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해 하는 자여, 조용할지어다.
님의 은총은 힘이요 생명이니
님의 사랑은 꽃이니, 향기니
쉬기만 하여라, 님의 진철한 권능 안에서
초조해 하는 자여, 조용히할지어다.
몸부림치지 말지어다.
님의 생명이 너의 속에 있나니
너 님을 떠나지 못하리.
기도만 하여라 기도만을
네가 믿음을 갖게 되는 날까지.
10여년 전에 E여대 무용학과의 모 교수가 거액의 돈을 받고 예능계 학생들을 부정입학한 사실이 드러나 세상이 떠들썩한 일이 있었다. 1991년5월에 었던 문제의 이 사건은 부산의 모 무속인으로부터 일어났다. 당시 족집게 도사라는 별명을 가진 이 유명한 여자 무당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모 교수에게거액의 돈(2억)을 주고 부정입학 시켰던 것이다. 얼마 후 그 교수의 인솔로 모스코바에 연수갔다가 그만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를 당해 딸이 죽고 말았다. 수억원의 돈을 들여 입학일 시킨 딸이 오히려 사고로 목숨까지 잃게 되자 그 유명한 족집게 무당, 본전 생각이 났던지 E 여대의 모 교수를 찾아가 협박을 하다가 마침내 당국에 고발까지 한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족집게’처럼 사람의 운명을 알아맞히는 사람이라면 무엇 때문에 자기 딸을 부정입학까지 시키면서까지 E여대를 보냈으며 비싼 돈을 들어가며 러시아엔 보냈는가? 무당 점장이들이 다 이와같이 엉터리 인데도 왜 저들을 찾아가는 것일까? 이유는 모두가 불안하기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불안과 공포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시대라고 합니다. 사실 어느 시대, 어떤 곳이든지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생활감정 가운데 하나가“불안”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저술가인‘로벌. 그라함’씨는“생의 위기”라는 논문에서 말하기를 “현대인의 생을 위협하고 있는 무서운 생활감정은 불안한감정”이라고 했습니다. 20세기 학자‘에밀 부르너’박사는 근대의 서방문화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고야 말았다고 지적하므로써 현대서방문화의 내면적 고민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현대는 자유와 권태로 변한 시대요 역사적 과정이 붕괴되어 공포로 바뀐 시대요 아무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신을 가질 수 없는 불안의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정치가 안정되고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하면 만사가 평안하고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제보다 오늘의 형편이 좀 나아졌다고 좋아졌다고 생각되는 오늘의 이 사회를 깊이 들여다 보면 과거 보다 더 잔인하고 더 불안하고 더 안타까운 일들이 많아져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옛날에는 비록 먹을 것이 부족하고, 생활수단이 편리하지 못하고 그래서 가난에 시달리면서 살았어도 그래소 마음의 여유는 있었고, 삶의 멋도 있었으며 인정도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험하고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더욱 잔인해졌습니다. 인신매매, 살인, 유괴, 강도, 테러, 도청, 녹음,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요사이 우리 사회에 자기 생애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갑자기 자살자가 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매우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매일 무엇엔가 좇기는 것처럼 마음은 항상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든’이란 사람은 현대를 가리켜“불안의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인의 모든 질병은 신경성에서 오고 있으며 마음에 평안이 없을 때 불안과 초조가 만병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간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불안과 공포는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니다. ‘요한 웨슬레’는 “인간이 영혼의 고향인 하늘 나라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참 평안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어느날 저녁 에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루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배에 싣고 갈리리 바다 저편 조용한 곳을 향하여 잔잔한 물 위를 제자들이 노를 저어 건너가고 있어습니다. 그때 갑자기 강풍이 일어나 배가 뒤집혀져 모두는 죽는 줄로 알았습니다.
다급했던 제자들은 곤히 주무시는 주님을 깨웠습니다“선생님이시여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돌아보지 않습니까?”제자들의 그 말 속에는 두려움이 가득찬 말투였습니다.
황급히 깨우는 제자들의 요청을 받으신 주님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시자 즉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에게“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즉시 무서운 바람이 그치더니 바다가 아주 잔잔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 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여기에서 저는 불안과 신앙이 밀접한 과계를 맺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 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님의 지적입니다. 그렇습니다. 불안과 믿음은 반비례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고 반면에 믿음이 없으면 불안은 점점커져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여러 가지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쟁의 위기, 에너지의 위기, 식량의 위기, 정치적 불안과 위기, 경제적 위기, 자연환경의 오염으로 오는 자연의 위기 같은 것들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현대인은 자신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갖가지 약을 복용하기도 합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결코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오늘 이처럼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대한 멧세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니라” 루마니아가 공산주의 체제 밑에서 박해를 받던 때에“범드랜트”목사는 그가 옥중에 있을 때에, 성경을 읽으면서“두려워말라”는 말씀이 수없이 기록된 것을 보고 도대체 몇 번이나 씌어 있는가하고 세워 보았더니, 꼭365번이 기록된 것을 알았습니다. 일년365일 동안 매일 같이 두려움에 쌓여 있는 인간들에게 성경은 하루도 빠짐없이“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평화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사야41장1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 불안한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불안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고 참된 신앙은 불안의 끝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언제 어디에서나 고난과 역경, 환난과 풍파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 잘못이나 실수가 없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생 항해에는 언제든지 노도강풍이 일어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평온하고 잔잔하여 이제 되었다고 방심할 때 예상 외로 견디기 어려운 풍랑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깨닫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무서운 풍랑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의 인생을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입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위기를 맡이했으나 제자들은 어지할 줄 몰랐지만 예수님은 편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주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인생살이가 힘들고 고달프다고 여겨지십니까?
지금 풍랑을 만나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만사가 귀찮고 불안하고 염려가 되십니까? “어지하여 무서워 하느냐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으면 순풍에 웃다가도 풍랑을 만나면 얼마나 두려워 떠는지 모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실패를 당하거나 죽음에 직면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강한 성도는 어떤 환난과 핍박, 고난 앞에서도 결코 두려워 하거나 비겁하지 않고 오히려 늠늠하게 찬송을 부르며 최후를 마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죽음이 아무리 무서운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할지라도 신앙으로 벌써 이겼기 때문입니다. 불안과 공포의 근본적인 원인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죽음을 초월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해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요.
임금 외에 그 누구에게도 혹시 그가 믿는 신에게도 구하거나 기도하지 말라는 법이 공포되고 만일 그것을 어기는 자는 사자굴에 쳐 넣는다는 무서운 벌이 잇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믿음의 사람 다니엘은 여전히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열어 놓고 예루살렘을 향햐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의 믿음이 죽음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믿음이 있어야 자신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믿음의 대상이 미신아니 허구가 아니요 실체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실 때 그 믿음은 불안과 공포를 몰아내고 자신과 용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감사한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디모데후서1:7절에“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를 믿는 믿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테니스 선수였던‘짐 길버트’는 그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따라 치과 병원에 가서 어머니가 치료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받던 그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길 버트’의 마음은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가 자라서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치과 병원에 대한 공포중ㄷ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되게 되자 치과병원에는 가지 않고 자신의 주치의를 집에 모셔서 치료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 치료기가 닫는 순간 그 역시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두려움과 불안을 믿음으로 속히 없애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그때에 비로서 우리의 삶은 건강하고 복된 생활이 될 것입니다. 오늘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 전능하신 주님이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함께 게셔서 우리를 도와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모든 두려움과 불안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불안은 오직 신앙으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23편에서“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신앙, 이 신앙 불안과 두려움 아니 죽음까지 이기는 힘을 얻게 합니다.
요한복음14장1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써 불안한 마음을 평안의 마음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신앙의 길은 불안을 극복하고 공포를 없애버리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문제는 신앙입니다.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이 있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불안해 할 필요 없으며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적은 일에도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안절부절하며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안과 공포의 원인은 불신앙, 혹은 신앙을 갖지 못한데서 기인합니다.
반면에 평안과 안정, 자신감과 용기의 원천은 신앙이 있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전능하신 주님이 자기들의 배에 계시는 데도 그들 마음속에 주님을 확신하는 신앙심이 없었기 때문에 풍랑이 일어날 때 죽는 줄로 알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을 때,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확실히 깨닫게 되고 믿어지게 될 때 우리 마음속에 일고 있는 노도와 같은 불안과 공포는 사리지고 우리 마음이 잔잔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내가 그리스도를 만나기까지는 참평안을 맛보지 못하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갖가지 풍파속에서도 주님과 함께 있으면 평화로워짐을 믿으시고 이 시간도“함께 하시마”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으로 풍랑처럼 거세게 일어나는 인생의 모든 풍파들을 능히 혀쳐나가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불안을 극복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고 행복한 삶을살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합니다.
불안의 원인은 문제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음의 크고 적음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여러 문제들이 우리를 깊은 회의와 긴장, 불안과 공포의 폭풍속으로 몰아 넣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참 평화를 주십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적은 일에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모든 불안의 원인은 신앙의 크고 적음에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1)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중에 두려움이나 불안을 만날 때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야 말로 하늘의 평화를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데이힐 카아네기’는“당신은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찾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나는 매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로 인하여 정신적인 갈등이나 번민은 내게서 사라지고 평안과 능력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자신과 가정과 교회, 나라와 민족을 믿음으로 맡길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2)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속에 평안과 능력이 있습니다. 평소에도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하시면 그 말씀속에서 평안과 위로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어떤 사업가가 자신의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위기 속에서 심각한 불안을 가슴에 안고 어느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습니다. 잠지리에 들었지만 사업에 대한 근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중 그 방의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성경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손님은 그 성경책을 읽던 중“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을 대하고는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니튿날 아침에 그는 새로운 용기를 얻어서 다시 자신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영혼 위에 참된 위로의 능력이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믿음의 눈이 열려 있을 때 우리는 눈 앞의 현상만 보지 않고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으며 거기에서 무한한 힘과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능력보다 세상의 세력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 보다 보이는 것을 더 높이 생각합니다.
때론 우리는 영원한 것보다는 일시적인 것을 더 크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전체적인 것보다 일시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믿음의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조그마한 일에도 불안해 하는데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면 그때부터 우리는 능히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봉사하게 될 때 우리는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제임스 파이크’(James Pyke)는“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불안이 찾아오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는 봉사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값없이 받은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복음의 빚을 갚는 길이 전도와 봉사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봉사할 때에 기쁨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시편46편에“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와 힘이시니 어려울 때 큰 도움이시라, 땅은 꺼지고 산은 바다에 빠질지라도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도다 물결이 흉융하고 요동하며 산들이 움직여도 두려울 것이 없도다, 이방들이 들끓고 나라들이 소동하나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나처시로다”라고 시편기자는 고백했습니다. 이 노래가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노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 신앙은 주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너희 염려를 주께 다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벧전5:7) 믿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인생항로가 언제나 순풍일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모진 강풍이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암초가 우리를 위협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불안해 하지 마십시요, 전능하신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그러므로 전능하시고 사랑 많으신 우리 주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위기 속에서도 슬픔 속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가장 선하게 아름답게 그리고 평강스럽게 해주실 분이십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 마음속에 담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바라 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을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다함께 복음 성가 드리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