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1-15/ 회개와 신앙 / 한경직 목사 2014-08-22 23:56:15 read : 1767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一․十五)
세례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께서 유대 지방으로부터 갈릴리에 돌아오셔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 하신 말씀이올시다.
이 말씀은 매우 간단하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그 가운데 네 가지 점을 말씀하신 것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때가 왔고, 둘째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셋째는 회개하고, 넷째는 복음을 믿으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믿음의 순례를 하게 하셨습니다. 때가 찰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때가 찰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택한 백성들에게 전파하셨습니다. 때가 찰 대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때가 찰 때에 그 복음이 온 천하에 확포(擴布)케 하신 것입니다.
그 때에 이 복음이 우리 한국에도 미치게 된 것입니다. 때가 찰 때에 하나님께서 이 영락교회도 이 곳에 세워 주셨습니다. 때가 찰 때에 여기 앉은 여러분 하나 하나를 불러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아직까지 구원을 받지 못한 분이 있으면 당신들이 알 것은 당신들이 구원의 때가 이제 찼습니다. 구원을 얻을 기회는 이 때입니다. 때가 찼다고 하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예수 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택한 자를 불러 구원해서 그들 가운데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목적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신 이후로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워졌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뜻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먼저 성경 가운데 특별히 세 구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한 복음 十八장 三十六절에 예수 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하실 때에『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근본적으로 하늘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 누가복음 十七장 二十절에 보면 주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니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님과 같이 이 세상에 임재 해서 그를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신령하게 임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로마서 十四장 十七절을 보면『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平康)과 희락(喜樂)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는 의와 평강과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본래 하늘에 있지만 주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신령한 심령 가운데 임재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불완전하지마는 하나님의 나라의 보이는 부분은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하늘의 식민지」라고 말씀한 데도 있습니다. 교회는 말하자면 하늘 나라의 식민지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임한 것은 아닙니다. 이 앞으로 온전히 임할 때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기 위해서 항상 기도하라고 주기도문에 가르쳐 주셨습니다.『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역사적인 어떤 날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해 온전히 임할 때가 있겠는데 그 때가 바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주님께서 오셨던 까닭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서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세요.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두 가지 조건을 분명하게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첫째는『회개하라.』둘째는『복음을 믿으라.』
왜 먼저 회개하라고 하였습니까? 요한 一서 一장 八절에 사도 요한 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말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게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세상에 죄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아시는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十五장 十九절에『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이와 같은 흉악한 죄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의 나라요 평강의 나라요 기쁨의 나라인데 흉악한 이런 죄를 가지고 어떻게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첫째로 요구하는 것이「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서 약대 털옷을 입고 모든 사람들에게 외친 말씀은『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한 것입니다.
여기 보는 대로 우리 주님께서 갈릴리에 나타나셔서 역시 부르짖은 말씀이『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고 마지막 결론을 지은 말씀이『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이 아덴의 아래오바고 산상에서 많은 철학자들에게 설교를 하고 결론 지은 말씀도 역시『이제는 하나님께서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여 회개하게 하셨다』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회개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회개는 무엇입니까? 회개는 어떻게 합니까?
회개에는 먼저 지적 요소가 있습니다. 머리로 깨달아 아는 요소가 있습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바로 보고 그 속에 죄가 얼마나 많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깨닫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윗 같은 사람도 그렇게 무서운 간음죄와 살인죄를 짓고도 태연자약하게 맨 처음에는 그냔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서 비유를 들어 말하면서『우리 동네에 큰 부자 집이 있고 가난한 집이 있습니다.
부자 집에는 소와 양이 많습니다. 가난한 집에는 어린 암 양 새끼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 집에 손님이 오니 이 가난한 집의 어린 암 양을 빼앗아다가 그걸 잡아서 자기 손님을 대접했으니 이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다윗 왕이 노해서『그런 사람을 그냥 이 땅 위에 둘 수 있겠느냐?』하고 말했습니다. 나단이 하는 말이『당신이 그 사람이올시다.』 이 말을 들은 다음에야 자기 죄를 깨달았습니다.
요나는 선지자의 명색이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할 때에 자기의 의견에 맞지 아니한다고 명령을 거스르고 반대로 다시스로 향하여 배를 타고 갑니다. 배 밑창에 들어가서 평안히 코를 골며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풍랑(風浪)을 일으키시고 제비를 뽑아서 바다에 던지게 하시고 물고기 속에 들어가서야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를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를 모르니까 하나님도 모르시는 줄 알고,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자기의 죄를 그냥 안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신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그대로 나 자신을 보고 죄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눈의 티는 보기 쉬워도 내 눈 속의 들보는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죄를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탕자가 먼 나라에 가서 허랑 방탕하며 죄를 지을 때에 죄인 줄 몰랐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씩 모른다고 하면서 그냥 앉아 있다가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야 자기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먼저 내 죄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첫걸음이올시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여기에 마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정적 요소가 있습니다. 감정의 요소가 있습니다. 내가 사실 내 죄를 깨들으면 이 죄 때문에 자연히 통회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참된 회개에는 눈물이 따릅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죄를 깨닫고 밖에 나가서 통곡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세리가 성전에 와서 기도할 때에 자기의 가슴을 쳤다고 그랬습니다. 어떤 죄 많은 여인이 예수 님 앞에 나와서 눈물로 예수 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었다고 했습니다.
벌써 十여 년 전에 제가 대구에서 어떤 미국 부흥 사와 같이 부흥회를 인도할 때에 한국 사람도 많이 오고 미국 군인들도 많이 왔습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죄를 통회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떤 미군 장교 한 사람이, 키가 크고 아주 건장한 사람인데 그저 눈물을 흘리면서『나의 이 죄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부르짖는 모습을 본 것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습니다. 참된 회개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죄를 통회합니다.
성 프랜시스 같은 이는 다른 사람 보기에는 성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이가 하나님 앞에 앉아서 기도할 때에는 항상 자기의 부족한 것을 생각하고 너무 눈물을 흘리며 울어서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된 때가 종종 있었다고 전기에 기록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회개는 죄를 먼저 깨닫고 뉘우칠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의지적 요소가 있습니다. 의지적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를 끊어버리고 죄에서 갈라서야 합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죄를 깨달은 다음에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곧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탕자가 자기의 죄를 깨달은 다음에 그냥 먼 나라에서 돼지를 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곳을 떠나서 아버지를 향해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삭개오가 자기의 죄를 회개할 때에 토색(討索)한 것은 사 배나 갚아주고 자기의 재산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습니다. 회개에는 이 죄를 끊어 버리는, 단절해 버리는 의지적 결단력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기 전에 남몰래 어떤 좋지 못한 여자와 불미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던 분이 예수를 믿고 보니 그것이 큰 죄악인 것을 깨달아서 그 여자와 관계를 아주 끊어 버리고 청산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후에, 이 여자와 전연 관계를 안하고 있던 차에 한 번은 거리를 지나가다가 이 여자와 마주쳤습니다. 이 때에 이 남자는 여자를 척 보고 몇 해 전에 관계를 가졌던 그 여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가던 방향을 돌이켜서 다른 곳으로 갑니다. 이 여자가 남자를 부르며 따라와 하는 말이『여보, 당신이 나를 모르겠습니까? 여보, 당신이 나를……』그러면서 따라옵니다. 한참 가다가 이 남자가 다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고 하는 말이『당신은 전에 있던 그 사람인지 모르겠지마는 나는 전에 있던 내가 아닙니다.』그리고는 달음질을 쳤습니다.
죄를 깨달아 알뿐더러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을 뉘우치고 아프게 눈물로 회개할뿐더러 온전히 끊어버리는 것, 이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복음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복음의 뜻은 무엇입니까?「마태복음」「마가복음」하는데 그 듯은 무엇입니까?.「복음」이라고 하는 글자의 뜻은「유양겔리온」「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요샛말로는「굿 뉴스,」「좋은 뉴스」하고 하는 뜻입니다.
마가가 전한 좋은「뉴스」마태가 전한 좋은「뉴스」좋은 소식입니다. 이 마가가 전한 뉴스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태가 전한 뉴스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한 복음도 그렇고, 누가복음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님이올시다. 복음은 예수 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 님은 복음의 주일이올시다. 복음을 믿으라고 하는 말은 예수 님을 믿으라고 하는 뜻입니다.
예수 님의 교훈을 머리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 님의 권능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님께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계시자」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님께서 과연 삼위일체의 하나로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고난을 받으시고 내 죄를 속량해 주신 구주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믿는다」고 하는 말은 머리로 안다고 하는 뜻만이 아닙니다.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이 예수님을 온전히 내 구주로 알고 그에게 내 생명 전체를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의지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 마음 문을 열어놓고 영원히 살아 계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내 속에 있던 온갖 더러운 모든 죄를 온전히 뉘우쳐 회개해서 없이 해 버리고 그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속에 영접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렇게「회개와 믿음」이 두 가지는 구원의 절대 필요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수레에 바퀴가 하나만 있으면 넘어집니다. 마치 비행기의 두 날개와 같습니다. 두 날개가 다 있어야 비행기가 공중으로 떠올라갑니다.
마찬가지로 이「죄에 대한 참된 회개」와「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의 두 가지가 있어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교회에 이따금 나오지마는 죄를 온전히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저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말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참된 회개와 참된 믿음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참으로 회개하고 믿음이 있는 이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선경에 보면『세례를 받으라』고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세례는 회개와 믿음으로「죄 씻음을 받는 표」입니다. 천국 입문의 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을 보면 세례를 경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태도는 그렇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은 자리에게는 죄가 없지마는 만민의 죄를 대신해서 자기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분부하실 때에』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 죄 사함을 얻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들읍시다.『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우리 가운데 아직까지 한 분이라도 온전히 구원에 이르지 못한 이가 있습니까? 때가 찼어요. 당신의 기회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어요. 곧 열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세요.
자, 여러분! 이 말씀은 분명합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권면으로 하는 말씀이 아니고 명령으로 하는 말씀이올시다.『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이 명령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구원을 얻고 순종치 않는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이것은 분명해서 오래할 것도 없고 깨닫기가 어렵지도 아니합니다. 이 다음에 주님의 심판 앞에 가 설 때에『나는 이 구원의 도리를 분명히 몰라서 회개도 못하고 믿지도 못했습니다.』이렇게 핑계 못할 것입니다.
또『영락교회 한 목사가 이 진리를 분명히 말해 주지 않아서 나는 이 진리를 몰랐습니다.』이렇게도 핑계 못할 것입니다. 왜? 내가 방금 분명히 말씀해 드린 것이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얻고 그렇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구원을 얻고 못 얻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올시다. 회개와 믿음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다. 내일은 내일에 속합니다. 내일이 우리에게 있을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현재뿐입니다. 이 시간, 회개하고 복음을 믿읍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교회는 거의 매주간 장례식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가장 엄숙한 시간, 그런 자리에 임할 때마다 항상 제 마음 가운데 스며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과연 인생이 얼마나 무상한가?
과연 인간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잠깐인가? 그러나 이런 느낌 뿐만은 아닙니다. 혹 어떤 때에는 이런 장소에 임해서도 혹 고인을 생각할 때에 이 분이 과연 구원을 얻었는가? 이런 소름끼치는 생각이 스며들 때도 있습니다. 구원을 얻을 때는 지금이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