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앙생활의 원칙에 충실합시다 2002-07-29 18:58:50 read : 2614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단6:10-15,딤전4:6-8 2001.4.1
요즘 전세계의 축산농가를 울리고 있는 광우병과 구제역은 다른
여러 산업에도 나쁜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광우병은 사람을 포함,
모든 동물이 정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변형
돼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986년 광우병이 처음 발생
한 영국에서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양의 뼈를 갈아서 다른 양에게 먹
이면 ‘스크래피’라는 뇌질환이 생기고 이 병에 걸린 양의 골을 다
시 소가 먹었을 때 프리온이 변형되면서 광우병이 발생된다고 합니
다. 처음에는 소나 양의 뇌, 척수 등 육골분을 소에게 사료로 먹여야
만 발병되는 것으로 알았으나 점차 혈분을 포함해 되새김질하는 반추
동물의 부속물 전체로 감염경로가 확대되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
습니다.
또 광우병에 걸린 소를 사람이 먹으면 이 변형 단백질이 인체에 침
투하여 뇌조직을 파괴하여 뇌기능을 마비시킵니다. 사람이 광우병에
걸리면 발병 초기에는 식사와 수면습관에 변화가 오면서 몇 주안에 치
매증세를 보이다가 발병 12-15개월 이내에 사망하는 무서운 병입니
다. 이 모두가 초식동물로 창조된 소에게 하나님의 원칙을 무시하고
육식이 섞여있는 사료를 먹였기 때문에 발생한 엄청난 비극입니다. 작
은 식생활 하나도 하나님의 원칙을 무시하니까 엄청난 재난이 왔습니
다. 에이즈병도 하나님의 원칙인 일부일처와 남녀간의 사랑을 무시하
고 일부다처와 동성애를 통한 원칙을 무시한 결과의 병입니다. 원칙
을 무시하여 발생하는 비극과 참사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모습으로
만연되어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안전의 원칙을 무시함으로써 빚어진 지난1999년도 씨
랜드 화재사건,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 참사는 아직도
우리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아픈 기억입니다. 또한 심심찮게 언론
에 보도되는 정・재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걸친 부정부패와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도 건전한 전통과 성경
에 나타난 하나님의 원칙들을 무시함으로써 영적으로 약해지고 타락했
기 때문에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사회와 각 기관과 단체, 가정을 비롯하여 개인의 영적 생
활이 바람직하게 영위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전통과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사순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의 원칙들을 돌아볼 때라고 봅니다. 초
대교회 때부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지켜졌던 사순절은 부
활절을 준비하기 위하여 40일간 통회와 희생으로 보내는 기간을 말합
니다. 이 절기는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부활절 전날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기간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일찍이 4세기의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8주간에 걸쳐 매주 5일씩 실제
40일을 금식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 그 관습은 다양하였습니
다. 예를 들면 1일 1식을 먹는데 동물성 음식은 일체 금지하는 등 처
음 몇 세기 동안은 매우 엄하게 절제 규례가 지켜졌습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축제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보다 많은 규제와 절제, 극기생
활을 실천하는 등 평소보다 더욱 엄격한 영적 생활을 하였습니다. 중
세의 성도들도 ‘40일간의 묵상과 기도하는 시기’라 칭하여 경건하
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때부터 계승되어져 왔던 이런 사순절의 전통이
서방교회에서는 9세기 이후로 서서히 느슨해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거의 형식화되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사순절의 전통과 규례가 유명무
실하게 되자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
는 매우 약해지게 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적
인 가치관에 깊이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하나님께
서 외모를 보신다는 구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질만능주의, 출세성
공주의가 교회를 장악한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목회자의 가치기준도
교인수와 성전의 크기, 헌금액수로 측정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
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원칙이 있습니다. 원칙이 잘 지켜져야
합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
습니다. 우리가 세례받는 자들에게 문답을 할 때 기본적인 질문을 던
집니다. 사실은 세례를 받으면 교인이 됩니다. 그래서 입교인, 또는
세례교인이라 합니다. 입교인이 되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헌법제15조에 보면 공동예배 출석과 헌금과 교회치리에 복종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주일을 잘 지키는 일입니다. 주일
을 잘 지킨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예배를
정성껏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교인이 되면 의무적으로 헌금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자신만이 갖는 원칙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일평생 십일조생활을 하리라’ ‘나는 일평생 주일을 지키리
라’ ‘나는 일평생 성가대원을 하리라’ ‘나는 건강이 다하기까지
교사를 하리라’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많이 하리
라’ ‘나는 수요일예배까지 참여하리라’
교인이 되면 권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찬 참예와 공동의회
참여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원칙을 세울 수 있습니다. ‘본 교회에
서 성찬식이 있을 때는 입원하는 일 외에는 빠지지 아니하리라’
이런 것 외에도 ‘나는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아니하리라’ ‘나는
새벽기도를 일평생 하리라’ ‘나는 하루에 성경을 한 장씩 반드시 읽
으리라’ ‘나는 하루에 세 번씩 반드시 기도하리라’ 등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원칙을 세우고 믿음생활을 할 때 우리는 이 원칙
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무너져서
안 되는 원칙들, 주일성수와 십일조생활, 그리고 교회 지체로서의 역
할감당 하는 것 등은 무너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장에 보면 다니엘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의 왕궁에서 훈
련받는 소년이었으나 이방신상에 올려졌던 우상의 제물인 왕이 내린
진미와 포도주를 먹어야함에도 불구하고 8절에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왕이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
라”고 뜻을 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
고 자신의 신앙으로 자신의 마음으로 뜻을 정했던 것입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 원칙을 굽히지 않고 지키기로 다짐을 하고서는 제안
을 했습니다. 이들을 훈련시키는 책임을 맡은 사람에게 자신의 원칙
을 이야기하고 채소만 먹겠다고 하면서 열흘동안 궁중음식을 먹은 사
람과 채소만 먹은 다니엘과 비교를 해서 그들보다 몸상태가 나쁘면 그
때에 왕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채소만 먹은 다
니엘의 건강상태가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오늘 본문 6장에 기록된 내용은 다니엘이 총리가 되었을 때, 다리
오왕은 30일간 그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명을 내렸습니다.
그는 이것이 정적들의 흉계임을 알았지만, 정해진 규례대로 하루에 3
번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생활을 중단하지 않았습니
다. 그 결과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은 원칙에 충실하였던 다니엘
을 구원하시고 높이셨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세운 원칙이며 전통적
으로 내려오는 원칙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걸고 지켰습니다. 그래서 그
는 타국에서도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하나님의 법칙을 철저
하게 지켰습니다. 그래서 범죄치 않고 결국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습니
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사사중에 사무엘과 삼손은 나실인으로 태어났
습니다. 나실인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기간동안이나 일평생 하나님 뜻
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겠다고 서약하는 것입니다. 나실인
이 지켜야 할 규례 세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머리를 깍지 않는 것,
두 번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는 것, 세 번째는 부정한 시체
를 만지지 않거나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이것을 철저하게 지켜서 끝까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의 사명
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머리를 깍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
고 이방 여인에게 농락을 당하여 결국 머리를 자르게 되어 힘을 잃고
두 눈이 뽑히고 마지막에는 한번 더 얻은 기회를 가지고 큰 연회장의
기둥을 뽑아버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자신도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작은 원칙이라 하지만 정했으면 생명을 걸고 그것
을 지키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이 됩니다. 비록 자신이 정한 원칙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해롭더라도 반드시 지키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영국 국교회의 개혁을 주도하였던 요한 웨슬리도 1729년
옥스퍼드에서 신성클럽을 조직하여 성경연구와 기도생활, 주 2회 금
식, 주1-2회 감옥전도 등 신앙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불쌍한 한 소녀를 만났지만 돈이 없어 적선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서재에서 늘 보던 그림이었지
만, 그 날은 왠지 가련한 그 소녀의 배고픔을 면케 해줄만한 돈으로
벽을 장식한 것이 심하게 자책되었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매년 최저
생계비 28파운드만을 자신의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 돈은 전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쓰기로 결심하고 평생 실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 선지자와 요셉과 웨슬리 목사님이 지극히 작은 신
앙의 원칙들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을 보시고 시대를 앞서가는 하나님
의 큰 일꾼으로 사용하신 것이 아닐까요? 저도 나름대로 원칙을 정해
놓고 실천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그중에서
도 저는 목회를 시작하던 해부터 아직은 어기지 않고 지키는 것이 하
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순절 기간 아침 금식하는 것을 지그까지 11년
째 지키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리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해보고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리라.’ 여기서 최선을 다한
다는 것은 맡은 일 외에도 일을 만들어가면서 까지도 하는 것을 말합
니다.
그러나 가정예배를 매주일 일회 이상 드리리라고 했던 것은 잘 지
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원칙을 세워놓고도 충실하지 못
한 편인 저로서는 성경과 교회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약속한 경건 규
칙, 신앙의 전통과 원칙을 철저히 준수한 성도들을 보면 존경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우리는 신앙의 전통과 하나님의 원칙이 있음에
도 불구하고 기도, 예배, 절제, 봉사, 사랑실천 등을 가볍게 여기거
나 뒤로 미루는 경향이 얼마나 많습니까? 친인척의 경조사에 참석하느
라 주일성수를 제대로 못하고, 성과가 별로 없다고 하여 무기력하게
침체된 생활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 약속한 경건 규칙
과 근무일과가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적당히 타협하거나, 봉사와
구제와 선교등을 실천해야 함을 알지만 귀찮거나 손해보기 싫어서 외
면하고 있다면 심각한 상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원칙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것을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으로 가볍게 여기면 평생을 살아도 그
것을 지킬 수 없습니다. 원칙을 정했으면 그것을 생명처럼 지켜야 합
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경건의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어지간한 결심
력 가지고는 단번에 지키기 어렵습니다.
오늘 신약 본문 디모데전서 4장 7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십니다. '경건'이라는 말의 뜻은 두려
워하며 공경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경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을 경외하
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부터 경건
한 신앙생활이 시작이 되는 것 입니다. 경건한 신앙생활이란 하나님
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며, 하나님께 헌신하며, 하
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제가 이 '경건'이라는 것을 쉬운 말로 한다
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다'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을 사랑해서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고,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경건한 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고, 가까이 가고 싶고, 친밀하게 교제하고
싶은 것이 우리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께 가
까이 나아가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는 생활,
그것이 경건한 신앙생활입니다. 경건한 신앙생활은 또한 실제적인 면
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
께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된 욕심과 이기적인 욕
심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뜻대로 사는 것입니
다. 경건한 생활을 한마디로 줄이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
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경건한 신앙생활은 구체적으로 하나님
께 예배드리며,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으로 표현이 됩니다. 하나님
의 뜻을 안 후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정직한 삶을 살고 의로운 삶
을 살고 검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악 되고 건전하지 못한 오
락이나 술을 삼가 고, 거짓말을 삼가며, 이웃을 미워하는 일을 삼가
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이웃을 사랑하고, 연약한 사람을 도우며 구
제하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곧 경건한 생활이 우리 삶에 실제로 나
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는 목회방법은 교육목회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원칙입
니다. 다른 하나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제게 맡겨주신 성도들을 100%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듣는 천국시민으로 양육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저의 목회원칙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로 만드는
일입니다. 이런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
니다. 오늘 7절 하반절 말씀에는 ‘경건한 생활을 연습하라’고 우리
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다’고 성도
라면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가집니다. 머리 속으로 생각만 한다고 해
서 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런 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에, 오늘 이
본문말씀에는 연습하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연습하라는 본문의
명령은 운동 연습하라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옷을 벗고 그리고
는 열심히 운 동 연습하는 것을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이 쓰여
진 당시의 헬라 문화에서는 신체를 단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교육시킬 때, 어떤 교과과정 보다도
육체를 단련하고 운동시키는 체육을 가장 중요한 교과과정으로 생각
을 했습니다. 열심히 운동을 시키는데 운동 연습이 얼마나 혹독하고
엄중한지 연습 중에 그만 죽는 사람이 생기는 수도 많았다는 것입니
다. 경건의 연습, 연습한다는 것과 훈련한다는 것은 참으로 지루하고
힘든 일입니다. 운동시합을 하는 것은 그래도 그 가운데 재미가 있
고, 스릴이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운동시합을 위해서 준비하고 연
습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따분하고 지루하고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
나 고된 훈련과 연습을 인내를 가지고 감당을 해야 훌륭한 운동선수
가 되고 운동시합에서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무슨 운동이든지, 아니
면 연주자든지 성악을 하든지 연기를 하든지 적어도 제 일인자가 되었
다고 하는 것은 피눈물 나는 노력을 즉 연습을 훈련을 했다는 것입니
다. 프로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드어보면 겨울에 훈련을 얼마나 힘들
게 했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고된 연습과 훈련을
해야 훌륭한 연주자가 나오고, 훌륭한 운동선수가 나오고, 강한 군인
이 나오는 법입니다. 생각만 한다고 훌륭한 연주자, 강한 군인이 되
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성도들의 경건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 속
으로 생각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인내하고, 애를
쓰면서 부지런히 연습하고 훈련해야 경건한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
다. 부지런히 경건한 생활을 연습 하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의 습관과
성도의 품성이 신앙인답게 자리잡고,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가진 성도
가 되는 것입니다. 꾸준히 경건한 생활을 연습을 계속해 나가면, 그
성도들은 주의 일에 활동적으로 일하는 성도가 되고, 교회에 덕을 세
우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8절 말씀은 경건의 연습의 유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 속이 있느니라” 경건의 연습을 열심히 하면 큰 유
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연습도 물론 유익이 있습니다. 신체
의 훈련을 열심히 하면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고요, 운동경기 하는 기
술이 많이 발달되는 것입니다. 미술을 열심히 연습하면, 좋은 미술
가, 좋은 미술기술을 가진 미술가가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
는 사람들은 좋은 학문과 지식을 가진 좋은 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런데 육체의 연습은 제한된 기간 동안만 유익이 있습니다. 아무리 육
체의 연습을 많이 하고, 좋은 기량을 가진 사람이라도 무덤을 넘어서
서 그것을 가져가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만 그 것
이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훈련, 경건의 연습은 열심히 연습
할 때에, 이 땅에 사는 동안 늘 평안과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뿐더러, 건전하고 의로운 삶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 수 있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덤 그 이후까지, 즉 하나님나라에 이르
기까지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의 연습을 열심히 할 때에 하
나님을 바라보는 생명의 약속이 더욱 견고해 집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차지 할 수 있는 준비를 차근차근 갖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육
체의 훈련을 하는 것은 제한된 시간만 유익한데 반해, 경건한 훈련을
하는 것은 영원토록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신앙의 원칙을 세우고 있습
니까? 여러분이 세워 놓은 신앙의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습니
까? 다니엘처럼, 요셉처럼, 사무엘처럼, 웨슬리처럼 원칙을 잘 지켜
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이 주시는 복이 크지 않더라도 생명을 걸고 신앙의 원칙을 지키는 성
숙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수정> <삭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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