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3:1-1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조용기 목사 2014-09-09 09:10:40 오늘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 가운데 사시면서 천국의 영광과 복음을 전하고 나타내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볼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사람들을 만나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고 하시는 말을 들었고 죄 사함 받은 사람이 즐거움과 기쁨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교회에 들어가셔서 반항하는 원수 귀신을 쫓아내시고 귀신에게 묶여 일생을 망쳐버린 사람을 찾아가셔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을 직접 보고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인산 이내로 병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을 예수님은 일일이 손을 얹어 고쳐주셨고 또 손을 얹음을 받은 자마다 다 치료를 받았습니다. 5천 여명, 4천 여 명되는 배고픈 무리를 주님께서 먹여주셨습니다. 상여 뒤를 따라가며 울고 있었던 아들을 잃은 과부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아들을 그 자리에서 살려주셨습니다. 무덤에 들어간 지 사흘이 되어 썩어 냄새가 나는 죽은 나사로를 주님께서는 살려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어 배가 침몰 위기에 있었을 때 주님의 말 한마디에 바람과 파도도 잠잠해 져 제자들은 그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이와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일들을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실제로 만지고 체험할 수 있었으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삐뚤어져 일부러 믿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 외에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쓰시고 오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우리가 어디에서 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옛날처럼 병도 있고 죄와 마귀도 있고 가난과 슬픔과 고통과 배고픔도 있고 죽음도 있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조차도 부모와 전토를 떠나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 동락 하다가 예수님께서 저들을 떠나 승천하시고 난 후에는 무엇을 해야할 지 막연하게 되었습니다. 절망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 가서 죄 사함과 병 고침을 받으며 귀신으로부터 해방을 받겠으며 절망과 죽음에서 놓여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의 가장 중대한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예전과 같지 않게 몸으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기 위해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첫째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사십일 후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주야로 열흘동안 기도하니 오순절 날에 갑자기 바람과 같은 소리가 집에 가득하더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여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함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들의 마음 속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예수님께서 임재 하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눈으론 볼 수 없고 손으로 붙잡을 수 없고 그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없는데도 성령이 오시자마자 그들 속에 예수께서 임재 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 속에 가득하게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여종 앞에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나가서 말씀을 증거 하매 하루 3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 충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하심을 우리의 가슴속에, 교회에 가져오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께서 지금도 우리 속에 성령으로 임재 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으면 죽은 예수, 역사 속의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와 계시므로 우리는 역사와 공간을 초월해서 오늘날도 산 그리스도 예수를 마음 속에 모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대화하고 노래하며 믿으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성령 운동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교회도 신앙도 시들해 집니다. 성령운동 하는 곳마다 인산 이내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성령 안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성령이 오시면 이제는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가 생깁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으로 충만한 후 유대인들이 기도하기 위해 3시면 모이는 유대인의 성전에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도하기 위해 모이는 그 시간 때마다 성전 입구에는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사람들을 향해 적선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갈 그때도 그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사람을 행해 '우리를 보라'고 하였고 적선을 얻을까 하는 기대에 그 앉은뱅이도 그 두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곧 일어나라'. 그리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이 사람이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뛰어 일어나 찬송과 감사하며 울고 부르짖고 하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모여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 곁에 섰을 때 베드로는 '왜 우리의 경건으로나 우리의 힘으로 이 사람을 고친 것처럼 우리를 바라봅니까? 빌라도가 놓아주려 하였으나 여러분들이 강제로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셨는데 이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 있지 않고 살아나셨습니다. 오늘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믿은 믿음으로 이 사람이 일어났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입니까? 금과 은은 내게 없어도 예수님의 이름이 내게 있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는 죽으셨으나 이제 부활하셔서 몸은 보이지 않지만 그 이름을 통해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등한히 여기는 곳에는 예수님이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에는 그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도록 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2천 년 전에 부활하여 승천하셨지만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그 이름 가운데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예수님께서 그 이름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를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셨던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통곡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하셨을 때 우리의 일생의 모든 죄악은 주님에 의해 청산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아버지와 우리사이의 원수 되었던 담을 허셨으며 화목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 증거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믿고 나아갈 때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해주셨습니다. 그는 또 십자가에서 우리의 마음과 몸의 병을 해결하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인류의 모든 병을 십자가 위에서 친히 다 앓으셨습니다. 주님의 몸은 열로 뜨거웠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질병의 모든 대가를 다 지불하시고 질병의 권능을 깨뜨리셨습니다. 성경에는 저주받은 사람을 나무에 매달으라 하였는데 예수님은 나무에 매달리시어 아담과 하와 이후로 모든 인류가 지은 죄로 인한 저주를 지시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하시어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넘쳐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죽음을 죽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철폐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영광이 있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시고 당신의 이름에 남겨 놓고 가셨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의 이름 외의 어떤 것에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신학이나 철학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예배드리는 것에 있는 것 또한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예배드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위대한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위대한 종으로서 많은 기적과 이사를 행하였습니다. 엘리야에겐 많은 종과 제자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따르는 제자가 엘리사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산 채로 들어 올리실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야의 거동이 이상했습니다. 엘리사가 보기에 엘리야가 오늘 떠날 것만 같았습니다. 엘리사는 결심을 하고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엘리야가 길갈로 간다기에 내가 하나님과 당신의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도 따라가겠습니다.' 길갈에서 또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 강으로 따라갔습니다. 요단 강에서 엘리야가 웃옷을 벗어 강을 치매 그 요단 강이 둘로 갈라져 그 들은 강의 마른 땅 위를 걸어갔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도대체 왜 나를 따라오느냐? 어떤 소원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엘리사는 '나에게 당신에게 임한 성령의 갑절을 주시옵소서.'라 말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내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는 것을 보면 네가 그것을 얻으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두 사람의 사이가 떨어지며 하늘에서 불 말과 불 병거가 내려오고 회오리바람 속에 엘리야가 들려 올라갔습니다. 엘리야의 입었던 두루마기만이 하늘에서 펄럭이며 떨어졌습니다. 엘리사가 그 두루마기를 입고 돌아오는 길에 요단강에서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이까' 라고 말하자 그 요단 강이 좌우로 갈라졌습니다. 이렇게 엘리사는 엘리야의 갑절의 영을 받아서 엘리야가 행한 기적의 갑절을 행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 엘리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행한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 우리에게 성령의 두루마기를 내려 주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이 행하신 일을 행해야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거짓말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두루마기를 받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그 안에 있는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어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 계신 아버지의 영광과 권세를 개인과 가정, 사회와 국가와 세계에 나타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서 지금 역사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현재 우리 가운데서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는 증거 해야 하고 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을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떠나서는 절대로 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셋째로 예수님 안에 있는 복음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죄 사함이 있습니다. 사도행정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저는 최근에 우리 교회에 회개하고 나온 사람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무려 33년 간 자신의 인생의 반 평상을 이단과 사설에 얽매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딸이 우리 교회를 다니며 어머니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전도를 하였으나 그 딸의 말을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딸의 '엄마 한 번만 그리고 다시 교회가지 않아도 좋으니 한 번만 우리 교회를 가요'라는 말에 딸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예배에 참석했다가 때마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보배로운 피에 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는 그 설교를 듣고 그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속에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한참 6.25 동란 때 한 사람이 총을 맞아 그 옆의 동료에게 나를 도와 달라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 옆에 있는 동료는 교회를 다니지만 어떻게 구원하는지를 몰라서 군목을 모시고 올테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총알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군목을 모시고 오니 구 사람은 벌써 죽어있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데 왜 그런 간단한 말을 못합니까? 구원받는 것은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죄의 용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 이름만 우리가 믿으면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 이름 속에 권세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 마가복음 12장 11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나가라 해도 나가지 않습니다. 순복음 교회의 이름으로 조용기 의 이름으로도 귀신은 나가니 않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하면 귀신은 나갑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어떤 부부의 간증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부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석유난로에 기름을 붓다가 잘못하여 그 집과 주위의 12채나 되는 집을 태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집만 불에 타지 않아 가보니 여의도 순복음교회 팻말이 붙어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이를 보고 크게 감동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셨구나". 그래서 두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고 교회를 나왔습니다. 남편은 8개월 동안 형을 살고 나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부인은 그 전에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교회를 다니다가 직장을 얻고 하면서 교회를 멀리했고 급기야는 술에 만취하여 살며 부인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부인은 참다못해 이번이 마지막이라 하며 남편보고 철야예배를 가자고 했습니다. 철야 예배에 온 남편에게 한 집사님이 다가오더니 '당신 알콜 중독인데 술 끊지 않으면 곧 죽어요'라 말하고 사라졌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무서워 아내에게 기도원을 가자 했고 그 부부는 기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기도원에서 7일 금식을 하는데 그 남편이 아내에게 말합니다. 자신의 옆에 항상 검은 사람이 쫓아다니며 술을 먹으라고 하고 아내를 때리라고 한다고. 그래서 그 부인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그 귀신을 쫓았습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그 술 마귀를 쫓으니 마귀가 물러갔습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습니다. 변화되어 착실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날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이름 안에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이름 안에서 악한 귀신, 더러운 귀신, 점치는 귀신, 거짓말하는 귀신, 방종 하는 귀신같은 수많은 귀신으로부터의 해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병 고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4절로 15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로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에 병 고치는 능력이 들어있지 우리 몸 속에 치료하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한 가족의 간증은 재미있습니다. 이 가족은 너무 병치레가 잦아서 나중에는 병원 차비를 아끼기 위해서 병원 근처로 이사를 했습니다. 병 마귀가 그 가정에 단단히 붙었습니다. 어느날 부인이 병원에 들어갈 차례가 왔습니다. 방광염이 걸려 고통스럽고 견딜 수가 없는데 병원에서는 치료가 안됩니다. 의사가 병원에 오지말고 집에서 민간치료를 하며 쉬라고 했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다시 해보니 요도 결석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로 가서 누웠는데 창문 너머로 교회의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저를 고쳐주시면 예수님 믿고 교회에 가겠습니다.'하고 마음 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수술을 받고 나았습니다. 병이 낫자 교회나 하나님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허리가 또 아파 왔습니다. 척추 결핵이었습니다. 수술을 해야 했으나 이제는 돈도 너무 많이 들고 해서 수술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 교회 구역장 한 분이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돈도 들이지 않고 고쳐주시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재발도 하지 않는다고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 한달 도안 회개하며 이 병을 고침 받게 해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한달 째 되는 날 성령의 불이 임하여서 온 몸이 불 같이 뜨거워지더니 병이 치료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리라"하셨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약간 기도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이 있는 줄을 알면 목숨을 걸고 하루도 좋고 한 달도 좋다하고 매달리면 결과는 우리의 승리인 것입니다. 마귀도 그렇게 쉽게 쫓겨나가지 않습니다. 나가는 것이 자기의 멸망이므로 안나가려고 끝까지 발버둥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러나 승리는 이미 우리에게 있도록 결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저가 내 이름을 안 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시편 91편 14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공경하고 그를 잘 모시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자를 높여주시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응답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 안에 아버지의 모든 복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 이름을 통하지 않고는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로 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할 때 언제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천국에 갑니다. 천국은 결코 교회나 종교를 통해 가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장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을 통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한없는 고통을 당하시고 그 대개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면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곧 예수님 자신입니다. 절대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몸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법적 대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법원에서 재판 받을 때 변호사에게 대리권을 주면 우리가 법원에 가지 않더라도 변호사가 대신 우리의 모든 일을 처리해 주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주셔서 예수님의 대리권을 행사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저주를 물리치며 천국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이 이름을 쓰는 사람은 유익을 얻고 쓰지 않는 사람은 아무 유익도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하나님 아들의 이름이요, 그 속에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리신 모든 공로가 들어 있으며 그 속에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가 알고 믿고 마음에 모시고 높이며 그 이름으로 인해 나타난 믿음을 가지고 행할 때 우리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이 보고 듣는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2천 년이 지났지만 오늘날도 예수님의 이름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볼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 가운데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와 치료, 아브라함의 복과 그리고 영생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 가운데서 영광스럽고 승리로 가득 찬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