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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9:1-10/ 변화된 가정 / 한경직 목사 2014-08-27 12:00:42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장 8절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지난 주간을 가정 주간으로 지켰고 오늘을 흔히 어머니 주일로 지킵니다. 오늘 아침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온전히 변화된 가정 하나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곧 삭개오의 가정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여리고라는 성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이 성은 일찍이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제일 먼저 점령한 성으로써 옛날부터 종려나무가 많아서 ‘종려의 도시’라는 이름이 있고, 또한 그 성에는 아름다운 동산과 장미꽃들이 많기로 유명하며 특별히 발삼(Balsam)이라고 하는 좋은 향품의 유명한 산지로써 소문난 곳입니다. 또 이곳은 동서의 교통의 요충지로써 문화가 집산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삭개오의 가정이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그때에 그 도시의 모든 세금을 받는 세리장이었으며 또한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일반 사회에서는 비난을 많이 받았으며 따라서 그는 사실 고독한 인간이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그리로 지나간다는 소문을 그가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어떤 분인가 보기 원하였습니다. 이런 이가 왜 예수를 보길 원하였을까? 아마 예수는 당시에 소문난 선지자이니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호기심일지 모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한다는 소문을 혹 들었을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 된 사람으로 보였지만은 그의 심령 깊은 속에는 의로운 생활을 동경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그는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거리는 사람으로 꽉 메웠고 그의 키는 매우 작았습니다. 그리해서 그는 마침 그 옆에 있는 높은 뽕나무 위에 올라가서 마치 새처럼 나뭇가지에 앉아서 예수님께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금 후 주님의 일행이 지나갔습니다. 천만 뜻밖에 주님께서는 삭개오를 우러러 보셨습니다. 주목하여 보십니다. 주목하여 보실 뿐더러 주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말씀은 삭개오뿐 아니고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실로 뜻밖입니다. 삭개오는 기뻐서 나무 위에서 곧 내려와 즐거이 예수를 그의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으로 들어가신다고 수군거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놀라울 것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후에도 친히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가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사실은 삭개오가 예수를 찾기 이전에 예수께서 삭개오를 먼저 찾았습니다. 그가 예수를 보기 이전에 예수는 그를 먼저 보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의 뜻이 합할 때에 구원의 큰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삭개오와 온 가정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큰 변화를 그 가정에 가져 오게끔 하였습니다. 이 역사적인 일화에 대해서 몇 가지 꼭 배울 진리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로, 삭개오 같은 이도 예수를 만나 회개하고 구원을 얻었다는 이 사실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삭개오는 그 직업이 세리였습니다. 지금도 세무서 직원들이 칭찬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혹 있는 듯하지만 당시 유대 사회에서 세리라는 직업은 보통 사람으로는 절대로 택하지 아니하는 직업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유대 사람들은 로마제국에 예속된 민족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로마 정부를 미워하였습니다. 자기 민족에게 돈을 거두어 이런 정부에 바치는 세리들은 매국적으로 생각하던 때입니다. 애국심이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민족적 양심의 마비자로 세리들을 다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고 이 세리들은 흔히 그런 기회를 이용해서 자기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또한 토색을 많이 했습니다. 곧 부당한 이득을 얻었습니다. 요사이 말로 부정부패의 공무원이요, 탐관오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질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이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가장 천한 계급을 의미하게끔 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삭개오는 이렇게 돈을 많이 모아 그 당시에는 큰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주택도 아마 고급 주택처럼 매우 호화로웠을 것입니다. 이런 이가 회개하고 구원을 얻으리라고 생각한 이는 아마 당시 여리고 성 안에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주님 자신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부자들에게는 유혹과 시험이 더 많은 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삭개오가 회개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넓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가장 깊은 죄악의 구렁텅이까지 그의 구원의 손은 미칩니다. 사회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나 가장 낮은 계급이나, 빈부귀천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이 어디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은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 심령의 상황이 현재에 어떠한 자리에 있든지 결코 낙심할 것은 없습니다. 내가 지금 현재 어떠한 사회적 비난과 오해를 받을지라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절망할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깊은 죄악과 시험에 빠졌을지라도 낙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를 찾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를 바라볼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주보십니다. 꼭 영접하십니다. 구원하여 주십니다. 새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온 가정이 변화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신 후에 그의 앞에 서서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을 사배 다 갚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삭개오의 참 회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참 회개란 먼저 자기의 죄를 깨달아야 하고, 다음에는 그 죄를 주님께 고백하여야 하며,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다른 이에게 손해를 입혔으면 그것을 보상하는 데 참 회개가 있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여기에 “사배나 갚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곧 보상할 결심을 했습니다. 사 배나 갚는 것은 구약 율법에서 요구하는 사실 이상입니다. 출애굽기 22장을 읽어 보면 거기에 보상에 대한 모세의 율법이 있습니다. 가령 사람이 남의 소나 양을 도적질해서 잡아먹었거나 팔면 그것은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아주라고 했습니다, 죄 사함 받으려면, 양 하나에는 양 넷으로 갚아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도둑질한 것이 살아서 아직 그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물론하고 그저 갑절을 배상하라. 이렇게 규정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삭개오는 평균으로 다 사 배를 갚아 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죄인은 물론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재물로 인한 죄를 지었으면 가령 남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면 부당하게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었으면 참으로 회개하려면 나의 죄로 인하여 다른 이에게 입힌 손해를 반드시 보상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가능하기만 하면 보상해야 합니다. 혹 불가능한 경우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랜 목회 경험에 있어서 이런 실례를 종종 보았습니다. 자기에게 속하지 아니하는 자봉침을 오래 쓰다가 회개하고 그 임자에게 도로 돌려주는 청년도 보았습니다. 어떤 식모는 주인 아주머니의 집에 있는 돈을 조금씩 훔쳐 내서 두었다가 그 후에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그 주인 아주머니에게 돌려준 젊은 여자도 있습디다. 미군 군정청에서 일하면서 안 받을 뇌물을 받았다가 회개하고 그 돈을 돌려주려고 하지만, 그 당사자를 찾지 못해서 많은 고민을 하다가 교회에 연보를 하는 청년도 보았습니다. 서양 속담에 ‘돈이 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 회개는 돈이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한번은 간증 예배를 봅니다. 여러 교우들이 일어나서 하나님께로부터 은혜 받은 것을 간증합니다. 그 예배를 필한 후에 그 목사가 자기 교회에 잘 믿는 어떤 여자 집사를 만나서 으레 그 집사가 간증할 것 같은데 그 저녁에 간증이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남은 다 간증하는데 집사님은 오늘 저녁에 간증을 못했습니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여 집사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아마 목사님은 모를 겁니다. 오늘 저녁에 처음으로 간증한 여자들 세 분 알지요? 그분들이 오래 전에 내 돈을 잘라먹고 지금까지 안 주는 분들입니다. 나는 그 여자들로 말미암아서 많은 손해를 보고 지금까지 아이들 데리고 남 모르는 생활에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무슨 간증을 할 것입니까?” 은혜 받았으면 재정거래가 분명해야 합니다. 옛날 우리 동양에서도 재산을 분명히 해야 군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재정거래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회개한 그리스도인들은 재정거래가 분명해야 합니다. 다른 죄는 다 회개하면서도 아무개는 돈주머니는 아직 회개하지 못했다는 그런 말도 들립니다. 삭개오는 참으로 회개할 뿐더러 그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사회 봉사자가 된 것입니다. 참 회개는 이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들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그의 온 가정에 구원이 이른 것입니다. 여기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그의 부인과 그의 자녀들도 다 구원을 얻은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에 보면 흔히 이렇게 호주가 먼저 회개하고 온 가정이 같이 구원을 얻습니다. 빌립보의 간수가 먼저 사도 바울의 전도를 받고 자기가 믿은 후에는 온 가정이 또한 같이 믿으면서 세례를 받고 기뻐하였다는 기록을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찾아봅니다. 또 어떤 때는 가정의 어머니가 먼저 믿고 온 가정이 함께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역시 빌립보에서 살던 두아디라 성에서 자주 장사를 하던 루디아라고 하는 어머니는 먼저 바울의 전도를 받아서 믿고 그 온 집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며 바울과 그 일행을 자기 집에 영접하였습니다. 참 신앙은 이렇게 온 가정을 감화시킵니다. 온 가정을 변화케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천국이 그 가정에 임합니다. 집이 크든지 작든지 찬송가의 한 구절과 같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됩니다. 내 주 예수 모시게 되면 그 가정이 곧 하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삭개오의 가정에 이렇게 천국이 임하니 그 가정에 행복과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던 그 가정은 존경과 선망의 가정이 된 것입니다. 전에는 남의 것을 약탈하는 악의 소굴이었더니 이런 가정이 변해서 이제는 모든 가난한 이들과 불우한 동포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봉사하는 큰 자선의 근거지로 변한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사실 삭개오의 가정은 불멸의 가정이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의 여리고를 생각할 때에 오직 삭개오라는 이름을 기억할 따름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는 세리요 탐관오리였으나 예수를 찾았습니다. 예수를 중심에 영접하였습니다. 사실 이것이 누구에게나 불멸의 생애의 비결이 아닙니까? 부정과 부패는 먼저 번 대통령 선거 때에도 큰 쟁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의 중대한 문제의 하나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요사이 어떤 신문에 새로 대통령으로 피선된 ‘박 대통령에게 바란다’는 란이 있습디다. 여러분들이 여러 모양으로 여러 말을 하는데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골자는 ‘제발 부정부패를 없이 해주시오.’ 그 말인 모양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무리 측근이라도 그저 도려내 주시오.’ 삭개오와 같은 부정부패 공무원들이 정직하고 깨끗한 공무원이 되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한국의 공무원들 가운데 그동안 삭개오의 죄를 배운 이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 죄를 배우지 말고 삭개오의 회개를 좀 배워야 하겠습니다. 삭개오처럼 오늘날 우리 한국의 공무원들이 참으로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자기의 재산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봉사하며 토색한 것을 사 배는 그만두고 본전이라고 갚아 주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명랑한 사회로 변할 것입니까? 삭개오와 같이 예수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를 찾아야 합니다. 사실은 예수님께서 먼저 찾고 계십니다. 이러한 공무원들의 양심을 예수는 기다린 지 오랜 줄 압니다. 이러한 이들의 이성의 문을 두드린 지도 오랜 줄 압니다. 주님께 나와서 주님을 중심으로 영접하고 변화된 공무원들, 변화된 기업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또한 변화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온 사회와 국가가 변화될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저는 성지를 순례할 때에 여리고에 내려가서 그 도시를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한 작은 고을입니다. 그러나 그 거리 한 옆에 ‘삭개오의 뽕나무’라 이름 불리는 큰 나무가 지금도 하나 서 있습니다. 한국 뽕나무와 같지는 않고 얼른 보면 오동나무 혹은 들메나무 비슷하게 보입디다. 사실 삭개오가 전에 올라갔던 나무인지는 모르지만은 상당히 오래된 나무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나무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는가? 간단히 말하면 이것입니다. ‘삭개오과 같은 세리요 매국적이요 부패한 사람도 이 나무 위에서 예수를 만나 새 사람이 되었다. 변화된 사람이 된 것이다. 그의 가정이 변화되어 새로운 가정이 되었다. 누구나 예수를 믿고 예수를 영접하면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새 가정이 될 수 있다고.’ 삭개오의 뽕나무는 지금도 우리에게 무언의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닙니까? 사실 예수는 옛날 여리고 거리만 지나가신 것은 아닙니다. 살아 계신 주님은 오늘날도 서울의 거리를 지나가십니다. 아니 우리 영락의 뜰에도 걸으십니다. 영락의 뜰의 나무 하나하나가 삭개오의 뽕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살아 계신 주님은 이 시간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중심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간 내 자신이 새로워질 수 있고, 내 가정이 새로워질 수 있고, 내 나라가 새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집을 나가기 전에 이 뜰을 나가기 전에 주를 꼭 만나시고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조용히 머리 숙였을 때에 스스로 내 자신을 살펴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과연 중심에 주님을 영접하였나? 내 가정이 과연 주님을 영접하였나? 스스로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제가 기도하기 전에 중심으로 예수를 영접하시기를 원하는 분, 아직까지 교회 나오지만은 사실 중심으로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분들이 이 시간 꼭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제가 기도하기 전에 ‘내가 참으로 주님을 영접합니다. 이 시간 내 온 몸과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바칩니다.’ 이렇게 꼭 결심하는 분들 한 번 손들어 보세요. 높이 손들어 보세요. 손 내리세요. 기도하십시다. 자비하신 주님이시여, 주님께서는 세리장이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난과 천대의 대상이었던 삭개오를 불러서 주님의 제자를 삼아 주시고, 그 생활을 새롭게 해 주시고 그 온 가정에 축복하여 주었습니다. 주님의 이 사랑을 저희들이 이 시간 믿는고로, 지금 저희들이 손을 들어서 주님을 영접하는 표시를 하였습니다. 주님이시여, 이 시간 우리 마음에 오시고 우리 온 가정에 오셔서 우리 가정 전체가 주님의 나라가 되고, 우리 가정에 천국이 이 시간 임하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영락의 220 구역에 흩어져 있는 4,000여 세대 가정 가정마다 오늘 이 기쁜 어머니의 날,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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