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는 사람이 되라 2002-05-15 10:47:02 read : 2945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05-05 // 고전15:9-10
1. 은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여러분, 한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은혜 받으십시오.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면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그리고 은혜라는 것이 어떤 뜻이기에 좋습니까? 그 은혜라는 말이 어떤 뜻이기에 인사 나누고 좋다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은혜 받으세요. 은혜 받았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데, 우리가 이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은혜 받는다는 말은 헬라여로 "카리스"입니다. "카리스"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기쁘다, 감사하다 이런 뜻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뜻 가운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 받으세요`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멘` 하면 사랑 받겠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유독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은혜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 은혜는 기독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를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랑하고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장 52절에 보면 예수님이 어려서 자랐던 그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 가시더라"할 때 그 `사랑스러워 가시는 것`이 "카리스"고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은혜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혜라는 말을 분명히 모르면서도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고, 듣기만 해도 기쁜 것은 거기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잘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것이 너무나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벤후퍼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테네시주에 주지사를 두 번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두 번을 했다, 주지사가 됐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그럴 수도 있다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벤후퍼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기적적인 일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기입니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 있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조롱을 받고 또 어른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자랐겠습니까? 열등의식, 많은 상처를 받고 이 아이가 자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이렇게 자라면서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자라면서 필요한 것들을 부모가 다 공급해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부모 있는 아이들은 얼굴이 다릅니다. 훤합니다. 그것도 부잣집 아이들은 더 훤합니다. 잘 안먹는 것 같아도 그냥 늘 훤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믿는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늘 돌아오는 것은 조롱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크고 있었는데, 이 아이가 12살이 되던 해에 그 마을의 교회에 한 목사님이 부임해 오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소문에 들으니까 굉장히 좋은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차별하지 않고,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질 받을까봐 한번도 교회에 가지 못했던 이 아이가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일찍 갔다 사람들 만나는데 무서워서 일부러 늦게 갔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나면 축도할 때 빠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만 빠져 나오는 시간을 잊어버렸습니다. 설교 듣다가 너무나 은혜를 받아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같이 섞여서 나오는데, 역시나 사람들이 `야, 너 아버지도 없는 애구나` 하고 말은 안하지만 경원시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긴장감 속에 이 아이가 나오는데, 목사님이 이 아이를 불러 세웠습니다. "애, 넌 뉘 집 아들이냐?" 하니까, 옆에 이 아이를 다 알고 있던 동네 사람들은 긴장이 된 것입니다. `저 아이는 아버지가 없는데, 뉘 집 아들이냐니? 저 어떻게 얘기하지?`
그런데 이 목사님이 계속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야, 너 생긴 것 보니까 뉘 집 아들인 지 알겠다" 하니까 사람들이 더 어색해졌습니다. `이거 어떻게 하나? 목사님이 몰라도 대단히 모르시는 모양이다`
그런데 목사님이 계속해서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 내가 네 얼굴을 보니까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네 아버지는 하나님이야." 그러니까 이 아이가 평소에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당황해서 뛰어나갔습니다. 자기는 그것이 부끄러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뛰어가는 아이를 향해서 또 얘기를 하는 겁니다. "애야, 너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야.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너는 휼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큰 소리로 이 아이에게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자라서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지사가 된 이 사람에게 당신이 어떻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이렇게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난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불행한 아이였습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놀림과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상처받고 자랐습니다. 그 때 나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12살이 되던 해 우리 마을의 목사님이 나에게 하는 말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네 아버지는 하나님이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테네시주의 주지사가 태어난 날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불행한 손가락질 받던 어린아이지만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네 아버지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순간 그는 성공의 길을 향해서 나갈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얘기를 보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 교육 잘 시킨다고 합니다. 남들이 학원을 몇 개씩 보내니까 우리 아이들은 더 보내야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고 있는 우리 인생의 성공의 비결은 과외 몇 개를 시키느냐, 학원을 몇 개 보내느냐, 공부를 몇 시까지 시키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가 되야 되고 그것을 가르쳐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읽어보십시오. 아니 중간만 읽어봐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다 잘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에 그 나이 75세였습니다. 75년 동안 살아온 인생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우상 숭배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결혼해서도 자식 하나 없는 무자식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네가 나만 따라오면 너는 잘될 수 있다"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시고 자기를 사랑하시는 음성을 듣고 떠났을 때 그의 인생이 싹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일생동안 하나님의 사랑만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특별히 공부를 더한 것도 없습니다. 누가 도와준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믿고 살았던 것입니다.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은 유대민족의 조상이 될 뿐만아니라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잘 참고 견디고 양보해서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야곱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사랑 받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든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또 그의 아들 요셉은 어땠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도 하나님의 사랑만 찾고 있는 것입니다. 모함을 받아서 감옥의 죄수가 되어도 하나님의 사랑만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그 사자굴 속에서도 살려주시고 그 땅에서 위대한 총리도 세우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을 높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성공의 법칙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생 승리의 길은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신분고하, 지식의 유무를 막론하고 다 성공하고 다 잘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잘된다 하는 것도 다른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승리하게 하는 길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배운 지식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지도함 받을 때에 백 배, 천 배의 결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의 성공의 법칙은 무엇입니까? 내가 잘 돼서 승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얘기합니다. 실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생존경쟁을 얘기합니다. 너 죽고 내가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 실력을 키우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두 젊은이가 카드빚 때문에 6명이나 죽였습니다. 그의 생각에 돈 버는 일은 무슨 일이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이들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교육개발원에서 통계를 냈는데, 전국에 남녀 3,300명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 질문만 소개합니다. 첫째는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보는가? 학력별로 구분을 했습니다. 대졸자의 77%, 고졸자의 73.3%, 중졸자의 67.7%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되는가? 대졸자의 71.7%, 고졸자의 74.5%, 중졸자의 68%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젊은이들의 생각입니다. 대학을 졸업했건 중학교를 졸업했건 지식이 많든 적든 이들의 생각 속에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내가 출세해야 되고 돈만 벌면 안되는 것이 다 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그들의 생각이란 말입니다. 모든 여러분 문제 해결의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고생 둘이서 친구를 팔아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어떻게 했냐하면, 3일 동안 자취방을 빌려서, 수면제를 먹이고, 벗은 사진을 찍고, 협박을 하고, 화장을 시켜서 직업소개소에 500만원에 팔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그만 이 아이가 도망을 쳐서 이 아이들이 붙잡혔어요.
그래서 그 이유가 뭔가 했더니, 그 이유가 참 한심해요. 그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우리랑 친하게 지내다가 다른 아이랑 친하게 지내서 혼좀 내주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아주 불량학생이 아니에요. 아주 평범한 학생이 이런 일을 저질렀어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늘 이 시대는 사랑이란 것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놀아도 다 혼자 놉니다. 놀이터에 가도 애들이 없습니다. 그냥 컴퓨터, 비디오, 놀이동산이라고 가도 다 혼자 타는 겁니다. 돈이 있어야 타는 겁니다. 돈 없이 타는 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인자를 한자로 쓰면서 막대기 두 개를 걸쳐 쓰는걸 사람인자라 그랬는데, 이제 사람인자를 막대기 두 개로 쓰는 게 아니고 요렇게 써야할 것 같습니다. 그냥 혼자밖에 없습니다. 다 개인입니다. 너 죽고 나 살자, 이것만 가르칩니다.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세상은 너무 운명을 얘기합니다. 타고난 운명,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성격대로 산다 그럽니다. 사주팔자가 그렇게 중요하고, 이제는 컴퓨터까지 동원해서 사주팔자를 봅니다. 그것이 자기 운명을 좌우한다는 겁니다. 자기 성격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성격 급한 사람, 성격 느린 사람, 성경은 그런 것 따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성격이 변해서, 물론 우리 성격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품이 변하면 잘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성품이 뭡니까? 하나님의 사랑 받으면, 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법칙을 따라가면 절대 잘 살수 없어요. 다 망하는 것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다가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아 잘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여러분 요한복음 3장 16절 한번 펴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읽고 몇 가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닙니다.
세상은 먼저 사랑이 없습니다. 내가 사랑해야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기 전에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그 순간 뿐아니라 우리 삶 자체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부모가 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 안에 살고 있는 겁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누구를 사랑하느냐 했더니 죄인을 사랑한다 그랬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죄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죄인을 절대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죄를 보면 들추어내서 감옥에 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죄인도 사랑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가리켜서 은혜다 그러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는 죄인이 사랑 받는 것이 없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기독교에만 있는 용어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 모르면 그리스도인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랬습니다. 예수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사랑 받는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는 개가 있습니다. 얼마나 집을 잘 지키는지 `집 보라` 그러면 아무 소리 안하고 집을 잘 봅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오면 짖어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집 애들은 집 좀 보라고 하면 신경질 냅니다. `내가 얼마나 바쁜데 그러냐`고, 아이들이 좀 크니까 부모 말 안 듣습니다. 자기 생각해로 하려고 합니다.
나는 우리 집 개 때문에 밤잠을 설쳐본 일은 없습니다. 말 잘 들으니까, 그러나 우리 아이들 때문에는 밤잠을 설쳐본 일이 꽤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개보다 우리 애들을 더 사랑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그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쩌면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것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런 자부심 속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쁨이 있고, 그런 감격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같이 지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다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찾아가셔서 하신 말씀이 `나 너 사랑한다. 너 나 사랑하냐?` 그 사랑 때문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이들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깨우치심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을 했고, 그 십자가 밑에서 도망을 갔지만은 `우리는 사랑 받는 자다` 하는 확신이 있으니까 그들 속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칭찬을 받습니다.
그 칭찬 받는 것이 "카리스"입니다. 은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성령 안에서 충만한 것은 뭐냐 은혜 충만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 받은 것에 감격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그 은혜가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다` 그 사랑가 지고 나가니까 기적도 일으키고 그 사랑 가지고 나가니까 뭐든지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전에는 내가 살아가는 것이 내 몸 내가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이나 따라 다니고 예수님 위해서 목숨 바치겠다고 약속까지 한 사람들이 예수님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자기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 받고 하나님의 사랑 받고 은혜를 알고 난 다음에는 이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를 지켜준다고 생각했던 그렇게 간직하려고 했던 재산들을 내놓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을 도와줍니다. 같이 더불어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마음 속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참 은혜가 있는 사람이다` 라고 칭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을 얘기하면서 나같은 사람에게 나타났다 하면서 자기의 부활을 얘기하면서 자기의 받은 은혜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도저히 은혜 받았다는 얘기를 할 자리가 아닙니다. 예수님 부활했는데, 그 부활한 예수님 만난 사람들이 이런 사람 만나고 저런 사람 만나고 게바 만나고 500형제 만나고 나 만났다 그러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족을 다는 것입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야고보에게 보이시고 맨 마지막에 만삭되지 못한 나에게도 보이시고 그러더니 거기에 부활을 얘기하다 말고 자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는 무슨 얘기를 하든지 그 얘기를 할 때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사랑 받은 것, 은혜 받은 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같이 보겠습니다. 9절, 10절 말씀,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아멘
부활을 얘기하고 이 사람에게 나타나고 저 사람에게 나타나고 나에게 나타났다 그러면 되는데 그 다음에 자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만삭되지 못해서 태어난 자다`,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부족한 자다`, 자기의 부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겸손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나 된 것은 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설 수 있으며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사도 바울은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은혜를 받은 자의 할 일 두 가지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받는 자도 내가 살기 위해서 내가 두 가지를 힘쓰겠다 말합니다.
여러분, 10절 말씀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첫 번째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니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겨라 하는 말입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와서 많은 두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 죽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이 소식을 듣고 백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 장소가 미스바 광장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모여 가지고 백성들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 땅에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 있는 적군들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그 약속의 땅에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날까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우상숭배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귀하게 여기지 않고 헛되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우리 이것 회개합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가지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를 드리는대도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오는 겁니다. 사람들 마음이 두근 반 세근 반 죽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드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하고 회개하고 제사를 드립시다 하고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뢰를 발하셨다` 그래서 블레셋 군대가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칼 한번 쓰지 않고 블레셋 군대를 물리쳐서 승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헛되이 하면,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찾고 그 은혜 앞에 엎드리게 될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적군들을 물리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성경은 우리에게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셨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무엘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면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무엘이 백성들을 다 불러놓고 돌을 하나 세워놓고 하는 말이 "이 돌의 이름은 에벤에셀이다", 이 "에벤에셀"의 뜻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마음 속에는 백성들을, 자손들을 가르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돌을 봐라. 하나님이 도우셔서 우리가 이렇게 승리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고 헛되이 버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야 한다."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후손들 어떻게 가르치십니까? 공부해라 하는 얘기는 우리가 흔히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공부하라 하는 것과 함께 그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이 아이는 사랑 받는 자입니다. 이 아이는 사랑 받았기 때문에 잘 될 줄로 믿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희망을 심어주는 겁니다.
여러분,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간절한 마음으로 탕자인 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그 기도의 근거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내가 정성을 백날 드리겠습니다. 내가 정성을 천날 드리겠습니다. 내 공력을 바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들이 지금은 저렇게 나쁘지만 우리 아들이 옛날에는 성품이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봐 주십시오" 그런 말도 안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했던 근거는 딱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까지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 내 아들도 사랑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이 아들이 돌아오게 된 것이라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일성수해라, 십일조생활해라, 감사해라, 성경 봐라, 이런 얘기하면 무슨 기복신앙을 가르친다 얘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에 근거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으면서 축복 속에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가 되려면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두 번째 비결은 더 많이 수고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많이 수고하자 해놓고 그 다음에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여러분, 은혜 받으려면 더 많이 수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수고하라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해야할 수고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오늘 우리가 해야될 첫 번째 수고는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판에 올라온 글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느 회사에서 사원을 뽑는 입사시험을 치뤘다고 합니다. 여러 시험을 다하고 면접을 하기에 앞서서 묻는 시험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험문제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비가 막 내리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자동차를 내려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보니까 세 사람이 거기에 서있었다는 것입니다. 한사람은 아파서 다 죽어가는 할머니, 자기가 병들어 수술 받을 때 자기를 살려준 의사선생님 그리고 평소에 그리던 이상형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 자동차에는 한 사람밖에는 태우지 못한다면 당신은 누구를 태우겠습니까?"
할머니를 태우면 사랑이 많다 그럴 것이고, 의사선생님을 태우면 은혜에 보답한다 할 것이고, 이상형을 태우면 자기의 꿈이 실현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태우겠습니까?
수백 명의 수험생 가운데 뽑힌 사람의 답은 이것입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버스 정류장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내려서 의사선생님에게 `저는 선생님에게 수술 받아서 죽을 고비에서 산 사람입니다. 참 감사합니다. 그러니 여기에 계시지 말고 차에 타십시오.` 의사선생님을 차에 태우는 겁니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에게 차 열쇠를 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의사선생님에게 `여기 할머니가 다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이 할머니를 태우고 가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차는 자네 것이 아닌가? 이 폭풍우에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가?` `괜찮습니다. 가십시오.` 그리고 자기는 이상형의 상대와 함께 우산을 쓰고 비바람 속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생각을 할 때에 내 것은 버리지 않고 남으면 하겠다 합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은 세상 사람들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쫓으라는 겁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는 큰 교회건물, 중요합니다. 성장해서 수만 명이 모이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건물도 중요하고 많은 교인이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주님의 백성을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지난 금요일날 여전도회 연합수련회 때 오셔서 말씀 전해주신 이철수 목사님이 은퇴하신 노교수를 만났답니다. 이 교수님 말씀이 "목사님, 교회가 건물이 큰 것 불만입니다. 교인들의 삶이 불만입니다." 두 가지를 얘기하셨답니다. 우리들은 대단히 귀하게 생각하는 건물을 세상 사람들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은퇴한 교수님의 부인이 권사님이고 자녀들이 집사님들이라는 겁니다. 누가 이 분의 신앙의 길, 예수 믿는 길을 막았겠습니까? 물론 그 자신의 어리석음도 있지만, 이 말씀 속에는 우리들이 회개해야될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수고를 하되,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 이것에 최선을 다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많이 수고했지만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하는 이 말은 보면서 저는 우리들의 가정을 보았습니다.
며느리가 하는 말이 사람들이 음식 맛있다고 칭찬을 하니까 며느리가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거 제가 했나요? 어머니가 다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대뜸 "그럼 내가 다 했지"가 아니라 "무슨 말이에요. 나는 옆에서 조금 도와주기만 했지, 우리 며느리가 다 한 겁니다" 그러면 그 얘기를 듣는 분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그런 가정에 고부 갈등이 있을 수가 없고, 그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자식은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부모는 자식이 잘 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러면 이 부모 자식간에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되면 자기가 잘 나서 잘 됐다 그러고 못 되면 조상탓 한다더니, 우리가 못 되면 하나님께 나 왜 이렇게 만드냐 그러고 잘 되면 자기 잘나서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은혜 받는 자가 아닙니다. 은혜 받으려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애쓰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 묻는지 우리는 그렇게 얘기해야 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늘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할줄 아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안익태 선생이 애국가를 작곡하고 난 다음에 그는 고백하기를 "애국가는 내가 작곡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하나님이 나에게 영감을 주셔서 이것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우리 백성들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하이든이라고 유명한 작곡가가 천지창조를 만들고 난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위해한 작곡가에게 박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손을 흔들면서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다." 이것이 우리들이 해야될 사명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더 많이 수고해야될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것, 우리의 가정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이렇게 가르치면 우리의 자녀들이 절대로 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 많은 것을 가르쳐도 하나님의 사랑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하여 오늘 주신 말씀대로 은혜를 귀하게 여기고, 더 많이 수고하되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은혜 받는 자로 이 한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