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맛보는 자 2002-05-15 10:40:19 read : 3054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 18:1-6 // 2002.5.5
부모들의 신앙과 불신앙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1889년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오스트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들은 사촌 남매였기 때문에 불법부부였습니다. 아버지는 몹시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주부로서의 일이나 엄마로서의 일에는 흥미가 없고, 바깥 사교 생활에만 흥미를 느껴 나다니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달아났습니다. 16세가 된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했습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연명하다가, 결국 독일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후, 그는 정치계에 투신하여 극렬 분자가 되었습니다. 반란 음모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어 다시는 정치계에 나서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감형 출옥의 혜택을 받았으나 더욱 맹렬히 정치 활동을 했고, 결국 1933년에 독일 국민의 절대 영도자인 총통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고, 그로 인해 독일과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렸고, 그 후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인류가 이 아이가 내뿜은 독기의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같은 1889년에 다른 한 아이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소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흡족히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부모는 이 아이를 데리고 캔자스 농촌으로 이사했는데, 그 이유는 농촌 생활이 아이의 신앙 교육에 유익하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가훈을 전해 주었고, 가족 모두가 교회의 가장 적극적인 봉사자로서 이름이 높았습니다. 소년은 어른으로 성장해서도 어머니의 두 팔에 안겨 간곡하게 기도하던 매일 저녁의 일과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도 군대에 흥미를 느끼고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1944년 이들 두명의 동갑내기는 전투에서 대면하였습니다. 11개월에 걸쳐 히틀러는 연합군 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싸웠습니다. 패전한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 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한편 아이젠하워는 히틀러보다 25년을 더 살았고 1969년 80세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으며, 그의 죽음을 전 세계가 애석해 했습니다. 이 두 동갑내기 아이의 이야기는 부모들의 신앙과 불신앙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가를 웅변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복음서를 보면 사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조력함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실수가 있었고 약점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사람들이 자기 자녀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제자들에게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로막고 부모를 꾸짖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가로막은 제자들을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그들은 예수님의 효과적인 시간관리와 건강을 보호해 드리기 위해서였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의 가능성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예수님의 중심을 헤아리지 못한 실수였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여 하나님 앞에서 교훈 받기를 바랍니다. 분명 자식은 한편 무거운 과제요 또 한편 훌륭한 축복이요 상급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숙제더미처럼 과제가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축복이요 상급이 되고 있습니까?
화초에 물을 주는 것
자녀를 교육한다는 것은 화초에 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화초에 물을 너무 안 주면 말라죽고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서 죽습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도 관심도 너무 적어도 안되고 너무 많아도 안됩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주는 것이 옳은 교육입니까? 여기에 우리의 인생 살아가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가는데는 쉽지 않게 비자를 발급 받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데도 비자가 필요합니다.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엔 어떤 자격 조건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그 자격 조건을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이라고 제한하고 계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단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3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절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제자들은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돌이키지 아니하면, 하늘 나라에서 영영 멀어지는 삶을 살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느냐 아니냐, 내가 매사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느냐 아니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느냐,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애쓰며, 수고하고 살아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면, 나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의 입국비자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으로 정의하셨습니다. 즉, 어린아이와 같이 되려는 삶의 태도와 방향설정이 없이는,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먼저 부정의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다"라고 직접적으로 정의를 내리기에 앞서,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적어도 이런 것은 아니다"라고 정의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보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적어도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좋은 면도 있지만, 나쁜 면도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겐,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상대방을 신뢰하며, 순종할 줄 아는, 좋은 면이 있는 반면에, 어리석고, 유치하고, 자기만 알며, 고집을 부리는, 나쁜 점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말씀하신 데에는, '어린아이의 좋은 점만 닮아야지, 나쁜 점까지 닮아서는 안 된다'는 의도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 '어린아이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어린아이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동물적인 욕구 (animal desire)와 영적인 욕구 (spiritual desire)가 있습니다. 동물적인 욕구는 식욕, 성욕과 같은 욕구를 말합니다. 배고픈 사람이 이 세상의 모든 음식을 다 필요로 하지 않으며, 목마른 사람이 이 세상의 모든 물을 다 필요로 하지 않듯이, 동물적 욕구는 얼마든지 충족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반면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영적 욕구는 '인정받는 것' (approval)입니다.
인간이 돈에 욕심을 내는 것도, 명예에 눈독을 드리는 것도, 다 남에게서 인정받으려고 하는 욕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생존의 필요를 위해서 돈을 법니다. 그러나 '내가 이만큼 돈을 모으고, 내가 이만큼 성공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면, 사람들은 구태여 돈을 모으기 위해, 밤잠을 자지 아니하고, 기를 쓰며 수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돈이 없을 때는 착하던 사람이, 한 번 돈을 벌고 나니까, 거만해지고 건방지게 군다고 하는 것은, 인간은 결코 필요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정받기 위해 산다고 하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 하고, 돈 잘 버는 직장보다는 품위 있는 직업을 택하려 하는 것도, 인간의 삶이 필요보다는 의미에 의해서 충족되며, 그 의미라는 것이 남에게서 인정받을 때 가장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순수한 이념으로 살아가고, 고결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명예에 손상을 입을 때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나타내는 것은, 인간이 인정받기 위해 산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에게 나이 많은 사람 대접을 해 주지 않을 때 기분 나쁘고,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함부로 반말하는 사람 보면 불쾌하고, 기껏 비싼 돈 들여 머리를 했는데, '그것도 머리라고 했냐'고 하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하고, 남은 시간 없고 몸이 아픈 가운데도 정성을 들여 음식을 해 놨는데, '음식이 짜다 맵다'고 투정하면, 음식 장만하던 숟가락을 쓰레기통에 집어 쳐 넣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반면에 나를 나이 대접해 주고, 나이가 어려도 높여주면, 설사 그것이 위선이라 할지라도 기쁜 나쁘지 않고, '머리 예쁘게 했네', '음식을 참 맛있게 했네'하고 칭찬해 주면, 설사 그것이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정말로 예쁜 것으로 착각하고, 음식 하느라고 고생한 피로가 풀려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이 정말로 인정받기를 절실하게 원하며, 인정받을 때에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정받으려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1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4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정받으려 하지말고, 자기를 낮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 "또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인정받으려 할 때, 남을 인정할 수 없고, 우리가 자기를 낮추지 아니할 때, 남을 영접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을 영접하려면, 자기를 낮추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12에서 예수님은, "대접을 받고 싶은 사람은 남을 먼저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남을 대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을 인정하고, 남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정받을만한 일을 해야 인정해 주지, 존경받을만한 일을 해야 존경해 주지'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정받을만한 일을 하는 사람은 내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세상이 인정합니다. 존경받을만한 일을 하는 사람은 내가 존경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존경이 갑니다. 인정받을만한 일을 한 사람을 인정하고, 존경받을만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은 예수 믿지 않아도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남들이 하나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도 인정해 주고, 존경받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도 존경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큰 자만이 작은 자를 인정하고 존경할 수 있다
세상에서는, 존경받는 사람이 존경하는 사람보다 큰 자입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람보다 작은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존경하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람보다 큰 자입니다. 반대로 존경받는 사람이 존경하는 사람보다 작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 사람을 인정할 수 없어, 나는 저 사람을 존경할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작은 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참으로 큰 자만이 작은 자를 인정하고 존경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큰 자만이 자기를 낮출 줄 아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지 못하면, 우리는 남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남을 영접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정할 수 없는 자를 인정하고, 존경할 수 없는 자를 존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이 일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면, 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한 번 자기를 내세우기 시작하면, 매사를 비판적인 자세에서 보게 되고, 상대방을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 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아무런 결실도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자아가 죽어야,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자, 자기를 낮추는 자, 남을 인정하는 자, 남을 존경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 입국 비자를 받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생각이 여러분의 삶을 달라지게 하거나,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생각은 염려를 낳고, 염려는 죄를 낳을 뿐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나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세상에 대해 넓은 마음을 갖게 합니다.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감화시킵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자기의 부족함과 의존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내가 부족하고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듯이, 남들도 부족할 수 있고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남들도 나만큼 부족하다면, 비난할 일도 없고, 집요하게 따져 물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논쟁으로 이기려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로 승리하려는 사람입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의 삶 속에 하나님은 새로운 힘과 평화를 주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벌써 이 땅에서 맛보고 있는 자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를 기꺼이 신뢰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음식점에 갔을 때, 아이들은 음식값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집안에 쌀이 떨어져도, 자녀들은 다음 끼니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여행을 할 때에도, 그들은 계획하거나 준비하지 않으며, 여행에 드는 비용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모든 일을 다 알아서 처리할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삶에 염려가 쌓이는 이유는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삶의 문제를 맡기지 않는 사람은, 불붙은 다이나마이트를 끌어 안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이 곧 죄는 아니지만, 불안은 나로 하여금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또 삶의 문제를 맡기지 않는 사람은, 염려하게 됩니다. 염려하는 자는, 잘 할 수 있었던 일도, 잘 할 수 없게 됩니다. 염려는 성급한 판단과, 오해와, 억측과, 과장된 문제의식을 낳습니다. 그래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며, 결국 어리석은 결과를 낳게 만듭니다. 그러나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에겐 평안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안전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길이 더 좋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그 길로 가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좋은 일이 생기긴, 뭐 좋은 일이 생깁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의 방법대로 살지 않을 때,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실패함만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생각을 고집하고, 내 방법을 고집하며, 살아갈 때에, 마지막 인터뷰에서 하나님 나라 입국을 거절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려면, 자기를 내세우지 않아야 하고, 하늘 아버지께 의존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그 분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말씀으로, 자신의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며, 염려치 아니하고, 감사함으로 주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평화를 선물로 받습니다. 말씀을 사랑하시고,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전히 지켜 주실 것입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맛보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충만히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우리교회 도서실에서 제공하는 이 달의 추천도서를 설명하는 글을 소개합니다.
행복한 가정에는 아버지의 향기가 있다
디모데전서 3장 14-15절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하면...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며, 언제나 위엄을 가지고 자녀들을 순종하게 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자기 가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요즘 대통령의 아들들의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전(前) 대통령 때도 아들 문제로 나라가 어수선했습니다. 지금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또한 마약 복용으로 다시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사회에서는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아들들은 뭔가 건강하지 못한 인격과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절반의 성공이지 않을까요?
요즘 남성들은 결혼 생활이나 자녀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사회에서 성공하고 잘 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어도 양심의 가책을 크게 받지 않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 문제의 가장 핵심적 요소는 언제나 아버지의 부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사별이나 해외 파견 근무 등의 '물리적 부재'보다 '심리적 부재'가 더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기독교 가정 사역 연구소 소장인 송길원 목사님의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남은 인생 동안 무슨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좋은 아버지가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런 저자가 삶 속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아버지로서 가지는 심정과 자녀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에세이 식으로 편안하게 풀어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잘 알아차리지 못했던 아버지로서의 실수와 무지, 그리고 무관심의 마음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그럴 때 오는 부끄러움과 가슴 아픔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거창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는 작은 대화의 시간 마련하는 것, 포옹을 하기로 결심하는 것, 가정 기도의 시간을 가지는 것, 자녀들에게 축복의 기도를 하는 것, 나의 어린 시절을 얘기해 주는 것 등 하나씩이라도 실천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럴 때 느껴지는 새로운 풍성함으로 우리 자신과 가정이 새롭게 회복되는 귀한 5월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다 돌볼 수 없어 이 땅에 아버지를 두기로 작정하셨다." 이런 다짐과 철학을 가진 아버지들이 더욱 많아져서, 이 땅이 더욱 밝아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더 커져 가기를...
미국의 유명한 철강의 대 부호 카네기는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린 것을 생각하고, 길에서 두 손 모아 하나님과 어머님에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예배 방해하는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 그 순간 그들에게 예수의 영이 심어지는 것을 생각하고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자녀 육성만은 꼭 승리하셔야 합니다.
① 사랑의 양식을 먹고 자란 자녀가 승리의 삶을 삽니다.
② 위대한 비젼을 가지고 고통 속에서도 일어나는 자립성을 배운 자녀가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③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운 자녀가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④ 하나님께 훌륭하게 드려서 키운 자녀가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녀 교육의 8가지 비결을 소개합니다.
① 지식보다는 지혜를 가르친다.
② 일이나 공부를 강조하지 말고, 즐겁게 하는 것을 가르치라. 유대인은 학교 첫 등교하는 날 책에 꿀을 발라서 배움은 이렇게 좋은 것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③ 보는 교육보다 생각하는 교육을 하라. T.V보는 것 보다 책 일기를 많이 하게 하고, 사물의 겉모습보다 속을 볼 수 있게 하고. 사람의 겉보다 속을 볼 줄 알게 교육하라.
④ 남이 수 있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게 하라. 더 잘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키워주라.
⑤ 고집을 꺾어라. 고집이 남아 있으면 남의 가르침을 배우려 하지 않고 남의 장점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⑥ 자녀를 오른 손으로 때렸다면 왼손으로 껴안아 주어서 정을 키워주라.
⑦ 구박하지 말라. 벌을 주든지, 책임을 주어 의지를 키워 주라.
⑧ 신앙을 갖게 하라. 자기 조절의 힘과 가지 추진의 힘을 키워주라.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우리는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께서 어린이에게 가졌던 관심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그들의 무한한 가치를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물질을 과감히 투자하여 교육시설을 건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바르게 양육하여 21세기의 위대한 천국일꾼으로 키우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