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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5:14-30/ 달란트 받은 대로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25:23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마태복음 25장 15절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읽은 말씀은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달란트는 옛날 금 혹은 은의 중량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성경 번역에는 금 한 냥쭝, 두 냥쭝, 닷 냥쭝이라고 번역하였던 것입니다. 미화로 한 달란트를 약 1,000불로 생각하면 비슷할 줄 압니다. 어떤 분이 먼 여행을 위해서 떠날 때에 종 셋을 불러서 하나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면서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돌아오는 동안에 장사를 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곧 장사를 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이도 또한 그리해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겼으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주인이 와서 셈을 할 때에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크게 칭찬과 상을 받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큰 책망과 엄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비록 지금과는 다른 옛날 사회 환경 속에서 된 이야기지만, 이 비유가 가르치는 진리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치 아니하는 불멸의 교훈입니다. 오늘 아침 이 비유를 통해서 현대에 사는 우리 하나하나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비유를 들을 때에 제일 먼저 깨달을 것은 우리는 다 달란트를 받은 이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누구에게나 다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곧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원, 재능이나 기타를 맡기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서 하나도 이 달란트를, 자원 혹은 재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 앉은 우리들도 다 이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기억할 것은 이렇게 받은 달란트는 누구나 다 똑같지는 아니합니다. 이 비유의 말씀대로 어떤 이는 다섯 달란트를 받았으나, 다른 이들은 두 달란트, 혹은 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받은 달란트의 양이 같지 아니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사는 사람들도 어떤 이는 큰 재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들도, 곧 적게 받은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깊이 생각하면 달란트의 양뿐만이 아니고, 그 종류에 있어서도 각각 다릅니다. 어떤 이는 음악의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그림을 잘 그리는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또 어떤 이는 건축을 잘하는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선천적 재능도 각각 다르고, 또 그 재능의 양도 각각 다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달란트를 왜 각각 다르게 하나님께서 주셨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으나, 한 가지 뚜렷한 사실은 있습니다. 그것은 전체 사회를 위해서 매우 필요합니다. 다 음악만 잘하고 집을 짓는 이가 없으면, 그 사회가 어떻게 될 것입니까? 다 그림만 잘 그리고 농사를 지을 줄 아는 이가 없으면, 그 사회가 어떻게 될 것입니까? 마치 몸은 하나인데 여러 지체가 있고, 그 지체가 각각 달라서 다른 일을 하는 가운데 몸 전체의 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우리 사회도 각각 다른 달란트를 받은 이들이 그 재능대로 일하는 가운데 그 전체 생활이 가능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의 일이 다르고, 또 큰 일도 있고 작은 일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선천적으로 주시는 달란트 외에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성령은 한 성령이시나 주시는 은사 곧 선물은 각각 다른 것을 우리에게 또한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6절 이하의 말씀과 같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은사도 각각 다르게 주신 것은 우리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을 잘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다른 달란트 또는 은사는 다 같이 중요합니다. 다 같이 사회 전체 생활과 교회 전체 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셋째로, 우리는 어떤 달란트를 받았든지 또 얼마나 많이 받았든지 혹 적게 받았어도 우리는 이 받은 바 달란트를 위하여 감사해야 하고, 이 달란트를 발전시켜야 하고, 이 달란트를 통해서 충성되게 봉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그에게 영광을 돌릴 의무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다섯 달란트를 받은 이들도 계신 줄 압니다. 천재라는 이름을 듣는 이도 계신 줄 압니다. 그러나 반면에 두 달란트, 또는 한 달란트를 받은 이들도 계신 줄 압니다. 아마 이런 이들의 수가 오히려 더 많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고 그것을 자랑하거나 교만한 마음을 품을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달란트가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요, 사실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달란트를 맡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이들은 그만큼 책임이 중합니다. 일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오직 그 달란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두 달란트나 한 달란트를 받은 이들도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곧 나에게는 왜 한 달란트를 주셨는가, 불평을 하거나 원망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또 다섯 달란트 받은 이들을 시기를 해서도 아니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크신 섭리 가운데서 나에게 한 달란트를 주신 것만도 감사하고, 또 한 달란트 받은 이는 그 받은 것만큼만 일하여도 칭찬과 상을 똑같이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의 양을 보시지 아니하시고, 그 충성을 보시고 심판하시며 상과 표를 주시는 까닭입니다. 이 비유에 두 달란트 받았던 종은 두 달란트만 더 남겼는데,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과 똑같은 칭찬과 상을 받았습니다. 만일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이 한 달란트만 더 남겼더라면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던 종과 똑같은 칭찬과 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란트를 조금 받았다고 절대로 낙심하거나 불평할 것이 없고, 오직 그 받은 대로 충성을 다하여 일할 것뿐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일찍이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연 보통 사람을 많이 사랑하시는 모양입니다. 그 이유는 그는 보통 사람들을 제일 많이 지으셨어요.” 우리는 대부분 다 그저 보통 사람들입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이들입니다. 그저 달란트 받은 대로 충성을 다하면, 받는 상은 많은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꼭 같이 받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성공과 행복의 생활을 탐구합니다. 사실 일생을 통한 성공의 비결이 무엇일까? 그것은 누구나 본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달란트를 바로 찾아서 그 달란트를 발전시키며 그 달란트를 통하여 어떠한 직장에서나 또는 환경에서나 최대의 봉사를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내가 본래 받은 달란트밖에 어떤 다른 영역에서 아무 성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행복의 비결이 무엇일까? 행복된 사람은 어떤 분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자기 받은 달란트를 최고도로 발전시키고 그것을 발휘하는 데, 곧 자기 받은 달란트를 통하여 자아를 실현하는 데 행복은 자연히 따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장 행복한 사람, 곧 가장 기쁜 사람은 자기 달란트대로 봉사하며, 최대한으로 봉사하는 사람이올시다. 곧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그 달란트를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이점에서 각각 내 자신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회나 국가 발전의 비결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사회와 어떤 국가가 빨리 발전하는가? 그것은 그 국민 하나하나가 각각 자기 받은 바 달란트를 100퍼센트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제도, 국가제도를 가진 사회와 국가입니다. 내가 들으니 북한에서는 대학교수를 탄광에 보내기도 하고, 어떤 예술 고등학교 교장은 몇 해 후에는 변소 소제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회가 빨리 발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유와 민주 사회제도가 필요합니다.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받은 바 달란트에 따라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자유로 직장을 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발도상에 있는 우리 한국은 이런 점에 깊이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발전의 비결도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빨리 발전하는가? 그것은 교인 하나하나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대로 교회를 100퍼센트 봉사하는 데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가르칠 수 있는 이들은 가르치고, 봉사할 수 있는 이들은 봉사하고, 심방할 수 있는 이들은 심방을 하고, 권면할 수 있는 이들은 권면을 하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전도할 수 있는 이들은 전도를 하고, 물질로 바칠 수 있는 이들은 물질로 바치고, 이렇게 각각 받은 바 달란트대로 주의 일을 할 때에 그 교회는 자연히 일취월장합니다. 장성합니다. 발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지도할 때에도 아주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자녀 하나하나의 선천적으로 받은 달란트를 잘 살펴서 교육이나 모든 방면에 지도해야 합니다. 반드시 다 대학을 가야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독일에서 열렸던 기술자 올림픽 대회에서 우리 한국이 1등의 영예를 하였습니다. 공업 발전 도상에 있는 우리 한국으로서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금메달을 6개, 은메달을 3개를 타서 1등을 하였는데, 그 나가서 일한 사람들의 연령을 보니 17세로부터 21세까지 난 소년들입니다. 대학 문에는 가보지 못한 소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벌써 세계에 자랑할 만한, 아니 첫째 가는 숙련공들이 되었습니다. 벌써 크게 기술적으로 성공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들은 선천적으로 받은 달란트를 그대로 바로 찾았고, 그 달란트를 충성스럽게 발전시키고 일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학생과 청년들에게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학생과 청년들 자신들도 장래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가? 그것을 살펴 찾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공부도 하고, 실습도 할 때에 최대의 행복을 느끼고 또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로 한 가지 경고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비유에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큰 형벌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달란트를 쓰지 않고 땅에 묻어 두었던 죄입니다. 달란트가 많든지 적든지 그것을 쓰지 아니하고 묻어 두는 것은 큰 죄입니다. 게으른 것은 큰 죄입니다. 달란트를 묻어 두지 아니해야 합니다. 꼭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위해 그 달란트를 가지고 봉사해야 합니다. 또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이렇게 묻어 두었다가 그 있던 것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쓰지 아니하면, 마지막에는 그것까지도 빼앗기고 맙니다. 쓰지 않는 칼은 녹습니다. 아주 못쓰게 됩니다. 달란트는 꼭 사용해야 합니다. 또 달란트는 옳게 써야 합니다. 예수님 비유 가운데는 달란트를 옳게 쓰지 않은 불의한 청지기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위 지능범이라는 죄수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다 달란트를 죄를 짓는 데에 사용하였습니다. 달란트는 옳게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 합니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서는 아니됩니다. 달란트를 바로 찾아 발전시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100퍼센트 봉사하는 이가 가장 행복하고 또 성공합니다. 달란트 받은 대로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십시다. 기도하십시다. 만물의 소유주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함을 드리옵나이다. 저희들 하나하나에게 다 이 달란트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 보배를 저희들이 받았사오니 이 보배를 묻어 두지 말고 잘못 쓰지 말고 꼭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서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나라를 섬기고 우리 가정을 돕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종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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