의 타락은 지도자인 제사장의 과실에 있었다. 한국교회의 기복주의와 성장주의는 타락한 제사장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요구대로 지도자들을 길들이는 타락한 백성들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책임은 백성들을 무분별하게 추종했던 타락한 제사장들에게 있다.
③ (12절~14절)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며 내 성물 곧 지성물을 가까이 못하게 하리니...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전을 수직하게 하고 전에 모든 수종 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 레위인들은 본래 성물과 지성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백성들을 견인하지 못한 우상숭배에 대한 모든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본래적인 역할은 박탈되고 역할이 강등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회를 주시지만 부르심에 합당하지 못하면 그 책임과 죄과를 면할 수 없다.
3. 제사장의 자격
➀ (15절)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찌니라’
▶ 고위공직자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요구되는 이유와 제사장의 철저한 자격을 강조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공정한 국가를 위해 공정한 관리의 등용이 요구되는 것처럼 거룩한 성전의 회복은 거룩한 제사장들의 출현에 달려있다. 제사장의 자격을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는 ‘예배’다. 예배의 회복은 제사장들에게서 시작된다. 사람(제사장)이 아니라 역할(예배)의 중요성이다.
제사장은 세속적인 권위나 특권이 아니라 고유한 역할에 따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막중한 권한과 지위를 행사하는 고위공직자(공무원)에 대한 철저하고 엄격한 규제와 자격이 요구되는 것처럼 거룩하고 중요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필수다.
➁ (16절~19절)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을 것이니...그들이 바깥뜰 백성들에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찌니’
▶ 제사장은 값 비싸고 사치스러운 의복이 아니라 사무엘처럼 세마포 에봇을 입는 청빈함과 백의종군하는 겸비한 태도가 요구된다. 제사장의 예복에 대한 환복의 규례는 성전 안에서 예배의 목적으로만 써야지 자기자랑이나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된다.(스톨과 클러지셔츠)
③ (20절~27절)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시체를 가까이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 단순히 헤어스타일이 아니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단정함, 절제(포도주), 결혼, 가르치며, 규례대로, 절기를 지킬 것을 강조한다. 솔선수범은 모든 지도자의 기본 자질이다. 제사장은 신앙생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본보기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삶으로 전하는 것만 남는다. 직분이 아니라 직분에 합당한 삶 곧 인격(도덕성)과 역량(자질), 기준(자격)을 요구한다. 겉만 번듯한 함량미달의 거짓선지자를 분별하는 기준은 열매(삶)로 나무를 알 수 있다. 말이 아니라 삶을 보면 숨은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4. 제사장의 생업 – “목사로 돈 벌 생각 하지 마라”
➀ ‘그들은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나는 그 산업이 되리라’
▶ 기업이나 산업은 ‘생업’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에만 전무하는 제사장의 생계수단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입히시겠다는 약속이다. 앞서 제사장으로써의 지엄한 책무와 더불어 그에 따른 제사장에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증거하고 있다. (고전9:7~14)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사도바울은 사역자들의 의무(헌신)만 강요하고 권리(생활)를 보장하지 않는 야박하고 이기적인 고린도교인들을 향해 전임사역자의 생존권을 역설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인 예배(제사장), 곧 영혼의 문제는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다. 사역자는 필요이상의 것을 구하지 말고 자족해야 하고 공동체는 필요를 채워서 본연의 역할에 전무할 수 있는 책임을 담당해야 한다. 전임사역자의 사례는 교육공무원(교사) 수준이 적절하다.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말고 신앙생활에 초점을 두게 하고 교인들은 영혼의 교사인 목회자의 중요성을 알고 처지와 형편을 자신의 삶처럼 돌아보는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➁ (29절~30절)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로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하라’
▶ 제사장과의 관계에서 복이 온다는 말은 제사장의 특권이 아니라 예배(제사장)가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예배의 성공은 삶의 성공으로 연결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말씀은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데 두라는 데 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리라’는 말씀은 마음(영혼)에서 참된 삶이 나온다는 말이다. 제사장이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본뜻은 여기에 있다. 학교생활의 원칙은 교사를 신뢰하고 존중해야 배움이 있고 유익이 있다. 수업시간이 즐겁고 재미있어야 학습능률도 오른다. 제자훈련의 제1원칙 ‘지도자를 신뢰하고 존중하라 그렇지 않으면 별 유익이 없을 것이다’ 교사가 학습의 통로인 것처럼 목사와의 관계가 풍성한 신앙생활의 열쇠라는 의미다.
▶ (눅10:1~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고위공직자(공권력)의 권위가 본래적인 직무에만 국한 되듯이, 복음을 전하는 자는 오직 보내신 분의 뜻만을 ‘그대로’ 전달하는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 자기 생각과 판단, 사리사욕 내세우면 안 된다. 이것이 전제될 때 비로소 말씀을 전해 듣는 사람은 메신저의 말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말로 경청해야 한다.
③ ‘무릇 새나 육축의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못할 것이니라’
▶ 유한양행의 설립자인 유일한박사의 조카 유승흠 이사장(한국의료지원재단)은 <유일한 정신의 행로> 라는 책을 소개하며 ‘의사로 돈 벌 생각마라’는 백부의 말씀을 늘 새겼다고 말한다. 재개발지역 건물매입으로 인한 청와대 대변인 사퇴는 일반인과의 구별되는 고위공직자의 엄중한 책무를 보여준다.
정치(공직)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본문이 전하는 제사장에 관한 모든 규례는 한마디로 ‘목회로 돈 벌 생각 말라’는 뜻이다. ‘사자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생존의 본능이자 생존의 원칙이다. 목회자는 구별하여 감사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 믿음의 헌신으로 드려진 예물로 자족해야 한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자존감을 지키고 눈앞에 이익보다 자부심을 지켜내야 한다.
오늘날 목회현장의 비극은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 있는 제사장들이 판을 치는 까닭에 존중과 신뢰할 만한 목회자를 찾기 힘든 현실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예배)는 뒷전에 두고 장자의 축복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에서’와 같은 신앙인들, 본래적인 사명을 망각한 세상일에만 빠져 있는 교인들이 더 많은 현실이다. 사도바울과 데살로니가교인들의 관계처럼 목회자는 교인들을 하나님 앞에 결산할 대상처럼 섬기고, 교인들은 목회자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아름다운 동행이 이루어지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