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5월 23일 (금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요한복음]    효과적인 설교 시간과 방법 / 교회 공적 예배에 후보 인사 시키지 말아야               美 대법"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행정명령, / 일영연수원으로 옮긴 기감               카이캄, 51회 134명 목사안수식 / 4페이지 설교법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마에 십자가 인터뷰 출연              

  홈     ,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김기홍 설교학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웃음치유와 영업
  기타

설교내용검색

성경 찾기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Daum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김명혁목사
  • 김형준목사
  • 양인순목사
  • 이동원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Home > 요한복음(전체리스트)

    요8:1-11/ 자기 양심의 직면 / 한경직 목사
    2014-08-26 14:01:30   read : 1422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은 여러분께서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가르치실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어떤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와서 그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지하건대 간음하는 여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였는데, 저 여자는 현장에서 잡힌 그러한 여자입니다. 선생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이런 괴상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런 질문의 배후에는 또한 그들의 속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돌로 치라고 하시면 예수는 무자비한 사람이요, 또 그때에 로마 법률에 유대 사람이 누구를 사형에 처할 수 없는 그러한 때입니다. 로마법에 걸릴 것입니다. 또 그냥 돌려보내라고 한다면, 이들은 예수는 그들이 그렇게 높이고 존경하는 모세의 율법을 범하는 사람이요, 또 그런 음란한 행위를 묵인하는 이라 선전할 그럴 조짐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관계를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얼른 대답을 하지 아니하시고, 머리를 숙여서 땅을 보시며 무슨 글자를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어서 대답하라고 재촉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조용히 머리를 드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저 여자를 치라” 그리고는 다시 머리를 숙이시고 무슨 글자를 땅에 쓰시며 한참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후에는 이 무리들이 어른으로부터 젊은이들까지 하나씩 하나씩 슬며시 그곳을 떠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보시니 그 여자 홀로 섰습니다. 그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를 고소하던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는 사람이 없느냐” 여자가 대답합니다. “주여 없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일화 가운데서 우리는 단 한 가지 사실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몇 분 전만 해도 멸시와 분노의 눈초리로 그 여자를 보던 무리들이 어찌해서 하나씩 하나씩 슬며시 그곳을 떠났습니까?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조금 전에는 그들이 그 여자의 죄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실 때에는 각각 자기 자신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의 양심에 각각 직면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들은 자기의 죄를 깨닫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잊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종종 자기 양심에 직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간,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의 교훈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첫째, 양심 직면의 중요성을 기억하십시다.

    인간은 자기 얼굴을 스스로 보지 못합니다. 남의 얼굴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의 얼굴에 있는 흠은 잘 보지만, 자기 얼굴에 있는 흠은 도무지 보지 못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내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합니까?

    그러므로 옛날 헬라의 철인 소크라테스 같은 이도 항상 “네 자신을 알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잠언에도 “지키는 것 가운데 무엇보다도 네 자신을 지키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의 양심을 직면하여 자기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둘째는, 양심 직면의 계기를 생각해 보십시다.

    이미 말씀한 이 얘기 가운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각각 자기 양심에 직면하게 되었습니까? 양심 직면의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을 들은 까닭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피게 되고 양심에 직면하게 됩니다. 죄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에도 나와야 합니다. 설교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거울과 같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얼굴을 바로 보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바로 보게 됩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도 그대로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원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전에 다윗왕이 간음과 살인의 무서운 죄를 짓고도 태연하게 있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사자 나단이 그에게 나타나서 대략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기가 사는 동네에 큰 부자가 하나 있었는데, 이 부잣집에는 양과 소와 모든 가축이 떼를 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 옆에 한 가난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이 농부는 가난해서 그저 어린 암양새끼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 농부는 이 암양새끼를 극진히 사랑해서 그저 쓰다듬어 주고 같이 살고 먹고 자기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부자의 집에 귀한 손님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가 자기 양과 소 떼는 그렇게 많지만 그냥 두고, 자기 옆집에 있는 가난한 이 농부의 어린 암양새끼를 끌어다가 잡아서 자기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를 때에 다윗은 크게 노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 땅에 있을 수가 있느냐? 그런 놈은 반드시 죽을 놈이다. 그때에 나단이 손가락으로 다윗을 가리키면서 “당신이 그 사람이올시다.” 그러면서 다윗이 여러 가지 축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건만, 자기의 신복 우리아를 전쟁터 최전선에 고의로 내보내서 원수로 하여금 생명을 빼앗게 만드는,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해서 자기의 아내를 삼은 이 추한 얘기를 털어놓자 그때에 다윗이 비로소 자기의 양심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얼굴이 흙빛같이 변하면서 “제가 범죄한 놈입니다.” 죄를 고백했습니다. 이 얘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는, 양심의 직면과 회개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하십시다.

    양심에 직면하게 되면 누구나 자기의 죄를 깨닫고 부끄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양심 앞에는 다 비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죄를 온전히 청산하는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실 성전 뜰에 있던 그 무리가 예수님 말씀을 듣고 양심을 직면하게 될 때에 부끄러워서 그 자리를 다 물러간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돌아가서 온전히 죄를 회개하였는지는 의문이올시다. 죄를 회개한 이도 있겠지요.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이들도 있을 듯합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후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참 회개가 따라야 합니다. 죄를 멀리 떠나야 합니다.

    전에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던 삭개오의 얘기 여러분 잘 아십니다. 삭개오가 뜻밖에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집에 영접하게 되니 자연히 그의 양심이 뜨거웠습니다. 여러 가지 죄가 나타났습니다. 크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데만 그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온전히 회개했습니다.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예수님 앞에 공손히 서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서 “내 재산 가운데 절반은 팔아서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했습니까? “돈을 모으기는 모았는데 귀한 돈이나, 또 만일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구약의 율법대로 4배나 갚겠습니다.” 그렇게 한 줄 압니다. 여기에 참 회개가 있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주님을 우리 마음에 영접한 이들입니다. 주님을 우리 가정에 영접하였습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서 우리는 우리 양심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도 삭개오와 같이 회개의 열매를 맺습니까? 우리는 다음 세 가지 면에서 언제나 양심에 직면하면서 우리의 삶을 실현해야 합니다.

    첫째는 진실의 면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십니다. 하나님은 진실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심의 진실을 요구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나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제가 일찍이 숭실대학 학장으로 잠깐 있을 때에, 한번은 한 청년이 내게 와서 하는 말이 “나는 옛날 평양에 있는 숭실대학에서 3년 동안 공부했는데 그러나 졸업은 못했어요. 내가 미국에 갈 마음이 있는데, 미안하지만 그 대학을 졸업한 증명서를 하나 좀 써 주세요.” 이런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 말이 “그저 졸업을 했으면 물론 써드리겠지만, 졸업 못한 일이 분명한데 어떻게 써드리겠습니까?” 그렇게 거절했어요. 그러니까 이분이 자기 기대와 다르니까 아주 섭섭한 얼굴로 돌아가는 모습이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사실 해방 후에 가짜 이력서를 가지고 취직을 하였다고 하는 그런 말이 많이 들렸어요. 가짜 교인 증명서를 가지고 와서 결혼식을 해 달라는 청년도 혹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사회에 가짜 주사니, 가짜 약품이니, 가짜 식품이니, 가짜가 너무 많더니, 요새는 가짜 교사까지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들으니 가짜 목사도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허위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 믿는 이들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양심에 직면할 필요는 없습니까? 그리스도는 진리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진실이 충만합니다. 진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품격의 첫째 조건입니다. 제 아홉째 계명은 우리에게 진실하라는 계명입니다.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합니다.

    둘째는 우리는 물질의 면, 혹은 돈의 면에서 언제나 양심에 직면해야 합니다.

    물질 자체는 악이 아닙니다. 물질은 인간생활에 아주 필요합니다. 물질을 위해서 사업을 하거나 일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이 물질에 대해서 경계하는 교훈이 많이 있습니다. 열 가지의 계명 가운데 두 계명이 물질에 관한 계명입니다. 여덟째 “도적질하지 말라” 열째 “탐내지 말라”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경고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근본이라고 지적합니다.

    분명히 들으세요. 돈 자체가 악의 근본이란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것, 사람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것, 돈을 사랑하는 것은 악의 근본입니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경고합니다. 사실 아닙니까? 많은 죄악이 금전과 관련해서 범행됩니다. 투기, 도박, 뇌물의 수수, 사기, 횡령, 절도, 강도, 심지어 살인까지 감행되는 것을 우리는 매일 같이 신문에서 봅니다.

    최근에도 어떤 사장의 부인이라고 하는 여자가 몰래 아파트 투기를 하다가 빚을 많이 지고 빚쟁이, 빚을 준 다른 여자를 살인했다고 하는 끔찍한 사건까지 우리는 들었습니다. 실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탐심을 경계하라고 권합니다. 탐심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적은 돈 관계에도 정직해야 합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또 아마 그게 사실입니다. 물질 생활에 있어서 늘 우리의 양심에 직면하여야 신앙생활을 옳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정욕의 남녀간의 문제, 곧 성적인 면입니다.

    열 가지 계명에는 일곱째 계명이 정욕에 관계된 계명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사실 구약의 모세 율법에는 간음하는 자들을 돌로 쳐서 없이 하라고 했어요. 여러분, 구약 읽어 보세요. 옛날에는 또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음욕을 품는 것까지 경계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음욕을 오래 품으면 그것은 간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사이 우리 사회는 소위 성추행 사건으로, 성 스캔들로 어지럽습니다. 사실 이러한 추문은 빙산의 일각이기도 합니다. 나타나지 아니하는 일들이 얼마나 더 많을 것입니까? 기업인들, 권력을 가진 이들, 공무원들, 심지어 소위 지도층에 있다고 하는 이들 가운데도 알게 혹은 모르게 소위 내연의 처 곧 축첩 생활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아요? 공창 제도는 없어졌다고 하지만 사창 매춘으로 이익을 삼는 악덕 상인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또 이런 구석을 귀신같이 찾아다니는 젊은이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옛날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멸망을 받은 원인이 성 도덕의 혼란인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회나 국가나 문화의 파멸 전야에는 성 도덕의 타락이 성행된다고 하는 역사적 교훈도 기억하고 살아야 하고, 정치도 해야 합니다.



    바로 이달이 우리는 우리 대한민국 건국 30주년을 맞이한 달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많은 시련을 겪어 오면서도 경제 또는 교육, 문화 방면으로, 여러 면으로 상당한 발전을 이룩한 것은 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도덕 방면은 어떠합니까? 윤리 방면은 어떠합니까? 바로 이달에 소위 불미스러운 3대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진통을 겪고 있습니까? 이러한 때에 우리가 남의 허물만 보고 남의 죄만 타도하면 우리 사회 풍토가 개선될 것 같습니까? 도저히 아니됩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내 양심에 직면하고 내 죄를 회개하는 큰 회개 운동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발전되는 면이 있지만 특별히 두 가지 면에서 낙후되어 갑니다. 뒤떨어져 갑니다. 하나는 제가 지금 말하는 이 윤리 방면이고, 또 하나는 사회 정의 방면인데, 빈부 차이가 너무 커갑니다. 이 두 가지 면에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우리나라가 옳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시점에서 우리 믿는 이들은 먼저 내 자신을 살피어 양심을 직면하고 솔선수범하여 빛과 소금의 책임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사회 풍토를 변화시키려면, 무슨 신풍(神風) 운동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양심의 직면으로 일어나는 참된 회개와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성도들, 특별히 진실의 면에서 경제 문제에 대한 청렴의 면에서, 그리고 성결의 면에서 빛의 사명을 다하듯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 시간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내 자신을 살피고 내 양심에 직면해서 마땅히 버릴 것을 버리고 고칠 것을 고치고 죄를 회개하며 주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모든 죄의 씻음을 받고 아버지 앞에서 깨끗한 영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 축복을 이 시간 우리 하나하나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해서 이렇게 혼탁한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요한복음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