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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기기를 즐겨하라
    2002-08-13 17:01:16   read : 3991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한복음 13장 1-17절 // 2002-8-11

    인도에서 이상한 자전거 경기가 있었습니다. 출발선에서 출발한 자전거가 제한된 시간이 되었을 때, 출발선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이 우승자가 되는 그런 경기였습니다. 물론, 경기도중에 넘어지는 경우나, 한 발이 땅에 닿는 경우에는 자동으로 탈락됩니다. 경기가 시작할 즈음 모든 자전거들이 출발선에 섰습니다. 출발신호와 함께 모든 경기자들이 일제히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로만 페달을 밟았습니다. 제한된 시간이 다 되었을 때 경기종료를 알리는 두 번째 신호가 울렸고, 우승자가 결정 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이 규칙을 모른 상태로 이 경기에 참여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아마도 경기 시작과 동시에 여러분들은 가능한 한 힘껏, 그리고 빨리 페달을 밟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달리는 도중 온 몸이 땀에 젖어드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며,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더욱 힘껏 달릴 것입니다. 마침내 여러분들은 경기 종료를 알리는 두 번째 신호를 듣게 될 것이며, 당당히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 시상대에 오르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곧 여러분들은 경기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승자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경기의 규칙을 알지 못하면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도 규칙이 있는데, 그 규칙을 알지 못하고 산다면, 우리는 마지막 날에 아무 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무의미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삶의 방식(life style)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섬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알려준 삶의 방식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낮아져서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섬기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1. 예수님의 섬김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⑴ 예수님의 섬김은 "때를 가리지 않는" 섬김이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유월절 전'이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을 말합니다. 이 때 상황이 어떠했겠습니까? 뭔지 모르는 긴장감이 감돌지 않았겠습니까? 뭔가 다급하게 상황이 전개되면서 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싸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면서 "그래, 뭐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모두들 겸손해지지. 죽기 전에 뭘 못 하겠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죽기 전이라고 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겸손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3절 말씀을 함께 봅니다.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무엇을 알고 계셨다구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큰 영광을 받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얻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조금 있으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힘을 얻게 될 사람이 굳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굳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면서까지 겸손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뭐라 기록하고 있습니까? 1절 말에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는데,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모습 속에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은 겸손히 낮아져 사랑하는 사랑이요,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사랑입니다. 내가 제대로 신앙생활 할 때나 또는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행동이나, 시원찮은 신앙생활 할 때나 언제나 사랑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조금만 힘이 있어도 드러내려고 하고, 조금만 돈이 있어도 과시하려고 합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자랑하려고만 하지 겸손하게 섬길 줄 모릅니다. 그러니, 어떻습니까? 때를 가려가면서 섬기려 하지 않습니까? 내가 즐거우면 웃는 모습으로 대하고, 내가 슬프면 별 것도 아닌 일에 짜증부터 내고, 내가 풍족하면 다른 사람을 돕지만, 조금만 어려워져도 쉽게 눈을 돌리지 않습니까? 연로하신 분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만 편안하면 되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는 무관심하게 지나가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섬김에는 때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게 될 상황에서도 섬기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온갖 영광을 얻게 될 상황에서도 교만해지지 않고 섬기셨습니다. 항상 섬기기를 즐겨하는 모습-그것이 성도의 삶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⑵ 예수님의 섬김은 대상을 구분하지 않는 섬김이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가운데 정말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이 자리에 배신자인 가룟 유다가 동석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우리들은 이 자리에 가룟 유다가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2절 말씀을 보세요.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성도 여러분, 누가 있습니까? 가룟 유다. 가룟 유다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팔아넘기려는 마음을 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소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계획을 감추기 위해서는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참으로 궁금한 점이 한 가지 생깁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의 발을 씻기셨을까요? 아니면, 건너뛰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는 배신자 가룟 유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5절 말씀을 보니, "예수님께서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6절 말씀을 보세요.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여기서 '이르시니'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어 12절 말씀을 보세요.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제자들 중의 한명의 발을 먼저 씻어주시고 이어서 베드로와 심지어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어줌으로써 그곳에 있던 모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어주심으로써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당신의 말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배신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씻겨주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배신자의 발을 씻긴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여러분들이라면 내가 정말로 증오하는 사람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 큰 해를 입힌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려 할 때, 우리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대부분은 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향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사람, 나에게 뭔가 유리한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우리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 마음에 맞는 사람, 내게 유익이 되는 사람만 섬기고 사랑한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 하셨습니까? 도적들도 자기들끼리는 아끼고 사랑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대상을 가려가면서 섬기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사랑으로 섬기라 하셨습니다. 끝까지 사랑으로 섬기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섬김의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섬겨야 하는 책임만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때를 가리지 않고, 대상도 가리지 않고 섬김의 삶을 실천한 예수님을 보면서,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라는 주석가는 "예수님은 겸손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마디로 말하면 겸손할 필요가 없는 시간에 겸손하셨습니다. 겸손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겸손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섬김에는 때가 없습니다. 섬김에는 대상을 구분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높은 지위에 있고 남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섬길 줄 아는 춘천중앙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베드로는 왜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주시는 것을 왜 거부했습니까?

    우리가 본문 말씀 속에서 살펴보아야 할 두 번째 사실은 "베드로가 왜 예수님으로부터 발 씻김을 왜 거부했는가?"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이것을 살펴보아야만 하는 이유는, 이점을 분명히 하지 않고는 결코 예수님의 본을 따라 섬김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베드로가 거부했을까요?

    무엇보다도 세상적인 가치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을 봅시다.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선생님,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살아온 바에 의하면 주인이 종의 발을 씻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겨주는 경우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만 두십시오. 오히려 제가 선생님의 발을 씻겨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는 힘이 없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에게 굽실거리고,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당연지사이고, 없는 자가 가진 자 앞에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행동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섬김의 가치관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더 많은 힘이 있으셨습니다. 원하시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그분의 것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생명까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적인 가치관에 사로 잡혀 있으면 결단코 예수님과 같은 섬김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섬기는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즐거운 섬김, 자발적인 섬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럼으로,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세상적인 가치관에 의해 병들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점검해볼 수 있습니까? 섬길 때 기쁨이 없으면 병든 것입니다. "나보다 낮은 사람이 나를 섬겨주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내가 섬기려고 하니 기쁨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는 자가 당연히 있는 사람 앞에서 굽실거려야 하는데, 내가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세상적인 가치관을 버리지 않는 이상 섬겨도 복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치관을 마음속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섬겨도 기분 좋습니다.

    17절 말씀을 보세요.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높은 데도 스스로 낮아져서 겸손하게 섬기면서 살면,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기쁨이 옵니다.

    왜 요즘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습니까? 왜 짜증스럽고 왜 불만이 쌓이고, 왜 원망스럽고 남이 미워지고 왜 용서가 안 됩니까? 정말 낮아지지 못하고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 아닙니까? 이기주의가 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기주의가 행복을 보장받는 수단이나 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싫다는데 왜 그래?" "내가 싫으면 안 해" 이런 말들을 조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뱉고 그 말대로 행동하지 않습니까? "못 해", "안 해", "그럴 순 없어" 이렇게 말하다보니, 왠지 세상사는 재미도 없고 항상 괴롭고 슬프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어 더욱 답답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니, 마음이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오스트리아의 애들러라는 의사는 자기를 찾아오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이런 처방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가서 2주일 동안 매일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 그것만 골똘히 생각하고 한번 실천해 보세요. 2주일 동안만 그렇게 살면 당신 병은 깨끗이 낫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의 병 때문에 우울하십니까? 잠을 못 잘 정도의 괴로움이 여러분을 짓누르고 있습니까? 세상적인 가치관을 버리세요. 주님이 가르쳐주신 가치관은 겸손한 자가 승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나를 지배하게 되면, 이기주의자밖에 될 수 없지만, 예수님의 겸손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삶이 바뀝니다. 삶에 희망이 넘칩니다. 삶이 즐거워집니다. 겸손과 섬김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임을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그렇다면, 누가 섬김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고통이라는 선물(The Gift of Pain)] 책을 쓴 폴 브랜드(Paul Brand)는 나병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 의사였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가 나병 환자를 위해 일생을 살아온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문의사가 아니었기에 나병 환자를 돌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자란 폴 브랜드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침내 나병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나병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의가 된 폴 브랜드는 여러 방면에서 나병 환자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때로, 그는 나병환자와 접촉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동료 의사들에게 설득시킴으로써, 많은 의사가 나병 환자를 돌보는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정으로 무척 힘들어했던 폴 브랜드는 몸에 약간의 미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발의 반쪽에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폴 브랜드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바늘로 발뒤꿈치를 찔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는 순간 생각했습니다. "내가 나병을 치료하는 의사에서 나병 환자로 비참하게 전락하고 마는구나! 이제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폴 브랜드는 이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 폴 브랜드는 다시 한번 발뒤꿈치를 바늘로 찔렀습니다. 그 순간 폴 브랜드는 비병을 질렀습니다. 그제야 폴은 자신이 너무 지쳐 있었던 관계로 일시적인 마비 현상이 일어났었고 그 결과 아무 것도 느낄 수 없게 되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폴 브랜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고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도 여러분,

    폴 브랜드가 왜 감사했는지 아십니까? 나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정말로 나병 환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이 자신의 손을 왜 뜨거운 불에 넣는지, 그리고 신체의 일부를 어떻게 칼로 자르려고 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폴 브랜드는 일평생 나병 환자의 치료를 위해 힘썼습니다. 그 일에 헌신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의 처지를 알았기 때문에 그 일에 좀더 헌신하고 나병 환자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에버릿 쿠프 박사는 [고통이라는 선물]의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따금 생각에 잠겨, 내가 에버릿 쿠프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질문해 볼 때마다 가장 자주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폴 브랜드다. …… 폴 브랜드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그는 충분히 교만할 만한 상황에서도 겸손하고,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며, 필요 이상으로 점잖으며 능력 또한 탁월한 사람이다."

    성도 여러분, 진정한 섬김은 낮아져 본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경험해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고통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슬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예전에 고통스럽고 힘들 때가 있었지 않습니까? 지금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여러분의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맞아, 나도 예전에 참 힘든 적이 있었어. 그때 그 사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 내가 먼저 도와야지. 내가 먼저 섬겨야지" 이런 마음을 품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세를 낮추세요. 여러분의 낮아질 때, 도움이 필요한 손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비유를 잘 아시죠? 그가 왜 근심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까?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는 주님의 말씀 때문 아닙니까? 이 부자 청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 때문에 정말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 앞에는 결단하지 못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가진 재능과 재산, 권력과 명예가 섬김의 삶을 방해한다면,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귀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섬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껴보고자 하는 마음 없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섬길 수 있겠습니까? 때로, 섬기면서 살다보면, 그 사람의 고통을 몸소 체험해야 할 때도 있을 터인데, 그것을 감내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어떻게 섬길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시대는 책상 앞에 앉아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탁상공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에게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저희 교회에는 유능하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깃발을 들고 세상에 나가 그 사랑을 실천하는데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용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독거노인들이나 불우한 학생들에게 무료로 머리도 깎아주고, 음식점을 하시는 분들은 어렵게 사는 분들을 초청하여 식사대접도 해보고, 또 의료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일년에 한 두 번은 봉사활동을 나갔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의 일터와 삶의 자리에서 남을 섬길 수 있다는 것 -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저는 이처럼 우리 춘천중앙교회의 온 성도들이 남을 섬기는 사명자로 평생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명자로 부르셨을 때에는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사랑을 전하는 섬김이로 살게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일에 겸손함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실천해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 론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웃을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입으로 말씀하신 것뿐만 아니라, 몸소 몸으로 보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섬김의 삶을 살도록 부르셨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때를 가리지 않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편안할 때만 섬기지 말고, 비록 나는 어려워도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때로 성도는 고통을 주신 것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나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알게 하는 하나님만의 비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십시오. 예수님의 마음은 하늘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이 세상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겸손하면 높아질 수 있다는 것, 섬기면 섬김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생각이자, 가르침임을 깨닫고 평생 섬김의 종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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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감사가 넘치게 하라
    탁월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라
    삶의 균형을 이루라!
    마라에서 엘림으로
    부흥을 확산시키라!
    부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라
    부흥을 경험하라
    부흥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섬기기를 즐겨하라
    욕망을 다스리라
    평생 사명을 가지라!
    의미 있는 삶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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