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9:1-10/ 예수께서 머무르실 때 / 한경직 목사 2014-08-26 13:50:44 먼저 하나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또 여러분께서 많이 기도하여 주시는 가운데 그동안 약 2개월 반 동안 미주 약 10여 도시를 순회하고, 지난 주간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감사한 것은 가는 곳마다 우리 영락 교우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또 우리 영락의 뜰에서 자라난 믿음의 자녀들이 멀리 외지에 가서 공부도 많이 하고, 또 그곳에서 교회를 충성되게 봉사하는 모습들을 보고 더욱 감격하였습니다. 우리 본 교회에서는 아무 직분도 없던 이가 그곳에 가서 장로가 된 이들도 있고, 집사가 된 이들도 있고, 또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교회를 봉사하는 것을 볼 때에 참 얼마나 감격하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 곳에서 여러 분들이 본국에 돌아가게 되면 그 누구에게 각각 좀 문안을 해달라고 하는 부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미안한 것은 제가 정신이 부족해서 그저 돌아오고 보니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 전에 어떤 심부름하는 젊은 사람이 자기 주인의 중요한 부탁을 받고 건넛동네에 가서 그 말씀을 전하려고 심부름을 가는데, 가는 가운데도 꼭 그 말대로 전하려고 아주 애쓰며 생각을 하며 가다가 거의 동네 다가서 큰 돌체가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돌체를 건너뛰는 바람에 그만 깜박 다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제가 여러 곳으로 다니다가 마지막 돌아올 때에 태평양을, 말하자면 건너뛰어 왔으니 뭐 좀 생각나던 것도 거의 다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그저 한 마디로 말하면 미주에 가서 계신 여러분의 자녀들, 여러분의 친족들, 여러분의 친구들은 다 무사하게 평안히 지내고 또 그곳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주를 봉사합니다. 그러니까 아무 염려도 하실 것 없고 다만 여러분께서 계속해서 이들을 위해서 기도로 도우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한 것은 제가 듣는 대로 미국 이민 역사상에 우리 한국 민족처럼 미국에 들어와서 교회를 많이 세우는 민족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미주에 가 있는 우리 민족을 약 40만으로 추산을 하는데, 뭐 확실한 숫자는 모르겠습니다. 듣건대 교회 수가 한 700개에 가깝다 그런 말이 들립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통해서 그 나라에서 하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니 자연히 들리는 말도 많았습니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어떤 선교사가 미국에 돌아가서 어떤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에는 예수께서 이미 지나 가시고 지금은 예수께서 한국에 머물러 계시더라.” 그런 말을 했답니다. “한국에 머물러 계시더라.” 저는 그 말을 들을 때에 참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예수님께서 여리고 거리를 지나가셨다고 했습니다. 지나가신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삭개오의 집에서는 머무르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 집에 머무셨으므로 삭개오는 실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 번 지나가시는 것도 물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머무시는 것은 얼마나 더 귀합니까?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거리, 지나가신 가정, 지나가신 마음이 적지 않은 줄 믿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예수님께서 머무시는가? 우리 가정에, 우리 마음 속에 머무시는가? 그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가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또한 그러하리라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께서 우리 가정에 또 우리 마음에 머무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가정에 머무실 때에 그 가정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삭개오는 당시에 로마 사람을 위한 세리장이요 또 큰 부자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가정에 머물게 되실 때에 그는 변해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불의한 생활을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청산하였습니다. 그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불의로 얻은 재물은 4배나 갚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머무시는 곳에는 죄가 그냥 도사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탐심, 교만, 시기, 증오, 거짓, 부정, 음란, 온갖 더러운 것은 주님이 머무실 때에는 사라집니다. 빛이 임할 때에 어두움은 물러갑니다. 사방이 밝아집니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가정도 밝아지고 깨끗하여집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가정에 주님께서 머물러 계셔야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머무실 때에는 기쁨이 충만하여집니다. 마음 속에 넘치는 기쁨이 따릅니다. 악인의 마음은, 성경의 말씀과 같이 바다 물결이 바람에 밀려 진흙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불안과 공포, 근심과 염려가 떠나지 않습니다. 도둑놈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달아납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 마음에 머무실 때에는 참 회개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습니다. 모든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고 기쁨과 화평이 충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체험을 가진 믿는 이들은 항상 우리가 부르는 대로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천국으로 화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어디나 하늘나라로 화합니다. 예수께서 첫번 이적으로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칫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은 상징적인 큰 뜻이 있습니다. 곧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을 너희에게 주노라”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실 때에는 먼저 기쁨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사도 바울은 늘 외쳤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감옥에서도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사실 지나보니 그리스도를 모신 생활처럼 기쁜 생활이 없고, 그리스도를 모신 생활처럼 행복한 생활이 없습니다. 보람 있는 생활이 또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우리 마음에 머무실 때에 영적 기갈이 사라집니다. 풍성한 생명수를 늘 마시게 됩니다. 흡족한 생명의 양식을 항상 먹게 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주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또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대로 입니다. 풍성한 생명 양식을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 계시지 아니하는 심령 속에는 언제나 허무감이 떠나지 아니합니다. 인생은 허무합니다. 또 늘 죄책감이 마음을 괴롭힙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는데, 사죄를 받지 못할 때에는 항상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러한 심령 속에는 언제나 공포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죽음이 무섭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머무실 때에 이런 것들은 사라집니다. 인생은 허무하지 아니합니다. 허무감 대신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려는 사명감에 불탑니다. 죄에서 해방을 받은 심령은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올라감같이 향상의 생활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포심 대신에 확신과 승리의 신념으로 나날을 살아갑니다. 시편 23편에 고백한 다윗의 말씀과 같이, 이러한 심령은 언제나 푸른 풀밭에 눕고 잔잔한 물가에서 쉬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모든 방면에 흡족히 이릅니다. 육신적인 방면에도, 사업 방면에도 축복을 또한 받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 보면 주님께서 머무시는 곳에서는 많은 환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시몬의 장모도 열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중풍병자들도 일어났습니다. 문둥이들도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주님의 이 능력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아니 하시느니라” 지금도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올 때에 주님의 능력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어떤 병은 숨은 죄가 그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병은 먼저 죄 사함을 받아야 병 고침도 받습니다. 또 잠언의 말씀과 같이, 즐거운 마음은 양약 곧 좋은 약이 됩니다. 그러나 근심은 뼈가 마르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머무시는 곳에는 건강도 있습니다. 건강의 축복도 받습니다. 물질문명이 발전할수록 온갖 신경성 질환 또는 정신병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고층 건물이 높아질수록 범죄율도 또한 높아진다고 합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경제가 발전하고 문화생활이 가능하여질수록 먼저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사회라야, 나라라야 명랑하고 살 만한 사회와 국가로 또한 발전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때로는 갈릴리 바다와 같이 풍파가 높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머무셨던 배는 두려울 것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갈릴리 바다의 풍파도 잔잔케 하셨습니다. 이 거친 인생의 고해를 지나가는 인간들로서 때때로 풍파를 겪지 않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머무실 때에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초월 통치하셔서 마지막에는 선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외람된 말이나 제가 나이 점점 많아 갈수록 더욱 깊이 믿어지는 성경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여러분, 거기에 무슨 말씀이 있는지 기억하십니까? 자세히 들으세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 모든 일 가운데에는 환난도 포함되었습니다. 꼭 이대로 됩니다. 또 그렇게 됩디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안심하라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 마음 속에 머무실 때에는 우리의 심령에 점점 변화가 옵니다.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주님의 마음을 따라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됩니다. 깨끗하여집니다. 우리의 인격이 비록 부족하나 점점 자라납니다. 주님의 그 고결한 인격을 향하여 점점 장성합니다. 우리의 생각도 우리의 성품도, 우리의 말도, 우리의 생활 전체가 주님의 모습으로 점점, 비록 더디나 화하여집니다. 죄로 인하여 잃어졌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갑니다. 한마디로 주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늘 머무실 때에는 우리는 주님을 닮아갑니다. 그 심령이 천국 곳간에 들어갈 수 있는 알곡으로 점점 변하여집니다. 그리해서 이러한 이들은 세상에서 살기는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아니합니다. 세상을 위해서 일하고 세상을 봉사는 하지만 세상을 사랑하지는 아니합니다. 비록 그 몸은 땅에서 살지만 그의 마음은 하늘에 두고 삽니다. 이 세상을 영원한 고향으로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한 순례자로서 영원한 고향을 바라보며 삽니다. 그의 심령 속에는 영원한 소망의 별이 언제나 빛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에게는 사실 죽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을 때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장례식을 거행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자세히 읽어 보세요. 예수님께서 장례식했다는 얘기가 어디에 있나요? 없습니다. 죽음을 만나면 생명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죽은 야이로의 어린 딸을 일으켰습니다. 생명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죽은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일으켰습니다. 무덤 속에 나흘 동안이나 있던 나사로를 불러내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주님 안에서는 죽음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을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주님이 머무시는 곳에는 죽음은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뿐입니다. 영생은 죽은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그 때부터 영생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의 육신의 죽음이란 잠깐 지나가는 한 단계일 뿐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마음 속에 머물러 계셔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가 사는 거리를 지나가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가정에 머무셔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도 주님께서 오셔서 머물러 계셔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음 문을 여세요.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머무실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단순히 머리로 믿고 기독교 사상을 가진 생활이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 매일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 머무시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저희들이 겸손히 저희들의 마음 문을 열어놓습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친히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중심에 계시고, 우리의 사언행(思言行), 생각 말 행동, 삶 전체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한 사람도 한 사람도 문을 닫는 이 없게 해 주시고 성령의 크신 감화 가운데 문을 열고 중심으로 주님을 영접해서 모든 죄는 사라지고 모든 근심과 염려도 사라지고, 오직 기쁨 화평 영생만이 우리의 중심에 충만할 수 있는 이 은총을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고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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