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5:1-11/ 환난에서 소망에 / 한경직 목사
2014-08-26 15:55:4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로마서 5장 3절과 4절을 봉독하였습니다.

로마서는 기독교 신앙에 중심이 되는 진리를 가르치는 서신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인간은 모두 죄를 범한 죄인임을 지적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을 얻는 진리를 가르칩니다. 이렇게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은 이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믿음으로 이 은혜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러한 이들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참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이들은 장차 있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환난 중에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참으로 은혜 받은 신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환난 중에는 흔히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참 신앙의 소유자들은 즐거워한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환난을 환영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환난 자체를 즐거워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환난 중에도 장차 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여기에 구체적으로 또한 설명합니다. 곧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아는 까닭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환난은 인내를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인내라는 헬라어 원어는 ‘후퍼모네(Hupomone)’라는 말로 ‘참고 견딜 뿐 아니라, 이겨내도록 견딘다.’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과 2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에게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에 인내로써 경주하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고 권하면서, 저는 곧 예수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곧 예수의 인내를, 십자가까지 참으시는 그 인내를 바라보며 배우라고 권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활을 잠깐만 회고할지라도, 그는 과연 말할 수 없는 많은 환난을 참고 견디신 것입니다. 빈궁한 생활도 참고 견디셨습니다. 오해도 참으셨고, 비난도 참으셨고, 모욕과 온갖 핍박도 참으셨고,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도 참고 견디셨습니다. 승리하도록 견디셨습니다. 그는 과연 인내의 주님이셨습니다. 인내는 그리스도의 성품의 한 특색입니다.

그런데 인내는 평안한 데서는 얻지 못하는 덕입니다. 역경 중에서만 얻을 수 있는 덕입니다. 들으니 알래스카에 사는 에스키모 종족들은 내한성, 곧 추운 것을 견디는 성품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열성, 곧 뜨거운 것을 견디는 힘은 약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물론 그들은 항상 추운 곳에서 사는 까닭입니다. 그와 반대로, 남양 군도나 아프리카에 사는 토인들은 내열성은 강하나 내한성은 약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물론 그들은 늘 더운 열대지방에 사는 까닭입니다.

대장장이의 손은 웬만큼 뜨거운 것도 잘 견딥니다. 그 이유는 항상 뜨거운 것을 만지는 까닭입니다. 추운 겨울에도 우리는 얼굴은 가리지 아니합니다. 늘 내어놓고 다닙니다. 얼굴의 피부는 내한성이 강합니다. 왜? 항상 추운 공기와 접촉하는 까닭입니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뿌리가 깊이 들어가 나무가 튼튼히 선다고 합니다. 고통, 질병, 실패, 슬픔, 위기, 역경 등 곧 여러 가지 환난을 통해서만 이 귀한 그리스도의 성품, 믿음, 곧 인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장로는 그가 기록한 야고보서 1장 2절 이하에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환난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인내는 연단을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새 번역에는 “품격을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곧 인내는 세련된 품격을 이룹니다. 거친 바다의 노한 물결이 숙련된 수부를 만듭니다. 거친 세상의 온갖 풍파는 세련된 품격을 조성합니다. 예방주사의 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방주사란 별것이 아닙니다. 좀 약하여진 병균을 혈액 속에 집어넣어 백혈구로 하여금 싸워 먼저 훈련을 받게 합니다. 이렇게 훈련된 백혈구는 진성병균이 들어와도 능히 싸워서 이겨 내는 것입니다. 많은 훈련을 받은 선수가 승리하는 운동선수가 됩니다. 많은 전쟁을 겪은 군인을 백전노장이라고 합니다. 위험한 전쟁의 많은 경험은 그들로 하여금 강성의 군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즉 바이올린 같은 좋은 악기를 제작할 때에는 가장 좋은 나무를 택할 뿐더러, 같은 나무 가운데도 특별히 북편에 있던 부분으로, 곧 가장 찬바람을 많이 맞은 부분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환난을 많이 받은 영혼이 그 인내와 세련된 품격을 통하여 제일 아름다운 생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환난, 인내, 연단은 다 합하여 우리의 소망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 신자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오늘 읽은 본문 로마서 5장 2절에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고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과 30절에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고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 아들을 본받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요, 마지막에는 아들과 같이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데, 그 영광이 우리 믿는 사람의 마음 속에 또한 비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2절~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 곧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소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고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최고 목표는 이 소망에 도달하기 위하여 항상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러한 인격을 위한 훈련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격을 훈련하는 데는 환난이 도움이 됩니다. 아니 필요합니다.

제련소에서 불이 없이 강철을 만들 수 없습니다. 환난이 없이 천국의 가장 보배인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그리스도의 인격을 이룰 수 없습니다. 환난을 통하여 찌꺼기와 같은 모든 허물과 죄는 태워버리고 더 깨끗하게 됩니다. 환난을 통하여 인내의 덕과 연단으로 세련된 그리스도의 인격을 이룹니다. 검은 탄소를 빛나는 금강석으로 만드는 데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뜨거운 열이요, 다른 하나는 강한 압력입니다. 이렇게 금강석이 되는 겁니다. 고통, 질병, 실패, 역경, 슬픔 등은 이 두 가지 요소를 그리스도인의 인격 조성을 위해서 제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우리 인간 생활, 특별히 신앙생활의 최고 목표는 이러한 하늘의 영광이 빛나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필요하나 그것이 인간의 최고 목표는 될 수 없습니다. 돈이 필요하나 그것도 최고의 목표는 되지 못합니다. 많은 사업을 하는 것도 좋으나 그것도 인간의 최고의 목표는 못됩니다. 때로는 권력도 필요하나 그것도 인간이 탐구할 최고의 목표는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격을 희생하면서 지식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인격의 저해를 받으면서 돈을 벌 수도 없습니다. 인격을 희생하면서 사업을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인격 건설에 도움이 되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삼가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때때로 환난 가운데 있다고 낙심할 것은 아닙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우리의 최고 소망, 곧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인격을 이루게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또 민족적으로 환난이 많습니다. 환난 가운데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히려 즐거워하며 싸워 나아갈 것뿐입니다. 인내의 주가 되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환난과 죄악 많은 이러한 세상에 사는 우리들이 이 시간 인내의 주가 되시는 우리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주님께서 말할 수 없는 환난을 참고 견디신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신앙의 경주를 계속 경주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가운데 특별히 어려운 환경, 특별히 어려운 처지에서 수고하는 자녀들이 있으면 이 시간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서 오직 이러한 환난 가운데서도 장차 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인내로써 달음질할 뿐더러 오히려 기쁨으로 싸워 나아갈 수 있는 신앙의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 올려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이 모든 말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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