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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1-9/ 형통의 원리 /조용기 목사 2014-09-08 13:00:49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형통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미국을 여행할 때마다 항상 마음 속에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무어라고 말해도 미국을 지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다 지구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자나라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미국은 국민들의 과소비로 인하여 또한 정부지출의 과자로 인하여 천문학적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로 말미암아 고민을 하고 있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그 거대한 국토와 한없는 자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서 국민전체가 별로 염려 근심하지 않고 아주 번영을 누리면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형통한 나라를 볼 때 저는 마음 깊숙히 질투 비슷한 부러움을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3세계를 여행할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제3세계 사람들은 모두다 한국의 올림픽을 부럽게 생각하고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꽤 잘사는가부다 이런 생각을 떠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뿌듯하고 우리 조국에 대한 자랑도 마음 속에 가득하게 됩니다. 낭패와 실망에 허덕이는 것보다 형통하게 사는 것이 보기에도 얼마나 좋고 듣기에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 일가 친척형제라도 잘산다는 소리 들으면 듣기 좋지만은 못살고 낭패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국민일보를 보다가 네 자매가 아버지의 생활에 짐을 덜어주겠다고 독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기사에 접해서 그만 앞날이 캄캄하고 망연자실한 그런 심정을 느꼈습니다. 가난이란 삶의 희망을 빼앗고 인간의 삶의 존엄성조차 짓밟아 버리고 맙니다. 가난하되 낙심하지 아니하고 욕되니 아니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 정신적인 자세는 칭찬할만한 일이지만은 가난 그 자체는 저주이지 결코 축복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모두다 예수를 믿고 형통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3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했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러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하여 인도하여 내시고 그 다음 모세가 나이 많아 세상을 뜨매 여호수아에게 그 지도권을 넘겼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성공적으로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형통의 원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주신 그 형통의 원리를 가지고 우리도 깨달아서 형통 속에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가자 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형용할 수 없는 영롱한 꿈을 주지 않습니까? 430년 동안 종살이하여 짓밟히고 허덕인 사람들에게 꿀이 흐르고 젓이 흐르는 자유의 땅, 가나안이 주어진다고 할 때 그 마음속에 얼마나 찬란한 꿈이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바로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의 분명한 지경을 말씀해 주므로 이것은 너희 것이다 너는 이 백성으로 이것을 정리하게 하라 이러므로 부풀어 오르는 마음속에 꿈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격언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사람들마다 희망을 일어버리고 맙니다. 내일에 대한 꿈이 없는데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희망이 없으면 사람들은 방자하게 행합니다. 될대로 되라고 타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재미한국청소년들의 심각한 문제가 미국에 있는 한국사회에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교회 지도자들이 금년4월에 저로하여금 미국에 와서 뉴욕에서 청소년들을 선도할 수 있는 회관을 설립할 수 있기 위해서 큰 성회를 인도하고 복음을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왜그러냐하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서 이민살이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 나서 저녁 늦게까지 정신없이 일을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학교에 입학을 시켜 놓았습니다. 그럼 학교 에서 자동적으로 선생들이 잘 키워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국의 자녀들이 학교에 입학을 하고 보니 언어장벽에 부딪칩니다. 아무리 들어도 들어도 무슨 말인지 한마디도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종일 학교에 가서 멍하니 공중만 쳐다 봅니다. 귀에 들려오는 것은 하나도 의미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어봐도 깜깜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만 학교가는 것이 싫어집니다. 절망하고 맙니다. 자녀들의 마음속에 꿈을 일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학교에 잘 가는 줄 아는데 그때로부터 학교에는 가지 않습니다. 학교간다고 집 밖에 나와가지고서는 나쁜 깽들하고 모여서 나쁜짓을 합니다. 이래서 미국 대도시마다 한국 청소년들의 깽단이 조직이 되어서 그들이 무기를 가지고 한국상점들을 침공해 들어가서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한국가정들만 태웁니다. 이것은 미국에 있는 한국사회에 거대한 문제화 되고 만 것입니다. 왜 청소년들이 이렇게 될까요? 그들은 미국사회와 그 문화에 언어장애로 말미암아 적응할 수 없으므로 꿈을 잃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꿈을 잃은 청소년들은 자동적으로 방종하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사람들이 마음속에 꿈을 가진다는 것은 만남을 무릅쓰고 나갈 수 있는 희망을 얻을 수 있지만은 꿈을 잃어버리면 인간을 파탄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당신의 꿈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의 내일을 예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미국가서 늘 외치고 있습니다. 꿈이란 내일을 창조하는 근원적인 힘이 되는 것입니다. 미음속에 꿈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와 함께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심어주겠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에 대한 위대한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정부도 국민들에게 분명한 꿈을 제시해야 이렇게 혼란한 민주화의 과정을 무사히 넘겨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국민들에 대해서 통일에 대한 분명한 꿈을 주어서 모든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모두다 자기 혼자 힘으로 통일하겠다는 혼란을 피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민주화에 대한 분명한 꿈을 주어서 하루 빨리 지방자치제도 하고 지방자치장들도 선거하는 이러한 것을 보여주므로 혼란을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에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정부적인 정책과 꿈을 보여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자들의 불만에 불을 질러 이들이 정부에 대하여 폭력화 할 수 있는 폭동세력으로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1917년 소련에서 볼셰비키 혁명운동이 일어났을 때 레닌은 불만에 꽉 들어찬 노동자, 농민들에게 불을 질러서 싸알 제국에 대하여 반항을 하게 되고 그 결과로 소련정부가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들어오게 만든 것입니다. 이러므로 언제나 꿈을 잃어 버렸었을 때 여기에 불만의 세력을 불어넣으면 큰 폭력화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시간에 정부는 반드시 우리 국민에게 밝은 꿈을 제시해주고 이 민족을 안정시키고 이끌어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기업가는 노동자들에게 꿈을 심어주므로 극한 노사분쟁을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업을 기업가와 노동자가 함께 가꾸어 열매를 나누는 꿈나무로 만들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기업가만 독점하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만 독점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억지나 기업가의 착취는 산업을 마비시키고 모두의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말은 참말입니다. 서양속담에 벌레의 눈을 가진 민족은 망하고 새의 눈을 가진 민족은 흥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영롱한 내일에 대한 꿈이 심어질 때 형통의 원리는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주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를 통하여 낭패와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영롱한 꿈을 심어 줍니다. 십자가야 말로 이 세상에 버림받고 아무 희망도 없는 인생에게 꿈을 심어주는 꿈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몸 찢고 피를 흘린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종교적인 의식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분명한 꿈을 심어주는 꿈나무가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올 때 죄를 짖고 불의하고 추악한 사람들이 그 십자가의 꿈나무의 열매를 먹고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인을 의로 만드는 꿈나무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올 때 하나님께 버림받고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소망 찬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꿈나무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병들고 버림받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치료의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가 십자가에서 우리 연약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들을 세상에서 고칠 수 없는 질병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것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꿈을 소유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낭패와 실망과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이후로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에서 피투성이가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모든 저주를 한 몸에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에서 저주를 청산하고 대속하므로 말미암아 저주에서 허덕이며 낭패와 실망과 패배에 멍든 사람들이 십자가 밑에서 새로운 소망을 얻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그런 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저주를 제하여 버려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영원한 죽음을 면하고 지옥을 멸하고 하나님이 예비한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꿈을 얻을수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부활해서 영생천국을 누릴 수 있는 꿈을 우리 마음속에 심어주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이 세상에 아무리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이라도 찬란한 꿈을 그 마음속에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나와서 꿈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은 영원히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나와서 우리 영혼이 잘된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영롱하고 활활 타오르는 마음속에 꿈을 얻으면 그 꿈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눈에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아무 잡히는 것 없어도 믿습니다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십자가는 우리 인류의 위대한 구원의 꿈나무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 온전한 꿈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꿈을 가졌으면 이제 그 꿈을 성취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인 하나님을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넓은 땅을 개간해도 물을 댈 저수지가 없이는 그 땅은 황무지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인간이 아무리 찬란한 꿈을 가졌어도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뒤에서 밀어 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인본주의자의 태도는 인생을 살아갈 때 인간의 청춘을 의지하고 교육, 금전, 지위, 명예, 권력 등을 자원으로 삼고 살아가는 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변이 다가오든지 세태가 변화되면 인간의 청춘, 교육, 금전, 지위, 명예, 권력 등은 하루 아침에 휴지같이 구겨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스스로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자원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모두다 진실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돌아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하나님만이 저 무한한 천국을 지으셨습니다. 저 수많은 별들을 지으셨습니다. 이 넓은 땅과 저 푸른 바다를 지으셨습니다. 무한한 자원을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자원이 될 때 우리들은 담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나이 75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민을 가서 한 나라를 새로 건설하는 꿈을 주셨는데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75세의 늙은 노구를 끌고도 젊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긴 여행을 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창설한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80이 되어서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둡고 보통 사람 같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호렙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얻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능력으로 지팡이 하나만 집고서 430년 동안 종으로 붙잡고 있는 방대한 거국인 에굽을 대적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성공시킨 것입니다. 민일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조그만한 초립동 다윗이 절대로 골리앗을 대항해서 싸우러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불레셋장군 골리앗은 유명한 장군이요 9척 장신이요 그의 힘은 정말 역발산 기계소였습니다. 이와같은 골리앗을 대결해서 그를 이기고 나가겠다는 조그만한 초립동 다윗은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와같은 모험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위대한 자원이 됩니다. 만난을 무릅쓰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아버지를 믿는 그 믿음을 가져야 우리는 형통의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곧 우리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면서 마음이 위축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형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안한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불안한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내일 일을 모를 뿐 아니라 당장 순간 후에 일어날 일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한없이 불안한 존재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시대는 불안의 시대인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불안합니다. 군사적으로 불안하고 국제적으로 불안합니다. 모든 것이 유동하고 무엇 하나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은 불안 속에 살고 있습니다 불안은 인간을 좌절시키고 위축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불안한 마음을 억지하든지 진정해 보려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담배를 피기도 하고 마약에 중독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술이나 담배나 마약 같은 것은 우리 사람의 마음에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인간이 만든 지팡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지팡이가 우리 마음속에 완전한 안정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함께 배를 타고 밤바다를 지나 가는데 무서운 풍랑이 다가왔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불안사고 초조했습니다만 바다위에 유령과 같은 물체가 걸어오기 때문에 정말 놀라서 큰일났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라 나다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럴 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만일 주시어든 나로 하여금 명하여 물으로 걸어오게 하소서고 말했었습니다. 예수께서 오라고 하매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했었습니다. 그는 캄캄한 밤바다, 풍랑 이는 곳에 배에서 저벅저벅 걸어나왔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갈 때 그는 물위로 걸을 수 있었으나 곧장 일진광풍이 불어오고 찬물이 얼굴을 덮치매 그만 그는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마음에 두려움이 들어오자 물에 가라앉고 말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다가도 환경을 바라보고 불안과 공포증이 마음에 다가오면 그만 우리는 실패의 늪속에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우리의 마음속을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고 세상사람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초조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여러분과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설교를 많이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일 수요일 교회 나와서 설교를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 모든 불안과 공 포를 내어 쫓고 우리의 마음속에 용기와 담력을 넣어주고 마음을 새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해서 성령으로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을 기도를 통해서 다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성령에 충만하면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늘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입에 말로 묶이며 가라 앉고 마는 것입니다. 입에 말로서 나는 할 수 없다 못한다 안된다 절망이라고 말하면 그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묶여서 가라앉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술의 말로서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시인하면 이 말씀이 자기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고 힘을 넣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씀을 늘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우리삶에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늘 유지하고 있어야 하나님이 그러한 사람을 사용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지극히 담대히 하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형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뜻을 어긴 자식이 나중에 부모에게 재산상속을 달라고 아무리 간구한들 부인과 자기 뜻을 어긴 자식에게 재산을 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친구간에 신의를 어기고 돈을 빼앗아 가고 혹은 약속을 어기고 그러다가 나중에 친구에게 가서 도움을 달라고 사정한다고 해서 신의를 저버린 친구를 도와줄 자는 없는 것입니다. 국법을 어기고 자기 맘대로 범죄행각을 하다가 필요할 때는 국가에 도움을 달라고 간다고 해서 국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살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달라고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기를 내 계명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은 값없이 받은 것입니다. 죄를 짖고 불의하고 추악한 인생이 십자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만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어서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면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대로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들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계명을 두고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마라 우상에 절하지 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마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는 이 하나님의 가장 근원적인 계명을 우리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이 계명을 쫓아서 나를 살펴보고 계명을 쫓아 살려고 애를 쓰는 이러한 삶 속에 하나님과 우리와의 조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엿새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일해째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해야 될 것이요 우리의 수입중에 10분지1은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의 창고에 양식이 있게 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하는 그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이러한 삶을 살때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와서 주의 도우심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설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계명을 지키고 살면서 하나님 앞에 필요한 것을 구할 때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18장에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원한을 들어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린 하나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 진실한 형통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형통의 법칙을 보여주셨고 여호수아는 이 형통의 법칙을 따라서 300만 이스라엘 백성을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무사히 이끌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서 걸어가기 위해서는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영롱한 꿈과 환상을 십자가 밑에서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꿈과 환상을 마음속에 가진자만이 내일을 창조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배경에 서 있고 하나님이 우리 삶의 자원이 될 때 우리는 어떠한 역경이 다가오고 어려운 환경에 부딪쳐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자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을 읽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입술로 말씀을 시임하고 그렇게 나감으로 마음이 강하고 담대하여 환경에 좌우되고 뒤로 물러가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인생이 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로 우리는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 계명을 지키고 계명을 따라서 살도록 애를 써야 될 것입니다. 이와같이 애를 쓸 동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성령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더 나아지는 형통의 삶을 이 네가지 하나님의 법칙을 통하여 우리는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사람도 낙오자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요하신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의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유케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여러분을 형통한 인생으로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사회 밝은 면이 있는가 하면 또 그 그늘에 가리어서 어두운 곳이 있고 슬픈 것이 있고 절망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만인이 예수님 십자가 밑에 나와서 죄사함을 받고 우리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밝고 맑고 환한 영롱한 꿈을 얻고 믿음으로 담대한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살아나가므로 하나님의 형통을 받기를 원하시고 계시옵나이다 하늘이 비를 주면 땅이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면 형통치 아니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높인자 낮출 수가 없고 낮추는자 높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어놓으면 닫을자가 없고 닫아놓으면 열자도 없사옵나이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두다 깨어지고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 중심에 서서 형통의 법칙을 쫓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내가 살고 남을 살릴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나도 못살고 남도 못살게 만드는 이러한 사람들이 되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오 형통의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이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형통의 축복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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