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4:17-25/ 믿음이 잉태되었을 때 /조용기 목사
2014-09-08 16:34:18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믿음이 잉태되었을 때"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잉태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것처럼 믿음도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잉태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극히 적은 겨자씨 한 알만한 그런 정도의 믿음이라도 하나님이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잉태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잉태되지 않고는 아무리 인간의 힘으로 믿습니다. 믿습니다. 노력해도 안됩니다. 믿음이란 사람의 노력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 속에 잉태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와 은 믿음을 주셨으매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대로 방치해 둡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잡초가 마음속에 생겨나서 그만 이 믿음의 기운을 죽여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이 심어졌으면 우리 믿음을 자라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 믿음을 왕성하게 자라게 하면 이 믿음이 커지면 큰 나무와 같이 됩니다.

그러면 이 믿음이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 역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우리 생활가운데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 뿐 아니라 마귀를 멸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크나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심어주신 이 믿음을 우리는 장성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몇 가지 단계에 대해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 우리의 믿음이 자라려면 우리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갔다하지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믿지 기적을 베푸는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기적이란 과거나 있었지 오늘날에는 없다고 합니다.

기적이 없으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믿을 필요가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미디안에게 넘겨주셨습니다. 그래서 미디안이 곡식을 심을 때나 거둘 때 메뚜기처럼 이스라엘의 평지에 올라와서 곡식을 심어놓으면 다 짓밟아 버리고 추수 때 와서는 곡식을 다 빼앗아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미디안의 압력에 견딜 수 없어서 저 산이나 들에서 숨어서 살고 그들은 극빈하게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이라는 한 청년이 미디안 사람을 피해서 몰래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있는데 천사가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 보고 하는 말이 큰 용사여. 하나님께서 너와 같이 계시노라. 이렇게 인사를 합니다.

그러자 기드온이 그 말을 듣고 당황하고 난 다음에 그는 날카로운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신다면 왜 우리 민족이 이처럼 미디안 에 짓밟혀서 큰 압박을 당하고 자유를 잃고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다면 모세가 말하는 그 기사와 이적과 그 능력은 어디에 있으며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에서 홍해수를 가르고 이끌어 내었다는 이 표적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버렸소. 우리와 같이 있지 않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 여러분 기드온의 질문이란 진실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질문해 봐야할 문제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면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데 왜 우리가 죄악의 눌리고 악의 포로가 되고 서러움과 압박가운데서 살아야 됩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데 왜 병들과 고통가운데 있을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요. 구원의 하나님이요. 구원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우리 가운데 치료와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역사를 통해서 보게될 때 하나님이 같이 계실 때마다 기사와 이적과 능력과 구원이 있었

고 하나님이 떠나 갈 때마다 낡아버린 종교와 의식과 인간이 만든 율법 밖에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진실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려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몸 찢고 피 흘리시므로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죄에서 용서함 받으며 하나님과 화해를 얻고 성령을 받았었으며 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마귀를 이기고 질병의 치료를 받았으며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저주를 다 청산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셨으며 사망을 철폐하고 우리에게 영생을 열어주신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구제하며 사는 역사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며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베푼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데도 하나님의 구원도 없고 이적도 없고 능력도 없고 치료도 없고 그저 종교적인 의식이나 형식이나 낡아빠진 인간이 만든 율법만 있다면 그러한 상황속에 우리의 믿음이 자랄 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의 시며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건지시고 우리를 치료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이 확고한 믿음.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은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제 우리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속에 모셔드릴 수 있는 우리 준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귀한 손님을 모시더라도 그 손님을 우리 집에 모실만한 그런 방도 준비하고 그렇게 음식도 준비 할 수 있어야 손님을 모셔드리지 손님을 모셔드릴 그러한 여유도 없고 준비가 없이 어떻게 손님을 모실 수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 속에 와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상황이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할 수 있는 그러한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실까요.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언제나 영혼을 가지고 과거도 현재요. 현재도 현재요. 미래도 현재로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시간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과거가 있고 지금 살고,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서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속에 수용하려면은 이와 같은 3차원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우리는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그리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그렇게 훈련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100살이 되고 그의 아내는 90이 되어서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너에게 자식을 주겠다고 하시고 난 다음에 강제로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해서 하나님이 그들 속에 수용되어서 역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왜냐 하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그 아내를 사래에서 사라로 많은 자식의 여주라고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강제로 이름이 바꾸어져서 매일 같이 아브라함, 사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제로 아브라함과 사라로 하여금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하게 한 것입니다. 인간으로 말하면 아직 자식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이미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많은 자식의 여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제로 아브함과 사래를 아브라함과 사라로 만들어서 그래서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들 생애 속에 들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교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을 줄로 믿어라가 아니라 받은 줄로 믿으라.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어라.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믿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하나님이 우리 속에 수용이 되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속에 들어가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미래만 생각해서 장차 구원받을 줄 믿습니다. 장차 성령 받을 줄 믿습니다. 장차 병 나을 줄 믿습니다. 장차 천당 갈 줄 믿습니다. 장차. 장차.. 그래서 관속에 들어가면서도 장차.. 그래서 그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장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지금입니다. 언제나 지금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야 하나님과 함께 우리는 행동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따라 말씀해보세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이것이 하나님과 같은 수준에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런 생각 절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정신 없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을 가지고서 3차원의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수용해서 하나님과 함께 행동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의 정신적인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사람들은 이미 십자가 밑에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마음속에 받아드릴 때 이것이 진실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고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라고 말했는데 먼저 믿음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은 십자가 밑에 서서 여러분 자신이 이미 구원받은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성령이 이미 같이 계신 것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어떻게 되었던간에 이미 예수님이 채찍에 맞았으므로 여러분은 고침 받은 여러분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주가 떠나가고 아브라함의 복이 여러분 속에 임한 것을 여러분이 바라보아야 하며 십자가 밑에서는 여러분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된 바 되고 부활해서 그리스도와 하늘에서 함께 앉아있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시간을 초월합니다. 우리도 공간을 초월합니다.

우리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초월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앉아서 벌써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우리는 보고 우리는 말하고 우리는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우리가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에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실에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은 모두다 현실인 것입니다. 현실은 여러분 없는 것은 없는 것이고 있는 것은 있는 것이지 없는 것을 있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꿈의 세계 속에 들어가야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우리는 받아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부으셔서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는데 우리는 환상과 꿈을 우리 마음속에 가지고 우리 마음 속 세계 속에서 굳세게 하나님 말씀을 받아드리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믿음은 자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러분 그런 세계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십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수용하게 되니까 하나님과 함께 믿음이 자랄 수밖엔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환경에 대한 대응이 병이 적절해야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일단 믿고 나면은 그 다음 마귀는 환경을 통해서 여러분을 쉽게 공격합니다. 믿음은 마음 속에 받아드려 놓았는데 마음에 믿음을 빼앗아 가고 박살을 내기 위해서 온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 마귀가 협공을 해오고 환경을 통해서 공격을 해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도 보십시오. 그 나이 백세가 되고 몸이 죽은 것 같고 살아있어도 몸이 죽은 것 같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들을 얻었다는 것을 받아드렸지만 그러나 감각은 그들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환경도 그들을 공격해서 그들의 마음속 에 의심을 가득 넣어서 믿음을 빼앗아 버리려고 합니다.
언제나 우리가 믿음을 얻었다고 해서 의심이 안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아무리 믿음이 들어와도 마음속에는 믿지만 온 육체의 감각을 통하여 우리의 환경을 통하여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우리에게 의심이 와서 우리를 철썩 철썩 때립니다.

많은 성도들이 의심하는 것은 믿으면 전혀 의심이 없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믿고 난 다음에 무서운 의심의 마귀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아무리 철썩거려도 내 마음에서 믿은 것을 굳세게 잡고 그것을 놓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의심이 없는 것이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의심이 없으면 마귀가 없게요. 마귀가 있는 이상 의심은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고 내가 마음속에 믿음을 얻고 난 다음에도 무서운 의심과 싸웠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마귀는 달려 들어와서 환경을 통하여 너는 믿은 것이 거짓말이다. 가짜다. 네 믿음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한다.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는다. 끝없이 늘 말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의심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성경은 말하기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고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절대로 그 약속하신 말씀을 이룬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의심이 들어올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심을 바라보지 말고 의심을 관심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굳세게 섰습니다. 우리도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 말씀에서야 우리는 영향을 얻습니다.

우리가 믿고 난 다음에 끊임없이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그리고 말씀을 전도하고 그리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세계와의 교제인 것입니다. 감각은 3차원의 세계와 교제이지만 기도는 저 4차원이상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 있는 하나님과의 교제인 것입니다.

하루에 한시간 이상씩 계속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마음속에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심의 공격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노아가 그 여덟 식구와 방주로 들어갔을 때 하나님은 방주를 만들 때 창문을 없게 만들었습니다.

오직 천장에만 창문을 뚫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노아와 그 여덟 식구는 홍수가 다 지나갈 때까지 그들은 물 한 방울 그렇지 않으면 파도 한 번 치는 것 못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옆에 창문이 없기 때문에 천장에만 창문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비 오는 것도 못 봤고 온 세계를 장렬한 그 파도도 못 보았습니다. 오직 창문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하나님 말씀만 기억하고 하나님만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그들은 무시무시한 홍수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만일 그 장대처럼 내리는 비와 그 장렬한 홍수를 바라보았다면 그만 의심이 들어와서 심장마비가 걸리던지 모두다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였고 오직 하나님 말씀만 바라보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환경에 대해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믿었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해 두면 안됩니다.

믿고 난 다음에는 끊임없이 믿고 묵상해야 하며 그리고 주일날도 교회에 나와 꼭 말씀을 들어야 하고 그리고 수요일 날도 할 수 있으면 나와서 성경공부하고 그리고 또 구역예배도 참석하고 해서 말씀과 접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때 그럴 때 의심의 공격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처하지 아니하면 귀한 믿음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의심마귀에 잡혀서 뿌리 채, 송두리채 그 믿음이 뽑혀 버리고 나중에는 빈손 들 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믿음을 끝까지 견제 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여러분 믿음을 활성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들어있는 믿음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부정적이 되고 파괴적이 되고 우울하게 되면 믿음은 다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렇게 큰 믿음을 주어 이끌어 내지만 광야에 오면서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다가 믿음 다 잃어버리고 말았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일단 들어왔으면 그것을 언제나 긍정적으로 지켜 내야 하는데 이 믿음을 긍정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 여러분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서 저 위대한 대상들에게 팔려서 광야를 지나 저 애굽으로 팔려갈 때 그것보고 감사할 일 있습니까. 울고불고 탄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울고불고 탄식하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요셉이 벌거벗고 끌려가는 그 길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보기에는 종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국무총리가 되어 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탄식해도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감사해야 할 일 일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비참하게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리고 돌아가셨을 때 같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얼마나 비극인지 모릅니다.

기독교의 끝장난 것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운명이 끝장인 것입니다. 오직 절망과 슬픔만 꽉 들어찼습니다. 아무도 그 장면을 보고 감사할 사람 없을 것입니다. 비극 중에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천년이 지나간 오늘날 우리가 볼 때 예수 십자가의 사건보다 더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사건이 없었으면 여러분과 나는 구원받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죄악가운데 있고 우리는 구원도 못 받고 하나님의 은혜도 못 받고 지옥의 신세밖엔 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가장 처참한 실패요.
처참한 고통으로 보였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승리요. 영광이요. 감사하는 일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갈 때 수많은 일들이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지말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번에 싱가폴에 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제 일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아버님께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방을 했습니다. 있는 것 다 날려버렸습니다. 그때면 국회의원 나오면 정부에서 정당이 있어서 돈 들고 다닙니다. 조금 있는 재산 다 날려버리고 우리식구 전부 완전히 거지가 되었습니다. 아주 빈손 털털 털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업친데 덥친격으로 6.25사변이 일어나서 우리는 완전히 빈 손들고 그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로 영양 실종이 걸려 저도 폐병이 걸려서 쓰려지고 우리 아버님이나 어머님이나 우리 집안 식구 전체가 정신적인 파탄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요사이 국회의원 나온 사람만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하도 내가 크게 당했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 줄 몰라요. 왜냐 그때 아버님이 국회의원 당선되어서 서울로 왔더라면 틀림없이 6.25사변 때, 우리 아버님은 이북으로 잡혀갔을 것이고 우리 가족들은 다 학살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국회의원 안되었다고 두 다리를 벗고 통곡을 하고 울었는데 지금 보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때 국회의원 되었으면 박살 당했어요. 그러니 인생이란 것은 여러분 사람이 보는 눈하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하고 틀리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 주일날 교회 갔다 와서 지붕이 새서 지붕 좀 고쳐야 겠다. 그래서 목수 일도 서투른 사람이 사다리를 놓고 그 부인이 밑에서 사다리를 잡고 입에다가 못을 잔득 물고 이 망치를 들고서 사다리에 올라가다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놀라서 입에 있는 못을 다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못을 삼켰으니 큰일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넘어져 다리에 상처를 입었는데 다리를 만지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이웃사람이 도우려 왔다가 야.. 이 사람아. 사다리에 떨어져서 입에 있던 못까지 다 먹고서 감사는 무슨 감사냐...하니까. 망치를 입에 물지 않고 못을 입에 물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망치를 삼켰으면 숨도 못 쉬고 죽었을 것인데 못을 물었기 때문에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사람이란 여러분 자기 환경에서 더 어두운 것을 바라보면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는 자기 환경에서 더 잘난 것을 바라보고 원망하지 말고 더 어두운 것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감사하고 나가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노니 그 행위를 올게 한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로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우리가 끊임없이 감사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이 활성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 바를 입으로 끊임없이 시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면 믿은 것을 입으로 자꾸 시인하면 이것을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올 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입술로 시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그리고 내가 입술로 시인하면 내 믿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혀는 적은 것이나 온몸을 의거한다고 말했습니다. 입술로 시인할 때 우리 몸 전체를 믿음으로 붙잡아 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우리 입에 말로 우리가 묶이며 우리말로 우리가 잡힌다고 했습니다. 긍정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인하면 온 우리 심신이 그 믿음으로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무엇이든 메면 하늘에서 메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고 했는데 우리가 믿음으로 땅에서 말씀으로 메면 이것이 하늘에서 메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믿음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범사에 감사할 뿐 아니라 입술로 믿음을 끊임없이 시인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께서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심겨진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우리는 물주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말씀한 바로 기적의 하나님을 믿고 마음속에 꿈을 져버리지 말며 환경에 의심의 도전에 말씀으로 대응하고 그리고 믿음을 활성화시키는 일을 늘 계속하는 것이 물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을 주면 마음속에 믿음은 큰 나무로 자라고 이 위대한 믿음을 통해서 환경과 운명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날도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을 넣어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넣어주신 믿음을 활성화하고 자라게 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십자가 밑에 와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곳에서 용서와 성령 충만과 치료와 아브라함의 축복과 영생이 넘쳐 남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을 받아 누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



admin

�씠�쟾�쑝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