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3:4-6/ 사람이 고난을 통과할 때 /조용기 목사 2014-09-10 21:32:49 read : 1117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람이 고난을 통과할 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년 365일 밤과 낮이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인간의 삶고 일평생 크고 작은 고난의 밤과 낮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이 고난의 밤을 지날 때 그 때가 바로 삶의 위기인 것입니다. 이 위기를 잘 감당하고 나오면 그 위에 반드시 고난과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하나님의 축복을 갖고 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 위기를 잘못 감당하면 처참한 상처와 삶의 파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밤을 지날 때 어떻게 우리 자신을 처신해야만 할 것인가에 대하여 깊이 알아보고 우리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첫째로, 고난의 밤을 지날 때는 우리가 기도하고 회개해야 될 때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5알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50편 15절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정에 혈안북풍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부부간의 애정이 사라지고 갈등이 다가올 때도 있고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가족간의 불화와 갈등으로 말미암아 가정에 큰 고난이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혹은 중년의 한참 일할 때 그만 건강을 잃어버리고 고혈압에 쓰러지든지 암으로 쓰러지든지 심장병으로 혹은 신장병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짙은 고난의 구름이 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련의 소낙비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과 생활에 시련의 구름이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잘되던 사업이 무너질 때가 있고 혹은 신뢰하는 친구에게 배반을 당할 때도 있고 부도가 날 때도 있습니다. 사기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이래서 갑자기 고난의 깊은 수렁에 빠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당할 때 깊은 충격을 받고 자연적으로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당하는가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비로소 자신의 자기의 삶의 자취를 살펴보고 자기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내가 왜 고난을 당하게 되었는가? 고난 당할 만한 잘못한 일을 했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런 것을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회개시키고 깨뜨리기 위한 채찍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 히브리서 12장 5절로 6절에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어느 부모가 자식을 징계하지 않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사생자가 남의 자식은 징계하지 않지만 자기가 사랑하고 기른 자식이면 언제나 부모는 자식을 꾸짖기도 하고 채찍을 때리고 징계해서 자식이 잘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녀로 받아들이셨으면 우리가 죄악에 빠져들어 가지 아니하고 세상의 포로가 되지 아니하고 주안에서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 우리의 잘못된 것을 회개시키려고 주님이 채찍을 때리고 고난을 통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이 고난 당할 때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이 고난의 채찍과 함께 뼈에 사무치게 여러분 곁에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고난 당하는 것이 우리의 죄과로 말미암아 당한다는 것을 알고 고난 당할 때는 우리가 깊이 깊이 회개하고 통회하면 하나님은 그 회개를 받으시고 우리를 복구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10절로 20절에 보면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란을 당하매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알고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는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통하게 하고 채찍을 때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가운데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하나님의 우리의 모든 죄과를 도말 하시고 용서하시고 우리 하나님의 돕는 손길을 베풀어서 우리를 묶어 놓은 모든 흑암과 사망의 그늘을 철폐하시고 얽은 줄을 끊고 주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무시무시한 시련에 떨어져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놋문을 깨뜨리고 쇠빗장을 꺾고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고난 당할 때는 회개할 때인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는 죄악에서 돌아설 때인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는 우리의 과거 잘못을 모두다 청산할 때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개인적인 신앙 생활을 살펴볼지라도 편안할 때는 회개하지 않지만 우리가 고난 당하면 곧장 하나님께 엎드려서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고난 당할 때는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찾을 때입니다.
고난 당할 때는 새벽 기도회에 나오고 혹은 철야기도회를 나가고 혹은 금식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찾으면서 자기의 교만을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 고난 당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제쳐놓고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삶을 살겠다고 건방지게 날뛰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항상 고난 당할 때는 하나님 앞에 깨어지라고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33장 2절로 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일은 야훼의 것입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특권으로 소유하시고 성취하시고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의 인생의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자기의 능력과 자기의 수단과 자기의 방법으로 일을 끌어나가려고 하다가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고난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해서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주체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살아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 내가 산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통해서 살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삶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는 종이 되며 예수님이 삶의 주체가 되시고 우리는 객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서 살아주시고 예수님께서 나의 가정을 운영해 주시고 나의 생활과 사업을 운영해 주시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인생을 사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운영해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운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가장 처절한 죄악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주체로 삼지 않고 자기가 인생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고 자기가 모든 삶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경영하며 나아가겠다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갔다가 그로 말미암아 그는 저주를 받게 되고 그래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살고 고통과 괴로움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일생을 내어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나는 종의 자리에 내려앉으며 하나님은 나의 삶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겨버리면 하나님이 맡아서 경영해 주시고 우리는 따라갈 따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네가 다 짊어지겠다니 네가 고난을 당하고 있지 않느냐 그 짐 지고 내게로 오너라. 짐은 내 것이다. 일은 내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그 짐을 맡기고 그 일을 다 맡겨라. 그리고 너는 쉼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멍에 속에 들어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을 각자가 자기의 작은 멍에를 만들어서 그 멍에를 걸머지고 멍에 짐을 잔뜩 싣고서 진땀을 흘리면서 인생을 끌고 나가려고 합니다.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진땀을 흘립니다.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시험과 환난을 겪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작은 멍에를 꺾어버리고 그 멍에를 목에 걸고 -------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온유한 마음으로 순종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따라가면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매일같이 걸머져 주시고 매일같이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서 끌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만을 깨뜨려야 됩니다.
우리에게 시험과 환난이 다가올 때는 우리가 교만해서 하나님을 제쳐 좋고 내가 인생을 살고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고 내가 주체가 되고 하나님을 보좌관으로 삼고 하나님을 종으로 삼고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도와주길 원하고 살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련을 당할 때 나의 무력함을 깨닫고 나의 무능력을 깨닫고 나의 인생의 한계점을 깨닫고 내가 깨어지고 하나님께 엎드려서 '주여, 나는 못합니다. 안 됩니다.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무거운 짐을 모두다 내어놓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옵시고 나는 종의 자리로 내려갑니다. 주님이 주체가 되어 주시옵시고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옵소서. 주님의 멍에 밑에 내가 들어가오니 이제 내 멍에는 꺾어버렸습니다.
주님을 따라가오니 주께서 나의 삶을 살아 주시옵소서' 이렇게 변화되게 하려고 주님께서 고난을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내가 깨어지고 나의 멍에가 깨어지고 온전히 주님의 중심으로 서게 되고 하나님 섬기면서 살게 될 때 고난은 사라지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큰 은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을 살도록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의 힘과 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을 삽니다. 나는 그 그늘 밑에 신세를 지고 사는 이와 같은 삶이 참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 당할 때는 내가 깨어지고 나의 적은 멍에를 깨뜨려버리고 겸손하게 낮아져서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찾는 그러한 시간인 것을 우리가 깨달아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고난은 사라지고 오히려 더 큰 축복과 기쁨이 우리 삶 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셋째로, 환난과 고난을 당했을 때는 내일에 대하여 긍정적인 꿈을 가져야 합니다.
환난의 어두운 밤은 깊은 절망의 안개 속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래서 환난을 당해서 그만 내일의 꿈을 잃어버리고 낙심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금년도에도 제가 아는 가까운 사람들이 심한 생활의 어려움에 사업상 고난에 처해서 그만 희망을 잃어버리고 자살하는 사람을 몇 사람 보았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환난과 고난의 어두운 밤이 다가올 때는 그 때가 바로 성령의 계시를 받을 때입니다. 밤이 가장 어두울 때 별빛이 더 찬란하게 빛납니다. 우리가 환난과 고난의 갖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기다리면 그때 가장 새롭고 찬란한 계시를 주실 때입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어느 자매님 한 분이 대단히 실망해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초췌한 얼굴을 하고 신앙 상담을 왔습니다. 그 내용인즉 그 자매님이 아주 훌륭한 청년과 약혼을 해서 결혼 날짜를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새로운 삶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그 청년이 약혼을 취소한 것입니다.
취소를 당하고 난 다음에 그 모욕감과 낭패와 실망 때문에 이 자매님은 순식간에 이 자매님은 깊은 수렁 속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삶의 희망을 포기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초췌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제가 신앙 상담으로 그 부모들이 데라고 왔습니다. 나는 그 자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고난이 장차 가장 밝은 광명한 태양을 비출 수 있는 기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밤이 오니 또 아침이 온다'고 말씀했습니다. 밤이 오면 가 다음 아침이 옵니다. 바울 선생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비두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려다가 그 꿈이 또 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은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바울을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은 다 떠나버렸습니다. 바울은 가장 슬픈 절망 가운데서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인생은 올라가는 길을 쉽지만 내려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드로아에 내려가니 드로아가 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시간상 밤이었지만 또 바울은 인생의 밤이었습니다. 그는 드로아에서 밤에 절망 중에 기도하고 깨어져서 엎드려 있을 때 밤중에 하나님의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마게도니아 사람이 나타나서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마게도니아의 환상을 봤고 그는 새로 출발했습니다.
그는 비록 아시아에 꿈이 깨어지고 비두니아의 꿈이 깨어졌을지라도 마게도니아의 환상을 받고 마게도니아로 건너가서 온 구라파 대륙을 복음화하는 위대한 동기가 되고 만 것입니다.
" 내가 그 말을 자내님에게 하면서 "자매님, 자매님의 아시아나 비두니아의 꿈이 깨어졌다고 하더라도 자매님의 인생이 깨어진 것은 아닙니다. 자매님에게도 마게도니아의 환상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이 다가왔을 때 새로운 환상이 떠오를 때이므로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고 기다리십시오." 그 자매님이 그때부터 낙심하지 아니하고 기다리는데 그 다음에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서 제가 결혼 주례를 하고 행복하게 결혼을 했는데 오늘날 정말 잘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 자매님을 볼 때마다 처음 꿈이 깨어진 것이 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쉽게 약혼을 일방적으로 깰 그럴 청년 같으면 그런 사람과 결혼했으면 한평생 고생할 뻔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깨어지고 그 다음 아름다운 결혼이 이루어져서 지금까지 얼마나 행복하게 잘사는지 모릅니다. 이러므로 한 번 꿈이 깨어졌다고 해서 여러분 인생이 깨어졌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시편 29편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홍수가 오면 홍수 위에 야훼께서 앉아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홍수는 바로 야훼를 싣고 오는 수레인 것입니다.
홍수의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고 여러분의 생애 속에 풍랑이 거칠게 불어오면 그 홍수 위에 타고 하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환난과 시험의 때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의 삶을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는 시간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환난과 시험 때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환난과 시험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깨어져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면 환난과 고난은 하나님이 타고 오는 수레가 되어서 그 홍수 위에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날에는 환난과 고난의 수레 소리는 그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축복과 평강이 넘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환난과 시험은 더욱 긍정적인 내일의 삶을 갖다주기 때문에 환난과 시험 당할 때 절대로 절망하면 안됩니다. 어둡고 캄캄할 때일수록 더 큰 꿈을 가지고 주님 앞에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넷째로, 환난과 시험 당할 때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가장 극심한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처참한 어두움에 떨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일찍이 조실부모했습니다. 오라버니는 부모와 같이 믿고 살았는데 오라버니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를 무덤에 묻어두고 난 다음 그 두 자매는 절망에 처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꿈이 사라지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절망이 그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했습니다.
잠도 자지 아니하고 밥도 먹지 아니하고 몸도 돌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처절한 절망 속에 나흘을 지났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울고 몸부림치는 두 자매를 거느리고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가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고 말했습니다.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아라" 마르다와 마리아는 가장 절망 중에서 너무나 불가능한 일을 주님께서 명령하시기 때문에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여 내 오라버니가 죽어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그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르다여,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기적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우리 주님께서는 가장 어둡고 캄캄한 절망 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어둡고 캄캄한 시험을 당하면 거기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깨어지겠지만 에수 믿는 사람에게는 어둡고 캄캄한 때 예수님이 찾아와서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기적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믿지 아니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오늘 여러분에게 기적을 믿을 것을 강요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오늘날 환난과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가 없어 도저히 희망은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으신 예수님이 우리 주님이 되시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환난 날에 와서 지키시므로 기도하고 기적이 일어나서 환난이 변하여 위대한 부활이 될 것을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믿는 자에게 주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환난 날에 믿어야 합니다. 기적이 일어날 줄 믿고 하나님을 기대할 때 예수님께서는 도저히 상상을 초월한 부활의 능력으로 환난을 변화시키시고 우리에게 위대한 축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자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찬송했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장 어둡고 캄캄한 죽음을 향해서 갈 때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기브론 시냇가를 지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갈 때 찬송을 불며 갔다고 성경은 말하는 것입니다. 왜 어둡고 캄캄할 때 찬송을 불러야합니까? 왜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울며 불평하며 원망하며 탄식하지 않고 찬송을 부르라고 했습니까? 찬송은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보좌인 것입니다.
환난과 시험 당할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가장 필요할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데 하나님이 앉을 보좌도 준비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을 모실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신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 그대로 번역한다면 이스라엘의 찬양이 하나님의 보좌를 만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그 찬양의 보좌에 앉으시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그 영광과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어둡고 캄캄하고 절망일 때 모든 것이 다 슬픔으로 꽉 들어찼을 때 그때 일어나서 노래를 부를 때입니다. 한밤중에 일어나서 찬송을 부를 때인 것입니다. 밤에 부르는 찬송이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증거 하다가 빌립보에서 잡혀서 감옥 속에 들어갔습니다. 등허리를 터져서 피가 흐르고 배는 고프고 온 몸은 상처투성이로 멍들었고 양손과 양발은 철 차고에 차였습니다.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한밤중에 일어나서 그들은 기도를 하고 난 다음 하나님 앞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얼마나 진실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찬송을 했든지 그곳의 모든 죄수들이 자다가 깨어나서 그 찬송을 조용히 들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끄럽다고 고함치지 않고 조용히 그 찬송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찬송이 계속되고 찬송이 고조되자 그 찬송은 야훼의 보좌를 만들었으며 하나님께서 빌립보 감옥에 임하셨습니다. 갑자기 빌립보 감옥의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가 나고 온 빌립보 시가 다 흔들리고 하나님 천사들이 와서 감옥 문을 제쳐버리고 모든 차고를 풀어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자유와 해방이 왔습니다.
간수가 뛰어들어와서 놀라서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되고 빌립보에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서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어둡고 가장 캄캄할 때 그들의 인생의 밤에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고난 당할 때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를 불평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나라를 원망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원망과 불평을 자기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입니다. 마귀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둡고 캄캄할 때 야훼를 찬미하면 야훼는 오셔서 어두움을 다 제쳐버리고 마귀를 물리쳐버리시고 새로운 부활의 광명한 아침을 우리에게 가져와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시험과 환난을 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밤이 오고 낮이 오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항상 밤이 오고 낮이 옵니다.
그리고 이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우리는 회개하게 되고 깨어지게 되고 더 주님 중심으로 살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되고 우리의 신앙이 장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과 환난을 피하는 사람은 장성하기를 피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크고 작은 시험고 환난이 다가오거든 그 기회를 이용해서 깨어지고 회개하고 자기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는 기회로 삼으시고 시험과 환난의 기회를 반드시 여러분이 깨어지고 여러분의 교만을 회개하고 자기가 주인 자리에 앉은 것을 종의 자리로 내려앉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주체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환난과 시험 당했을 때 언제나 긍정적인 꿈을 가지고 나의 아시아나 비두니아의 깨어진 꿈이 다 절망일지라도 새로운 마게도니아의 꿈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기적을 기대하고 꿈을 기대하며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환난과 시험이 우리에게 많은 기적을 가져오고 성장의 체험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환난과 시험 당할 때 부활이 다가올 것을 반드시 믿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같이 하여 주셔서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한 기적이 일어나서 여러분은 오히려 시험과 환난 당한 것이 더 큰 이익이 되었다고 나중에 감사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여러분의 영혼이 더 잘되고 범사에 더 잘되고 강건하게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은 다 당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어떠한 태도와 마음의 자세로 당하는가 그것이 시험과 환난이 여러분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파멸의 구렁텅이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올바른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당하므로 시험과 환난이 여러분에게 환난 대신에 크나큰 축복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 기 도 -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녁이 오니 아침이 오더라고 말한 것처럼 시험의 캄캄한 밤이 다가오면 광명한 태양이 비취는 찬란한 아침도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그러므로 시험과 환난이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므로 우리를 깨뜨리고 변화시키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새로운 인생을 창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 속에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 주님이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회개하고 깨어지고 감사하고 찬송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서서 더 큰 꿈과 환상을 얻고 기적을 믿고 나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성령으로 우리 모든 마음을 깨뜨려 주시옵소서. 깨우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