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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1:25-30/ 부드러운 주의 음성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16:2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옛날 유대인만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세기를 통하여 전세계 인류에게, 곧 이 지구 위에 나고 죽는, 허덕이고 쓰러지는 모든 인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서 주님의 그 사랑, 긍휼, 동정심, 민망히 여기는 그의 마음을 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의 전능하신 권위, 그의 크신 능력을 또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인간이 감히 이런 발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제왕이? 아닙니다. 어떤 위대한 학자가? 아닙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시되, 베들레헴 마구간에 그 첫자리를 정하셨고, 작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는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그의 음성은 부드러웠습니다. 모든 교훈이 다 그러하지만, 특별히 오늘 아침 읽은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그의 부드러운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 이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을 우리 하나하나의 심령이 다시 한번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주님은 이렇게 모든 인간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가운데 긍휼이 많으신 주님의 눈에 비친 인간의 모습, 곧 인간의 실정을 보게 됩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인간은 수고하는 인간이요, 누구나 무거운 짐을 진 인간입니다. 여기에서 수고란 말은 일은 일인데, 힘에 지나치는 일을 의미합니다. 애는 쓰나 되지 않는 일을 의미합니다. 전도서 저자의 말씀과 같이, 수고는 하나 헛되고 헛되어 바람을 잡는 일들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수고를 하는 것이 그 실정이올시다. 그리고 인간은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라고 또한 지적하십니다. 이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 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일찍이 1?4 후퇴 때에 어떤 부인이 머리에는 무엇을 싸서 이고, 등에는 애기를 업고, 또 두 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한강을 향하여 퍼덕퍼덕 나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남자는 등에 짐을 지고, 또 그 위에 늙은 어머님을 업고 나아가는 이도 있었습니다. 6?25의 짐, 또 38선의 짐이 얼마나 무겁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짐만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무거운 짐이 그 등을 누르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소위 인생고의 짐이 있습니다. 곧 생로병사(生老病死),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고통의 짐이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죄의 짐이 있습니다. 불안한 양심이 그 가슴을 괴롭힙니다. 단잠을 빼앗아 갑니다. 어떤 가슴에는 일생을 그르친 한탄이 있습니다. 혹은 가정 파탄의 비극도 있습니다. 죄의 사회적 폭발로 인한, 곧 큰 폭동, 동란 또는 전쟁의 결과로 오는 온갖 인간 비극의 짐이 온 세계 인류의 두 어깨를 누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안과 공포의 짐, 근심과 염려의 짐, 생활고의 짐, 환난의 짐, 슬픔의 짐, 온갖 무거운 짐 아래 인간은 허덕이고 쓰러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살은 급증하고 폭행과 강력범은 도처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에 눌려 어떤 이는 낙심과 절망에 빠지고 어떤 이는 그 반대로 흉악한 행동으로 반발하는 까닭입니다. 특별히 금년 겨울은 아랍 게릴라들의 흉악한 범죄 행위와 아랍 나라들의 무자비한 석유 무기화 정책으로 세계 인류는 불안과 공포와 추운 겨울의 에너지 부족난으로 문자 그대로 벌벌 떨고 있습니다. 실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간들입니다. 이렇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이들에게 주님의 외치는 말씀이 무엇인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인간은 그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습니다. 먼저 여기 ‘다’ 라고 하는 말을 주의하여 들읍시다. 모두 누구나, 곧 전 인류를 오라고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은 외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고, 아랍 사람들도 오라고 부르십니다. 미국 사람들뿐만 아니고, 한국 사람들도 오라고 부르십니다. 어떤 민족이나 다 부르십니다. 또 어떤 사회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부르십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정치인이나 교육가나, 기업인이나 노동자나,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오라고 부르십니다. 주님의 부르시는 범위는 온 세계의 전 인류에게 미칩니다. 곧 여기 앉은 우리 하나하나도 부르십니다. 우리는 다 곧 모두 예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까닭입니다. 그리고 ‘내게로’ 라는 말씀에 또한 주의하십시다. 주님 자신에게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교회에도 나와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심령이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교역자들에게도 와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께 나오셔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예수님께 나와 주를 만나셔야 합니다. 신학을 배우는 것도 유익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학을 통하여 예수님께 나아와 주님을 내 영혼이 직접 만나야 할 것입니다. 구원은 내 자신과 주님과의 개인적 관계, 곧 접촉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영혼이 예수님께 나와 그를 만나고 그를 믿고 그에게 헌신합니까? 그것이 제일 필요합니다. 오직 예수를 개인적으로 내 구주로 영접하는 데서 영생의 생활은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의 멍에를 메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곧 그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멍에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그리고 참으로 회개하고 그를 믿으면, 주님은 우리에게 그의 멍에를 메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 멍에를 감사히 받아 우리 목에 메야 합니다. 곧 순복하여야 합니다. 멍에를 메인 짐승은 그 주인의 명령에 절대로 순복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주님께 나와 주님의 제자가 되었으면, 그의 멍에를 메고 그의 명령에 순복하여야 합니다. 내 뜻이 아니고, 주님의 뜻에 순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슨 책임을 맡기면 순복해서 그 책임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전도, 교육, 봉사에 대한 여러 가지 주님의 부탁이 있습니다. 이 부탁에 순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십니다. 그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의 마음은 겸손하십니다. 그 겸손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중고시대에 한 수도사였던 토마스 아 캠피스라고 하는 분은 그의 일생을 주님을 배우고 모방하기 위하여 노력한 분으로 유명하고, 또한 <그리스도를 본받아>라고 하는 유명한 저서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배우는 데에 그 생의 최고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는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그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데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은 여기에 약속을 하십니다. 곧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또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라도 예수님께 나오면 곧 그에게 나와 참으로 회개하고 그를 믿으면, 그에게는 쉬는 복, 곧 안식의 축복을 주십니다. 여기에서 쉰다고 하는 말은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심령이 안식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곧 마음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우선 참으로 주께 나오는 그 심령에게는 죄의 짐을 벗겨 주십니다. 주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그의 짐을 대신 지셨으므로 그의 죄 짐을 벗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안과 공포 대신에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양심의 불안이 소멸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주님께 나와 죄의 짐을 벗고, 그의 멍에를 메인 이에게는 모든 근심과 염려의 짐도 벗겨 주십니다. 왜? 모든 염려를 성경의 말씀대로 주님께 맡기는 까닭입니다. 슬픔의 짐도 벗겨 주십니다. 주님께 나오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까닭입니다. 고통의 짐도, 고독의 짐도 벗겨 주십니다. 주님께 나오는 자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까닭입니다. 아무리 그 심령이 파도 높은 바다처럼 불안하나 주님의 이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주님께 나오면 주님은 그 마음의 풍파를 잔잔케 하시고 평화를 주십니다. 그 심령이 편히 쉴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의 안식은 금은보석보다도, 그 어떤 세상의 축복보다도 가장 귀합니다. 왜? 이 마음에 안식이 있어야 어떠한 환난, 어떠한 역경, 아무리 풍파 높은 세상이라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쉽다’는 말은 ‘편하다’ 혹은 ‘잘 맞는다’ 하는 말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 일을 하실 때에 그는 누구보다도 소에게 제일 잘 맞는 멍에를 만드는 목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부들이 이 예수님 목공소에만 와서 멍에를 많이 만들어갔다고 합니다. 얼마나 역사적으로 사실인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메어 주시는 멍에는 잘 맞는 멍에입니다. 맞지 아니하는 멍에를 우리에게 메어 주시지 않습니다. 곧 예수님을 따라 사는 그 진리의 길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잘 맞는 곧 적당한 생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교훈대로 살면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성결과 사랑과 의의 길은 가장 인간에게 합당한 길이요, 최대의 행복을 가져오는 길입니다. 그래서 사실 예수님께서 지우시는 짐은 무겁지 아니하고 가볍습니다. 어떤 청년들은 예수님의 짐이 무거운 것처럼 오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절제 생활도 쉬운 일이 아니고, 깨끗하고 정직한 생활도 어려운 일이라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짐이 가벼운 짐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세상이 지우는 죄의 짐이 더 무겁습니다. 방탕과 불의와 미움의 불신앙의 생활이 가져오는 짐과 경건과 의와 사랑의 신앙생활이 가져오는 짐을 비교하여 보세요. 서대문이나 안양 교도소에 가보면, 수천 명의 죄수가 그 속에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다 불신앙의 길을 걸어온 이들입니다. 그런 길이 가져온 짐들을 그들은 지고 있습니다. 그 짐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사실 세계적으로 생각하여 보아도 세계 나라들이 예수님의 멍에와 예수님의 짐을 거부하고, 욕심과 미움과 온갖 죄악의 길을 걸으므로 이 세계는 폭동과 혁명과 비행기 납치와 전쟁과 살인으로 가득하여졌습니다. 이 죄악의 무거운 짐이 전세계의 인류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렇게 허덕이고 떨고 쓰러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멍에가 쉽고 예수님이 지워주시는 짐이 실상은 가볍습니다. 세상 죄악의 멍에는 그야말로 결국은 큰 고통을 가져오고, 그 짐은 매우 무거워 인간이 그 아래에서 쓰러지고 망하는 것입니다. 이 1973년이야말로 세계적으로 보나 국내적으로 보나 많은 어려운 문제로 인간은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동문제, 월남문제, 유류파동 등 온갖 난문제가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연료문제, 인플레문제, 학원문제, 남북문제 등 허다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당면할수록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안심이올시다. 안정된 심리로서야 모든 문제를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바른 판단을 내리고, 난관을 돌파할 수 있습니다. 이 성탄 계절에, 우리 민족이 주님의 이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주님께 나와 마음의 평화를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새로운 용기를 얻어서 현재에 당면하는 모든 문제도 하나님의 뜻대로 해결하고, 우리 하나하나가 영원한 축복을 받기를 기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가운데도 한 분이라도 아직까지 주님 앞에 개인적으로 나와서 온전히 그 심령을 드리지 않은 분이 있습니까? 이 시간, 이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이 구원의 날이요, 이 때가 은혜 받을 때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저희들에게 주님께 나아와 안식을 얻으라는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이 음성을 분명히 듣고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와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주님 주시는 평화를 얻고 기쁨과 새 용기를 얻는 이 귀한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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