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1-11/ 예수님 부활, 너무나 기쁜 소식 /조용기 목사
2014-09-10 20:39:5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 부활, 너무나 기쁜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온대지방에서는 봄은 자연의 부활을 가져오는 계절입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 앙상하고 샛노랗게 말라버린 나무나 풀이 봄의 따뜻한 햇살이 비추어 오면 파란 싹을 내어 순식간에 천지가 푸른 생명과 아름다운 꽃으로 충만한 부활의 장면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상은 인간이 생각 속에는 원래부터 없었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도 인간의 사후,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을 믿었지만 죽은 자가 다시 살아 일어난다는 사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통해서 계시해 준 계시의 사상인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확인된 유대인의 종교사상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할 때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12제자에게 와 그 외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시고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에게도 보이셨느니라.'

바울 선생은 예수님의 부활을 본 500여명의 형제들이 바울이 생존 당시에 태반이나 아직 살아있었다고 말했으며 바울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가져오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오늘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멸망에서 소망을 부활시킨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생존은 완전히 절망에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들의 영혼이 즉시 죽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영혼이 죽어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으니 절망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가 병들고 노쇠해서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인간이 생명은 한정되어 있고 살다가 병들고 노쇠해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 죽음의 절망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환경적인 절망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을 저주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은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누구든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주의 절망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도 인간의 상황을 절망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인간의 죄책과 정죄의 절망에 놓여있다. 아무리 해도 인간의 가슴속에는 그 죄책과 양심의 가책과 절망을 이겨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영화롭더라도 그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에 빠졌으며 결국 인간은 죽어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죽음과 무의 절망에 빠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인간은 성서적으로 봐서도 절망이요. 철학적으로 봐서도 절망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절망을 어떠한 사람도 부활시킬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문명도, 어떠한 과학도, 어떠한 사회개혁도 인간을 절망에 건져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절망의 하루살이와 같이 인간은 버둥되며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절망을 당신의 몸에 걸머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망의 세력과 절망의 세력을 다 정복하고 부활하심으로 소망을 부활시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은 죄악을 청산하고 부활하심으로 영혼을 다시 용서로서 살려주시고 하나님과 교통하게 만들었으니 영혼을 부활의 소망으로 채워줬으며, 육체로 부활하심으로 인간도 죽었다가 그리스도처럼 다시 육체로 부활을 소망으로 우리에게 가득히 채워주신 것입니다.

저주를 청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축복의 소망을 우리의 가슴속에 갖다 주었으며, 용서와 의를 부활시켜 주셨고, 삶의 목적과 의미를 부활시켜 주셨으며 영생의 부활을 가져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통하여 인간의 가슴속에 영원한 소망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절망적인 존재였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소망을 얻어 소망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영원한 미래는 현재보다 더 나아진다는 소망을 가슴속에 가지고 살 수 있는 존재로 예수님은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우리 사람들은 짐승과 달리 구원을 받고 영원하고 무한한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미움에서 사랑을 부활시켜 주셨습니다.

마귀는 아담을 꾀어 타락시킴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가 되게 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해서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인간이 마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하나님에게 대적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께 미움을 받아 에덴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비극적인 존재인 것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사랑은 사라지고 미움만이 인간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마귀는 미움을 심어준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하와를 원망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지어주신 하와가 꾐으로 내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했습니다. 하와는 또한 뱀을 원망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부부의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어느 가정이나 부부의 갈등이 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그때 심어준 미움이 언제나 그 속에 있습니다. 아무리 잘 살아보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화합하며 살려고 해도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부부의 갈등은 언제나 가시밭처럼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함으로 마귀가 심어놓은 갈등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는 비극이 다가왔습니다. 첫 아들 가인이 둘째 아들 아벨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밭에서 돌로 쳐서 죽여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친족살상의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형이 아우를 돌로 쳐서 죽인 비극이 일어난 이후로 인류 속에는 미움이 꽉 들어찼습니다.

이래서 오늘날까지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오직 민족과 민족 간에, 부족과 부족 간에 피 흘리는 살상의 전쟁이 인간이 역사인 것입니다. 인간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평화했고, 또 평화가 잠시 있어 전쟁 준비를 하고 난 다음에는 또 전쟁했습니다. 이러므로 이 세상이 생겨난 이후로 전쟁이 없는 해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인류는 제 1차 세계대전,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적인 대전을 통해서 세상을 전쟁을 하고 수많은 생명을 파멸시켰습니다. 그 이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사상적인 대결로 말미암아 오대양 육대주가 모두다 전쟁터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피 흘림이 지금도 세계 처처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미움이 온 세상에 가득했는데 이 미움을 청산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미움을 예수님이 오셔서 짊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인,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 일반 군중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시고, 심지어 하나님께로부터 미움을 받아서 버림받았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은 하나님께조차 미움을 받고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온 인류의 미움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이 미움을 멸하시고 위대한 사랑의 화신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보고도 '주여, 저들을 용서하시옵소서. 저들이 저들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주님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아무도 대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크신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극복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미움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부활하신 위대한 사랑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바로 사랑의 원천이 되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들일 때 하나님과 인간은 사랑으로 연결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원수 된 담은 허물어지고 미움은 사라지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햇빛같이 우리에게 비추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부은바 됨으로 우리의 영혼 속이 사랑가운데서 기쁨으로 뛰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사랑 비출 때에 기쁨 오네 근심, 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은바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 염려, 근심이 사라지고 기쁨에 넘쳐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을 연결하는 가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은 지극한 사랑으로 사랑해 주시고 사랑의 넘치는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사랑으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들이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남편을 사랑하게 되고 아내를 사랑하게 됩니다. 부모를 사랑하게 되고 자식을 사랑하게 됩니다. 친구를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했는데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도저히 불가능한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원수가 주리는데 먹이고 목마른데 마시울 수가 있습니까? 인간으로 할 수 없지만 이 명령을 하신 것은 모든 미움을 극복하신 예수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심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존해서 원수조차도 사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존해서 우리의 삶 속에 사랑의 운동을 전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외에는 우리 운명을 변화시킬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율법과 칼로써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구약 4천년동안 하나님께서 준엄한 율법의 심판을 행했지만 종국에 가서 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4천년 동안에 율법과 칼로써 준엄한 심판을 베풀었으나 한 사람의 의인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수천만, 수억의 의인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사랑으로 연결시키고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사랑은 인간과 자연을 사랑으로 연결시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대지와 환경의 오염을 통해서 서로의 생명을 자멸로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썩어버린 공기, 썩어버린 물 그리고 훼파한 자연, 이런 것을 볼 때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미국이나 구라파에 갈 때마다 다른 것 부러운 것 없습니다.

너무나 푸른 도시를 보고 부럽습니다. 도시가 완전히 푸른 동산입니다. 도시에 나무가 그렇게 많고 공원이 그렇게 많아서 도시에 들어가도 도시인지 산중인지 모를 이러한 도시계획인 것입니다. 구라파나 미국은 도시계획을 할 때 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서 그 주위에 전부 도시계획을 바꾸어서 집을 짓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도시계획을 세우면 수십 년, 수백 년 먹은 나무를 그대로 그냥 불도저로 파헤쳐 던져버립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데 여러분 적어도 십 년이 넘어 20년, 30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나무를 순식간에 베어버리고 파 헤쳐버리고 그리고 거기에 벽돌의 숲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살벌한 시멘트 덩어리 수풀에서 인간의 마음은 황량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의 벽돌동산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에덴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나무가 울창한 곳에 아담이 있는 곳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나라들은 건축을 할 때 에덴동산의 개념을 언제나 살렸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간 서양사람들, 서양의 건축가들은 언제나 도시를 건설할 때 에덴동산의 개념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서 수풀이 울창하고 자연환경에 좋은 그러한 경관있는 도시를 만든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모셨으면, 이제는 자연과 화해하고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새 한 마리라도 우리가 사랑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연을 죽여버리면 우리도 죽습니다. 자연을 짓밟으면 우리 자신의 생명을 짓밟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장을 많이 세워서 돈이 많이 번다고 하더라도 그 폐수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물을 마실 수 없게 되고 그 물을 마신 사람마다 중금속의 병이 들어서 생명이 단축된다면 그 공장으로 돈만 벌어서 무엇합니까? 이러므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인간은 자연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마음속에 충만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이것을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참된 믿음을 부활시켰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에 인간구원에 대한 믿음이 다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불신앙의 포로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고백하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 하나님께 크게 인정받고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행하던 그 분이 우리를 구원할 줄 알았는데 빌라도에게 심판을 받고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버리고 말았으며 구원의 소망은 사라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의 구원의 소망을 다 빼앗아버리고 믿음을 파괴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의 구원에 대한 궁극적인 믿음을 다시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었으면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은 십자가에서 종말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는 재해석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실패도 아니요, 패배도 아니요, 절망도 아니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는 위대한 대속의 은총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으로 재해석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해서 죄 사함의 믿음이 부활했습니다. 성령충만의 믿음이 부활했습니다. 치료의 믿음이 부활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믿음이 부활했습니다. 영생천국의 믿음이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대속하신 은혜의 보증이 되심으로 모든 믿는 자의 가슴속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주께서 부활하사 당신이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값 주고 사신 은혜가 반드시 집행되도록 지금 보장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령이 그것을 보증하고 계십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십자가의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을 믿고 나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우리의 깨어진 믿음을 다시 부활시켜 주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흔들리는 믿음을 다시 확고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만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확신 있는 부활의 믿음을 준 것은 없는 것입니다.

넷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천국의 부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가르치시고 천국의 나타남을 체험케 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시고 천국의 속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가는 곳마다 죄를 용서받게 해 주시고 이것이 천국입니다. 가는 곳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영의 세계를 깨닫게 하심으로 이것이 바로 천국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쫓으심으로 이게 바로 천국이다.

천국의 역사는 이러한 것이다. 그리고 배고픈 자를 주님께서 먹여주심으로 이것이 바로 천국의 역사다. 천국에는 가난이나 저주가 있을 수 없다. 배고픔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면서 주님께서 이것이 바로 천국의 나타남이다. 천국에는 죽음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죽음은 오직 이 세상의 산물이지 천국에는 죽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확증하시고 가는 곳마다 죽은 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잠잠케 하심으로 천국에는 풍랑이 있을 수 없다. 마음의 풍랑, 가정의 풍랑, 생활의 풍랑은 있을 수가 없다. 천국에는 오직 주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만이 꽉 들어차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시면서 그 천국의 속성을 모든 백성들 가운데 보여주심으로 그리스도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인산인해로 그리스도를 따랐습니다. 세상에서 고난 당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고 맛보고 체험하고 그 가운데서 새로운 삶을 얻었기 때문에 너무나 기뻐하고 즐거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나타남도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그리고 난 다음에 40일 동안 한 사람의 죄인도 용서받지 않았습니다. 한사람의 병도 낫지 않았습니다.

귀신도 쫓겨나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 적도 없습니다. 배고픈 자가 먹여짐을 받은 자도 없습니다. 평강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어둡고 캄캄하고 절망이었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이 이르자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시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확신이 되자 천국의 역사가 또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천국의 나타남의 부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천국 복음에 온 세계 만 천하에 전파되었으며 천국의 역사도 부활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천국은 이제 죽은 천국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천국의 임금으로써 천국의 역사를 우리 가운데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으로 천국의 역사는 지금 우리 가운데 계속 나타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죄사함의 천국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지금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성령충만의 천국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성령충만을 구하면 천국의 역사인 성령충만이 우리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치료의 천국 역사도 우리 가운데 임하여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올 때 치료의 역사가 우리의 영과 몸과 마음에 임하여서 우리를 치료하여 새롭게 하는 천국의 역사는 지금 이 자리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축복의 역사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수주일하고 십일조 도적질하지 아니하며 주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올 때 아브라함에게 내린 축복의 역사가 오늘 나타남으로 저주의 세상일을 멸하고 천국의 축복의 역사를 우리 가운데 나타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영생천국의 소망의 역사도 일어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영생의 소망의 역사가 우리의 마음 속에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의 역사가 일어나서 의로운 천국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가득하며 천국의 평강이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넘쳐나는 것입니다. 천국의 희락이 우리의 마음속에 넘쳐나서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이 우리의 영혼 속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은 한 역사적인,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었다 부활한 것은 조작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기절한 것을 무덤에 넣어두니 시원한 무덤에서 살아났고 부활했다고 말했다. 그런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혹은 예수님이 죽은 시체로 있는 것을 제자들이 훔쳐 가 놓고 부활했다고 소문을 냈다. 이런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은 예수를 숨겨놓고 난 다음 부활했다고 제자들이 그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순교를 할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는데 너무나 사모하던 제자들이 그만 일시에 모두다 히스테리에 걸려서 눈에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히스테리가 걸리면 한 두 사람이 걸리지 열두 명의 제자가 다 걸리며 오백 명의 사람이 동시에 히스테리에 걸려서 즉시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본 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거짓말로 사탄은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려고 하지만 여러분 오늘날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부활해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고 그 가운데 부활의 영, 성령이 와 계셔서 오늘날 그리스도 부활의 역사로 천국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지금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성령 받고, 방언을 말하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지금 병이 낫고, 지금 귀신이 쫓겨나가고 지금 저주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축복이 아브라함의 축복으로 임하시고 지금 마음에 죄 대신 의, 불안 대신에 평안, 슬픔 대신에 기쁨을 부어주는 천국의 체험이 우리 가운데 능력 있게 나타나고 있음으로 사탄의 모든 말은 다 거짓말로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죽었다가 부활하신 부활의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엄청난 삶의 내용의 변화와 소망과 사랑과 믿음과 천국의 나타남의 부활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요 하나의 성경 속에 기록된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은 현실적인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시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를 모셔들일 때 그 부활의 역동적인 역사가 여러분 생활 속에 나타납니다. 여러분 생애 속에 모든 사망의 세력은 철폐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천국의 역사가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 기 도 -

우리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사망의 세력을 철폐해 버린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흑암의 세력을 철폐하고 무한한 소망을 우리 가운데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소망으로 부활하시고 사랑으로 부활하시고 믿음으로 부활하시고 천국으로 부활하신 예수님 오늘 그 부활의 능력과 영광이 우리의 속에 가득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admin

�씠�쟾�쑝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