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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4:15-2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 / 조용기 목사 2014-09-04 10:05:03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이스라엘의 절기 예배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를 해서 거둬들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추수한 처음 익은 열매를 가지고 여호와를 경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잠언서 3장 9절로 10절에 "네 제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그렇게 명령하셨으며 또한 출애굽기 22장 29절에는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 말지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11월에 드리는 이 추수 감사절기는 그 유래가 미국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을 개척한 원래 영국의 조상들이 메이 플라워라는 조그만 범선을 타고 석 달 동안의 악천 고투를 통해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동부 프리머스룩에 도착하고 난 다음에 그곳에 개간을 시작하셨습니다. 풍토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서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그들은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어서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해서 얻은 수확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친척들과 친구들과 또 친구가 된 인디언들과 함께 거대한 잔치를 벌였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근대판의 기원인 것입니다. 미국 정부에서는 이것을 길이 미국 국민이 간직하기 위해서 11월 넷째 주일 목요일 날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추수감사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오늘날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 복음을 받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 날을 추수감사절기로 지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은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되냐는 것입니다. 곡 감사의 제사는 추수감사절기에만 드려야 될 것이냐 이러한 질문인 것입니다. 첫째로, 여러분 우리가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나에게 어떠한 변화가 다가오는가 이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8절에 바울 선생은 말씀하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것은 우리 마음에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사람이 입술로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가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에게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고 희생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사랑에는 그 진실한 증거를 나타내기 위해서 반드시 그 사랑에 해당하는 감사의 물질 제사가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기를 네 물질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바칩니다, 바칩니다, 해도 그 마음을 바치는 눈에 보이는 증거인 물질이 따라가지 아니하면 마음을 바친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베다니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 있을 동안에 마리아라는 아가씨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나드 기름이 잔뜩 들은 것을 손에 들고 그것을 문지방에 바싹 곁들여 가지고서 기름이 손 사이로 줄줄 흐르는 것을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붓고 그 다음 발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 머리채를 풀어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러자 향기가 온 방에 가득했었습니다. 그리고 향 기름이 온 방에 흘러 넘쳤습니다. 옛날에 유대인들은 소녀가 시집갈 때 향 기름을 많이 가지고 가면 시집에서 환영을 했었습니다. 이러므로 앞을 다투어서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서 기름을 모으는 것입니다. 여기에 마리아는 자기가 시집가기 위해서 일생을 기울여 모은 나드 기름을 한꺼번에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발에 붓고 그 머리채로 발을 씻었습니다. 머리는 산발이 되었지마는 온 방안에 그 기름의 향기가 꽉 들어찼습니다. 그럴 때 그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인 가롯유다가 화를 냈습니다. "이 어찌된 낭비인고 이 기름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으면 좋을 뻔하였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가롯유다와 그와 동조하는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이 여자를 가만히 두어라. 괴롭히지 마라. 이 여자가 내게 한 것은 참 잘했다. 내 죽을 날을 위해서 미리 기름을 부어 예비해 주었다. 이 복음이 온 천하에 증거 되는 곳에 이 여자가 행한 일도 전파되리라." 왜 예수께서 이렇게 감격적으로 마리아의 행동을 변호하고 칭찬하셨습니까? 그것은 마리아가 예수에 대한 사랑이 그의 옥합을 깨뜨려서 그 향 기름을 부어 예수님 발 앞에 향기가 나게 하고 머리채로 닦음으로 마리아는 자기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리스도를 섬겼습니다. 마리아의 사랑을 부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마리아의 사랑에 깊이 감동했었습니다. 가롯유다와 또 제자들은 이와 같은 예수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를 못했었습니다. 그들이 모이는 것은 그 물질이 아까운 것밖에는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이 아까운 물질, 노동자가 일년을 쓰지 않고 벌어서 모을 수 있는 이 아까운 물질을 왜 낭비하는가 그렇게만 생각했지 마리아의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롯유다는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고 마리아는 예수님께 그렇게 칭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이 마리아의 행한 일은 칭찬이 될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입으로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주를 사랑합니다." 라고 아무리 말한 들 그게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자기의 일생을 바쳐서 모아온 그 나드 기름을 깨뜨려서 주 앞에 부어버림으로 그는 주님께 일생을 내어 맡겨 버린 것입니다. 이런 물질적인 헌신이 마리아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진실성을 표시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 사람의 마음속에 믿음이 역사 하는 것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 하는 믿음이라"고 밝히 갈라디아서 5장 6절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사랑이 역사하지 아니하면 믿음이 함께 역사하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사랑의 상품인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는 신뢰하게 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을 신뢰하게 돼요. 사랑이 없는 곳에 신뢰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들었었을 때 엘리야가 사렙다의 과부가 있는 곳에 갔었습니다. 이 과부는 이제 마지막 밀가루와 마지막 기름으로 과자를 구워서 자기의 아들과 먹고 죽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굽기 위하여 들에서 나무를 줍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사렙다의 과부를 만났었습니다. 사렙다의 과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란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기를 "사렙다의 과부여 무엇을 하는가." "예, 우리는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 남았는데 이것으로 마지막 빵을 구워 먹고 내 아들과 나는 죽으려고 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건 그렇게 할 것이거니와 그 마지막 빵을 구워서 물 한 대접하고 내게 가져와서 먼저 나로 먹고 마시게 하라." 청천벽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엘리야같이 건장한 청년이 굶어서 거지처럼 된 그 사렙다의 과부와 밥 달라고 치맛자락을 잡고 매달리는 어린아이의 먹을 것을 빼앗다니 그럴 수가 있냐, 이 야속스럽고 가혹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해야 믿음이 생겨나므로 하나님은 이 믿음의 법칙을 이 사렙다의 과부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렙다의 과부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그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 엘리야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는 차라리 자기가 굶어서 죽고 아들이 죽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실천해야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집에 들어가서 마지막 기름으로 밀가루를 반죽하여서 떡을 구웠었습니다. 그 아들이 그걸 먹겠다고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고함을 치고 웁니다. 그러나 우는 어린 애기를 뿌리치고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물을 한 대접 담아서 그 마지막 구운 과자를 가지고 엘리야에게 가져갔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엔 어떻습니까? 엘리야가 그걸 받아먹을 것 같습니까? 그러나 사랑은 물질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진실하게 되고 그 진실한 사랑에서 믿음이 역사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엘리야는 거기에 있는 과부와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슴지 않고 그 과자 혼자서 다 먹고 그 물 한 대접 혼자서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무슨 선언을 했었습니까? "이 가뭄이 끝날 때까지 당신의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끊이지 않고 흘려 나오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과연 그 가뭄이 지날 때까지 밀가루 통의 밀가루가 사라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끊이지 않게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건 왜냐. 사렙다의 과부는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네 믿은 데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라고 말하지마는 믿음이란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 합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말씀을 많이 듣고 믿음이 꽉 들어차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그 믿음은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것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의 진실성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서만이 그 진실성이 나타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일 천 제물을 드리고 나니까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솔로몬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해줄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 전체를 펼쳐 보십시요.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백성들이나 선지자들이나 왕들이나 그 누구를 불문하고 제물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 사람이 있었는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왜냐, 믿음이란 것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 하는 것이요, 사랑이란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어떻게 했습니까?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어떻게 하셨습니다. 자기와 살과 피를 주셨습니다. 헛된 말로써 내가 너희를 사랑하노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이란 실제 제물을 내놓아야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개인적 체험에도 언제나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기도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기도를 하면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에서 능력이 쏟아지는 것을 늘 체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지 않고 부르짖을 때는 마치 기름을 바르지 않고 기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힘들 수가 한 없이 많아요. 하나님도 그러면 무슨 특별히 상급을 받았느냐고 그럴 사람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진실성은 바로 제물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믿음의 법칙을 그를 통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별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여러분께서 진실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믿음이 역사 하여서 하나님의 손길이 여러분의 생애 속에 나타나기를 원하신다면 감사의 제사 드리기를 게을리 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 입술로써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 아무리 말해도 그것은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될지 몰라도 실제적인 사랑으로써 나타나지는 아니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제가 여러분과 생각하고 싶은 것은 감사 제사와 여러분과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마귀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귀는 탐욕의 본체입니다. 탐욕이란 것은 언제나 내게 주시옵소서. 내게 주시옵소서. 탕자의 근본적인 성격인 것입니다. 탕자가 여러분 아버지를 떠나 나갈 때 "내게 속한 분?을 내게 주소서. 내게 주소서."라고 하지 않았었습니까? 탐욕이 마귀의 근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두었을 때도 마귀가 와서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조차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라고 말했습니다. 이 탐욕이란 것은 언제나 인본주의적이고 자기에게 유익 되는 것밖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의 것을 희생하여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마귀는 도저히 그 사람하고 같이 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마귀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을 반역하고 죄짓는 세상을 위해서 내어놓았는가 하는 것이고 왜 예수께서 반역하는 세상을 위해서 자기 몸을 짖고 피를 흘렸는가. 이해를 못합니다. 왜 예수 믿는 신자들이 시간 드려, 물질 드려, 몸 드려, 혹은 필요하면 생명을 드려서 하나님을 섬기는가. 이것 마귀는 절대로 이해를 못하고 고통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40주, 40야 금식하셨을 때 마귀가 와 가지고서 예수님 유혹하는 것은 탐욕을 본위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권세를 사용해서 돌로써 떡을 만드는 기적을 만들어 ??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력을 이용해서 너 스스로 고목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라. 탐욕 중심으로 밖에 마귀는 모릅니다. 그리고 너 하나님의 아들이니 그 권세를 사용해서 높은 뾰족 탑 위에서 뛰어 내려서 수많은 사람이 보고 간구하여 너를 왕으로 삼도록 그렇게 유도하라. 하나님의 권력을 너 개인의 명예를 얻는데 수단으로 쓰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거들랑 나중에 높은 산에 올라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보이고 난 다음 마귀가 나에게 절하라, 그러면 천하영광을 너에게 주리라. 천하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권력이라도 마귀를 섬기는데 쓰라는 것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탐욕밖에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제안을 다 거부하자 성경은 말하기를 "마귀가 예수님을 떠나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마음속에 탐욕을 버리면 마귀도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탐욕이 있으면 여러분께서 아무리 입술로 "사탄아, 물러가라." 해도 사탄은 안 물러갑니다. 마음에 탐심을 버리면 마귀는 여러분에게 견딜 수 없는데 그 탐욕을 버리는 길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희생적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마귀는 고개를 흔들고 이맛살을 찌푸리고 "도저히 이 가정에 같이 있지 못하겠다. 이 사람하고 같이 못 있겠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디 있냐." 견딜 수가 없어 떠나가는 것입니다. 또 마귀는 미움의 본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게 될 때 마귀가 그 사람과 같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진실한 사랑은 드리는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주일날 시간 드려서 하나님을 섬기고 몸 드려서 하나님을 섬기고 또 나아가서 물질을 드려 하나님을 섬기면 마귀는 이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미움은 빼앗는 것인데 사랑은 주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므로 미움의 본체인 마귀가 사랑의 임재 아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마귀는 그러한 사람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 마귀는 원망과 불평의 본체인 것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사람에게 와서 부정적인 것을 바라보고 안 되는 것을 바라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우리의 신앙뿐 아니라 우리 생활을 무덤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와서 하는 가장 근원적인 것이 언제나 부정적이 되게 하는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원인 중에 하나도 사사건건 부정적인 것만 바라보고 안 되는 것만 바라보고 원망 탄식하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게 만들은 것입니다. 그 런데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서 하나님께 나와서 희생적으로 감사하면 이것은 마귀와 정 반대인 것입니다. 마귀는 원망하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와서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사람하고 마귀가 같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그와 같은 삶이란 것은 여러분에게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를 내어쫓고 하나님의 성령과 함께 동행하는 가장 근원적인 비결이란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감사하는 신자, 성령과 함께 하는 신자, 불평하는 신자, 원수 마귀에게 시험에 빠지고 올무에 빠지는 신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에서 감사의 찬송이 끊이지 말아야 될 것이 우리의 행위에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을 그치지 말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럴 때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감사의 제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리가 한번 알아보십시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받는다고 말했었습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 제물 드리면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받는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사람이 영화로움을 받으면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대중 앞에서 우리가 칭찬 받을 때 우리 마음속에 영화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때 우리가 영화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출세할 때 우리는 영화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감격이 되고 영화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와서 감사의 제물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특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적으로 아담, 하와 때부터 하나님을 반역하고 나와서 자기밖에 모르고 내게 달라고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께 나와서 희생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의 마음속에 영화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느끼면 하나님의 능력을 그 사람을 위해서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타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므로 감사의 제사야말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바로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고 하나님을 염려하게 하고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 더욱 더 힘을 써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우리는 애를 쓰고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적고 큰 일에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그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에게 선교헌금을 모아서 보냈었습니다. 하나님 사업을 위해서 보냈었습니다. 바울 선생이 그것을 받고 난 다음에 기도하는데 하나님 성령이 감동했었습니다. 지하감옥에서 그 선교헌금을 받아서 기도할 때 바울의 눈에 눈물이 넘쳐 났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바울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바울의 입술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다." 향기로운 제물은 마음을 끄는 맛있는 음식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향기가 나는 꽃을 보고서 그대로 있을 수가 있습니까? 사람들마다 지나가다가 향기가 나는 꽃이 있으면 꼭 꽃을 맡아보는 것입니다. 향기롭습니다. 여러분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사람들은 안 먹으려고 하겠습니까? 반드시 먹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물을 드려서 주의사업을 도울 때 성경은 말하기를 이는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맛이 있는 제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해도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즐기지 아니할 수가 없다는 그 말인 것입니다. 그냥 헛되게 주님께 나와서 허공을 향하여 자꾸 하나님이여 부르짖지 말고 하나님께서 피치 못하게 그 향기를 맡으시고 그 제물을 받으시도록 향기로운 제물을 드리고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이것을 등한히 합니다. 교회가 탕자와 같은 기도를 합니다.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내게 주시옵소서만 말하지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릴 줄을 모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위대한 능력을 나타내야 될 것이 오늘날 교회에 나타내지 않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 이 시간에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요 그리고 바울 선생은 그 제물을 들고 말하기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여러분 우리 가정에도 남편을 기쁘게 하고 아내를 기쁘게 하면 가정에 좋은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우리가 섬기는 상사를 기쁘게 하면 나중에 승진 할 기회가 올 때 제 1차로 승진이 되는 것입니다. ..... 사람은 자기를 기쁘시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엇으로 기쁘시게 할까요? 여기 성경에는 분명하게 말하기를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했었습니다. 나는 미국이 오늘날 세계적인 대국이 된 것은 미국이 선조 들이 구사일생으로 미국에 와서 그 어려운 천신만고의 고생을 통하여 농사를 지어서 그것을 가지고 처음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거기에 하나님께서 미국을 향해서 그 마음이 뜨거워지고 기뻐한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국가적으로 기념을 하고 추수감사절기에 하나님을 찬미하고 감사하는 이와 같은 태도에 하나님의 중심이 기뻐지고 뜨거워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가만있으실 거 같습니까?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실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그래서 즉각으로 여기 빌립보서 4장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울 선생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향기로운 제사를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난 다음에는 즉시로 보답이 넘쳐 나왔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도와주리라 하나님의 전지전능 무소 부지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쓸 것을 도와주시면 무엇이 우리에게 부족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날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요 여러분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쓸 것을 언제든지 더하여 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물은 정성입니다. 내게 희생이 되는 제물은 내 자신의 믿음을 풀어놓고 마귀를 내어쫓고 하나님의 크신 응답을 가져오는 위대한 비결이 된다는 것을 아시고 이 추수감사제사를 오늘만 드릴 것 아니라 평생을 드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겠다고 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영광 가운데 풍성한 데로 너의 모든 쓸 것을 더하시리라고 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너무나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것을 등한히 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입술로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허공을 울렸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실제로 그 독생자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란 걸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입술로 동정하고 입술로 위로하고 입술로 경외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지마는 주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 없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믿는다는 것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 하는 믿음이라고 했는데 사랑이 발동이 걸리지 아니하면 믿음이 아무리 마음속에 있어도 그것은 잠자는 믿음이 되고 활동치 않는 믿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 하는 믿음을 나타낼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러면 우리의 생활 가운데 우리가 정성 들여 우리 아버지여 늘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찬양의 제사를 드리고 몸 드려 제사를 드리고 시간 들여 제사 드리고 물질 드려 제사 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생활 가운데 놀라운 믿음이 역사 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산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능력의 팔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케 하는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가운데 차고 넘치게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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