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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12:1-6/ 요단강이 넘칠 때 / 한경직 목사
    2014-08-23 21:44:44   read : 1269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漲溢)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렘 十二․五)

    먼 옛날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아마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젊었을 때 그의 예언자적 생활의 초기시대에 받은 말씀인 줄 생각합니다. 예레미야 十一장을 보면 그의 고향 아나돗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대적해서 그를 비난하고 핍박하고, 모함을 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젊은 예언자 예레미야는 크게 상심했습니다. 그리해서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쟁론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하나님인데 악한 자의 길이 이렇게 형통하고 패역(悖逆)한 자의 안락(安樂)이 이러할 수가 있겠습니까?』이런 불평의 호소를 한 것입니다.

    이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곧 제가 읽은 이 말씀입니다. 다시 들어 보십시요.『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요단강이 넘칠 때에는)어찌하겠느냐?』좀 이상한 대답입니다.

    사실 예레미야의 불평에 대한 해답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하나님이 대답하신 뜻은 대략 이렇습니다. 네가 그 만한 것으로 벌써 상심하느냐? 그건 걸어가는 사람들과 경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일로 말미암아 네가 벌써 피곤해지면 장래에 사람보다 빠른 말과 경주할 때가 올텐데 그 때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네가 평탄한 땅만 갈 줄 아느냐? 요단강이 넘치는 때가 있을 텐데 그런 곳도 건너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때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은 그만한 것을 가지도 네가 상심하고 의심이 나서 되겠느냐? 앞으로 더 큰 위기가 올 때에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니 그런 의심에 사로잡히지 말고, 불평하지도 말고, 담대하고 용기를 내며 분발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이 시간에 음미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요단강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여기에 우선 보행자가 말과 경주한다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주의해 볼 것은 신앙생활을 경주에 비교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산책이 아닙니다. 경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신앙생활은 교회 산책이 아닙니다. 달음박질하는 것입니다. 백 미터나 二백 미터의 단거리 경주도 아닙니다. 마라톤입니다. 코스가 깁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三장 十二절 이하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달음박질한다는 말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달리는 경주입니다.

    히브리 저자는 十二장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 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바울 선생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五장 七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달음질을 잘하더니」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신앙생활을 잘 하더니」하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후서 四장 七절에『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하여 자기자신은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하였습니다. 산책하던 것을 마쳤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경주합니다.

    경주할 때에는 우리 신체의 모든 기관이 다 최대의 박력을 냅니다. 힘을 냅니다. 눈은 앞을 바라봅니다. 다리만 뛰는 것이 아닙니다. 손도 휘적거리면서 후원을 합니다. 심장도 빨리 뜁니다. 숨도 빨리 쉽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주도 그런 줄 압니다. 우리의 눈으로 항상 예수를 바라봐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귀로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심장으로는 예수 님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손과 발로는, 예수 님의 뜻을 행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인격 전체 즉 지, 정, 의지,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달음질하는 신앙의 코스를 바로 경주해야 될 것입니다.

    경주에는 언제든지 목표가 분명해야 됩니다. 예수 님을 꼭 목표로 삼고 주만 따라가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을 없애라고 했습니다. 꼭 죄는 아니나 방해되는 것을 다 없애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다 벗어버리고 오직 예수 님만 바라보고 달음질을 하라고 하였고 이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일날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보고, 해가 화창하게 잘 비치면 오늘은 예배당에 한 번 가볼까 하고 슬금슬금 예배당에 오고, 주일날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보고 날이 흐리거나 혹은 빗방울이라도 더러 떨어지면 오늘은 날도 흐리고 비도 올 것 같고 집에서 낮잠이나 자야 되겠군 하는 식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경주입니다.

    二절을 보면『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보행자만 경주하는 것이 아니고 말과 경주할 때도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말은 사람보다 본래 빨리 뛰는 짐승입니다. 마병(馬兵)과도 경주를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아에게 있어서는 네가 네 고향 사람들인 그 시골 아나돗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상심하느냐 그건 보행자와 경주하는 것과 같다. 앞으로 네가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아느냐? 예루살렘에서 왕들과 방백들과 여러 악한 무리들과 항쟁할 때가 올 것이다. 하는 뜻입니다. 말과 경쟁할 때가 있습니다. 이 적은 경주에 피곤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복지로 쳐들어갈 때, 처음에는 아말렉 사람들 및 아모리 사람들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키가 비슷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가나안 땅에는 이런 종류의 사람만 있은 것이 아닙니다.

    아낙 자손이라고 키가 이스라엘 사람보다 얼마나 더 컸는지 키가 구 척이나 되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에 비교하면 마치 메뚜기처럼 보였지만 그런 자손들과도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자손을 갈렙이 쳐 이긴 후에야 이스라엘 백성이 온전히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갈 때,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이 있지마는 우리는 항상 그 보다 더 어려운 시련과 위기가 올 것도 기대하고 정신을 차리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六장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甲冑)를 취하라.』 그런데 네 힘만으로는 할 수 없으니!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懇求)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
    네 신앙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五장 八절 이하에『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악마 자신과 대적해서 싸우는 경주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고『아 나는 그 동안 너무 환난과 재난을 많이 당하고 시험도 많아서 내 심령이 피곤하다.』이렇게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정신 차립시다. 그보다 더 큰 시련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단단히 부탁을 합니다.『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하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담대 하라.』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단단히 권면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먼저 세상을 이기었노라.』사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말과 경주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신론자들, 유물론자들, 공산당들, 세속주의자들, 이 음란과 방탕의 세대와 항쟁하여야 하며 내 신앙의 경주를 할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은 요단의 창일(漲溢)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요단강이 넘칠 때 너희가 어찌하겠느냐?』그건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신앙의 코스는 평안한 때만이 아니요. 때로는 요단강이 넘치는 곳도 우리가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모압 평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멀리 가나안 복지가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는 큰 난관이 가로막혔습니다. 그것은 무엇인지 압니까? 요단강이올시다. 험한 요단강, 검푸른 요단강, 노한 소용돌이치는 넘치는 요단강이 그 앞에 가로막았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일생의 생활은 이와 비슷한 줄 압니다 광야와 같은 메마른 세상에서 갖은 곤란과 궁핍과 유혹과 싸우면서 신앙의 경주를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제일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넘치는 요단강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거센 물결이 소용돌이칩니다. 공포의 요단강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됩니다. 그게 무엇인지 압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죽음입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이런 찬송과 같이 요단강을 건너가야 가나안 복지에 들어갑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야 우리 주님을 만납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야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먼저 간 친구들을 만납니다. 요단강이 넘치는 이 때를 우리가 당합니다. 누구나 다 이 요단강을 건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 대한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지금은 세상 떠나신 고환규 장로님은 흔히『나도 이젠 죽을 때를 분비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고 장로임뿐 아닙니다. 누구나 죽을 준비를 해야 됩니다. 나이 젊다고 등한히 할 수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갑자기 요단강을 건너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 하나 하나가 다 당면하는 문제입니다.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또 이 요단강은 누구나 홀로 건널 수밖에 없습니다. 내 사랑하는 부모, 내 사랑하는 친척,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 우리와 같이 힘껏 따라옵니다. 그러나 요단강가에 와서는 다 떨어집니다. 요단강만을 나 홀로 건널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때에『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신앙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떠나고 나 홀로 요단강을 건너게 될 때에,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신앙이 있습니까? 스스로 살펴보십시다.

    이 강을 건널 시기는 누구나 모릅니다. 사람이 저 멀리 천왕성 해왕성의 거리를 측정해서 알 수는 있지마는 자기 죽을 날은 모릅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라.』

    여러분은 이 약속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이 과연 구속을 얻었습니까? 여러분이 과연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었습니까? 그러면 요단강을 건너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여러분이 다 이와 같은 확신을 가졌습니까?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과연 여러분의 모든 죄가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씻음을 받았습니까? 요단강을 건널 준비가 되었습니까? 죽을 준비를 했습니까?

    우리가 과연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했다고 하면, 이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두려울 수 없습니다. 사람의 권세가 두려울 수 없습니다. 죽을 준비가 된 사람처럼 담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을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옳을 것입니다. 사선을 넘어서 살아야 바로 삽니다. 요단강을 건얼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의 신앙뿐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러합니다. 본문은 개인생활뿐 아니고 우리 민족 전체의 생활에도 적절한 교훈을 주는 줄 압니다. 우리 민족이 해방을 받은 후에 지금까지의 생활은 옛날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생활과 비슷합니다.

    혼란, 곤핍(困乏), 방황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 앞에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 전의 큰 난관인 검푸른 요단강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남북통일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 강을 바로 건너가면 우리 남북한 민족이 다 같이 살 수 있고,. 만일 우리가 이 강을 바로 건너가지 못하면, 다 망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우리는 꼭 자유가 승리하는 통일을 가져와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여호수아와 갈렙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담대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새 세대의 각성과 궐기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해방 이후에 공부 많이 하신 분들도 계신 줄 압니다. 혹 집도 지으신 분도 계신 줄 압니다. 돈도 좀 모으신 분도 계신 줄 압니다.
    무슨 지위도 얻으신 분도 계신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 자랑하지 마십시요. 우리가 이 앞에 가로놓인 요단강을 바로 건너가지 못하면, 여러분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숙청을 당하고 망할 수밖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우리 앞에 어떠한 위기가 오는지 여러분 분명히 보십니까? 이 옳은 통일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참으로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희생할 가을인 줄 압니다.

    여러분은 지혜가 있습니까? 지혜를 짜내세요. 여러분은 지식이 있습니까? 지식을 내 놓으십시오. 여러분은 돈이 있습니까? 돈을 바치십시오. 여러분은 지위가 있습니까? 지위를 바치십시오. 여러분은 시간이 있습니까? 시간을 내 놓으십시오. 여러분은 청춘이 있습니까? 청춘을 바치십시오. 그리해서 이 요단강을 꼭 바로 건너가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세 가지 방안이 있는 줄 압니다.

    첫째로 요단강을 건널 수밖에 없는 이런 때를 당해서, 사실 자유를 믿고 민주주의를 믿는 우익 진영이라고 하면, 누구나 대동단결 할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정파나 지연이나 이런 것들을 초월해서 단결하여야 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정치를 바로 하고 경제정책을 바로 해서,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을 도와줄 줄 알고 이 자유 사회를 굶는 사람 헐벗은 사람이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어제 신물을 보니까 로마교황 바오로 六세가 세계의 빈민들을 위해서 자기의 왕관을 제공했다는 소식이 게재되어 있었습니다. 꼴 바로 깨달은 줄 생각합니다. 우리 자유진영의 모든 교회 모든 교직자, 모든 장로, 모든 집사, 아니 모든 자본가들, 모든 교육가들, 모든 정치가들, 그리고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서 이 정신을 꼭 배워야 할 줄 압니다.

    더욱이 한국 같은 사회에서는 우리가 어떻든지 인보상조(隣保相助)해서 다 같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전에는 남북통일이 바로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특별히 정치방면에 있는 사람들, 경제계 방면에 있는 사람들, 재산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대 각성, 대 분기, 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남북통일이 바로 안 됩니다.

    또 셋째로는 사상적으로 철저한 계몽이 시급합니다. 공산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문명하게 우리의 젊은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할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어떤 이가 북한으로 갔다고 하는 소식도 여러분이 듣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이 계몽을 바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칠 수밖에 없는 때인 줄 압니다.

    『요단강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요단강이 넘칠 때가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다 닥쳐옵니다. 우리가 넘치는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삽니까? 무엇 무엇해도 이것이 제일 시급합니다.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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