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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21:15-23/ 너는 나를 따르라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32:05   read : 1040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 二十一․二十二)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회복시킨 후에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네가 젊었을 때에는 임의로 띠를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마는, 네가 늙을 때에는 팔을 펴게 되겠고, 남이 네 띠를 띄우게 되겠고, 원치 않는 곳으로 너를 데리고 갈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여기에 기록한 대로 장차 베드로가 어떻게 최후의 순교를 마칠 것일까 에 대한 암시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 온 마음과 몸을 바친 베드로도 이런 말씀을 들을 때에 그 가슴이 벅찼을 것입니다. 아마 그런 가운데 자기 옆에 섰던 사도 요한 을 보고 예수님께 물어보았던 모양입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사람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물을 만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 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잠깐 묵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친히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그 뜻은 우리가 다 같은 주님의 제자이지마는 제자 개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다르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대로 요한은 요한대로입니다. 그런즉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고 네가 할 일을 지체없이 행하라. 다른 사람에 대한 과중한 호기심이나 무익한 공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자기의 사명을 알아서 거기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남의 일은 상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게 상관없는 일에 구애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어떤 호기심이 쓸데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형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일생에 중요한 일이 많지마는 그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나 자신, 내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주님은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먼저 이 생명을 구하라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닌게 아니라 어떤 때 보면 남의 불신을 나의 불신의 한 핑계로 삼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뭐, 아무개도 예수 믿지 않는데 나도 차차 믿겠다.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아무개가 교회 나가야 나도 나가겠다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떤 부인들은 우리 남편이 나가야 나도 나가겠습니다. 하는 말도 합니다. 물론 여기에도 그럴 듯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들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친구들과 같이 강에 가서 목욕을 하다가 여럿이 빠졌다고 합시다. 그 때에 언덕에서 어떤 분이 줄을 던집니다.

    이 줄을 잡고 나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 줄을 잡으면 나도 잡고 다른 사람이 안 잡으면 나도 안 잡겠다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아마 내가 먼저 그 줄을 잡고, 내가 구원을 얻은 후에 다른 사람에게 던져주겠다고 하는 것이 인생의 본능일 것입니다. 남이 물에 빠진다고 나도 빠지겠다고 하는 말은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말입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기독교가 장망성에 살다가 장차 이 성이 망할 테니 너는 이 성을 떠나 천성으로 가라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장망성을 떠나려고 할 때에 집집에 다니면서『이 집도 떠납니까? 이 집에도 떠납니까?』하고 물어보고 떠났습니까? 남이 다 떠나니까 떠났습니까? 그럴 사이가 없어요. 남이 미처 안 떠나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일 귀한 것은 우선 내가 내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사이 우리가 흔히 듣는 말 가운데『요즘은 세상이 다 그런 걸요』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남들도 그 일은 다 하는데요 뭐!, 남도 다 뇌물 받는데요 뭐!, 그쯤 협잡은 남도 다 하는데요. 그러니 나도 좀 해도 괜찮다 하는 말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거 아무개를 보세요, 그이는 예배당 다니는 지도 오래 되었는데 거짓말도 잘합니다. 어떤 사람은 몰래 술집에도 다닙니다. 몰래 캬바레도 가는 것 보았는데요.

    그러니 어떻단 말입니까? 남들 다 그렇게 하니, 남 다 부정을 하니, 남 다 협잡을 하니, 남 다 죄를 지으니 나도 죄를 지어도 괜찮다 하는 말입니까?『그게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너는 나를 따르라. 남이 다 죄에 빠진다고 나도 빠진다는 것은 알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남도 다 포도원을 묵혔다고 내 포도원도 묵힐 것입니까? 남도 다 낮잠 잔다고 나도 낮잠 잘 수 있습니까?『그게 네게 무슨 상관이 잇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본사에 대해서도 어떤 이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물론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도 하고 도와주어야 하겠지마는 교회 가보니 권사라도 봉사주일에 쌀 안 가져오더구만, 나야 뭐 평신도인데』이런 말씀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을 알지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어떤 사람이 불한당을 만나서 매를 많이 맞고 가진 것 다 빼앗기고 인사불성이 되어 넘어졌습니다. 제사장이 지나가다 그냥 지나갔지요. 레위인이 지나가다 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갔지요.

    그 때 사마리아인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마리아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제사장도 그냥 가고 레위 인도 그냥 지나가는데 내가 뭐라고, 나야 사마리아 사람인데 하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랐으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다른 사람들 그냥 지나가는 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나는 그런 경우에 그저 지나가지 않으니 나를 따르라. 나라가 어떻게 되든, 사회가 어떻게 되든, 남이 다 가만있는데 하는 말에 대해 예수님 말씀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 그게 무슨 소리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헌금에 대해서도 이런 얘기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십일조 하라고 하기는 했으나 살펴보니 아무개 집사 님도 실일 조 안 하는데 나야 뭐 할 것 없지, 또 어떤 특별한 헌금을 할 때에 어떤 분은 나도 좀 하긴 해야 되겠는데 아무개 집사가 얼마나 하겠나, 거 아무개 장로는 얼마나 하겠노 하는 생각부터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그게 네게 무슨 상관이냐? 남이 헌금 얼마 하는 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 줄 알고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네가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대로 드릴 것이지 왜 남의 얼굴만 보느냐』하는 말씀입니다.

    전도를 하는 데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전도는 누구나 다해야 하는데, 금년은 특별히 전국 복음 화 운동의 해로 정하고, 누구나 다 전도하라고 하는데 가만 보니 장로들도 전도 별로 안 하는 것 같더군, 뭐 권사들도 전도 별로 안 하는 것 같더니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네게 무슨 상관이나? 너는 나를 따르라, 너는 전도하라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말씀대로 남의 하는 일 볼 것 없고, 상관할 것 없고, 먼저 나 자신이 주님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서도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는 권면입니다.

    사실은 베드로가 자기 장래가 어떻게 되겠다는 것을 들었는데 요한 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나?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요한에게 어떻게 할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베드로의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 혹 어떤 때에 청년들과 얘기를 해 보면, 어떤 청년들은 이 우주 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깨달은 후에야 예수를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진리를 다 깨달아 안 후에야 나는 예수를 믿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를 많이 일으킵니다.

    물어봅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선악과는 무엇 하러 만드셨습니까? 악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하나님께서 선악을 만드셨다는 데 그 악의 기원은 어디서 생겼습니까? 선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인간 역사에 악이 어떻게 팽창하게 되었습니까?

    중공의 세력이 어떻게 저렇게 크게 됩니까? 월남은 왜 저렇게 망하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다고 하는데 우리 인간의 자유는 어디 있습니까?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렵니까? 천당에 가면 서로 무슨 말을 할까요? 무슨 말을 쓰나요? 이런 것을 물어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도 다 알았으면 좋겠지요. 하지마는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사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가 다 깨달아 알려고 하면 아마 우리가 하나님만큼 전지전능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므두셀라라고 하는 이는 九六九세나 오랫동안 살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 진리를 다 깨달아 알려면 이 므두셀라 만큼 살고 또 몇 천년 더 살아도 다 못 깨달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 두는 것이 옳습니다. 이 세상에 악이 어떻게 들어갔나 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보다도 이 세상에 알이 들어왔는데 이 악을 어떻게 하면 없앨까 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가령 어떤 집에 도둑놈이 들어왔으면 제일 중요한 것은 우선 도둑놈부터 잡아야 할게 아닙니까? 그 다음에 연구할 것이 그 도둑이 어디로 들어왔나 살피는 일입니다. 그게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너는 우선 나를 따라서 네 속의 악을 멸하고, 다음에 사회악을 멸하고, 구 악을 멸하고, 신 악을 멸하고, 국제 악을 멸하여, 이 세상을 좀 낮게 만들라 하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무슨 천당은 어디 있는가? 천당에 가면 무슨 말을 하는가? 지옥에는 불이 붙는다고 하는데 왜 없어지지는 않는가? 이런 것 때문에 머리로 공상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선 천당에 가도록 하는 일입니다. 첫째로 지옥에는 안 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는 먼저 나를 따르라. 이 우주에 되는 모든 일 가운데 이간이 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는 신비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일전에도 우리가 신문을 다 보았지마는 구로동의 어떤 웅덩이에서 어린이들이 놀다가 세 아이가 빠지는 것을 보고 두 어린이가 그들은 건져내고 자기들은 그만 빠져 죽었습니다. 그런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지난주간에도 뉴욕 앞 바다에서 큰 여객기가 바다에 떨어져서 한 사람도 살지 못하고 八十여 명이 몰살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요. 실로암 못 가에 탑이 무너져 十八명이 치어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가지고 예수 님께 와서 물을 때에 예수 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너희들은 이 탑이 무너져 죽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이렇게 된 줄 아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그러나 기억하라.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너희도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 사건들을 볼 때에, 이런 사건들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원인을 생각하기보다는 이런 사건을 직면할 때에 우리 인간의 일생이 얼마나 무상하고 이 세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도 멸망할 수 있으니까. 회개할 수 있을 때 속히 회개해서 나 자신을 구원하도록 하자고 생각할 것입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서 구원을 얻을 사람이 적습니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는지 아십니까? 구원을 얻을 사람이 적다고 했습니까? 많다고 대답했습니까?

    그런 말씀은 안 하셨어요. 단순히『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힘쓰라』구원 얻을 사람이 많을는지 적을는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아실 일이니, 네게 중요한 것은 네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 네가 구원 얻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여러 가지 알기 어렵고 깨닫지 못하는 모순되는 것 같은 말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진리는 머리로써만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오직 행해 보아야 알 수 있는 진리도 많습니다.

    또 성경 가운데는 알 수 없는 진리도 많습니다만 분명한 진리도 많습니다. 요한 복음 三장 十六절은 분명합니다. 산상보훈의 교훈도 분명합니다. 고린도 전서 十三장도 분명합니다. 우선 분명한 것을 그대로 믿고 행하세요.

    그러면 분명치 않은 것도 차차 필요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그게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상관하지 맙시다. 너는 나를 따르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를 따르라』의 뜻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는 죄악 세상에서 온전히 돌이켜서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하는 말입니다. 온전히 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인 세상 길을 버리고, 방향을 바꾸어, 전에는 세상 사람들의 사상, 풍속, 행동, 생활, 이런 것들을 따랐지만, 온전히 돌이켜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라고 하는 말입니다. 회개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둘째로, 나를 따르라고 하는 말은 예수를 배우라고 하는 말입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배우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과 그리스도의 생활을 배우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온유(溫柔)와 겸손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순결한 마음과 생활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공의를 배우고, 그리스도의 용기와 그리스도의 희생의 정신을 배우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점점 그리스도와 같이 장성하라는 말입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는 더하고, 인내에 경건(敬虔)을 더하고 경건에 형제화목을 더하고, 형제 화목에 사랑을 더해서 점점 그리스도의 분량이 완전한 데까지 장성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를 따릅니까?

    셋째로 나를 따르라고 하는 말은, 예수 님이 하시는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예수 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슬픈 자를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산과 들을 헤맸습니다. 그리스도가 하던 일을 따라서 같이 행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하시던 그 일을 다라서 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그리스도가 하시던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랑을 행하고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입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는 말은 끝까지 따르라는 말입니다. 갈릴리에서만 따를 것이 아닙니다. 유대산지에서만 다를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따라야 하겠습니다. 겟세마네까지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골고다에까지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예수 님의 사도와 같이 혹은 교역자와 같이, 내 생활이 변해서 그런 생활을 하라는 뜻은 아닌 줄 압니다.

    내가 어떤 직장에 있든지 내가 부름을 받은 그 곳에서 예수를 따르라고 하는 말입니다. 내가 직공입니까? 그 공장에서 예수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내가 장사를 합니까? 상점에서 예수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내가 공무원입니까?

    관청에서 예수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내가 군인입니까? 군대에서 예수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내가 정계에서 일합니까? 정계에서 예수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내가 일하는 그 직장에서 부름을 받는 대로 예수를 따르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다른 이는 어떻게 하든지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몰라도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입니다. 너라고 하는 말은 우리 하나 하나에게, 개인 개인에게 묻는 말입니다. 권하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든지 너는 나를 따르라. 우리가 다 예수를 따릅니까? 혹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예수 님을 따르는 것에 지체하는 이는 없습니까? 혹은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난제가 있으니 이런 것을 해결하기까지는 나는 예수를 따르는 것을 연기하겠다고 잘못 생각하는 청년이나 남녀는 없습니까?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것을 단순히 주일날 한 번 나와서 예배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습니까? 물론 주일날에는 우리가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할 것이지만 단순히 예배당에 온다고 예수를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예수 님과 내 개인 심령간의 관계입니다.『너는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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