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7:1-10/ 한 애국자의 결심 / 한경직 목사
2014-08-27 10:19:59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 7장 10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요, 또한 율법에 익숙한 학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일찍이 요시야 왕 때에 당시에 큰 개혁운동을 일으킨 유명한 대제사장 힐기야의 증손이 됩니다. 여기 에스라 7장에 그의 족보를 아론에게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상 에스라의 위치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중흥의 중심 역할을 한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잡혀가 70년간의 포로생활을 한 후에, 하나님의 크신 도우심으로 해방을 받아서 약 4만여 명이 주전 536년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지도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곧 성전 짓기를 시작하였지만,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과 다른 족속들의 방해로 15년간이나 중단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스가랴와 학개의 노력으로 공사는 다시 계속되어 작은 규모이지만 성전짓기를 마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뚜렷한 지도자가 없으므로 성지에 돌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은 날로 쇠미하여졌고, 특별히 그들을 둘러싼 많은 이교 민족의 영향을 받아서 그들의 사회적, 종교적 생활은 실로 위기에 직면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당시 파사에 있던 에스라가 동지를 모아서 예루살렘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돌아간 지 약 80년 후였습니다. 에스라의 노력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여호와를 중심한 신앙은 다시 부흥하게 되었고, 사회는 정화되었으며, 사기는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어서 장차 온전한 정치적 독립의 정신적인 기초를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민족중흥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러한 사람이 되었으며, 이러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는가? 오늘 읽은 에스라 7장 10절은 그 비결을 보여줍니다. 그는 파사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에 확고한 결심이 있었습니다. 이 구절을 다시 읽을 때 자세히 들어보세요.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그 결심은 간단히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율법을 연구하기로 하였습니다. 연구. 둘째는 그 율법을 준행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실행. 셋째는 그 율법을 자기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하였습니다. 교육. 다시 말해서, 에스라는 연구, 실행, 교육이라는 3대 결심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이 한 애국자의 결심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각성과 결심을 또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그대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통 제사장이 아니고, 학사 에스라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하나에게 아주 중요한 것은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연구 곧 공부함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34장 16절에는,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신명기 17장 19절에도, “율법책을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니라”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옆에 두고 항상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시편 1편 2절에도 복 있는 사람을 설명할 때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우리 개인개인의 신앙 생활에 절대로 필요합니다. 왜? 성경은 곧 생명의 양식이 되는 까닭입니다. 영적으로 일용할 양식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올시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기는 데 절대 필요합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 곧 마귀의 화전을 소멸하는 무기가 되는 까닭입니다. 우리 주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에 성경의 말씀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인생행로를 옳게 가는 데 절대로 필요합니다. 시편의 말씀과 같이,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는 까닭입니다.

성경은 거울과 같아서 이 성경 가운데서 내 자신을 바로 보고, 내 허물을 깨닫고, 죄를 알아서 회개하게 하고, 또 이 성경 가운데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항상 읽고 공부하면 우리의 신앙은 자연히 장성합니다.

전에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디 엘 무디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처음에 믿음을 더 얻기 위하여 기도만을 힘썼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 후에 나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온다’는 성경의 구절을 읽고 더욱 성경을 읽고 공부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했더니 믿음은 자연히 장성하게 되었습니다.” 꼭 그렇습니다.

또 교회 역사를 보면 성경을 연구하는 가운데서 모든 위대한 신앙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은 오직 당시에 수도사로 있던 마틴 루터가 성경을 연구는 가운데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진리를 새롭게 깨닫게 됨으로 이 종교개혁에 봉화가 일게 된 것입니다. 19세기 이후에 세계선교 운동도, 윌리엄 케리니, 허드슨 테일러니, 리빙스턴 같은 이들이 성경을 읽는 가운데서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새롭게 들음으로써 세계적 복음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면서부터 에큐메니칼 운동이 일어난 것도 성경을 연구하는 가운데 ‘오직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다. 교회는 하나이다.’라고 하는 이 진리를 새롭게 깨닫는 가운데서 교회 일치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최근 수년 내에 일어난 교회의 사회 참여, 혹은 사회정의 운동도 역시 성경을 공부하는 데서 곧 “공의를 물같이 흐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새롭게 듣는 데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에스라는 자기 자신이 먼저 성경을 연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마 우리 교우 가정에는 누구나 성경 한두 권은 다 가지고 있는 줄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은 그 성경을 얼마나 읽습니까? 얼마나 연구합니까? 성경책 위에 먼지는 앉지 않았습니까?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교인들의 성경책 위에 앉은 먼지를 일시에 털면 아마 해가 안 뵐 거야.”

여러분 가정에는 그런 성경 없습니까?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을 읽고 공부하기로 이 성서주일에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애국자 에스라의 첫째 결심을 오늘 아침 우리도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는 둘째 결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연구할 뿐더러 그대로 준행하기로, 실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여 성경의 진리를 아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식에만 그치면 안 됩니다. 옛날 우리 동양에 내려오는 말대로 ‘서자서 아자아(書自書 我自我)’ ‘글은 글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고’,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성경 말씀을 듣는 것은 좋지만, 속담의 말대로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되서는 안 됩니다. 말 귀에 스쳐가는 동풍처럼 지나만 가면 안 됩니다. 사실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은 그대로 행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26장 16절에, “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 1장 8절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읽고 그대로 다 행하면, 우리의 길도 평탄하게 됩니다.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도 산상보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지만 내 말을 듣기는 들어도 행치 아니하는 사람은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경고를 내렸습니다. 야고보 장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행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이대로 행하기를 힘씁니까? 세상의 무엇보다도, 물질보다도, 정욕보다도, 허영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까?

또 둘째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행하기를 힘씁니까? 사랑은 먼저 가정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족을 사랑합니까? 남편 된 여러분들, 아내를 사랑합니까? 아내 된 여러분들, 남편을 사랑합니까? 시어머니 된 여러분들, 며느리를 사랑합니까? 며느리 된 여러분들, 시어머니를 사랑합니까?

사랑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피차에 서로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화해, 화평하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을 굳게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단결할 줄 압니까?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봉사를 힘씁니까?

성경은 성결, 정직, 충성, 근면, 절제, 그리고 온유와 겸손의 생활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이대로 행하기를 힘씁니까? 10계명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열 가지 계명들을 양심적으로 지키기를 매일 힘씁니까?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행하기를 힘씁니까?

바로 며칠 전에 박 대통령께서는 비상사태를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한국이 직면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정부와 국민이 이러한 사항에 대응할 만한 생활과 의무를 촉구하기 위함인 줄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태 아래에서 우리의 생활이 어떠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읽고, 그대로 행하면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하였습니다. 현 시국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대적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안보 문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대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범사에 근신해야 합니다. 말도 삼가고, 심지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노는 것도, 모든 일에 근신해야 될 줄 알아야 합니다. 유언비어에 속지 아니해야 하겠고, 모든 생활에 절약과 검소와 절제를 다하여 사치풍조나 퇴폐풍조나 온갖 사회풍조를 해이하게 하는 행동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이러한 시국에 있어서 먼저 솔선수범해야 될 줄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솔직하니 가장 쉬운 것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제언할 마음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러한 때에 꼭 우리 가정에서 혼식을 실행해야 될 줄 압니다. 잡곡을 꼭 섞어 먹어야 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오실 때에 잡곡 꼭 잡숫고 오신 분 몇 분이나 되십니까? 손 한번 들어볼까요? 여러분, 양심적으로 대답해 보세요.

우리 지금 한국의 식량사정이 쌀 때문에 500억이니, 1억 달러가 넘는 외화를 지금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잡곡을 같이 먹는다고 영양이 부족한 건 절대 아닙니다. 또 사실 맛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먹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혼식이 더 맛있습니다. 이거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닌데, 우선 우리 믿는 이들이 이러한 시국에 있어서 실행해서 온 국민에게 모범이 되어야 됩니다.

또 그리고 둘째는, 특별히 해방 이후에 다방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가정, 사무실 뭐 어디서나 커피 잘 마십니다. 또 홍차 많이 마십니다. 사실 이것은 해방 후에 특별히 우리 한국에 들어온 사치풍조 가운데 사치한 음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옛날 할아버지야 언제 커피 마셨습니까? 우리 한국 사람은 옛날부터 그저 구수한 숭늉을 마시고 살았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것 마셔야 되겠으면 국산품 생강차든지 또 우리 좋은 인삼차 있지 않아요? 아무래도 이런 걸로 바꿔야겠습니다. 국산차로 바꿔야 합니다. 사실 커피 때문에 수백만 달러의 외화가 매년 소비되는 것입니다. 이럴 것 무엇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혹 아실 줄 모르시겠지만, 우리 교회 안에서는 이런 커피는 다 전폐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도 어디에서나 꼭 우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러한 시국일수록 철저한 절제생활이 필요합니다. 어떤 신문사에서 조사해본 결과는 금년 1월부터 9월까지 우리 남한에서 술을 소비한 양이 130만 킬로인데, 그것은 얼마나 많은가 하니, 서울 시민의 1년간 수돗물 사용량과 같다고 합니다. 아, 이만큼 술을 마셨단 말이야. 그런데 그 금액이 얼마인가 하니, 418억 2천만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러분, 술 뭘 가지고 만드는지 아십니까? 곡식 가지고 만듭니다. 쌀로 만듭니다. 식량이 부족해서 외국에서 들여다 먹으면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정신 좀 차려야 할 때입니다.

또 보세요. 금년 1월부터 9개월간에 담배는 얼마나 피웠나? 그 담배 피운 개수는 380억 개비를 피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놈들을 다 이렇게 이어놓으면 그 길이가 얼마나 긴가 하니 서울과 부산간을 2,900번 왕복할 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담배를 많이 피웁니다. 그 값이 얼마나 소비가 됐는가 하니, 597억이라고 합니다. 담배 심는 밭에 곡식을 심었으면 곡식이 얼마나 생산되었겠거늘 쓸데없는 담배를 심어서 전부 불태워 버리고 이게 무슨 짓입니까?

민족과 나라를 사랑한다고 하면 좀 깊이 생각할 만한 문제인 줄 생각합니다. 이런 쓸데없는 소비를 그냥 묵인하면서 무슨 생활의 절제를 말합니까? 특별히 이러한 시국에 철저한 금주단연운동이 필요한 줄 생각합니다. 이것은 먼저 정부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할 줄 압니다.

이조 역사를 읽어 보니 이성계씨가 새로 나라를 건설할 때에 금주령을 반포했습니다. 오늘날 민족중흥을 부르짖으며 새 역사를 창조한다고 하면서 왜 이런 점을 생각지 아니합니까? 그리고 신문에 본즉 이와 같은 시국에서도 무슨 꼬꼬클럽이니 나이트클럽이니 하는 곳에서는 밤새도록 소란을 피운다고 합니다. 이것이 비상사태 아래 용납될 수 있어요?

성경은 근신하고, 깨라고 합니다. 정부로도 근신하고 깨어야 하고, 국민도 근신하고 깨어야 합니다. 나부터 먼저 깨어서 내 책임을 바로하고, 이 나라를 바로 지키고 건설해야 합니다. 자립, 자급, 자위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근신하고 깨어서 일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특히 이런 때에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실행해서 범사에 솔선수범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에스라의 셋째 결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가 성경을 읽고 행할 뿐만 아니라, 이 성경의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신명기 6장 6절 이하에 보면,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하였습니다.

먼저 이 말씀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학생과 청년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이웃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전 민족에게 성경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각각 재능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예술가는 그 예술을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고, 음악가는 그 음악을 통해서 같은 진리를 가르치고, 문학가는 문학을 통해서, 문필가는 문필을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우리 민족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상담자는 상담을 통해서, 글을 쓰는 사람은 문서를 통해서, 방송하는 사람은 방송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에 교회의 교육적인 사명이 얼마나 중대한지, 우리 믿는 사람의 교육적인 사명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 교회에서도 교회학교, 주간학교, 유치원, 야간 성경학교, 성경통신과, 여자신학교, 영락중학교, 영락상업고등학교 등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은 그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각각 내 민족의 교사가 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최선의 방법은 물론 내가 먼저 실행하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산 편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락교인이 금년에 한 사람씩만 가르친다고 하면, 그만큼 우리 민족 가운데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르치기로 결심하십시다.

이 성서주일에 애국자 에스라의 3대 결심을 우리의 결심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성경을 연구하는 것, 둘째는 성경대로 살기로 하는 것, 셋째는 성경을 가르치기로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시여, 이 시간 저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우리 하나하나가 성경의 말씀을 연구하며 그대로 준행하여 살며 또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이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결심을 하고 이 거룩한 자리를 떠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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