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시 八十四․六)
오늘 아침 시편 八十四편을 읽었습니다. 이 시는 시편 중에서도 진주라고 하는 별명이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의 중심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시온 산상에 세워진 성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서 살든지 국내는 물론 국외에 사는 분이라도 一년 몇 번씩 특별히 유월절이나 오순절이나 장막절 같은 절기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시온산 성전에서 예배하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절기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멀리 시온을 향해서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좀 넉넉한 이는 나귀나 약대 같은 것을 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 걸어서 시온산을 향하여 나아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순례자들이 얼마나 성전을 사모하며 그 성전 애모(愛慕)의 지성이 얼마나 크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시편 몇 편을 읽는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八十四편은 그런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 지요. 내 영혼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 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리고서는 五, 六, 七절에는 이와 같은 성전을 향해서 가는 순례자들에 대한 노래가 있습니다.『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나아가 시온에게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성전을 향해서 올라가는 순례자들이 얼마나 성전을 사모하는 그 지성을 우리가 이 시를 통해서 엿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온을 향해서 올라가는 옛날 순례자들의 행로는 장망성을 떠나 천성을 향하는 우리의 신앙 생활과 유사한 점이 많은 줄 생각합니다. 먼저 이 길이야말로 축복의 길입니다. 주께 힘을 얻고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를 복이 있습니다.
사살 그 때에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줄 생각합니다. 주께서 힘을 주셔야 떠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건강도 있어야 그런 길을 갈 수 있고 여비도 있어야 그런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어야 다시 말하면 시온을 사모하는, 곧 시온을 향하여 떠나려고 하는 그 마음이 간절해야 이런 길을 떠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구비되어야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의 영적 순례의 길도 이러한 점이 있을 줄 생각합니다. 주님께 힘을 얻어야 이런 길을 떠날 수 있습니다. 이 죄악의 장망성을 떠나 천성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은 내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주님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였습니다.『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불렀노라.』성령의 감화가 없이 죄를 회개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 예수님께서 나의 구주가 된다고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힘을 얻어야 이 귀한 시온을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날 수가 있습니다. 천성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 죄악의 세상을 끊어버리고 의와 성결(聖潔)의 생활, 진과 선과 미의 생활을 동경하는 간곡한 심정,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이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힘을 얻어서 과연 이 순례의 길을 떠나셨습니까? 과연 언제든지 여러분이 마음속에 이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 시온의 대로를 날마다 날마다 걸어갑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옛날의 순례자들과 같이 축복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리고 이 순례의 길, 시온을 향하는 길은 평탄한 길만은 아닙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때도 있습니다. 더욱이 팔레스타인은 산이 많습니다. 따라서 험한 골짜기도 많습니다.
더욱이 비가 적은 곳이므로 메마른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순례자들은 종종 이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곡이 되게』한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옛날 히브리말이므로 그 뜻을 확실히 알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눈물이 변해서 샘물이 된다고 하는 뜻이거나 혹 어떤 주석 가의 해석하는 말과 같이 순례자들이 이런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는 많은 눈물과 같이 곳곳에 깊이 샘을 파서 순례자들이 한 번 지나간 곳은 샘물이 많아졌다고 하는 뜻 같이 생각이 됩니다.
천성을 향하는 영적 순례자의 행로에는 때때로 눈물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골짜기를 지나갈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온전히 시온을 향해서 나아가는 순례자들에게는 눈물 골짜기에서도 생명 샘을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메마른 광야를 지나가던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석을 깨뜨려서 생수를 주신 것과 같이 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가는 오늘날의 순례자들에게도 생수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와 능력과 안심을 주신다고 하는 뜻인 줄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많은 인물들을 통해서 또한 역대 교회사에 나타나는 인물들을 통해서 이 말씀이 얼마나 사실인 것을 잘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사도 바울의 생활을 잘 압니다. 사도 바울의 순례의 길을 보면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때때로 문자 그대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의 가는 곳마다 핍박이 있었습니다.
매도 맞았습니다. 어떤 때는 죽은 줄 알고 내버림도 당했습니다. 파선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더욱이 까닭 없이 오랫동안 감옥의 생활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기억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도 그 곳에서「이른 비」의「은택(恩澤)」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고, 음침한 감방에서 오늘까지 수많은 성도들이 복과 같이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에베소서를 볼 수 있고, 빌립보서를 읽을 수 있고, 골로새서를 읽을 수 있고, 혹은 디모데 전후서니, 디도서니, 빌레몬서를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침울한 감방 가운데서도 오히려 감옥밖에 있는 그 때의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기록할 수가 있었습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양선 함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웠나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사람의 지각에 뛰어나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과연 사도 바울은 눈물의 골짜기 가운데서도 생명 샘물을 찾았고 위로 내려오는 이른 비와 은택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많은 사람의 생활을 생각할 수 있지마는 존 번연(John Bunyan)의 생활을 기억할 줄 생각합니다. 그이는 젊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자유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영국 국교에서 세력을 잡아 가지고 누구든지 자유로 전도를 못하게 하던 때입니다. 그 죄로써 잡아 갇히어서 젊은 사람으로 억울하게 十二년 동안이나 감방생활을 하였습니다. 청년으로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눈물 골짜기에도 생명 샘물을 찾았습니다. 위로 내려오는 이른 비의 은택을 입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아마 자기가 밖에 있어서 일생 전도한 것보다도 효과가 더 큰 천로역정(天路歷程)이라고 하는 귀한 책을 쓸 수가 있은 것입니다. 눈물 골짜기에서 생명 샘을 발견했습니다.
구약을 읽을 때 항상 재미있게 읽는 요셉의 생활을 우리가 잘 압니다. 그 사람 역시 소년 시대부터 원하지 아니하는 눈물의 골짜기를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제들의 시기를 받았고 죄 없이 우물 속에 던짐도 받았고 죄 없이 종으로 팔리어서 멀리 이국으로 내려갑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잡혀 내려가는 그 길이야말로 한 걸음이 눈물의 걸음이 아니었습니까?
이와 같이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갔습니다. 오랜 종노릇도 했습니다. 오히려 모든 시험을 이긴 결과로 감방에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런 가운데서도 생명수를 발견했습니다.
그런 길을 통해서 오히려 전 애굽 사람을 기근 가운데서 건져냈고 자기 아버지와 모든 형제들과 야곱의 일족을 구원해 낼 수가 있은 것입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가지고 시온을 향해서 걸어가는 순례자의 길에 눈물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이 눈물 골짜기에도 하나님께서 생명 샘을 주시고 이른 비의 은택을 주시는 이 사실입니다. 한 편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은 문자 그대로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천재와 지변이 있습니다.
지진이 있습니다. 폭풍우가 붑니다. 바다에는 풍랑이 일어납니다. 겨울에는 눈사태가 납니다. 요즘 페루에서 된 사실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줄 압니다. 교통 사고가 많습니다. 때때로 전쟁도 일어납니다. 질병이 많습니다. 사망이 오는 것입니다. 이 눈물의 골짜기를 우리는 다 통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시온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에게는 그 곳으로 샘이 되게 하고 이른 비의 은택이 있다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과 안심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사람에게 스스로 자기의 은혜를 간증하였습니다.『내가 비천(卑賤)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우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참으로 시온의 대로가 우리 마음 가운데 있습니까? 그러면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도 땅에서는 생수의 샘물을 우리에게 주시고 하늘로서는 이른 비의 은택을 우리에게 내리실 것입니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이렇게 또 노래를 부릅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골짜기를 지나는 중에 순례자들은 힘을 얻고 더 얻습니다.
욥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많은 슬픔과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골짜기를 지나는 중에 힘을 더 얻었습니다. 높은 파도를 누가 환영하겠습니까? 그러나 수부는 이런 파도를 통하여 힘을 얻고 더 얻습니다.
누가 환난과 시험을 영접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순례자는 이런 시련을 통하여 힘을 얻고 더 얻는 것도 또한 공통한 경험입니다. 순례자 여러분,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에 낙심하지 마십시다. 과히 탄식하지 마십시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것도 다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우리가 지나가는 눈물골짜기를 통해서 우리는 힘을 얻고 더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순례자로 하여금 힘을 얻고 더 얻기를 원하십니다. 강력한 순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백전노장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 때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특별히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모든 신자에게 이런 말씀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은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여라.』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올시다.
그리고 마지막 절을 들어보세요.『나아가 시온에서 각기 하나님 앞에 나타나리이다.』
이렇게 눈물 골짜기를 통하여 새 힘을 얻고 얻어서 계속해서 나아가면 마지막에는 시온에 이르게 됩니다. 태산을 넘고 험곡(險谷)을 지나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면, 넘어지지 아니하고 전진을 계속하면, 마침내 시온에 이릅니다.
하늘의 영광이 빛나는 시온에 이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항상 임재하시는 성전이 있습니다.『각기 하나님 앞에 나타나리이다.』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친히 주의 얼굴을 면접할 것입니다. 영광의 보좌 앞에 마침내 서게 될 것입니다.
아! 축복의 순례자를 마침내 평생에 사모하던 목적지인 시온성에 이를 것입니다. 거기는 다시 눈물의 골짜기가 없습니다. 거기는 다시 이별이 없습니다. 거기는 다시 억울한 일을 당할 일이 없습니다. 거기는 다시 질병과 사망이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한대로『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며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우리 하나 하나는 영적 순례자입니다. 우리 하나 하나는 반드시 순례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죄악으로 충만한 장망성을 떠나서 천성을 향하는 순례자의 길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아직까지 이 길을 떠나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이 시간부터 온전히 죄악을 끊어버리고 하늘 길을 향해서 길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두고 날마다 날마다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눈물 골짜기를 혹 통과할 때 낙심하지 마십시다. 그곳에서 주님의 주시는 생수를 마시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십시다 그리고 힘을 얻고 또 얻어서 굳센 순례자가 되십시다. 그리고 나아가서 시온에까지 이르러야 되겠습니다. 이 순례의 길도 마지막이 제일 중요합니다. 마지막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게바와 같이 마지막에 다른 길로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유다와 같이 마지막에 예수를 팔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영광의 빛나는 시온에 이르러서 주님의 얼굴을 친히 뵈올 때까지 우리는 순례자의 길을 멈추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이 축복의 순례자가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