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9:38-50/ 냉수 한 그릇 / 한경직 목사 2014-08-26 14:59:09 read : 1965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른 아침, 임마누엘 성가대원 여러분이 자리가 넘치도록 이렇게 가득히 나와서 귀한 노래를 불러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우리는 늘 이 찬양을 통해서 먼저 은혜를 받는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청년들의 봉사가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마태복음 10장 42절을 이제 읽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장 41절에도 같은 뜻의 말씀이 있습니다. 모두 주님의 말씀입니다.
냉수 한 그릇을 목마른 이에게 주는 것은 하나의 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작은 일을 한 이들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작은 일에도 큰 관심을 항상 가지셨습니다. 작은 돈, 엽전 두 푼을 연보궤에 한 과부가 넣는 것을 보시고 그 여인이 누구보다도 많은 헌금을 하였다고 칭찬한 일도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일에도 충성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냉수 한 그릇에 대한 교훈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그 첫째 교훈은 작은 일, 혹 작은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하는 뜻일 것입니다.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 것이 됩니다. ‘진합태산(塵合泰山)’이란 말이 있습니다. 곧 작은 티끌이 모여서 큰 산이 됩니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서 큰 바다를 이룹니다. 작은 부품들이 모여서 큰 비행기가 됩니다. 작은 분초가 모여서 한 시간이 되고, 한 날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되고, 결국은 70평생이 됩니다. 작은 겨자씨가 커서 큰 나무가 됩니다. 작은 1원짜리 동전이 많이 모이면 100만 원이 되고 1,000만 원이 됩니다. 작은 개인 혹은 교인들이 모여서 큰 교회가 되고, 작은 국민들이 모여서 큰 나라도 이룹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작은 것으로 큰일을 이룰 때도 있습니다. 다윗의 한 작은 물맷돌이 블레셋의 큰 대장 골리앗을 쳐서 넘어뜨렸습니다. 옛날 엘리야 때에 큰 가뭄이 있었는데 그가 비오기를 기도하니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처음에 떠오르더니 큰비가 내려서 3년 6개월의 큰 가뭄이 사라졌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 본 금은동철로 된, 하늘에 닿는 큰 우상에 위로부터 작은 돌 하나가 내려와서 부딪히니 그 큰 우상이 부스러지고 말았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작으나, 복음의 진리는 한 작은 돌이나 힘이 있습니다. 주님은 작은 떡 5덩이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도 5,000명을 먹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들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면 큰일이 잘못 되기도 합니다. 몸의 작은 상처를 소홀히 하여 그냥 두면 그리로 작은 균들이 몸에 많이 들어가서 큰 병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작은 못 하나가 빠져서 큰 자동차 사고가 나고, 혹은 열차 사고도 생깁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말이 신는 신을 압니까? 말은 발에다 못을 박아 신을 신깁니다. ‘말 신에 작은 못이 빠지니 말이 거꾸러졌고, 말이 거꾸러지니 그 말을 탔던 대장이 엎드러졌고, 그 대장이 엎드러지니 그 전쟁에 패하였고, 그 전쟁이 패하니 그 나라가 망하였다.’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은 못 하나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소홀히 하면 아니됩니다. 작은 죄를 용납해서는 아니됩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됩니다. 술 한두 잔으로 시작해서 알코올 중독자들이 많이 됩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대마초 핀다는 말이 많이 들립니다. 대마초 담배를 한두 번 피다가 아편쟁이들이 되기 쉽습니다. 악한 생각이 작다고 마음에 용납하지 마세요.
그러므로 옛날부터 악은 작더라도 하지 말고, 선은 작아도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작은 선을 거듭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모여서 결국은 그 사람의 성격이 되고, 한 사람의 성격은 그의 일생의 운명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은 아무리 작아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냉수 한 그릇의 선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아니됩니다.
둘째, 냉수 한 그릇이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사막 길을 걸어가는 목마른 나그네에게는 냉수 한 그릇이 그 생명을 유지하게 합니다.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가 중상을 입어서 피를 많이 흘리는 군인에게는 무엇보다도 냉수 한 그릇을 주어야 원기가 다시 회복이 됩니다. 작은 일이 때로는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이 비록 적으나 심히 배고픈 이에게는 그것이 있어야 생명이 유지됩니다. 친절한 동정의 손길이 죽을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위로와 격려의 말 한 마디가 자살을 막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슬픈 이를 위로하고 외로운 이를 돌보는 것은 작은 것 같으나 그렇지 아니합니다. 매우 큰일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심방하는 것은 작은 것 같으나 아주 귀한 큰일입니다.
냉수 한 그릇이 필요한 이에게는 그 물을 반드시 주어야 합니다. 옷 한 가지가 꼭 필요한 이에게는 그 옷이 반드시 주어져야 합니다. 쌀 한 되가 꼭 필요한 이에게는 그 쌀을 주어야 합니다. 봉사는 아무리 작아도 인간 사회에 있어서 아주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냉수 한 그릇의 봉사가 필요합니다.
셋째, 냉수 한 그릇을 주는 것은 비록 작은 일이지만, 옳은 동기로 그 일을 할 때에는 그 가치가 매우 커집니다.
본문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작은 봉사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하면, 곧 주를 사랑하므로, 또 그런 신앙에서 이웃을 사랑으로 대하면, 그 가치는 매우 큰 것입니다.
산양과 면양의 비유를 여러분 잘 아십니다. 오른편에 선 의인을 향해서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너희들은 들어와 창세 전부터 예비한 너희 복을 받아라”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주릴 때에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헐벗을 때에 너희들이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날 때에 너희들이 나를 찾아보았고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너희들이 나를 방문하였느니라”
이때에 의인들의 대답이, “주여, 언제 우리가 그런 일을 하였습니까? 언제 주님이 주려서 잡수실 것을 올렸고, 언제 주님이 목말라서 마실 것을 올렸고, 언제 헐벗어서 옷을 드렸고, 언제 병들어서 우리가 심방했고, 언제 감옥에 갇히셔서 우리가 그런 일을 했습니까?” 반문할 때에, 자세히 들으세요. “네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참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다른 이를 봉사하면 그것은 곧 주님께 봉사하는 것입니다. 옛날 구라파(유럽)에서 중고(중세)시대에는 특별히 그 예수님의 유물 혹 제자들의 유물을 찾아서 그것을 가정에 간직하든지 교회에 간직하는 것을 매우 귀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신라 때 유물이나 고려자기를 찾듯이 그런 것을 굉장히 찾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한 얘기가 있어요. 중고시대에 어떤 기사가, 말을 타고 싸우는 유명한 기사가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저녁에 성찬식을 행하실 때에 쓰시던 잔, 마시던 잔이 어딘가 있겠는데, 내가 이것을 꼭 찾아보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지위도 높고 돈도 많은 분인데, 그것 다 버리고 전부 다 팔아서 자금을 만들어서 말을 타고 자기 혼자 옛날 먼 유대 나라까지 갔다고 합니다.
물론 먼저 예루살렘에 갔겠지요. 베들레헴에 다 다녔지요. 온 유대 나라를 다 다녔지요. 그래도 찾지 못하니까 중동 일대를 전부 다 다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30년이 지나고, 40년이 지나고, 거의 50년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잔은 찾질 못했습니다. 나이 많아서 거의 백발이 되었습니다. 금은보화는 다 없어졌습니다. 거의 거지가 되어서 부득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자기가 살던 그 큰 집에는 다른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데, 그 대문간에 얼씬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거지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침 눈 오는 날, 대문 밖에서 부들부들 떨며 섰노라니 그 옆에 자기보다도 더 불쌍한 어떤 문둥이가 와서 부들부들 떨면서 손을 내밀며 먹을 것을 좀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불쌍히 여겨서 자기가 먹다 남은 떡 한 조각을 절반 쪼개서 그분에게 주고, 그 옆에 시냇가가 있는데 얼음이 언 것을 깨고 자기가 가지고 다니던 잔으로 그 냉수를 떠서 문둥이에게 가져다 주었다고 합니다. 그 문둥이가 감사히 그것을 받아먹더니 이상합니다. 그 얼굴이 변해서 빛나게 됩니다. 옷에 광채가 납니다. 자세히 보니 그가 곧 주님의 얼굴이란 말이에요.
그때에 주님께서 이 기사에게 말합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네가 물을 떠다준, 네 손에 있는 그 잔이 곧 내가 쓰던 그 거룩한 잔(The Holy Grail)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가난한 이웃을 참 사랑을 가지고 돕는 이는 첫째는 자기 자신을 돕는 일이요, 둘째는 이웃을 돕는 것이요, 셋째는 나, 네 주 예수를 돕는 일이다.” 비록 냉수 한 그릇이라도 참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이웃을 봉사하면 그것은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는, 냉수 한 그릇을 생각할 때에 주님의 복음이 또한 연상됩니다.
복음은 냉수 한 그릇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일찍이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시라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그 배속에서 영생하도록 생수가 솟아나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복음은 냉수 한 그릇처럼 맑고 순수합니다. 이 복음의 물을 마시는 자는 그 마음이 새로워지고 깨끗하여집니다. 새 용기를 얻고 새 힘을 얻고 새 생명을 얻습니다. 복음은 맑은 물입니다. 설탕물은 아닙니다. 코카콜라도 아닙니다. 순수한 진리의 생수입니다. 또 매우 단순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뜻이기도 합니다. 이 진리의 생수를 마실 때에야 누구나 참 생명을 얻습니다. 누구나 이 냉수 한 그릇은 마셔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영원히 삽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냉수 한 그릇은 누구나 마셔야 할뿐더러, 누구나 냉수 한 그릇은 남에게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 빌리 그래함 목사처럼 몇만 명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없지만 내 집 근처 다니면서 내 이웃에게, 혹은 내 친척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다 몇백만 원 혹은 몇천만 원을 들여서 봉사사업은 할 수 없지만, 혹은 100, 200원의 냉수 한 그릇의 봉사는 아마 누구나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다 신학교 교수는 될 수 없지만, 교회학교에 나와서 혹은 가정에서 어린이들에게 성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다 많은 돈을 들여서 헐벗은 이들을 다 입힐 수는 없다고 하지만, 옷 한두 가지는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내어 다른 이들을 도울 수는 없으나, 몇 시간은 봉사를 위해서 바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크리스마스에 우리 영적으로 목마른 동포들에게 냉수 한 그릇의 복음을 전하여야 되겠습니다. 큰 봉사는 못하지만 냉수 한 그릇의 봉사는 하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이 항상 관심을 가지시는 이 소자들, 작은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린이들, 고아들, 환자들, 고독한 이들, 가난한 이웃들, 일선에서 혹은 해안 초소에서 외롭게 나라를 지키는 우리 젊은이들, 그리고 모든 소외된 계층을 잊지 말고 냉수 한 그릇의 작은 봉사라도 아끼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인생행로를 한 번밖에 지나가지 못합니다. 인생의 가는 길은 일방도로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밖에 지나가지 못하는 이 인생의 길가에 고독과 병고와 빈곤과 눌림과 온갖 불행으로 쓰러지고 넘어지는 이들을 할 수만 있으면 외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나눌 수 있는 이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이 시간 우리 주님께서 주신 냉수 한 그릇의 교훈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되새겨 들었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특별히 주님의 크신 사랑과 평화를 생각하는 이 계절에 냉수 한 그릇의 복음을 이 소자들 가운데 특별히 나눌 수 있는 은총을 우리 하나하나에게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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