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3-26/ 신령과 진리의 예배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25:35 read : 977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四․二十四)
여기 신령이라고 하는 말은 실상은 영이라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영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또 진정이라고 하는 말은 구역에는 진리로 번역했는데 그 진리라고 번역하는 것이 본문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 총회 창립 五十 주년 기념 성회의 마지막 모이는 날인데 그 마지막 예배는 오후 두 시에 모이겠습니다.
또 오늘은 五월 둘째 주일로써 세계적으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예배하는 어머니 주일인데 그 어머니 주일에 대한 선교나 특별 순서를 오늘 저녁 예배에 가지려고 합니다. 이 시간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은혜 받고자 합니다.
수가성 가까이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불멸의 진리 두 가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자신만이 영생토록 솟아나는 생수를 주실 수 있는 그 사실을 그르쳐 주었습니다.
둘째는 지금 읽은 이 말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예배하는 자는 누구든지 영과 진리로 예배하여야 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 님과 말씀하여 나아가는 중 예수 님이 자기의 과거를 말씀하는 것을 보고,
즉『네가 전에 남편이 다섯이 있었는데 지금 봉공(捧供) 하는 남편은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는 과거의 죄와 생활을 다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는 보통 사람이 아니고 선지자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제가 보니 선생은 과연 선지자올시다.』
그리고 물어본 말은,『우리 사마리아 사람은 이 그리심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여야 된다고 합니다.(그리심 산은 바로 야곱의 우물에서 바라보이는 앞산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유대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하여야 된다고 주장을 합니다. 어디서 예배하는 것이 옳습니까?』
그 때의 종교가들이 많이 토론하던 문제를 물어보았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 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친히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본문을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은 영이라는 것. 둘째 예배하는 자가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 셋째,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진리로 예배하여야 된다는 것, 이 세 가지 점을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게 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인가, 그것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첫째로 요한 一서 一장 五절에 하나님은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어두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었다 하며 예배한다 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둘째로, 요한 一서 四장 八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귀었다 하고 하나님을 예배한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산상보훈과 주님의 여러 교훈을 보면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가르쳤습니다. 주기도 에도『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고……』아버지로 부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더욱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한 가지 더 분명히 가르쳐줍니다.『하나님은「영」이시니라.』그러면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한 뜻은 무슨 뜻입니까? 먼저 소극적으로,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살과 뼈가 있는 육체를 가진 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형상이 없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육신의 손으로 만질 수 없습니다 물질이 아니므로 저울에 다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二十四장 三十九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라고 하나님은 우리처럼 살과 뼈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 一장 十八절에 말씀하시기를『본래 하나님을 본 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육안으로 본 이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천사로 나타나실 때에 그 독생자를 본 사람은 많습니다. 하나님 본체를 우리 육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영이신 까닭입니다.
어제 저녁에 피얼스 박사도 잠깐 그런 말씀을 했지마는 이런 진리를 모르고 이 세상에는 망령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소련 흐루시초프도 그런 말을 일찍 했고 여기 일전에도 신문을 보니까 티토프라는 우주 비행을 한 소련 사람이 시애틀에 와서 신문 기자들과 회견할 때에,『내가 이 지구 위에 올라가서 지구를 몇 바퀴 돌아보았지마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더라.』
참 어제 피얼스 박사 말씀처럼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무식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나 똑같이 하늘에 올라가서 우주 여행을 하고 내려온 글렌 중령은 어떻게 말하였습니까?
『내가 우주 여행을 하면서 우주의 찬란한 것을 구경하고 지구 위에서 이 공간에나 꼭 같은 자연법칙이 운행되어서 우주 여행을 완전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을 볼 때에 과연 하나님이 계시더라!』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또 적극적으로「하나님은 영이라」하는 말씀은 하나님은 마음이라 하는 말씀이올시다. 우리 사람의 마음은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도 어느 정도까지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신 까닭으로 시간을 초월합니다. 언제나 계십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심으로 공간을 초월합니다. 일시에 어디나 계십니다. 무한하십니다. 공간을 초월하시는 존재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원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이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고 무소부지(無所不知)하시며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하나님이올시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이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예배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사랑이시며 하나님은 영이올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올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분명히 알고 예배할 줄을 알아야 될 것이올시다.
자, 그 다음 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영으로 예배하여라」이렇게 주님께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영으로 예배한다는 말은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사람에게도 영이 있습니다. 영혼이 있으며 심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신으로 예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 영으로 예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므로 인간의 영으로만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로마서 一장 九절에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언제나 하나님을 섬길 때에 자기의 영으로,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우리도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은 공간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리심 산에도 계시고 예루살렘에도 계시고 어디나 계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할 때는 그리심 산에서 예배해야 된다.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된다 하는 것은 우스운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니까 어디든지 예배당을 짓고 영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올시다. 또 영은 시간을 초월합니다. 언제나 예배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신앙생활을 도와주기 위해서 구약 시대부터 이레에 하루를 특별히 정해서 그 날은 특별히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열 가지 계명 가운데 하나를 우리에게 주어서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도와주기 위해서 그런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주일날만 하나님 앞에 와서 예배하고 다른 날은 예배 한하는 줄 알면 큰 잘못이올시다. 주님의 날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생활을 하여야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영이심으로 영으로 예배하라 하는 것은 실상은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모든 의식을 초월합니다.
사실 구약 시대에는 옛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양을 잡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수송아지를 잡아서 드렸습니다.
혹은 비둘기로써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단번에 하나님 앞에 속죄의 제사를 드린 다음부터는, 우리가 다시 어떤 양을 잡거나 소를 잡거나 이런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과 마음으로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믿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또 오늘알 천주교와 같이, 혹은 성공회도 그 비슷한 점이 있지마는, 반드시 특수한 의복을 입고 특수한 제사를 통해서 예배를 드린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중심으로, 단순할지라도 단순한 의식을 통해서, 중심으로 영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면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진리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몇 가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참된 개념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라 그 뜻입니다. 지리라고 하는 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인지 똑바로 깨닫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라. 그래야 예배를 바로 드릴 것 아닙니까?
자,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제가 이미 말했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이 몇 가지를 똑바로 알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와서 예배를 드려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마는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가지고 잘못 알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모든 우상을 왜 숭배합니까? 하나님 숭배하느라고 우상을 하나님으로 압니다.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혹은 해를 숭배하고 달을 숭배하고 나무를 숭배하고 무슨 뱀을 숭배하고, 이 자연물을 왜 숭배합니까? 하나님을 바로 몰라서 이런 자연계를 숭배합니다.
왜 일본 사람들이 천황(天皇)을 신이라고 숭배했고 옛날 로마 사람들이 황제를 신이라고 숭배했습니까? 오늘날 혹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 가운데도 그릇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천도교 믿는 사람은 인내천(人乃天)이라고 사람이 곧 하늘이다.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범신론적 견해(汎神論的 見解)라고, 하나님을 이 우주 안에만 개재한다고 이렇게 잘못 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위 자연 신교론(自然 神敎論)이라고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는 했지만 자연 법칙에 맞추어 놓고는 그 다음부터는 상관 안 한다.』이런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이 오늘날도 많습니다. 진리로 숭배하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인지 똑바로 알고 숭배하라는 그 말입니다.
둘째는 신약에 보면 진리는 다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곧 진리입니다. 요한 복음 十四장 六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느니라.』예수 님이 진리올시다. 하나님 아버지를 바로 예배하려고 하면 예수 님을 통하여 예배하여야 됩니다.
예수 님의 교훈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 님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 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그 예배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아들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아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바로 예배할 수 있고 하늘 나라에 갈 수가 있습니다.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는 말은 예수를 통해서 예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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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진리로 예배한다고 하는 말은 오늘날 우리 개역(改譯)성서에 그 뜻도 있습니다. 그것은 만가지 해석뿐입니다. 무엇인고 하니「진정」으로 예배하라는 그 뜻도 있습니다.『참으로 예배하라.』
무슨 말인고 하니 예배한다 하면서도 참으로 예배 안 하기 쉽단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입으로는 찬송합시다.
노래 부르면서 속은 엉뚱한 데 가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찬송 어떻게 불렸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기도합시다. 아니까 다 머리 숙이고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분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따라 하지 아니하고 딴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둘기 나무에 앉아서도 콩밭에만 마음이 있다는 격으로 혹은 장사하는 에에만 마음이 있습니다. 흥정하고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여러분 이 설교는 듣지마는 제 음성이 아무리 크게 이야기한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이 딴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옛 글에도『심부 자연이면 청이불문』이라고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으라 그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내 아들아, 네 마음을 달라.』마음을 바치라 그 말입니다.
이사야 二十九장 十三절에 하나님께서 그 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 났나니……』진정으로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한 가지 더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렇게 예배당에 나와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성경 말씀 읽는 것만 아니라 우리 생활 전체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十二장 一절을 읽을 때에, 여러분 자세히 들어보세요.『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여기 몸이라고 하는 말은 육신만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 전체를 가리켰습니다.『네 자신 전체를 산 제사로 드려라 이는 너희의 합리적 예배니라.』그랬습니다.
우리 전체 생활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되겠다는 그 말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다음절에 보니,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어서, 우리가 변화하여서 우리의 매일의 생활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거룩한 예배의 생활을 해라하는 그 말이올시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형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마는 중심으로 우리의 생활이 따라가지 아니하면 아무 쓸데가 없는 것은 제가 구구히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 사마리아 여인으로 말할지라도 그리심 산에 매년 올라가서 제사 드린 줄 압니다. 그러나 그 생활은 남편을 다섯씩이나 갈아 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이 열심히 제사 드렸습니다. 열심으로 여러 가지를 하느라고 하였습니다. 열심으로 안식일에 회당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을 보면 교만과 외식으로 가득히 찼습니다. 사실 그들이 예수를 죽였습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가 아닌 예배를 쓸데없습니다.
여러분이 주일날 여기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무리 예배당 뜰을 밟는다고 할지라도 영과 진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지 아니하면, 여러분의 생활이 변화해서, 여러분의 매일의 생활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받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보세요. 영과 진리로 참으로 예배를 드리면 어떤 은혜를 받습니까? 이사야 六장을 보세요.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에 하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물론 신령한 눈으로 보았습니다. 높고 높은 보좌를 보았습니다.
지금도 사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은 어떤 곳에 가서 예배를 보든지 하늘의 영광을 그 신령한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이사야가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에 그 다음에 본 것은 자기 자신에 직면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보니 죄인이올시다. 입술이 더러운 죄인이올시다.『아 나는 죄인이올시다.』죄를 자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는 사람이 사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면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죄를 자복합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고 기쁨으로 돌아갑니다.
한 가지 더 이르셨습니다. 이사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내가 누구를 보내고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갈꼬. 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자시의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이 시대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은 그저 여기서 예배하고 선교나 듣고 가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 시대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사명을 깨닫고 돌아갑니다. 오늘 아침에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를 예배하는 자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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