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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화로운 교회
    2002-11-22 10:16:51   read : 5668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에베소서 2:11-22 // 2002. 11. 10.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저는 지난 주간에 기도하러 산에 올라갔었습니다. 그 산에도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습니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늦가을이면 한국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자연을 바라보며 저는 기도하기 위해 교회요람을 펼쳤습니다. 요람에 있는 사진 하나 하나에 손을 얻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발견한 것은 우리 교회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단풍을 통해 아름다움을 연출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이루게 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저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자연계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연계시란 자연의 현상을 통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인도하시는 모습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풍은 멀리서 볼 때 참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가까이 보면 영 딴판일 때가 많습니다. 잎 하나 하나가 온전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색을 띄는 것도 있지만 많은 잎들이 그렇지 못합니다. 쭈글쭈글해 진 잎이 있는가 하면, 벌레 먹어 구멍이 난 잎도 있습니다. 또한 검은 이물질로 인해 점이 박힌 잎도 있습니다. 더 나가서 그 하나 색 자체로 볼 때 별로 산뜻하지 못한 색을 가진 잎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잎들이 나무에 달려 함께 어우러질 때 그 단풍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교회라는 곳이 원래 그러한 곳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해 주는 것과 같이 교회는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옛날 예수님과 바울 당시 종교적인 면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별하였듯이 오늘날 우리도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졌던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신앙에 쉽게 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소망을 가지지 못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 하나 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 앞에서 결점 투성인 사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피부관리를 하고 화장을 하여 우리의 얼굴을 아름답게 하려 하여도 그 마음의 상태가 그 얼굴에 나타난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마음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죄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탐욕과 미움 그리고 질투로 가득차 있기도 합니다. 혹 그러한 점들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삶을 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음을 느낄 때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갈등 자체가 우리 자신을 더욱 부끄럽게 여기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별로 사랑스럽지도 못해 보이는데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모아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마치 우리교회 창문에 그려진 색유리 그림처럼 하나 하나 떼어놓으면 의미가 없는데, 함께 모아 놓으니 의미있는 그림이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이 보셔도 또는 사람이 보아도 결점이 있고 별로 존경하고 싶지 않은데, 하나님이 함께 모아 놓으니 아름다운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방법으로 지금까지 이천 년 동안 교회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조화요 기적입니다.

    단풍이 가지는 또 다른 특성은 끝까지 풍상을 견딘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잎은 봄에 피어나서 여름이라는 세월을 지내고 늦가을까지 왔습니다. 봄의 잔잔히 시기를 거쳤는가 하면, 여름의 강한 비바람을 이겨냈습니다. 더욱이 뜨거운 태양열을 견디며 왕성하게 지냈습니다. 더욱이 늦여름에 몰아치는 태풍을 견디며 그래도 가지에 붙어있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였습니다. 마침내 늦가을의 서리가 올 때까지 그 잎들은 견디고 견디어 나뭇가지에 붙어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러할 때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많은 풍상을 겪으셨지만 끝까지 견디신 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건물의 모퉁이 돌 역할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모퉁이 돌은 원래 크고 단단하며 그래도 육면체를 잘 이룬 돌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담당하신 모퉁이 돌의 모습은 그렇게 화려한 돌로서의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시편 118:22을 인용하고 있는 마태복음 21:42을 보면,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돌은 버려진 돌이었습니다. 관심 밖의 돌이었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그냥 굴러다니던 돌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예수님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목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사회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이 예수님을 들어 사용하심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기 때문이 아닙니까? 바로 이 점이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이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돌도 다 쓰일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영덕군 삼사 해상공원에 가면 입구에 큰 꽃돌이 서 있습니다. 이 돌은 어느 마을 나무 밑에 가까운 논두렁에 놓여있던 큰돌이었습니다. 어느 날 돌을 수집하는 전문가가 이 마을을 방문하였다가 그 돌을 보고는 그 돌의 가치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논의 주인에게 그 돌을 사겠다고 제안하니 그 농부는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그 돌 때문에 농사일이 방해를 받았는데 그것도 500만원을 지불하고 가지고 가겠다니 이보다 더 수지맞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얼른 그 돌을 팔았습니다. 돌을 사온 사람은 그 돌을 닦고 나서 자신이 생각한 부분을 갈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아니 예상한 대로 꽃무늬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혼자 가지고 보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경북에 기증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삼사해상공원에 세우게 된 것입니다. 버려진 돌이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아주 귀한 것으로 사용 받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아름다워지는 자들의 모습도 이러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시련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이를 끝까지 이기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사회적으로 기반을 잃어버리는 어려움을 겪는다 하더라도, 물질적으로 모든 것을 잃는 아픔을 겪는다 하더라도, 더욱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로 자기의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을 당한다 하더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의 고통을 이기는 자들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단풍이 보여주는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가장 자연스러운 색을 낸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색깔들이 있지만 자연의 색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색이기 때문에 너무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은행나무는 노란색을 단풍나무는 붉은색을 플러터너스는 누런색을 냅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 애스펜에 가면 사시나무 계통의 애스팬이라는 나무가 많이 있는데, 이들이 내는 노란색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멀룬 벨이라는 산봉우리와 아래 호수에 연결되어 늘어선 그 나무들이 물든 모습은 가히 하나님이 아니고는 그러한 아름다움을 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달력에 실리곤 합니다. 그래도 한국의 단풍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단풍은 다양한 종류가 함께 어우러지는 자연의 조화를 더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 하나님이 만드신 그 모습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
    우리 주님이 모퉁이 돌이 되어 벽을 이루어 나가는 돌들을 모을 때 아름다운 돌들만을 고르시지는 않았습니다. 그 돌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돌을 모아 벽을 쌓아나가도록 하셨습니다. 오각형의 돌은 그 나름대로 놓여지고 거기에 그대로 맞는 돌을 옆에 두어 서로 인접하게 하셨습니다. 모두 네모 반듯하게 돌을 깎아 벽을 쌓는데 사용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모퉁이 돌로 쓰이는 예수님 자신이 아주 반듯하게 깍이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회의 규범에 따라 제대로 교육과 예절을 갖춘 분이 아니었습니다. 깍이지도 아니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주변의 돌들과 조화를 이루며 벽을 쌓아가고 집을 만들어 가신 분이었습니다. 바로 교회를 이루어 가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서 가식과 꾸밈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서는 것입니다. 가장 정직한 모습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는 윤리적인 면에서 거짓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성격적인 면에서 급한 사람은 급한 성격 그대로 하나님이 사용하도록 내어놓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때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자기의 역할과 연관되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따라 특성을 따라 사는 것도 정직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꾸밈이요 거짓입니다. 성경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말하면 외식입니다. 우리는 진실할 때 하나님 앞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복음성가에도 이러한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오세요. 하나님은 당신이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시길 원하십니다." 찬송가 349장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우리가 주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함께 조화를 이루어가는 교회는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그래서 R. B. Kuiper도 성경적 교회론(The Doctrine of Biblical Church)에서 "조화가 결핍된 곳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참죈 교회에서는 그 조화가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교회가 획일적인 방법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려는 모습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 자입니다.

    단풍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단풍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가지와 잎 사이에 떨켜를 만들어 영양공급을 막을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서 더 이상 나무줄기로부터 영양 공급받기가 힘들고 잎 자신은 일조량의 감소로 광합성을 통한 영양제공이 힘들어져 그 통로를 끊고자 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게 되는데, 바로 그 때 가장 아름다운 색을 드러내는 것이 단풍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분은 쌀쌀한 늦가을 나무 가지에 달린 마지막 잎새처럼 앙상한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참으로 처량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이는 마지막까지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사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을 허신 분이 되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영역을 구별하던 담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차별을 허물어뜨리면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하나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을 가져오신 분이기에 그분은 오늘 우리들의 아름다운 생명의 원천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볼 때 별로 쓸모 없는 사람 같지만 끝까지 견디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면서 자신을 희생할 때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이룰 때 진정 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며 외적으로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발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태양력으로는 아직 이 해가 다 지나가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교회력에 따르면 이제 다음 주간이면 이 해의 끝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한 해를 정리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1년 동안 함께 이루어지는 교회라는 표어를 가지고 달려 왔습니다. 어떤 때는 찢어지는 아픔도 있었고 서로 함께 하지 않으려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서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해 왔습니다. 성령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전체로써 하나의 성전을 이루는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스스로 감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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