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세요 2002-05-27 17:01:44 read : 3028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편 1:1-3 // 2002년 05월 26일
행복하세요(시1:1-3)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인간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복을 주셨지만, 그 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잃어버린 행복을 찾으려고 방황하고 있다.
"산 너머 먼 곳에 행복이 있다 하기에, 산 너머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흘리고 돌아온다"
이것이 현대인의 비극적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하게 살도록, 행복하게 사는 길을 보여주신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지요. 낙엽 밟으면서 걷는 오솔길이 있는가 하면, 산악인들을 위한 등산길도 있고, 자동차전용 길인 고속도로도 있다.
이처럼 수많은 길이 있듯이,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학문의 길, 신앙의 길, 예술의 길, 사업의 길, 정치의 길…, 수 많은 길들이 있다.
그러나 크게 구분한다면, 단 2가지 길, 사망과 생명의 길이 있을 뿐이다.
이 두 길은 다시,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로 나누기도 하며, 또한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 그리고 불행의 길과 행복의 길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 길이 생명의 길이고, 어떤 길이 사망의 길입니까?
어떻게 보면 의인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악질 같기도 해서, 구별하기가 참 힘들다.
악인과 의인은 무엇으로 가릴 수 있나요? 하나님 말씀으로 가릴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은 무엇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과,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는 차이가 없는가?
파푸아뉴기니에 사는 '챈브리'족은, 남자는 피리를 불거나, 춤추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면서 노는데, 여자들은 열심히 일하여, 남자들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여자가 애를 낳으면, 밭에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남자는 여자 대신 몸조리를 한다.
또한 다른 부족으로부터 침공을 당하게 되면, 여자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고 대항을 한다.
남자들은 놀고 먹는다. 이런 곳에서 살면, 남자들이 얼마나 행복할까?
남자가 행복한 만큼 여자는 불행하면, 참다운 행복이 아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1,0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 셀러 1위의 책이 있다.
토마스 해리스(T. Harris)의 [I am OK, You are OK]라는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관계를 다음 4가지 유형으로 소개한다.
(1) I am not OK, You are OK : 자기는 부정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긍정하는 사람이다.
자기는 매사가 불행의 연속인 것 같은데, 남들은 무엇이든 잘되는 것 같다.
결국 이런 사람은, 피해망상증과 무기력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2) I am OK, You are not OK : 자기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하는 일을 다 옳고, 남들이 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 못마땅하다.
결국 우월감과 자만심에 빠져, 타인 비방형이 되고 만다.
(3) I am not OK, You are not OK : 자기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사람이다.
나도 틀렸고, 상대방도 틀렸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계속되는 실패 과정 속에서, 체념과 무의미에 빠져, 최악의 파괴적인 인간이 되고 만다. 결국 이런 사람은 동반 자살, 또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복수심리를 갖는다.
(4) I am OK, You are OK : 자기에 대해서도 긍정이요, 타인에 대해서도 긍정인 경우다.
이는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보는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기쁘게 살아간다.
결국 당신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모두 남은 인생을 [I am OK, You are OK]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 사람들은, 돈과 명예와 권력…, 물질을 많이 가지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솔로몬은 세상에서 부족한 것이 없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심지어 부인도 아주 많았다.
그렇다면 행복에 겨웠는가?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다(전1:2).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기에, 행복하려면 하나님을 만나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었기에,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다.
1. 행복하세요.
히브리어로 복을 말할 때, 2가지로 말한다.
① 창12장 1-3절에 나타나는 (축)복은 베라카( )인데,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때 주시는 복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받을 수 있는 복으로, 헬라어로는 유로기아( )라고 한다.
② 시편1편에서 말하는 복은, 아쉬레( )로, 복된 관계를 통해 얻는 행복이다.
헬라어로는 마카리오스( )로, 능동적으로 받는 복이다.
행복은( )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를 맺으며, 똑바로 살겠다( )'는 변화다.
행복( )하려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와야 하고, 하나님과 이웃과 물질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온다. 부모님과 자녀와의 관계가 깨졌는데, 무슨 행복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주님은 "행복하여라!" 말씀하신다.
주님과 올바른 관계는 맺지 않고, '복만 부어달라고 하는 것'이 바로 미신이며, 기복신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유를 위해 달라고만 말하지 말고, 먼저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자.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물질적인 복을 구함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셨다.
우리는 먼저 영적인 것을 먼저 구하고, 그 다음 물질적인 것을 구해야 한다.
고로 "주님!, 제가 주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 원합니다." 이렇게 먼저 구하자.
2. 행복하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잘 쓰는 영어의 행복(happiness)은, 명사 hap(우연, 운, 우연히 생긴 일)에서 왔다.
세상 사람들은, 복권과 같은 일확천금에 당첨될 때, 복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행복은, 몇 년 가지 못한 채 산산조각이 난다.
그래서 분배 다툼과, 부부의 늦바람으로, 살인사건까지 빚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복(blessing)은, 명사 blood(피)에서 왔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은혜를 알게 되면,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 대가를 지불한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나?
(1) 떠나야 한다(1절).
사람이 행복하려면, 악인의 길, 죄인의 길, 오만의 길에서 떠나야 한다.
죄가 들어옴으로, 낙원인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으므로, 인간은 죄를 멀리해야 행복하다.
그러면 죄는 무엇인가? 죄는 하나님 없이, 인간 스스로 살겠다고 하는 행동이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눈에 보이는 쾌락만을 즐기려고 한다. 여기에는 일시적인 재미가 있다.
그래서 쉽게 빠져들지만, 우리 영혼에는 하나도 기여하지 못 한다.
우리 육체가 쾌락에 빠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 인생은 언제나 갈급 함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유명한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는, 수많은 남성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결국에는 자살했다.
그녀의 마지막 유서에는, 너무 갈급해서 죽는다고 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고향을 떠나라고 하시며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 데라가 비록 우상 장사였지만, 고향 땅에는 친구도 있고,
물려받을 재산도 있고, 아름다운 아내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떠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정든 땅을 왜 떠나라고 하십니까?
아브라함이 살던 고향은, 악하고, 죄가 있고, 오만한 자리이기에, 그 자리를 떠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지금 고향 땅에서 누리는 복은 현세적이나, 하나님의 복은 영원까지 이어질 복이다.
지금의 복은 순간적이고 개인적이나, 하나님의 복은 영원하고 자손 만대에 이어질 복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제안하시는, 참 복을 좇아 길을 떠났다. 그의 생각을 바꾸었다.
단순히 집을 떠나 장소만 바꾸지 않고, 복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꿨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떠나야만 하는 대가를 지불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성경을 보면, 선한 왕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고, 말씀 앞에 굴복했다.
말씀을 붙들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면, 반드시 암흑시대가 온다.
사사 시대는 암흑시대였는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말씀을 붙들지 못하니까, 자기 멋대로 행동해서, 결국 불행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사람들은 제멋대로 행동해서, 불행한 사회가 된다.
최근에 사회기강이 무너지고, 많은 청소년들이 잘못된 길로 빠져 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없기 때문이다. 교육이 무엇인가?
공식이나 단어하나 더 외우는 게 교육이 아니라, 말씀 앞에 서도록 만들어야 진짜 교육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말씀을 묵상하십니까?
행복한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한다. 여기서 묵상( )은 명상도 묵념도 아니다.
자신을 설득하기 위하여 중얼거리거나, 마구 소리를 지른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회당에서 성경을 읽는 유대인들을 보면, 지금도 성경을 묵상할 때,
옛날 서당에서 책을 읽듯이, 몸을 앞으로 흔들면서,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가며 읽는다.
내가 이 말씀대로 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들어 있다. 자신을 설득함이 묵상이다.
말씀을 묵상하면 능력이 나타난다. 꿈이 생긴다. 말씀에 사로잡히는 만큼 신앙이 성장한다.
어떤 다른 책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악한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지 못하게 만든다.
오히려 염려와 근심을 묵상하게 만든다. 사람과 환경을 묵상하게 만든다.
밤낮 미워하는 사람만 생각하다보면, 병이 생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염려와 근심은 묵상해서 안 되고, 주님께 다 아뢰어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란다.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말씀을 묵상해 보라. 꿈이 생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보면, 우리에게 꿈을 준다. 이 꿈은 희망을 갖게 하고, 행복을 만들어 낸다.
결론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사막이나 돌짝 밭에 심겨진 나무는, 잘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일년 내내 수분을 흡수하여 충실하게 성장한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하므로, 광야에는 나무를 볼 수 없다.
그러나 물이 흐르는 곳에는, 나무가 항상 무성하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흐른다면, 열매가 있기에 행복하다.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살 때, 전천후 인생이 된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고갈되거나 중단됨이 없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는 말은, 만물에는 때가 있다. 때가 되면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 사시사철 다 열매가 맺힌다. 풍성한 열매가 있다.
약동하는 생명력이 있다. 흔들리지 않는 안전성이 있다. 이런 은혜가 있기 바란다.
참조 : 형용사 어미 -y가 붙으면서 짧은 모음 때문에 p가 겹쳐 써졌다(예:fun / funny). 명사 hap은 운(chance), 우연히 생길 일(occurrence)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Good hap and evil hap이라고 하면 '행운과 불운'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happy의 원 뜻은 '우연한'(coming or happening by chance) 혹은 '운이 좋은'(having good 'hap' or fortune)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한'이란 뜻은 사라지게 되고 '운이 좋은'이란 뜻만 남았는데, 의미는 확장되어 현대에는 '행복한'으로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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