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2:20-30/ 예수를 찾는 심령들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36:38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요한복음 12장 21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시던 마지막 주간에 된 일입니다. 명절에 곧 유월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헬라 사람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인 빌립에게 와서 하는 말이,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이렇게 요청하였습니다. 빌립이 이 말을 듣고 안드레에게 고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같이 우리 주님께 나와서 이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 우리 주님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가까웠다고 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곧 우리 주님은 헬라 사람 몇이 그에게로 나아옴을 보시고 장차 많은 이방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올 것을 미리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열매는 자기가 먼저 땅에 떨어지는 밀 한 알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이루어질 것을 또한 신령한 눈으로 보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헬라인들의 말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당시 헬라인들은 지성인의 대표들이었습니다. 라틴 민족이 로마제국을 건설하고 정치적으로 대제국을 통치하였으나, 문화는 헬라 문화요, 당시 사용된 말도 헬라어였습니다.

헬라의 고도(古都) 아덴(아테네)은 당시에도 철학, 문학, 과학, 예술의 본향이었고, 찬란한 고대문명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새것을 탐구하는, 요샛말로 과학적 정신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헬라인들이 어찌하여 유대인들과 같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왔으며, 더욱이 예수를 보고자 원하였는가? 한마디로 그들의 찬란한 문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심령 깊은 속에는 영적 기갈, 곧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읽으면, 바울이 처음으로 아덴에 가니 문화의 도시 아덴에는 뜻밖에도 우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현상을 보고 더욱 분격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들 지성인들이 그렇게 많은 우상을 만들어 세웠던가? 그것은 또한 그들의 영적인 기갈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론 그 우상숭배에서 기갈의 만족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짠 바닷물은 마실수록 더욱 목말라지는 것처럼, 우상숭배는 더욱 그들의 기갈을 심하게 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기갈을 멈출 수 있는 참 종교,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예수님을 보고자 한 것입니다. 참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예수를 찾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빌립에게 와서, “선생이여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간청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지금 20세기에 사는 현대인들은, 특별히 지성인들은 고대 헬라인들과 그 영적인 상태가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됩니다.

현대인들이 오직 과학을 통하여 물질만을 연구하며 물질만을 탐구하는 중에 문자 그대로 물질문명의 세기를 만든 것이 사실입니다. 원자시대, 우주시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 중에 많은 수가 그 자신의 영혼을 상실하였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대신 현대인들도 우상을 많이 만들고 또한 우상을 많이 숭배합니다. 어떤 이들은 물질, 곧 돈을 우상으로 섬깁니다. 어떤 이들은 지식을 우상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어떤 이는 향락을, 어떤 이는 권력을, 어떤 이는 허영을, 이렇게 온갖 우상을 만들어 섬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상숭배에서 영적 기갈을 멈출 수는 물론 없습니다. 그 심령의 기갈은 더욱 심하여집니다. 그들 심령 깊은 속에는 고독, 불안, 공포, 좌절감, 죄책감으로 가득합니다. 물질문명이 가장 발전된 사회에서 소위 히피족이 일어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이 현대문명에 반항하여 머리도 깎지 아니하고 수염을 기르며 허름한 옷을 입고 맨발로 원시시대에 돌아가려고 하는 그 이면에는, 그들의 깊은 심령 속에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번민, 현대문명에서 느끼는 공허감, 좌절감 등 극단적인 심령의 기갈이 있습니다.

그들의 깊은 심령 속에 무엇을 찾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들 자신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최근에 소식을 들으면 이들 가운데서 청년 신앙운동의 하나인 이른바 예수혁명에 가담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줄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그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아 갈급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뵙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이 영적 기갈이 참 종교에 대한 반항과 증오와 핍박으로도 나타납니다. 로마서 7장에 19절 이하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기의 과거 경험을 기록하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이렇게 그는 탄식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를 알기 전에 자기가 당한 고통과 번민입니다.

그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 아무리 힘썼으나 항상 실패하였습니다. 여기에 그의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번민과 고통, 곧 그의 영적 기갈은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대하여 반항과 증오와 핍박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믿기 전에 그렇게 믿는 이들을 핍박한 것은 사실은 그의 영적인 기갈의 한 표현이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핍박하던 이가 믿게 되면 더 열심으로 믿고 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반대의 깊은 속에는 영적인 기갈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현대 공산당들이 기독교를 핍박하는 그 이유도 그들의 영적인 기갈의 한 표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도 그 핍박을 통하여 “우리도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는 부르짖음인지도 모릅니다.

금번 싱가포르 교역자수양회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11개국에서 모였습니다. 나는 그들을 통해서 여러 나라의 사정을 좀더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태국에서 1주간 집회를 하면서 전과 달리 많은 청년들과 학생들이 새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주님 앞에 몸을 바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찾는 기갈한 생명이 수없이 많습니다.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는 이 은은한 음성은 세계도처에 사무칩니다. 특별히 이 삼천리 강산에 사무칩니다.

우리가 이 음성을 듣습니까?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기갈한 심령들의 이 부르짖음을 우리가 듣습니까? 그러면 이 음성을 듣는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빌립과 안드레와 같이 이들을 예수께로 인도할 수 있을까? 참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이들을 인도할 수 있을까?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 몇 가지 길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먼저 우리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 곧 재능을 주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옛날로부터 문서를 통해서 예수를 널리 소개하였습니다. 마태나 마가나 누가나 요한 같은 이들이 일찍이 붓을 들어서 복음을 기록해서 널리 예수를 보여준 것입니다. 지금도 이 방면에 은사를 받은 이들은 문서를 통해서 글을 통해서 예수를 보여줄 사명이 있습니다. 기독교 문학가, 기독교 시인, 기독교 소설가 등 많은 청년 기독교 문학자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또 옛날부터 예술 방면에 은사를 받은 이들은 그 예술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보여주었습니다. 호프만이니 다빈치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예술가들이 역사를 통해서 지금까지 그 예술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를 또한 힘쓴 것입니다.

또 음악에 은사를 받은 이들은 음악을 통해서 예수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헨델이니 베토벤 같은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한국에도 수많은 기독교 음악가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고대합니다.

그밖에 성극이나 기타 어떤 방면에 재능을 받았든지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 재능을 통하여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를 보여줄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로 받은 바 특별한 은사가 무엇인가? 그 은사를 찾아서 복음전도에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누구나 믿는 이들은 그들의 인격과 성품과 생활을 통하여 예수를 보여주도록 힘을 쓸 의무가 있습니다. 마음의 등잔 속에 믿음의 불이 켜져 있으면 빛은 자연히 발할 것입니다. 산 꽃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산 믿음에는 향기가 나타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활의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우리의 생활을 조심하여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는 참된 신앙생활로써 그리스도를 무언중에도 보여줄 수 있는, 생활의 높은 수준에까지 도달하도록 힘을 써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좀더 심각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옛날 스데반과 같이 우리의 죽음을 통하여서도 예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스데반은 그가 순교할 때에 그의 얼굴이 천사같이 변하였고, 그를 돌로 치는 이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함으로써 그의 죽음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울의 회개의 뒤에는 이와 같은 스데반의 죽음을 통한 간증이 숨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우리 교우 가운데서도 많은 성도들이 그 최후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를 보여주는 거룩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망으로 가득 찬 경건한 죽음은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주를 은연한 가운데 보여주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본 교회 한 여신도는 동해안을 여행하다가 객지에서 해산을 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그 남편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우리 집 아무 곳에는 십일조 주머니가 있으니 그것을 모두 교회의 헌금으로 바쳐 주시오.” 둘째는 “그 아무 서랍에는 여전도회를 위해서 내가 특별히 준비하여 둔 봉투가 있으니 그것을 그 여전도회에 전해 주시오.” 그리고 셋째는 “우리에게는 딸은 몇이 있으나 아들은 일곱 살 난 애 하나밖에 없으니 이 아들을 하나님께 바쳐서 앞으로 목사가 되게 꼭 길러 주시오.”

우리가 다 언젠가는 한 번 이 세상을 떠납니다. 특별히 노인들은 참 우리가 삶을 통해서도 예수를 남에게 보여줄 뿐더러, 죽음을 통해서도 보여줄 수 있기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넷째는, 우리 하나하나가 다 안드레가 되어야 합니다. 안드레는 예수를 만나자마자 곧 그의 형 시몬을 예수님께로 데려온 분입니다. 찬송가 한 구절과 같이, “천사같이 말 못하고 바울같이 못하나 내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 금번 빌리 그래함전도대회에는 우리가 꼭 안드레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빌리 그래함과 같이 설교는 못하지만은 내 친척, 내 친구들을 몇 사람은 데리고 올 수는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들어오실 때에 이 푸른 카드 다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이 카드를 자세히 읽으시고 꼭 이대로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보면 여러분이 인도할 만한 이들의 이름을 적는 란이 있습니다. 여러 친척이나 여러 친구 가운데 아직 안 믿는 이, 그러나 믿을 만한 소망이 보이는 이들을 몇 사람 적으세요. 적어도 세 사람 이상쯤 적으세요. 그리고는 이들을 위해서 아직도 한 두어 달 그 대회가 남았는데 계속해서 매일 기도하세요. 그리고 어떻든지 이들과 만날 기회를 좀 만드시고, 할 수 있는 대로 친절히 하며 가까운 친구가 되세요. 그러다가 이다음 대회 때에는 이들을 꼭 5?16 광장으로 인도해 같이 오세요.

이번에는 좀 모시고 오시기가 좀 쉬울 겁니다. 왜 그런가 하니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 오시고, 또 이렇게 거창한 모임이 되니까 한번 구경을 하기 위해서도 따라옴직 합니다. 그러니까 또 여러분께서 적어도 서너 사람 이상 기록하고, 두 달 동안이나 기도하면 아마 세 사람 가운데 암만 못 잡혀도 한 사람은 잡힐 거예요. 꼭 이렇게 합시다.

제가 이번 싱가포르에 갔다가 돌아와서 신문을 보니 우리 정부에서 3대 시책을 발표했는데, 첫째는 국가 보위, 둘째는 경제 발전, 셋째는 정신 혁명, 이 3대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얼마나 적절한 시책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대로 꼭 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다 필요한데, 그 가운데서 제일 필요한 것은 제가 보기에는 정신 혁명입니다. 그런데 이 정신 혁명을 이룩하는 데는 누가 우리 사회에서 이 책임을 질 것입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져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져야 합니다. 제가 기도하고 바라는 것은 이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야말로 우리 민족 전체의 정신혁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하고, 협력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는 간절한 영적 기갈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여기 앉은 우리 하나하나가 안드레가 다 되어서 이들을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이 축복을 다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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