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 나라와 생명 2002-07-29 19:27:52 read : 3333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사11:6-10 요10:10 02.7.14
저희교단에는 해마다 교육주제를 가지고 한해를 시작합니다.
지난 80년대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 내용이었고, 90년대에는 “그
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내용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삶,
예수그리스도와 사회, 문화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2000년대는 “하나
님 나라”를 중심으로 주제가 설정되는데 지난해에는 “하나님의 나라
와 성령”이었고, 금년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생명”입니다. 지난해
7월 마지막 주일에 로마서14:17절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
을 드렸습니다. 로마서 14:17절 말씀에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
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서 한가지 중요한 것이 빠졌습니다. 로마서14장 17절 말씀에 의와 평
강과 희락 앞에 “성령안에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
령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령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의 속성은 의와 평화와 즐거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결국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가운데서 나타나야 하
는 속성들입니다.
금년에는 하나님 나라와 생명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 나
라와 생명”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교육하고자 합니다. 작금의 현실
을 보면 우리사회나 세계적으로 생명경시풍조와 생명이 죽어 가는 현
상과 생명을 죽이는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 그것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뿐 아
니라 세계에 생명이 죽음의 위협을 많이 느끼게 하는 사회적 불의함
과 구조적 악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테러, 전쟁, 기
근, 천재지변으로 인한 생명에 대한 위협과 자연파괴로 인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등 심각한 현상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장
차 들어갈 나라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보면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하나
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20절
에 보면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
라는 하나님을 모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
타나는 곳이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생명과 관계가 됩니다. 생명
이 없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생의 나라
입니다. 그 영생의 생명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 의가 나타나야 하
고 화평이 있어야 하고 희락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과연 이런 공동체를 볼 수 있습니까? 당신 안
에 하나님 나라가 형성되어 있습니까?. 마음이 평화롭고 기쁘고 의로
움이 있습니까? 당신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 평화가 넘치고 의로움이
있고 기쁨이 충만합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온통 생명에 대한 여러 가지 위험한 시도
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복제와 유전자변이를 통
한 새로운 품종개발 등이 우리 인간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습니
다. 공학을 하는 과학자들은 항상 자신들이 하는 연구를 통하여 세상
을 낙원으로 만들어갈 것으로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발달된 과학이 그
러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악으로 조장되는 경우가 많
았습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인간이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두고 연
구하여 얻은 결과라 할지라도 항상 두 가지 현상이 공존하고 있었습니
다. 선한 것과 악한 것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생명에 대한 것
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구상에는 60억 인구가 살고 있고 이 60억명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다른 생명체인 동식물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
든 생명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독립된 존재이긴 하지만 독립하여
살수는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서로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인간
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존재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식물의 생명이 없이는 존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
는 안됩니다. 따라서 모든 생명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생명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체 대한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고 이에 대한 문제를 우리가 간과
해 버릴 수 없습니다. 이 생명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생명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오늘 구약성경 이사야 11장 본문의 말씀을 보
면 하나님 나라에 있는 생명들은 어떤 상태로서 살아가는가에 대해 말
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
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
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
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
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
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
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현상을 몇 가
지로 요약하면,
1. 약육강식이 없는 나라입니다. 이것은 바로 로마서에서 말씀한 의
의 나라입니다. 가진자나 가지지 못한 자나 배운자나 배운 것이 별로
없는 자나 법앞에 평등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와 더불어 나누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
님 나라입니다.
2. 평화의 나라입니다. 표범과 사자와 이리등 각종 짐승들이 어린 아
이에게 끌려 다니며, 독사의 입에 손을 넣어도 해가 되지 않고 사자
가 소처럼 풀을 먹는 사회는 분명 온유한 사회요 평화의 사회입니다.
모든 창조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살롬의 사회입니
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직도 테러의 위협과 전쟁의 공
포속에 강대국과 대치하고 민족간에 대치상태에서 불안해하고 있습니
다. 우리나라도 지난 6월 29일에 북한으로부터 선제공격을 당하여 병
사가 5명이나 생명을 잃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3. 여호와 중심의 신앙으로 가득 찬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
님이 통치권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로움이 있다는
것은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월드컵 축구에서 보았듯이 우승
의 영광이 있을 때 선수 자신들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도 친
구들도 동창들,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찬 나라는 기쁨도 가득 찹니다.
그러면 이런 나라가 언제 이루어지는가? 이사야 11장 6절에 보면
말씀을 시작할 때 “그 때에” 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 때는”는 언
제를 말하는가? 이사야 11장 1절 이하에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
이 나며 그 위에 하나님의 신, 즉 성신이 임할 때라고 했습니다. 이것
을 다시 10절에서는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 날은 하나님 나라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때를 말
합니다. 이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났으니 이는 바로 예수 그
리스도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11장 1절과 10절 말씀을 종
합해보면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이루어진다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입
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마음에서 먼저 의와 평강과 희락
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
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면 바로 그런
나라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 나라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기독교 국가라 자처하는 미국
이 “악의 축”을 발표하면서 이들과는 힘으로 대항하겠다고 합니다.
부시대통령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좀처럼 하나님 나라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것
이 우리의 고민거리이기도 합니다. 평화와 의와 기쁨이 결단코 힘으
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는 하나님의 나라를 형성하기 위해 먼저 생명을 사랑해야 합니다. 생
명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오늘 신약 본문인 요한복음 10장 10
절에서는 예수님은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했
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바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
로 예수님은 항상 생명이 가장 우선이었습니다.
마가복음 3:1-6에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날이 안식일인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이 어떻게 하는가. 예수님이 안식일을 무시하고 그 사람을 고칠 것인
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것을 알면서도 손 마른 사
람에게 명하여 일으켜 세운 후에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하
시면서 네 손을 내밀어라 하신 후에 그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때
바리새인들이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 수 있을 까 하
고 의논했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생명을 살리는 일이 우선이었으나,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이 우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면
한 생며이라도 더 살리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바리새인들
은 오직 생명을 어떻게 하면 죽이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에 반대
되는 삶은 철저하게 버려야 합니다. 즉 불의함과 평화를 깨는 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전쟁, 그리고 기쁨을 빼앗아 가는 불안과 두려움, 불평
과 원망 등은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위협을 가하는 이런 일
에 앞장서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일을 하는 자는 하나
님 나라의 백성이 아닙니다.
창19장 12절 이하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하기 직전에 롯
을 찾은 천사가 롯에게 가족들을 성밖으로 이끌어내라고 했습니다. 밤
이 지나고 동이 틀 무렵에 천사가 롯에게 재촉하였습니다. 곧 심판이
임하므로 시간이 없다고 재촉합니다.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이 롯의 일행의 손을 잡
고 억지로 성밖으로 끌어낸 후에 롯의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도망하
여 생명을 보존하라”고 했습니다. 생명은 보존되어야 합니다. 생명
을 구해야 합니다.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
님 나라 백성은 항상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
직 생명을 구하는 일만 하셨습니다. 생명을 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더욱 풍성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려고 했
습니다.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려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던 것입
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생명운
동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강 살리기, 산 살리기, 공기 살리기, 사람
살리기 운동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생명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생명을 위해서 오신 예
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깊이 생각하고 지켜야 할 것이 있습
니다.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가 감당해야 할 직무가 있습니다.
1.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
다.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과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
을 인식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보면 생명을 경시하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합니
다.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인하는 행위, 아내를 살인하는 행위, 아이
를 유괴하여 살인하는 행위,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자살행위 등입니
다. 요즘 우리사회에 심심찮게 거론되는 것이 악락사 문제입니다. 엊
그제도 특집 보도에서 암환자들의 고통을 다루면서 본인들은 안락사
를 허용해서 죽기를 원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중에는 “환자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독약
을 주지 않을 것이며, 비록 그런 요청을 받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항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안락사 논쟁도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락사
를 일컫는 Euthanasia는 희랍어의 eu(아름답게, 행복하게)와 thanatos
(죽음)라는 말의 복합어로 통용되는 안락사의 의미는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가 통증으로 무척 괴로워할 때 빨리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
주거나, 의식을 잃고 인공 호흡장치로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식물 인
간과 뇌사로 판명된 사람에게 인공 호흡기를 제거함으로써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안락사 논쟁에 불을 붙인 사건은 1975년 미국에서 있었던 카렌
앤 퀸란 (Karen Ann Quinlan)양의 사건이었습니다. 1975년 4월 당시
21세였던 퀸란양은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진토닉에 농약을 섞어 마신
뒤 혼수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후 6개월 간 뉴저지에 있는 성 클라라
(St. Clara)병원에서 정맥주사와 인공 호흡기로 연명하는 지속적 식물
상태(PVS:식물인간)가 되었고, 그녀의 주치의는 “인공 호흡장치를 제
거하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부모는 회복 불가
능한 딸이 품위와 존엄속에 죽기를 바란다며 병원측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의사가 이를 거절하자 퀸
란의 아버지 조셉 퀸란(Joseph Quinlan)은 후견인으로서 뉴저지주 법
원에 퀸란양에 대해 ‘생명장치의 제거를 허가해 달라’고 신청하였는
데 제1심 법원은 이를 기각하였으나 뉴저지의 최고법원은 “식물인간
의 상태에 있는 환자의 연명 거부권은 헌법상 보장된 프라이버시의 권
리에 해당한다.” 고 결론지으면서 후견인이 원하고 사회적 공감대가
가능하고 의사와 병원 당국이 찬성한다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좋다
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같은 해 5월 23일 퀸란양에게서 인공호흡기가
제거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그 후 인공호흡기의 도움 없이
도 9년 간이나 더 생존하다가 1985년 6월 13일 간염합병증으로 사망했
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창조자 되신 분의 섭리에 맡겨야지 우리 인간의 고통 때문에 생명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안락사를 허용
할 때 인간은 선의의 뜻으로 인정된 법이라 할지라도 악용할 소지가
항상 열려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1998년도 중국에서 70여일 간 홍수와 싸웠습니다. 100년 만에 가
장 큰 홍수위험이었습니다. 2억2천3백만명의 이재민 3천 여명의 사망
자를 내었던 엄청난 홍수였습니다. 재해치고는 너무 가혹했습니다. 2
천1백20h의 농경지 침수. 5백 여만 채의 가옥파손 등 당시 200억 달
러 이상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그 때 중국의 주룽지 총리는 현장에서 진두지휘를 하면서 “생명
을 잃으면 나라가 다시 줄 수 없다.”고 눈물 지으며 홍수방지를 호소
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재산피해는 복구와 보상이 가능하지만 한
번 잃어버린 생명은 더 이상 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리 많은 것을 얻는다 하더라도 생명을 잃으
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다 얻는다 할지라
도 내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사
소한 것에 생명을 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별 것 아닌 것에 생명을
걸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생명을 걸어야 할 자리에 걸어야
지 아무 것에나 생명을 걸면 곤란합니다.
그러면 이렇게도 귀한 한 인간의 생명은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요?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에 대해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
셨다” (고후 5:15)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3:16). 만일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
이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얻도록 그의 생명을 주셨다면 한사
람 한사람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실제로
그의 생명을 그렇게 우리 각 사람을 위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을 때, 주님은 한 사람 한사람을 대신하여 죽
으신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생명도 소중히 여
겨야 하지만 남의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
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눅12:15)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생명
은 어떤 생명이든지 생명 자체가 귀한 것이지, 어떤 조건이나 환경 때
문에 더 귀하거나 덜 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만
인 앞에 평등합니다.
“살릴 사람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
자 다산 정약용이 쓴 [흠흠신서(欽欽新書)]의 내용에 나오는 말입니
다. [흠흠신서]는 목민관(牧民官)이 형사사건을 판결할 때 "삼가고 조
심해서 마땅히 살릴 사람을 죽이거나 죽일 사람을 살려 주는 일이 없
도록 해야 한다는 법정신을 구현하는 새로운 책"이라는 뜻입니다. 다
산이 18년 동안 값진 강진 귀양살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1819년
에 쓴 [흠흠신서]는 모두 5편 549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산
은 젊은 시절 암행어사로 민정을 살피고 난 뒤 정조에게 "국법을 높
이 받들어 불쌍한 백성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한 한다."는 내용의 상소
문을 올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다산 정양용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다
산은 생명존중 사상을 지녔던 위대한 학자였다."고 이야기 합니다. 법
을 만들더라도 생명을 살리는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를 하더라
도 생명을 살리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
므로 금년에 우리 교단에서 ”하나님 나라와 생명“에 대한 주제를 가
지고 교육을 하는 교사들은 어린 생명들에게 생명에 대한 바른 이해
를 가지고 잘 가르쳐야 합니다. 성도들도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생명
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2. 자연생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4월 14일 주
일에는 “산으로부터 시작되는 인간의 삶“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
고, 6월 첫째 주일에는 환경주일을 맞이해서 “버리는 것이 없도록 하
라”는 말씀으로 이미 생명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연이 파괴되
면 인간의 삶도 파괴됩니다. 자연이 아름답게 가꾸어지면 인간의 삶
도 아름다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 동식물들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3. 생명을 위협하는 사회악을 제거하거나 사회악을 조장하는 일
을 철저히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로운 나라이기 때문입니
다.
출애굽기 21:12~27에는 생명에 대한 법이 나옵니다. 비단 이 곳
뿐 아니라 성경 곳곳에 생명을 존중하고 무고한 재판이 없도록 하라
는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의 외침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
다. 과실로 생명을 해친 경우에 피하여 억울하게 죽지 않도록 하기 위
해 도피성을 6개나 둔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생명을 사랑하는가를 보
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한 개인의 기본권뿐 아니라 생명이 너무나 쉽게 빼앗기는 것을
목도해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그리고 우리
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존중의 사상을 가지고 이 세상
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그리고 단순히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다고 해서 사회의 불이익
을 당하거나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대지」,「어머니」의 작가인 고 펄벅 여사가 정신지체이면서 자
폐증이 겹친 한 아이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은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
습니다. 이 딸아이를 둔 어머니의 고뇌를 펄벅 여사는 육아 수기 형식
으로 된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책을 통해 나타내고 있습니다. 펄벅
여사는 딸아이를 치유할 수 있는 기적의 열쇠를 찾기 위해서 미국 각
지의 알려진 명의는 모조리 찾아다니는 절망의 여행을 계속하고 있습
니다. 그는 고뇌를 견디다 못해 '차라리 이 아이가 죽어주었으면 얼마
나 좋을까 하고 마음 속에서 몇 번씩 거듭 외친 적도 있었다.'고 고백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지체 딸아이를 둔 절망을 통하여 진정한
인간의 삶과 죽음, 진정한 사랑과 친절이 무엇인가, 정신 지체자를 비
롯하여 장애 아동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들을 위한 삶・대접이
어떤 것인가를 묻고, 그 이전에 자신이 생각했던 삶의 의미와 그 이후
의 것들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절감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즉 건강한 사람이든 장애인이든 어리든지 늙었든지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서 만들어진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속에는 영혼을 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재활원이나
장애인 시설 복지원 등에 가보면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
다. 우리의 생명이 귀하게 여겨지고 건강하다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
께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자주 잊고 삽
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건강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변
의 장애인 어른이나 아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합시다. 왜냐하
면 그 생명도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에 위협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발벗고 나서서 위협으로부터 구해야 하며, 특
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을 얻도록 우리는 사명을 다해야 할 것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생
명이 존중되지 않고 민족의 운명이나 나라의 장래 앞에 희생되어졌던
역사 속에 주님은 오셔서 생명의 존귀함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보여 주
셨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는 것이라” 여러분과 우리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