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3:14-15/ 딤전4:6-16/한국 기독교인 자세/한경직 목사
2014-08-27 11:27:57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3장 15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본 디모데전서를 쓰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고자 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할 줄을 아는 것은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뿐이 아니고,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디 가나 어떻게 행할 줄을 아는 것은 매우 필요합니다. 이 시간 기독교인의 자세, 특별히 이 시대에 처한 한국 기독교인의 자세를 잠깐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집에서 옳게 행하려고 하면, 먼저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는 살아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비록 인간이 모이나 인간의 교회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요사이 어떤 못된 사람들의 말과 같이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올시다. 교회는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인 것을 분명히 기억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1절에 보면,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요, 그리스도께서 그 머릿돌이 되셨고, 선지자들과 모든 신도들이, 사도들이 그 기초석이 되었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기둥은 지붕을 받칩니다. 받치고 섭니다. 또 그 터는 그 기둥들을 또한 받칩니다. 이렇게 기둥과 터가 든든할 때에 집은 든든합니다.
이렇게 교회는 진리를 뒷받침하는 거룩한 기관이요, 진리를 수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하나님, 우주, 인간, 구원, 영생, 천국 등의 영원한 진리를 뒷받침하고 수호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관이올시다.
갈라디아서 4장 26절 혹은 히브리서 12장 22절 등을 보면, 교회는 ‘새 예루살렘’ 혹은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임재하시고,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교통하는 거룩한 진리를 표현한 말씀이올시다. 그뿐 아닙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 고린도전서 12장 27절 등에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거룩한 몸이라 하였습니다. 그 뜻은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유기체로써 교회의 일치성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교인들은 그 몸의 지체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29절, 요한계시록 21장 2절 등에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매우 사랑하는 것과 그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올시다. 또한 교회는 신부와 같이 순결해야 하며, 일편단심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고, 그리스도를 봉사해야 하는 깊은 진리를 우리에게 교훈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이오? 교회는 살아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됩니다. 새 예루살렘이올시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이올시다. 그리스도의 깨끗한 신부인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교인에 대한 성서의 교훈을 배워서 교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먼저 우리가 어떻게 교인이 되었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셨습니까? 로마서 8장 30절을 읽어 보세요. 거기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주의하여 들으세요.
“미리 정하신 그들을” 곧 예정을 의미합니다. 미리 택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예정으로 된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분명한 교훈입니다.
다음은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하였습니다. 곧 하나님의 성소(聖召), 거룩한 성령을 통한 부름을 의미합니다. 시기와 형편은 다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불렀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교인이 된 것입니다.
다음에는 “그들을 의롭다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성령의 감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고, 그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서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돼요?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 뜻은 여러 가지로 이해할 수 있는 줄 압니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자녀가 되었으면 또한 후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후사, 곧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어서 그리스도와 같이 모든 축복을 금생과 내생에 받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의 한 돌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인 하나하나로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또한 쌓아올려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전의 돌이 된 것이 또한 우리에게 얼마나 영광이 됩니까? 그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거룩한 새 예루살렘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곧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비록 이 죄 많은 세상에 우리의 몸은 살지만, 지금 우리의 심령은 실상 하늘나라의 시민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되었습니다. 깊은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하나는 온전히 그리스도에게 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고 하는 큰 포도나무에 우리 하나하나는 가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심오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와 우리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큰 영광이요,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또 우리 하나하나는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인들은 성경에 보면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거룩한 무리’라고. ‘빛’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빛의 아들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소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부패한 사회를 깨끗게 하는 소금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이 이러한 거룩한 교회의 거룩한 성도 곧 한 분자가 되었은즉,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되겠는가? 특별히 70년대에 처한 한국 기독교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되겠는가?
지금 말하는 중에 아마 제가 어떤 말보다도 여러 번 ‘거룩’이라고 하는 말을 사용한 줄 생각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거룩한 교회, 성도 곧 거룩한 무리, 우리는 먼저 이 ‘거룩’한 말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거룩’이라고 하는 말의 히브리말의 근본 뜻은 ‘베인다’고 하는 뜻입니다. 칼로 무엇을 베인다고 하는 뜻입니다. 곧 갈라지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한 구별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 갈라 내어서 하나님께 바침이 되었다고 하는 뜻입니다.
가령 이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거룩한 집’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예배당을 지은 돌이나 나무가 다른 돌과 나무와 다르다고 하는 뜻은 아닙니다. 조금도 다름이 없지만, 이 집은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히 구별되어서 하나님께 바친 바가 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언제나 성전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예수살렘 성전에서 팔고 사는 무리들을 내어 쫓아서 성전을 깨끗이 하였습니다. 팔고 사는 행위가 다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전 뜰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까닭은 성전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만민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별된 까닭입니다.
이 진리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곳에서는 혹 용납될 수 있으나, 교회나 기도하기 위해 성별된 기도원에서는 용납되지 못할 행동들이 많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인들을 ‘성도’ 곧 ‘거룩한 무리’라고 합니다. 그 뜻도 우리 교인들은 거룩히 구별되어서 하나님께 바친 바가 되었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아니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상관이 없으나, 우리 교인들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피할 것을 피하고 좇아갈 것을 좇아가라고 권면했습니다. 육체에 속하는 모든 것은 피해야 합니다. 육체에 속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갈라디아서에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을 짓는 것과 분리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이것들을 성도들은 언제나 피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반면에 성도들은 언제나 성령에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권고합니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께서 우리 교인들에게 요구하십니다.
더욱이 이 70년대에 사는 한국 기독교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겠는가? 지금 한국은 기독교를 가장 미워하는, 북한에 도사리고 있는 공산도배들이 호시탐탐 우리 남한의 교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해방 이후에 수없이 많은 교인들을 북한과 남한에서 학살하였습니다. 지금 북한에는 보이는 교회는 아주 전멸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남한에 있는 교회에도 비밀히 침투해서 교회를 교란시키고자 갖은 모략을 다하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잊지 아니해야 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교인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되겠느냐? 우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원수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이러한 때에 방심과 해이한 정신과 생활 상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습니다. 정신없이 흥청거리는 풍습은 무엇이든지 버려야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성경은 경고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선한 싸움을 싸워라” “죽도록 충성하라” 성경은 외칩니다.
또 지금 남한의 실정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 10년간 경제의 발전을 다소 이루었지만, 현재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부정과 부패를 비롯해서 빈부의 격차와 타락한 기풍과 범죄의 증가 등으로 다 같이 염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정 아래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독교인들의 자세가 무엇일까? 먼저 우리 하나하나의 사생활로써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성결, 정직, 근면, 검소, 절제, 청렴, 책임감 등으로 가정에서나 직정에서나 어디에서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자로서 우리 동포 중에 가장 불우한 이들을 봉사하고, 자유와 사회의 정의의 기수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서 담대히 이 사회를 옳게 만들기 위하여 분투해야 될 것입니다. 이런 투사가 되려고 하면, 우리는 남의 눈의 티를 보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보고, 나의 생활로써 언제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보다도 우리 기독교인의 생활은 철저한 절제와 검소와 청렴과 강직과 봉사와 희생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문자 그대로 이기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할 때입니다.
일전에 어떤 잡지를 보니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캔자스시티에서 신문기자와 회견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아덴과 로마에 가보니 옛날 헬라와 로마의 문명은 지금 외롭게 여기저기 선 기둥만 몇 개 남았더라고. 그러면서 계속해 하는 말이, 워싱턴에 세워진 많은 건물들의 많은 기둥들을 볼 때에 옛날 그 기둥들이 연상이 되더라고. 이렇게 그는 오늘날 미국의 문명도 그들이 경제적으로 부하여짐에 따라서 점점 퇴폐하여 가는 징조를 경고한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유행이나 풍속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다 기독교에서 온 것도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서 퇴폐한 풍조를 결코 받아들여서는 아니됩니다. 팝송이니 락송이니 댄스니 히피니 하는 것은 성경에서 온 것은 아닙니다. 이것들은 오히려 서구문명을 타락케 하는, 몰락케 하는 퇴폐한 풍조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는 경건하고 깨끗한 청교도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이름은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실은 성경대로 믿지도 않고 성경대로 살지도 않고, 오히려 세상과 야합하는, 세상을 본받아 사는 퇴폐한, 소위 사이비 기독교들이 또한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영락 교인들은 어떠한 일을 택하겠는가? 순수한 성경을 중심한 신앙과 생활입니까, 혹은 세상과 야합한 사이비 신앙과 거기에 따르는 생활입니까? 그리스도입니까, 세상입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직까지 분명한 결단이 없는 분은 오늘 아침에 이 결단을 내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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