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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 오신이의 증거
    2002-05-27 16:52:12   read : 280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한복음 3:31 - 36절 // 02/05/26

    현대인의 바쁜 삶을 반영하는 두 가지 문화가 있습니다. '예약문화'와 '배달문화'입니다. 예약문화는 이제 모든 부분에 있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중국선교여행을 위해 비행기표를 예약하려고 했더니 월드컵 기간이라 비행기표가 없고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제 미리 예약을 하지 않는다면 당사자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어디 비행기표 예약만 그렇겠습니까? 식사를 하기 위해서도 미리 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약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종종 시간을 낭비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자리가 있고,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갔다가 막상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은행이나 기타 관공서를 가면 순번표를 뽑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예약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자기 차례에 대해 예약하는 것입니다. 저는 순번표 나누어주는 것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순번표를 받기 전에는 은행에 세금 내러 갔다가 줄을 잘못 서서 오랫동안 기다린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중 화장실에서 줄 한번 잘못서면 옆줄에서는 서너명이 바뀌고 있는데 내가 선 줄은 한번도 바뀌지 않는 경우를 여러분도 많이 당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럴 때 겪게될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바쁜 일정 때문에,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배달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장 많은 배달이 무엇입니까?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가장 많은 배달은 점심시간 자장면 배달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배달되는 자장면은 통 털어서 몇 그릇이나 될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며느리도 모릅니다. 전국 자장면 배달협회도 모릅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닙니다. 자장면이 든 철가방들의 오토바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옵니다. 그러면 괜히 자장면을 시켜 먹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배달문화를 얘기할 때 요즘은 택배서비스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엔 거의 대부분 우체국을 통해 우편물을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택배회사들이 많이 생겨나서 전국어디에서든지 쉽게 택배를 이용해 물건을 붙이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체국을 이용해서 물건을 붙이는 경우, 등기로 붙힐 때가 있습니다. 물건을 등기로 붙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매우 중요한 물건이기에 그냥 우체통에 넣어두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일반 우편물처럼 취급을 해서 우체통에 넣어두면 그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을 통해서 직접 전달해 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등기인 경우 반드시 우편배달부가 받는 사람을 확인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주었다는 의미에서 당사자에게 사인을 받아갑니다.

    택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꼭 받아보지 않아도 상관없을 만큼 일반적인 편지라면 굳이 많은 돈을 들여서 택배서비스를 이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택배를 이용한다는 것은 중요한 물건이기 때문에 사람을 보내어서 그 물건을 배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택배회사 직원들도 직접 물건을 전해주고, 받는 사람의 사인을 받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전달하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너무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 우편물을 이용해서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택배회사 직원을 통해서 보내든지 아니면 우편배달부를 통해 보내든지 아뭏튼 특별한 사람을 통해 보내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도 중요한 우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우편물이었길래 일반 우편물처럼 취급하지 않으시고 등기로 혹은 택배를 통해 보내신 것입니까?

    이것은 생명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중요한 문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의 1급 비밀에 해당하는 문서입니다. 그러기에 분실되어서는 안됩니다. 함부로 다룰 수도 없습니다. 일반우편물처럼 취급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누군가를 통해서 전달하고 그것을 받았다는 사인이 필요합니다. 만일 사인이 없다면 그 중요한 문건을 받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만약 물건이 전달되었을 때 사인하기를 거부한다면 받기를 거부했다는 뜻입니다. 갑자기 왜 우편물에 대해 얘기하느냐?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혹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31절에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로 더 많이 몰려가는 모습을 보고 뭔가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요청 받았습니다. 그때 그가 말하기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요한이 원래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은 그분의 길을 예배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요한이었기에 "예수에게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자신은 이제부터 점점 쇠하여지게 될 것이다"라고 제자들에게 조금도 거침이 없이 말한 것입니다. 요한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과 예수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그분은 위로부터 오시는 이이며, 자신은 땅에서 난자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위로부터 오시는 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신다고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분의 본성과 지위와 권위에 있어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분의 기원이 하늘에 두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그분과 그분이 증거하는 것에 대해 거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고 지혜롭다하여도 결국은 위로부터 오신 이의 가르침보다는 완전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는 온전하여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똑똑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똑똑이 헛똑똑입니다. 왜냐하면 이 중요한 문건을 소홀하게 취급을 하기도 하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인해 만나게 되는 결과는 고스란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요즘 컴퓨터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스팸메일입니다. 무작위로 마구보내지는 광고성 메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메일을 열어볼 때마다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대충 제목만 훑어보고는 그냥 삭제를 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전화가 와서 자신이 메일을 보냈는데 받아보았냐? 고 묻습니다. 분명히 보냈는데 저는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 경우 어쩌면 저의 실수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떤 실수입니까? 다 똑같은 메일이겠거니 하여 아예 열어보지도 않고 삭제해 버렸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광고성 스팸메일과 아주 중요한 메일을 똑같이 취급하여 그냥 날려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이 당시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일반우편물처럼 취급할 수 없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보내어서 그 사실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32절에 보면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연구해놓은 것을 발표하신 것이 아닙니다. 수학문제를 풀 듯이 모든 것을 공식에 대비해서 말씀하신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사적인 견해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일 뿐 아니라 자신이 천상에서 보고 들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증거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듣기는 들었는데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과거엔 장날이면 어김없이 볼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장날이면 장터에서 제일 인기를 많이 얻는 사람입니다. 누굽니까? 약장수입니다. 요즘 의약이 분업이 되어 시골장터에서 약장수를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추측건대 이분들은 의약분업에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개 이분들이 파는 약은 건강보조식품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옛날에 약장수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든지 장터에 들어서면 아이 어른 할 것없이 우- 하고 약장수 앞에 몰려옵니다.

    왜 몰려옵니까? 대부분은 약을 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약장수의 구수한 입담 때문입니다. 어떤 약을 팔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약이 좋고 나쁜지 그것도 차후의 문제입니다.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그저 약장수의 구수한 입담이 재미있어서 모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으면 어느새 그 약장수의 입담에 빨려 들어갑니다. 그래서 한참동안 앉아 있거나 서서 약장수의 얘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약장수가 얘기를 끝내고 본격적인 장사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엔 한사람 두 사람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입담에 정신을 못 차린 사람들은 얼떨결에 약을 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약장수의 입담만 열심히 듣다가 돌아가 버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약장수의 입담정도가 아닙니다. 검증되지 않는 약을 팔거나 어떤 효능이 보장되어 있는지 알 수조차도 없는 것을 팔고 계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미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셨던 말씀이었고, 이 당시 그들이 가장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세례요한이 계속해서 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어 직접 그 아들에게 주셔서 선포케 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듣기는 열심히 듣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등기가 도착했는데 받아들이겠다는 사인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듣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오늘도 전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며 주의 말씀을 듣고 있을까요? 이땅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숫자가 1200만이나 된다는 것이 잘못된 통계일까요? 그 많은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정작 그 말씀을 들을 때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을 자신의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은 그저 듣는 것에 만족하려 합니다. 약장수가 늘어놓는 입담을 듣다가 흩어지는 것처럼 그분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그분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거나 그분 앞에 자신의 삶을 결단하는 일에 있어서는 매우 주저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씀을 듣는데 그치는 사람이 아니라 듣고 그 분을 '내 삶의 주인으로 받아 들이겠노라'고 사인까지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33절을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인쳤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도장을 찍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내용에 도장을 찍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내용에 도장을 찍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문서가 공신력을 가지려면 사인이 필요합니다. 배달되어진 물건을 받은 사람들은 받았다는 의미에서 사인을 해야 합니다. 만약 사인이 없다면 받은 것이 아닙니다. 문서에 본인 사인이 없다면 그 내용에 대해 동의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참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참되시다고 고백하는 것이 도대체 내 인생에 있어서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참되시다고 고백하는 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없이 살아온 나의 모든 삶은 거짓투성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참 그렇습니다. 하나님없이 살아온 우리의 삶은 모두 거짓된 삶입니다. 진실되게 살아온 것 같지만 그 진실은 위장된 진실일 뿐입니다. 정직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그 정직도 거짓에 가려진 정직일 뿐입니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그 열심은 모두 이기주의에 근거한 열심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없는 인생은 그 자체가 거짓이며 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2절에서 말하기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없는 삶은 소망이 없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가 없이도 잘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인생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은 모두 위장된 것에 불과합니다.

    가정이 평화로운 것 같은데 그것은 위장된 평화입니다. 사업이 잘 되는 것 같은데 그것도 위장된 성장입니다. 아내와 남편사이에 행복이 깃든 것 같은데 그것은 위장된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주장하지 않을 때 얻는 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아도 내가 평화로울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인생은 '하나님이 참되시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보내신 문서에 사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되시다'라는 문서에 우리들은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하나님없이 살아왔던 지금까지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겠노라는 문서에 사인을 해야 합니다.

    듣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매주일 나와서 들어도 내 삶이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 인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 사인하시지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감도장을 그곳에 찍으시기 바랍니다.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먼저 찍으면 찍겠다는 생각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종종 어떤 문서에 서명날인할 때가 있습니다. 작년에 온유한학교 설립을 위해 언젠가 사인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복지관 문제 때문에 사인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날인하는데 있어서 주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괜히 어떻게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주저합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과감하게 사인을 하면 그때에서야 비로소 사인을 합니다.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말씀 앞에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없이 살아왔던 내 삶은 거짓된 것이었고 위장된 것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이 없다면 우리는 다람쥐 체바퀴 돌 듯이 매주일 교회는 오는데 전혀 변화가 없는 살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왜 그분의 증거에 대해 도장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해 3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앞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말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충고나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로부터 보냄을 받은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데 그것을 무시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말씀에 대해 도장을 찍지 않고 사인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단순히 자신이 보고 들은 것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증거가 하나님의 증거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사람의 말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니 내 인생에 충고나 조언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습니다. 받아들일 수 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선포되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라고 굳게 믿는다면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무심코 지나쳐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지 않는 자에게 임하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엄청난 성령의 충만함이 부어지게 될 것입니다. 왜 우리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한 것입니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로 찌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찌든 죄로 말미암아 방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방황이 결국 '하나님은 참되시다'라는 사실에 대해 사인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여러분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한때 신바람 박사가 건강에 대해 강의를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귀를 세우고 들었습니까? 아우성을 강의했던 강사를 기억하십니까? 모이면 그 아우성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엔돌핀을 얘기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텔레비전 앞에 시선을 모으게 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요즘은 온통 나라가 월드컵 때문에 존재하는 것처럼 비칠정도로 월드컵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오늘 저녁예배가 걱정입니다. 특히 마리아 여전도회 헌신예배시간인데 프랑스대표팀과 우리 대표팀의 경기가 있으니 말입니다. 아마 오늘 저녁에는 교회 나오지 않고 텔레비전을 시청해야지 하고 이미 작정하고 계시는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집중하는데 예수 얘기하면 하품을 합니다. 하나님 얘기하면 나중에 듣자고 미룹니다. 지금 꼭 얘기해야 하느냐? 분위기 깨어지게 시리 하면서 투덜투덜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왜 그분이 성령을 한없이 주시려 하십니까? 우리 안에 있는 온갖 죄악된 모습, 세상과 짝하려는 생각들을 몰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아니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나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입니다. 물질이나 명예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좀더 윤택하게 살고, 남들 앞에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셔야만 내가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5절과 36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들에게 성령이 필요한 것입니까?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생명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말합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얻어도 건강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왜 건강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까? 건강은 생명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잃어버리면 이 땅에서 우리가 가진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길수군 친척들이 필리핀을 경유해서 지난주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그들의 첫마디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둘째는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그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추측건대 오랜 중국생활중에 선교사나 혹은 기타 믿음을 가진 분들과 교제가 있었고 그분들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목숨을 건 영사관 진입을 감행한 듯 합니다. 그리고 그토록 오고싶어하던 한국 땅을 밟는 첫 순간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중국 땅을 떠돌 땐 살아있어도 산목숨이 아니었습니다. 죽음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먹어도 맘 편하게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잠을 자도 두 다리 뻗고 잠을 청할 수 있었겠습니까? 살았으나 산목숨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었을 것입니다. 그 신앙의 힘이 없었다면 그들은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진입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건강이 최고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말합니까? 생명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에 관해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큰둥합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단순하고도 쉽습니까? 영생을 얻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 재산을 갖다바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백일 치성을 드리고 도를 닦아라 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영생을 얻는 길은 너무도 쉽고 간단합니다. 아들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에 공짜라고 하거나 그저 준다고 하면 의심부터 합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느냐?고 하면서 분명히 저의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뒷통수 때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이 그랬습니다.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은 언제나 공짜라고 말해놓고 뒷통수를 칩니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처음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될 무렵 동네에 확성기를 틀어놓은 트럭이 지나가면서 쓰레기 봉투를 공짜로 나눠주니까 나와서 받아가라는 것입니다. 호기심에 아니 공짜라니까 좋아라 하고 받으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갔던 아내가 깜깜 무소식입니다. 한시간이 지나고 두시간이 다 지날 무렵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의 말인즉 공짜라고 해서 가보았더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왠 설명이 많은지 그리고 순수하게 쓰레기 봉투 사용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들이 가지고 나온 이상한 물건을 팔기 위해 쓰레기 봉투준다는 빌미로 마냥 붙잡아 두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반은 듣다가 그냥 돌아가 버렸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날 정말 엉덩이 무거운 아줌마들 중에 몇분은 쓰레기 봉투를 공짜로 받아갔을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가 철칙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공짜로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은 공짜를 주의하라는 의미에서 '공짜 좋아하다가는 대머리 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대머리이신 분들 공짜 좋아하십니까? 그런데 대머리가 되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대머리가 보기 싫으면 가발쓰고 다니면 됩니다. 대머리 되는 것이 두려워 영생을 거부하시겠습니까?

    영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일부를 바칠 때 주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고행이나 고난을 통해서 얻게 된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아들을 믿을 때입니다. 자신이 보낸 문서를 가지고 찾아간 그 아들을 믿고 문서를 받았다고 사인만 하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택배직원이 물건을 가지고 왔을 때 사인을 하면 그 물건을 받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 그분을 영접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영생이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이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그분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일이 가능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사랑하셔서 만물을 그분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아들을 통해 이루어진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것을 무시하고 거절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노'라는 말이 단순히 화내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은 궁극적으로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현대인들은 지옥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경망스럽게 지옥이 무슨 말이냐? 고 말합니다. 좀 고상하게 표현할 수 없느냐? 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억지로 고상하게 하려고 애를 필요가 없습니다. 믿으면 천국, 거절하면 지옥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이유도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윤리적인 삶을 살게 하기위해 그분을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보다 순결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그분을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우리가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면 얼마나 깨끗해 질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윤리적으로 살명 얼마나 윤리적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큰 착각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한 부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궁극적인 목표도 아닙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어지고 그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택배직원을 통해 전달되어진 물건을 받아들고 사인하면 내 것이 되고, 사인하지 않으면 다시 가져가 버립니다. 그런데 복음은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받지 않으면 도로 가져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거절한 당사자는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영접하셨습니까? 여러분의 가족중에 누군가가 사인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위로부터 오신이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인을 미루고 있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그들의 인생이 보장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 것입니다. 이 사실을 다시한번 마음가운데 새기고 가정의 달 5월이 다 가기 전에 믿지 않는 가족의 위로부터 오신이의 증거에 사인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주께 간구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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