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가 오면 복도 옵니다. 일선에서 군대생활할 때 내무반 벽에 "비가 오면 적이 온다"고 씌여진 표어가 기억납니다. 비가 많이 오면 아군이 귀찮아지고 게을러질 때가 오고, 경계가 느슨해진 바로 그 때를 틈타서 적이 침입한다는 말이지요. 우리 신앙생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원수가 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따라 옵니다. 다윗은 자기가 복을 받았을 때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확신에 가득찬 고백을 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님과 나와 원수!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현장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주님과 나만 있다면 얼마나 쉽겠습니까? 주님과 나만이 있는 곳은 장차 들어갈 천국이고 여기는 원수가 있습니다. 과대망상의 귀신도 있고 사나운 지배의 귀신도 있고 우울증과 각종 질병의 더러운 귀신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지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도적은 원수 마귀이고 선한 목자는 주님이십니다. 어떤 때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가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기는 쪽은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긴장이 있고 상처가 있고 싸움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렇기 때문에 영광도 있고 칭찬도 있고 상급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원수는 우리를 미워합니다. 우리는 어리고 연약합니다. 주님은 모든 상황을 아십니다. 원수를 보내사 우리로 하여금 더욱 주님을 찾도록 만드십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원수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원수를 대적하기 위하여 더욱 주님을 의지합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 의지하기를 배우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될 때 주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의로운 재판장이 되사 원수의 목전에서 공개적으로 우리의 승리를 선언하시고 그 누구도 딴소리 못할 상급을 주십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상 17장에 보면 소년 다윗이 최초로 만난 공개적인 원수는 블레셋 장군 골리앗입니다. 다윗이 원수 골리앗을 보았을 때 골리앗만 본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와 함께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 하나님은 다윗이 양떼를 지키면서 사자와 곰과 더불어 싸울 때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신 분이십니다. 그는 이 하나님이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용감하게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과 골리앗, 성도 다윗과 원수 골리앗을 비교해 보십시오. 한 사람은 어리고 연약한 소년입니다. 한 사람은 온 이스라엘이 벌벌 떠는 2m 93cm의 역전의 용사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플러스 알파가 있습니다. 그것은 골리앗에게는 없는 것으로 무한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그 알파는 무한대의 알파입니다. 심판관이신 여호와 하나님,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두 사람 사이를 판정하셔야 합니다. 누구에게 승리를 줄 것인가?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 여호와 하나님은 원수 골리앗에게 힘과 능을 주신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도 다윗에게 신앙과 용기를 주신 분이십니다. 과연 다윗의 신앙이 골리앗의 능력을 제압하고 있는가? 다윗의 믿음이 거인의 파괴력을 이기고 있는가? 하나님은 공정한 재판장이십니다. 주님은 다윗의 신앙이 골리앗의 힘과 능을 능가하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도록 허락하십니다. 드디어 다윗이 승리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신앙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히 11:6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세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속죄함이 되시고 절대 의로움이 되십니다. 우리의 틀림없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십니다. 여러분의 죄가 아무리 많고 여러분의 원수가 아무리 강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온 세상을 이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가 없습니다. 멸망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생명과 승리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강건케 하시고 부요케 하시고 형통케 하십니다.
다윗이 두 번째로 만난 공개적인 원수는 사울 왕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이후로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방정맞은 여자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칭송했지요. 그때로부터 사울 왕의 마음속에 질투와 시기와 미움의 악령이 가득합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백방으로 설칩니다. 권력자 사울이 다윗을 죽이는 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다윗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기이하게 다윗을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이 생명싸개로 그를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태가 바꾸어집니다. 다윗을 따라 다니며 죽이려던 사울 왕이 도리어 다윗의 손에 떨어진 것입니다(삼상 24장). 엔게디의 한 굴에서 깊이 잠자던 사울 일행을 다윗이 발견합니다. 다윗의 수하가 말합니다.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원수를 붙이신 것이 아닙니까?" 다윗이 사울 왕의 겉옷만 살짝 베면서 말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라"
그일 뒤에 잠에서 깨어난 사울을 향하여 다윗이 외칩니다. "왕이여 나는 잠자고 있는 당신을 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겉옷이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여호와께서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시려니와 나는 내 손으로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사 나와 왕 사이를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11-12절). 사울 왕은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의 판단을 토로합니다.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도다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굳게 설 것을 아노라"(17-20절). 다윗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왕을 선대하였더니 원수의 목전에서 높임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으로 원수를 사랑하세요. 그리하면 원수의 눈앞에서 공개적으로 높임을 받습니다. 공평하게 갚음을 받습니다. 여러분의 상처는 기름으로 치료됩니다. 여러분의 지위는 높아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승리와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차라리 쉬운 싸움이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나라가 번성한 다음 다윗은 세 번째 공개적인 원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다윗의 신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통하여 온 시험입니다. 잘 아는대로 다윗은 어여쁜 밧세바 때문에 살인하고 간음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집안은 풍지박산이 되고 자신은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세 번째 원수에게 패배하여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삼하 12장). 다윗은 자기의 죄를 즉각적으로 회개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했도다" 그리하여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죽는 날까지 정결하게 산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중에 범죄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면 다시 우리를 원수의 목전에서 머리를 들게 해주십니다. Table을 베풀어 환대해 주십니다. 신령한 은혜로 충만케 하십니다.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우리는 원수에게서 늘 승리만 하는게 아닙니다. 은혜의 절정에서도 시험을 받습니다. 복의 정상에서 원수의 공격을 받고 패배를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패배속에서 더 철저히 주님 의지하기를 배웁니다. 주님의 은혜, 성령의 붙드심이 아니면 설 수 없다는 가난한 마음이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져서 다시금 하나님의 진리와 복을 감당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하십니다.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복을 받는 것보다 복을 지키는 것, 복을 구하는 것보다 계속 복을 누리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신앙 수성의 날에 시편 26편을 노래합니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6-8)… 내 발이 평탄한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1∼12).
다윗이 네 번째 공개적으로 만난 원수는 사울의 집족속 베냐민 사람 시므이입니다. 그가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맨발로 도망가는 다윗을 향하여 저주하고 모욕하고 비방합니다. "피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 16:7-8). 시므이의 저주가운데는 근거없는 비방도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모든 저주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이 미친 개의 머리를 베겠다는 수하 장수를 말리며 말합니다.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 16:10-12).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시므이가 말한 내용이 얼토당토 않는 말이지만 구태여 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틀렸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나는 당연히 하나님의 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 아닌가. 내 죄값으로 당연히 받을 징계가 아닌가" 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드렸던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인들의 이런 저런 말들을 전해 듣고는 한 마디도 변명하지 않고 오히려 "내 실상을 알았으면 더 했을텐데 그만하니 다행이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 모세도 죽일려고 했는데 이만하니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해제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회복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의 저주가 결국에는 복으로 바꾸어질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자기의 죄책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믿음이 억울함을 달게 받을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삼상 19장에 보면 결국 하나님을 바라보고 억울함을 참은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복귀하고 저주하던 시므이는 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시며 잔을 넘치게 부어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 우리들이 확실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까? 우리 신앙생활 가운데 원수를 만날 때입니다. 원수가 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옵니다. 신앙 창업의 날에는 우리에게 골리앗같은 원수가 오고 사울같은 원수가 와서 우리를 대적합니다. 그것은 생활고이고 질병이고 어려운 인간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피합니다. 주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이 원수를 이기고 우리의 선과 사랑이 원수를 이기는 복을 받게 하십니다. 신앙 수성의 날에는 우리들에게 벳세바와 같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마귀가 오고 시므이같은 억울한 욕쟁이가 옵니다. 그것은 유혹과 세속의 물결이며 영적 교만과 게으름이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주님 아니면 서지 못할 줄 알고 겸손히 하나님의 보상을 기다립니다. 그러면 우리의 성결이 다윗처럼 되고 우리의 관용이 다윗처럼 되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처럼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