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2:1-13/ 영적 분별력 / 한경직 목사
2014-08-27 09:58:00

먼저 하나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또 여러분의 기도에 대해서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나간 한 달 동안 미국에 있는 네 큰 도시를 지나왔습니다. 시카고, 피츠버그, 뉴욕, 나성(로스앤젤레스) 가는 곳마다 우리 영락 교우들을 많이 만나서 반가이 참 성도의 교제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또 그들이 다 여러분에게 안부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저 이 시간 이렇게 공통으로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드립니다. 미국에 있는 여러분의 자녀들, 또 여러분의 친척들은 공부하는 이는 공부도 잘하고, 또 사업하는 이는 사업도 잘하니까 아무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일날은 흔히 오전에는 미국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떤 주일은 네 번까지 설교한 주일도 있습니다.

나성에 오니까 거기 알케지아 제일 장로교회에서 설교를 하도록 다 예정을 했는데, 그 교회에서는 우리 교회와 같이 아침 예배를 3번 봅디다. 그런데 보는 시간은 조금 달라요. 8시, 9시 25분, 11시 5분. 아마 이 세 차례 예배를 다 합해서 한 3,000명가량 모이는 큰 교회입니다. 물론 나성은 서울과 달라서 지금도 잔디가 푸르고 꽃이 만발한 곳입니다. 또 8시니까 물론 다 밝습니다. 그런데 그 8시 예배에는 성가대는 없고, 독창하는 이만 있어서 독창을 해요.

그런데 내가 오늘 아침에도 특별히 느끼는 것은, 이렇게 겨울 아침 어둡고, 이렇게 눈비 내리는 이런 아침에 우리 임마누엘 성가대원들이 이렇게 가득히 나와서 하나님께 찬송 드리는 것을 볼 때에 참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 청년들의 그 신앙과 열심을 세계에 과시하는 줄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읽은 성경 말씀 가운데서 로마서 12장 1절과 2절, 제가 한 번 봉독할 때에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는 기독교 신학의 중심이 되는 서신이올시다. 1장으로 11장까지는 하나님, 인간, 죄, 구원의 깊은 진리를 서술했고, 12장부터는 이 진리를 믿으므로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의 실제 생활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12장 1절과 2절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온전한 헌신과 마음의 변화로 새로운 생활로써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그 기쁘신 뜻을 바로 분별하는 것은 바른 신앙생활의 첫 단계가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7절에도 이런 권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이해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1장 9절에,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옛날 한 시인도 시편 143편 10절에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옵소서” 오늘 아침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영적 분별력에 대해서 성경의 교훈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범사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개인생활에도 그러하고, 교회생활에도 그러하고, 국가생활에도 그러하고, 세계 문제에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개인으로나, 교인으로나, 국민으로서나, 세계인으로서 범사에 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그 뜻대로 순복할 때에 참된 행복과 하나님의 축복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우리 동양에는 ‘순천(順天)’이란 말이 있고, 또는 ‘역천(逆天)’이란 말이 있습니다. 곧 하늘에 순하여 살 수도 있고, 하늘에 거슬러 살려고 애쓸 때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거슬러 행하여 무슨 옳은 일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때때로 이러한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회개하기 전의 생활은 바로 하늘을 거스르는 이러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 나타나셔서 사도 바울을 부르실 때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말씀하시면서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가시채를 뒷발질하듯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살려고 하는 이들은 바울만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분별력은 개인생활에나, 교회생활에나, 국가생활에나, 세계 문제의 해결에도 매우 필요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바로 살펴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거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아무리 문제가 복잡하고,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우나, 오직 하나님의 뜻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의 뜻을 바로 찾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기묘합니다.

우리는 이 점에서 그리스도의 생활을 잠깐 바라보기로 하십시다. 그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그의 생활 원리였습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에,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50절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에서 ‘뜻’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기도하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는 최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바라보면서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신 최종의 말씀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시옵소서”입니다. 그의 일생은 오직 아버지의 뜻을 찾아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삶에서나 죽음에서나, 살든지 죽든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깊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곧 우리 신자의 생활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유일의 길이요, 우리가 참으로 축복을 받는 오직 하나의 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는, 바로 이해하는 영적 분별력이, 식별력이 필요합니다. 이점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과 2절에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제가 그 두 절을 다시 읽을 때 들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는가? 오늘 본문 다시 읽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곧 전적으로 먼저 헌신하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에서 둘째는 온전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 분별력에 대한 두 가지 전제 조건을 명시합니다. 첫째는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요, 둘째는 마음이 새로워져서 온전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먼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요? 구약을 읽는 이는,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짐승을 잡아서 곧 죽은 제사를 제물로 드린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합니다. 우리는 다시 그런 제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그 몸으로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를 위해서 속죄의 사업을 필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그런 제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령한 의미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릴 의무는 있습니다. 이것이 곧 영적예배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서 예배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 일상생활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곧 산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는 가정에서 살림을 하는 것도,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것도, 상점에서 장사를 하는 것도,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는 것도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예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온전한 헌신이 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옳게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헌신하는 이에게는 그의 생활을 지배하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정열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고자 하는 일편단심이올시다.

둘째는 전적으로 헌신한 이는 언제나 최대의 봉사를 할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작은 봉사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과 인간에게 최대의 봉사를 할 수 있을까? 항상 그 길을 찾는 것입니다.

셋째는 순종이올시다. 하나님의 뜻이면 물이나 불이나 가리지 않고, 그저 순종하려는 결심이올시다. 이러한 정신, 이러한 결심, 이러한 일편단심이 있는 이에게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보여집니다. 영적분별력은 온전한 헌신에서 오는 것을 먼저 기억하십시다.

둘째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곧 온전한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마음의 변화입니다. 마음이 변화되어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는 이 세대의 풍조를 물론 따르지 않습니다. 온전히 변화하여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벌레가 변화하여 나비가 되어야 모든 것을 바로 살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온전히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보고,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변화된 사람의 새로워진 마음은 어떠한 마음일까?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올시다.

변화된 마음의 특색도 또한 몇 가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온유한 마음이올시다. 변화된 마음은 부드럽습니다. 잔잔합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명랑한 달빛이 분명하게 비춥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유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밝히 비춥니다. 아집, 고집, 선입주견(先入主見 선입관), 독선으로 가득 찬 마음에 하나님의 뜻이 바로 비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의 첫째 특색은 이 온유한 것입니다. 마음이 온유해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또 주님의 말씀대로 이러한 이가 결국은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의 둘째 특색은 겸손이올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시며, 그런 이에게 그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합니다. 교만, 불손, 요두전목(搖頭轉目 머리를 흔들고 눈을 굴리면서 몸을 움직인다는 뜻으로, 행동이 침착하지 못함을 이름)하는 마음 속에 하나님의 뜻이 바로 나타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의 허물, 나의 죄, 나의 부족을 깨닫는 마음이 꼭 필요합니다. 남의 허물보다 내 허물을 먼저 보는 겸손한 마음 위에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의 셋째 특색은 진실인 줄 생각합니다. “나는 진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진실합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허위, 기만, 위선이 가득 찬 마음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실해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습니다. 진실이 진실을 찾습니다. 혹 학식은 좀 부족하다고 해도 진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것입니다. 물론 온전히 변화된 마음에는 언제나 성령이 같이 하십니다. 따라서 그 마음에는 성령의 지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온전히 변화된 새로워진 마음은 또한 성령의 지도로써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범사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우리는 최대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영적 분별력이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온전한 헌신과 온전한 마음의 변화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데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한마음 한뜻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우리 하나하나가 온전한 헌신과 변화된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대로 거기에 순종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범사에 우리는 ‘역천자’가 되어서는 아니되고, 언제나 ‘순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이것만이 개인으로나, 교회로나, 국가로나 축복을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기도하십시다.

아버지시여, 이 시간 저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우리 하나하나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며 마음이 새로워져서 변화를 받아, 무슨 일에나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바로 분별해서 거기 순종하는 가운데, 실수 없이 우리의 신앙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릴 수 있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은혜, 오늘 아침 우리 하나하나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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