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신앙생활 왜 이리 힘듭니까? 2002-05-31 18:40:57 read : 2889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야고보서 1:1-15
말씀을 전하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어지네요. 괜찮겠지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 하는 것 - 힘이 듭니까? 힘이 들지 않습니까? 힘이 든다면 왜 힘들고,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까?
생각해 본적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구원의 감격을 갖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순간에는 얼마나 가슴이 벅찬지 모릅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정말로 시간과 물질, 내 모든 것을 다 드려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1-2년이 지나면 슬슬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것 하라 하면, 이 핑계대고, 저것 하라 하면 저 핑계대기 시작합니다. 목회자, 장로님, 권사님, 얼굴만 봐도 긴장하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눈 마주칠까봐 예배가 끝나자마자 옆문으로 빠져 얼른 집으로 갑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교회 나오는 것 자체가 싫어지기 시작합니다. 교회나와도 별다른 감동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경우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시험 때문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찾아오는 여러 가지 시험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렵게 만듭니다.
1. 시험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는 '시험'이라는 말이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말 성경에는 그것이 분명하게 구별되지가 않지만, 원문으로는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먼저, 2절 말씀을 봅니다. "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헬라어 '페이라스모이스'(πειρα?μοî?)는 외부로부터 야기되는 '시련'(trial)을 가리킵니다. 시련은 단순히 테스트(test)하기 위해 와지는 것입니다. 시험에 대한 다른 의미는 13절 말씀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헬라어 '페이라조메노스'(πειρ?ζομενο?)로써, 영어의 temptation- 유혹에 해당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죄에 대한 유혹을 의미합니다. ??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시험'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전자의 시험'페이라스모이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우리의 신앙을 연단하여 보다 굳센 신앙을 가지게 합니다. 또한 시련의 연단을 통해 신앙을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후자의 시험 '페이라조메노스'는 유혹입니다. 유혹은 사단이 주는 것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며 악에 빠지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과 마귀가 주는 유혹 모두가 시험인데 잘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벅찬 가슴으로 신앙생활을 한다할지라도 시련과 유혹이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다 신나고 보람차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은 없을까요?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시련이 닥쳐올 때에 그에 합당한 방법으로 대응하고, 유혹이 찾아올 때는 그에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하면 됩니다. 어차피 신앙생활의 목적은 승리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까?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것이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2. 시련과 유혹에 대한 대처 방법
⑴ 시련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면 되겠습니까?
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2절 말씀을 함께 봅니다. "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성도 여러분, 시험을 만났는데 기뻐하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영어로 테스트(test)에 해당됩니다. 이 테스트는 누구에 의해 주관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에 의해 주관되는 것입니다. 이점을 분명하게 분별하여 알게 되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에 있는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이 시험입니까? 사단의 유혹입니까? 시험입니다. 테스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가 확인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 테스트를 사단의 유혹 정도로 생각했다면 아들을 바치려 했겠습니까? 결단코 사단의 유혹으로 여겼다면, 순종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으로 생각했기에 순종하려 했습니다.
요셉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은 사단의 유혹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 아내로부터 유혹받은 것은 하나님의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가게 된 것도 일종의 테스트였습니다. 시험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마귀에게서 오는 것인지 먼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사람들이 시련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공통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으로, 시련의 시험이 올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10:13절입니다. "13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어느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쇼핑센터에 갔습니다. 아들이 시장바구니를 들고 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 아빠는 사고 싶은 물건들을 골라 아들의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한 두 개는 거뜬했지만 물건이 많아지니 점점 장바구니가 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무거워하면서도 낑낑거리며 장바구니를 들고 아빠를 따라다닙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한 여인이 그 아이를 측은하게 여기며 "애야, 너 그거 무겁지 않니?"하고 묻자, 아이가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요. 우리 아빠는 제가 얼마만큼 들 수 있는지를 아셔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아십니다. 때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환난 가운데 빠져서 좌절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인생의 절망과 한계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서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 성도 여러분, 시련이 닥쳐오고 있습니까? "옳거니, 하나님께서 내 신앙을 연단하시기 위해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구나!", "그렇다, 하나님은 분명 내가 이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주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시험인데, 하나님께서 분명 나를 인도해주실 것이다.", "내가 이 시련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분명히 하나님께서 감당할 만한 시험만을 주신다고 했는데."이런 마음 가지고 시련 앞에 당당히 설 수만 있다면, 우리도 성경 속에서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처럼 시련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단계까지 다다를 수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며 이기시기 바랍니다.
②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시련이 닥쳐오면 어떻게 기도합니까? "주님! 이 시련을, 이 시험을 내게서 제거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제거는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거해주시면 그것이 내가 이겼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결단코 시험을 제거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시련을 극복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은 시련을 이길 힘을 내게 공급하셔서 나로 하여금 그 시련과 맞서 당당하게 싸워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학교에서 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시험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럴때 내버려둡니까? 아니면 시험은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부모가 직접 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치러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시험은 당사자가 치러야 합니다. 대신해서 시험을 치루는 경우는 없습니다. 운전면허-대신해서 딸 수 있습니까? 자격증을 대신 시험을 치러서 취득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시험에 자신없어 하는 자녀에게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대신 시험을 치러줄 수는 없지만, 따로 공부를 시키거나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어 당당하게 시험을 치룰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을 이길만한 힘을 주십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시험출제자가 그분이기 때문에 그 답도 알고 계십니다. 시험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답이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우리 아버지가 출제자인데 무슨 염려입니까?
성도 여러분,
시련의 시험을 이기시길 원하십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이 시련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주께 있음을 압니다. 주님, 이길 힘을 주옵소서."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이기게 하십니다.
③ 인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실생활에서는 어떻습니까? 시련이 닥쳐오면 말씀을 기억하고, 믿고 기도하면 이기게 해 주실 것이 분명한데도 막상 부딪치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시선이 땅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안목이 너무 짧습니다. 한 달 전쯤 뉴스에 보고된 내용입니다. 어떤 조직폭력배의 아들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있다보니, 너무 답답해서 어떻게 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궁리를 했습니다. 결국, 묘안을 생각해 낸다고 했는데 생각해낸 그 묘안이 어처구니없는 방법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에이즈(AIDS)에 걸려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조폭의 아들은 감옥내에서 에이즈(AIDS)에 걸린 사람을 찾아내어 주사를 이용하여 에이즈(AIDS) 감염자로부터 피를 뽑아 자신의 몸에 주사해 넣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왔습니까? 발각되어 아직도 그냥 감옥에 있대요.
성도 여러분,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받아들이고 인내할 줄을 모릅니다.
참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텐데 도무지 그렇지가 못합니다. 일단 일을 저지르고 봅니다.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자세가 우리 가운데 만연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내하다보면, 길이 보입니다.
오늘 말씀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4절 말씀입니다.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조금씩 인내하다보면, 우리도 서서히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인내할 수 있습니까? 나 자신을 보면 - 모자르고, 문제가 많아 힘들지만, 상황을 보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바라보면 견딜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험만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은 당한 시험을 피할 길을 예비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능히 이길 수 있게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의 짧은 안목으로 바로 앞의 것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먼 미래를 보세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세요. 이기게 해준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주님을 바라보세요. 주님께 맡기세요. 이길 수 있습니다. 이깁니다. 용기를 가지고 시련 앞에 당당히 맞서 이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⑵ 유혹에는 어떻게 대처하면 되겠습니까?
두 번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단이 주는 유혹에 대한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사단은 믿는 자를 유혹함으로써 죄를 짓도록 만들어 결국에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때는 한창 전쟁 중이었습니다. 전쟁 중이라면 깨어 기도해야 할 때인데, 한가롭게 있다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보고는 한 눈에 반했습니다.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 가룟 유다를 보세요. 돈에 눈이 어두워져서 예수님을 은 삼십냥에 팔지 않았습니까? 이 모든 것이 사단의 유혹입니다. 그뿐입니까? 사단은 예수님 제자들의 마음속까지 들어가서 예수님께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는 한 자리 부탁한다는 말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물질로 유혹합니다. 사단은 우리를 성적(性的)인 것으로 유혹합니다. 권력에 대한 으지로 유혹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유혹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①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9, 10, 11절 말씀을 함께 봅니다. "9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인생을 무엇으로 비유하고 있습니까? 한 낱 풀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부한 자도 풀의 꽃이요, 낮은 형제도 풀의 꽃입니다.
성도 여러분, 풀이 얼마나 약한 존재입니까? 해가 강하게 내리쬐면 금방 시들어 버립니다. 꽃은 바람만 강하게 불어도 꽃잎이 떨어집니다. 인생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단의 유혹을 이길만한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골리앗 앞에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당당하게 싸우러 나갈 정도로 담대한 신앙을 가졌던 다윗도 밧세바를 통한 사단의 유혹에는 꼼짝없이 넘어가 죄를 범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자리다툼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단의 유혹과 맞서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과의 영적관계가 살아있는 사람은 유혹해도 소용없음을 압니다. 주님을 꽉 잡으세요. 그러면 사단은 더 이상 우리를 유혹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내 의지와도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새가 우리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는 있다." 즉 사단은 우리를 수시로 유혹하지만, 거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단이 나를 자꾸 유혹하는데도 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는 미련한 억지는 부리지 마세요. 차라리 연약함을 인정하세요. 그리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세요. 이것이야말로 우리 주님께서 내게 오셔서 나를 강하게 하는 방법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②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마귀에 의해 시험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마귀의 시험을 무엇으로 이기었습니까?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마귀와의 싸움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마귀가 예수님을 세 번 시험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시험에 대해 긴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말씀으로만 대답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으니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세 마디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사단이 우리를 유혹할 때, 그 유혹에 적절하게 대처할 말씀만 알고 있어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사단의 유혹에 넘어갑니까?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말씀에 대한 깊이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만 되어 있으면 사단의 유혹은 그 말씀 한 마디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게 됨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으로 무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외우세요. 될 수 있으면 하루에 한 말씀씩이라도 말씀을 외우고자 힘쓰세요. 그러면, 그 말씀이 힘이 됩니다. 그 말씀이 능력이 됩니다. 그 능력으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③ 마귀의 유혹에 대적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13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를 유혹하지 않으십니다. 유혹은 모두 마귀가 행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도는 유혹에 대해서는 대적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성도 여러분, 물질의 유혹을 받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리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외칠 때, 앉은뱅이가 일어났던 것처럼 물질이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능력임을 깨닫고 유혹을 물리치시길 바랍니다. 권력과 힘에 대한 유혹을 받고 있습니까? 베드로가 칼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의 귀를 베었지만, 변화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도가 되었을 때, 그는 기적을 일으키고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귀의 유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할 때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3. 사단의 유혹과 하나님의 축복
이제 우리는 사단이 무엇으로 유혹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1-4절입니다. "1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성도 여러분, 일일이 말씀드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여 죄짓게 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음이 보이십니까? 실제로 디모데후서 3장의 이 말씀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사단의 유혹이 그만큼 연약해진 인간들을 넘어뜨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겨야 합니다. 이기는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렇습니다. 시험을 참고이기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면류관이란 무엇입니까?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면류관입니다. 시련은 극복하고 유혹은 물리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두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리>
성도 여러분, 내가 원치 않아도 시련도 당하고 유혹도 당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힘이 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이든 마귀가 주는 유혹이든 모든 시험은 이겨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연약함 인정하고 하나님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이 내 속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주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봅시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기간 동안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시며 주님께서 어떻게 시험을 이기셨는지 마음에 담고 그 주님의 능력으로 시련과 유혹을 이기어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귀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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