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2002-09-24 11:18:28 read : 4322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 110:1-7 // 2002-09-22
지난 주간에 중국선교여행을 잘 다녀왔습니다. 기도로 도와주신 성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중국선교여행의 일행 가운데 연세가 일흔다섯인 장로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신
문사 편집국장을 지낸 분입니다.
여행이 너무 빡빡하게 진행되어서 첫날부터 모두 지쳤습니다. 하루 일정을 마치
고 밤에 호텔에 들어가면 몸도 씻지 못하고 그대로 누울 정도였는데 이 장로님
은 잘 감당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주 해서 일행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마음
이 젊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계를 위해서도 수고를 많이 하시는 분인데 저를 보고 여러 번, '내가 목양교
회 사정을 잘 아는데 유 목사님, 즐겁게 목회하세요. 즐겁게 목회하세요' 권면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즐겁게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권면을 할 수 있는 것입니
다.
제가 이번에 중국에 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연변과학기술대학교 개교
1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이 학교 후원회의 이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학교는 내막적으로는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외국에
서 들어와 선교를 하는 것을 금하니까 이렇게 중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 주
면서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선교를 하자'고 세워서 많은 선교효과를 거두
고 있는 학교입니다. 대표적인 간접적인 방법이 교수진이 모두 자원봉사 크리스
천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주 성실하게, 사랑을 베풀며 가르친다는 것입니
다. 이번에 학생들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졸업할 때는 70% 이상이 크리스천이 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중국 당국에서도 이것을 알고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교 10주년
기념식에서 중국이 교육계 고위관리 하나가 축사를 하면서 '이 학교는 중국에
있으니까 중국법을 지켜야 하고, 사회주의 노선에 충실해야 하고, 마르크스 레
닌의 유물사관을 가르쳐야 하고 무신론을 가르쳐야 한다' 고 엄포를 놓았습니
다.
식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제가 불평을 했습니다. '아니 남의 잔치
에 와서 그 따위로 재를 뿌리는 괘씸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내가 바로 그 사
람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식이 끝날 때까지 뒤통수를 보려보았다. 그 사
람 뒤통수가 좀 간지러웠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 장로님이 '불쾌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해
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처지이니까 이해하시고 너무 서운하게 여기
지 마세요.' 했습니다. 도량이 넓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장로님은 '유산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기 운동'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회원들이 전국에 800명 안팎이 된다고 합니다. 이 분들은
유서를 미리 써놓았는데 매년 연초에 유서를 새로 쓰면서 그 유서에 이 점을
명시해 놓는다고 합니다.
이 장로님도 매년 유서를 써서 원본은 집에 두고,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똑
같은 내용을 옮겨 적고 도장을 찍어 놓았습니다. 만일 사고를 만나서 생명을 잃
게되면 수습하는 사람들이 소지품을 조사할 것인데 그 때 수첩에 적힌 대로 바
로 집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유산은 자녀들에게 주지 않고 이렇게 사용해라'
'시신 가운데 사용이 가능한 장기들은 병원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화장을 하라'
'책들은 어느 학교 도서관으로 보내라' 이런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올해부터 내용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비행기 추락 사고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 생명을 잃으면 보상금이 나오는데 이 보상금을 누가 갖느냐, 어떻게 나
누느냐 하는 문제로 잡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보고 유서에
'만일 내가 사고로 죽고 보상금이 나오면 그 보상금은 많고 적건 간에 액수를
따지지 말고 교회에 헌금을 해라' 라는 것을 첨가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연세가 많은 장로님인데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서 그
분에게서 싱싱한 젊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가 시월에 석 주일 계속해서 주일저녁에 남선교회 평신도신앙강좌를
하고 마지막 주간에는 여선교회 주최로 신앙간증성회를 하고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장로님을 강사 가운데 한 분으로 모셔야하겠다고 혼자서
내정해 놓았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연세가 많은 분이지만 그 분에게서 싱싱한 젊음을 느꼈다'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이 '싱싱한 젊음'이라는 말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시편 110편은 '메시아 시'라고도 하고 '대관식 시'라고도 합니다. 장차
메시아, 곧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을 완전히 정복하시고 영원히 통치할 것을
예언한 시입니다.
이 시편은 메시아를 왕으로, 그 다음에는 제사장으로, 그 다음에는 심판주와 승
리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지은 이 시는 시편 전체에서 메시아를 가장 직접적으로 예언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시편의 1절은 신약에서 스무 번 가까이 인용되고 있는데 예수님
도 인용하시고, 베드로도 오순절 설교에서 인용하고, 바울도 인용하고, 히브리서
기자도 인용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시편입니다.
소설이나 시에서 뛰어난 한 부분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전체가 더 빛이 나고
그것이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남자들 옷 입을 때 넥타이 잘 매면 옷이 돋보
이지 않습니까?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에서 3절의 뒷부분에 있는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라는 말이 그런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청년의 순수함, 청년의 신선함, 이런 것들을 이보다 잘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말 한 마디 때문에 이 시편이 더 값있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은 누구입니까?
먼저 나이가 젊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주의 청년들'이라고 했으니까 크리스천
청년들을 말합니다.
감리교회에서는 열두 살에서 설흔 살까지를 '청년회', 영문약칭으로는
MYF(Methodist Youth Fellowship)이라고 하고, 청년회를 중등부회, 고등부회,
청년부회로 나누는데 청년부회는 열여덟 살에서 설흔 살까지입니다.
여기 나오는 '청년'의 히브리말 '야루트트'는 바로 그런 연령의 젊은이들을 말합
니다.
그 다음, 여기 나오는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은 청년들만 말하는 것이 아
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3절은 '주의 백성들은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줍니다.
이 3절의 히브리 원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데 '예수님은 새벽 이슬 같은 청
년이다'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아침 이슬처럼 풍성하고 신선하며 멀리 퍼지고 영원히 청년의 힘을 가
진 분이다'
'주님은 아침 이슬이 별이 빛나는 하늘로부터 조용하고 신비스럽게 내려오듯 그
의 백성들과 함께 오시는 분이다'
이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주를 따르는 사람들은 새벽 이슬
과 같은 청년들을 닮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됩니다.
3절을 다시 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주님의 백성인 우리
는 주님 앞에 나갈 때는 이런 모습으로 나가야 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아무 옷이나 걸치고 나올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는
임금이 베푼 잔치에 예복 입지 않고 들어온 사람이 처벌받는 일이 기록되어 있
습니다.
복장은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점잖은 사람도 예비군복을 입혀 놓으
면 짓궂은 짓을 많이 합니다. 훈련 끝나고 신사복으로 갈아입으면 다시 점잖아
지지요.
저기 분당에 새마을연수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거기 들
어가서 새마을 교육을 받아야했습니다. '이번에는 이 직장에서 몇 명 참석해야
합니다' 이렇게 배당되었지요. 들어가면 작업복 입고 운동화 신고 교육을 받게
합니다. 점호도 하고 구보도 하고 정신교육도 받습니다.
작업복 입고 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자신도 돌아보고 우리 사회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올 때에는 복장에도 신경을 써야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은 예수
님이 메시아로 임하시는 날, 재림의 날을 말하는데 주일도 작은, 주의 권능의
날입니다.
서양에서는 평소에는 소탈한 복장을 하다가도 교회 올 때에 좋은 옷을 입고 오
는 것이 하나의 예의로 되어 있습니다.
"즐거이 헌신하니" 마지못해 끌려가듯 나와서는 안 됩니다. 소금에 절여진 배추
같이 지친 모습으로 나와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데 그런 모습으로 일
해서는 안됩니다. 즐겁게 헌신해야 합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큰 행사, 그리고 수재복구 작업 같은 것을 할 때 자원
봉사자들이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에 동원된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즐거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김지겸 목사님이 잠언 6장 9절 이하의 말씀을 가지고 설
교했습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
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개미가 자원봉사자의 자세로 일하는 것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루는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까 사장이 불렀습
니다. 가니까 저에게 하는 말이 '내가 오후에 회사를 한바퀴 둘러보는데 당신이
책임 맡고 있는 부서에 가보니까 한 사람은 졸고, 한 사람은 잡담 전화를 하고
있고 한 사람은 신문을 보고 있고 자원봉사자 한 사람만 열심히 일하고 있습디
다. 직원들 단속 좀 잘 하시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자원봉사자가
한국 사람이 아니고 미국 사람, 선교사 부인이어서 더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습
니다.
여기 계신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주님께 나아와 있습니다. 내 모습이 과연
새벽 이슬과 같은 청년의 모습인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생기가 넘치는 모습입니다.
성도들은 생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니 있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넘쳐야 합니
다. 그래야 새벽 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 기가 살아 있다' '기가 느껴진다' '기가 넘친다' 이런 말들을 하지요.
사람들이 성도를 대할 때 성도들에게서 활기를 느껴야 하고 생기를 느껴야 됩
니다.
생기를 가진 사람은 그 생기를 전염시킵니다.
성도들은 기가 죽어서 지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기를 펴야합니다. 요즘 교회의 성장이 둔화되었다, 사회에서 인정을 받
지 못한다, 이렇다고 해서 기가 죽어서는 안 됩니다.
수풀에 들어가면 덜 싱싱한 나무도 있고 꼬부라진 나무도 있고 죽은 나무도 있
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일부 언론이나 사람들이 그런 한 두 가
지, 많아야 몇 가지에 초점을 맞춰 부각시키려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
에 수풀의 아름다움이 크게 손상되지 않고 또 수풀의 기능이 감소되지 않습니
다.
여러분, 기 펴시기 바랍니다.
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계셨는데 학생들에게 늘 '기 펴!'했습니다. 예전에는
겨울에 교실이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기 펴!' 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어깨 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인데 나중에는 용기
를 가지라는 말로 확대해석 되었습니다. 크리스천 교사였는데요 그 말이 학생들
사이에 유행이 되었고 그 선생님의 별명이 되었습니다.
'기 펴 선생님', 이거 좋은 별명입니다. 여분도 '기 펴 선생님'들이 되시기 바랍
니다.
에스겔서 37장, 마른 뼈 골짜기의 환상을 살펴봅니다. 골짜기에 가득한 뼈들이
살아나는데 먼저 뼈들이 들어맞았습니다. 그 다음에 힘줄이 생겼습니다. 살이
올랐습니다. 가죽이 덮였습니다.
다 된 것 같지요? 아직 안 되었습니다. 무엇이 빠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생기가
빠졌습니다.
에스겔서 37장 7절에서 10절까지를 읽어 드립니다.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
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행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으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생기가 들어가야 살아나서 설 수 있습니다.
생기가 들어가야 온전한 생명체가 됩니다. 생명이 완성됩니다.
생기가 들어가야 하나님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뼈도 들어맞고 힘줄도 있고 살도 올랐고 가죽도 덮였는
데 생기는 없는 모습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생명체는 아닙니다. 생기가 내게 들어와, 교회에 들어와 넘쳐
야 합니다.
교회는 속회, 남선교회, 여선교회, 교회학교, 찬양대, 조직을 잘 갖추고 있습니
다. 뼈들이 잘 세워진 것입니다.
부서끼리 연결도 잘 됩니다. 힘줄도 있습니다.
살도 올랐습니다.
요즘은 육신의 살들이 너무 올라서 야단입니다. 살과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
고 있는데 이 문제는 전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가 내 안에
있으면 해결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아홉 번째 열매가 무엇입니까? 절제입니다. 절제
의 열매가 있으면 그 문제 잘 해결됩니다.
가죽도 덮였습니다. 그 가죽, 피부를 잘 손질하느라고 보톡스 주사도 맞고 애를
많이 씁니다.
그러나 생기가 없다면 참 생명이 아닙니다.
에스겔의 환상에서 뼈들이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군대는 사기가 생명
입니다. 사기가 빠진 군대는 싸움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생기가 없는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생기가 없으면 성장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생기 넘치는 성도들, 그리고 그 생기를 퍼뜨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
니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새로운 모습입니다.
새벽 이슬은 새로운 이슬입니다. 어제 이슬이 다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
의 몸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듯 새벽의 태(胎)에서 새롭게 빚어진 것입니다.
성도들은 늘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이 말은 속 사람의 새로움을 가지고
살아야한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젊음은 빠르게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나 속 사람은 점점 더 새로워질 수
있고 점점 더 강건해 질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말하고 있
습니다.
성도는 낡은 사고방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맥이 빠진 생활을 해서도 안 됩니다.
의욕, 기대, 전진이 없는 무기력한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를 보세요. 나이가 많아져서도 '이 백성을 가나안 복지로 인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뜨겁고 치열한,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분입니다.
그 능력, 그 힘을 받아서 늘 새롭고 활기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시대는 나날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고 앞설 수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
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존재들입니다.
저희 교회는 '새 땅 새 시대 새 역사를 열어가는 교회"를 장기 표어로 하고 있
습니다. 새로운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되어야 새 역사를 열어 갈 수 있습니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깨끗한 마음을 가진 모습입니다.
새벽 이슬, 깨끗하지요. 새벽 이슬보다 더 깨끗한 것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도는 몸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주변 환경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외모가 비슷한 동양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 가운데에서 단정한 느낌을 주는 사
람이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데 성도들은 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단정한 사람이 성도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은 인격이 거하는 곳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외모도 꾸미지 않고서도 깨끗
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담는 그릇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하나님
의 뜻을 담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깨끗한 마음입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는 사람은 깨끗해질 수 있고 젊어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집사의 자격을 말하면서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
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
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빌3:8∼9)라고 했습니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꿈과 희망을 지닌 모습입니다.
성령의 예언자 요엘은.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
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라고 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꿈과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꿈과 희망
이 있으면 성령 받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기 위해
신비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에 따라서는
신비체험이 없으면 어딘가 모자라는 것으로 여기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교회가 얼마나 큰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큰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성령충만한 교회입니다.
새벽 이슬은 보기에 참 좋습니다. 청년들과 함께 수련회를 가서 새벽에 일찍 일
어나서 산책을 하는데 풀잎들이 새벽 이슬을 머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모두 감
탄했던 일이 있습니다.
수련회를 가면 저녁 늦게까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고 늦게까지 자거나 아
침에 마지못해 일어나서 하품을 하면서 예배 보는 일이 있는데 새벽 시간에 좋
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좋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사람들에게 의욕을
주고, 사람들의 마음을 맑게 해 주는 존재들이 되어야합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슬이 농사에 큰 도움을 줍니다. 이슬이 없
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성도들은 그와 같이 사람들과 사회에 유익을 주는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가 없으면 그 조직이 유지되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합니다.
교회들은 젊어져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지만 특별히
저희 교회의 큰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는 젊어지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아야 합니다. 이 노력을 쉬면 교회가 동맥
경화증에 걸립니다. 육신의 동맥경화, 무서운 병입니다. 교회의 동맥경화는 더
무섭습니다. 그런 교회들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 적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한국교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젊은 교회가 성장합니다. 젊은이들, 얼마나 빠르게 성장합니까?
젊은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여러분, 어떤 교회가 젊은 교회입니까?
젊은이들이 많이 출석하는 교회를 젊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년부가 활발한 교회를 젊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성도들이 '나는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이다'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젊은 교회입니다.
이 세 번째 것이 있어야 온전한 젊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젊은이들이 많이 출석하고 따라서 청년부가 활발한 교회는 특수한 형태
의 교회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 교회는 실수하기 쉬운 위험도 있습니다. 여러분,
청년 시절을 돌아보세요. 얼마나 실수를 많이 했습니까?
육신의 젊음은 오래 유지할 수도 없고 지나가면 회복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노력을 하면 늘 젊을 수 있습니다. 젊음을 회복할 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들이 모인 목양교회, 젊은 교회가 되어서 주의 큰 일을 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