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11:22-33/ 삶과 그 위기 / 한경직 목사
2014-08-26 09:19:34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고린도후서 11장 26절을 다시 봉독하겠습니다.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오늘 읽은 본문은 사도 바울이 얼마나 많은 고난과 위험한 일을 당했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위험한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노라면 누구나 이런 위험한 때를 당합니다. 이 위험한 때를 흔히 위기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바울의 생활은 실로 위기로 점철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길을 가는 것과 비슷해서 평탄할 때도 있지만 길이 험할 때도 있습니다. 맑은 날도 있지만 비바람이 치는 때도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혹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잔잔할 때도 있으나 태풍이 불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 파랑새호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실로 삶의 길에는 위기가 많습니다.

위기의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 가령 건강의 위기, 때로는 병들고 또는 부상을 입습니다. 도덕적 위기, 때로는 큰 유혹과 시험을 당합니다. 경제적 위기, 때로는 사업에 실패 혹은 실직도 합니다. 사회적 위기, 사회가 혼란하여질 때가 있습니다. 정치적 위기, 정치가 불안정되고 어지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세상에 나는 것도 사실은 위기요, 죽는 것은 더 큰 위기입니다. 사실 인간의 삶은 위기에서 시작되어 위기로 끝납니다. 그 사이에 또한 많은 위기를 당합니다. 그러므로 이 위기들에 대한 대비는 인간의 삶에 아주 필요합니다. 이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비가 무엇일까?

첫째, 믿음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올라갈 때에 지중해를 건너다가 ‘유라굴로’라고 하는 큰 태풍을 만나 14일 동안이나 바다 위에서 표류하게 되어 모든 사람들은 오래 먹지도 못하고 구원의 소망을 다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 가운데서 일어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사도행전 27장 22절 이하의 말씀이올시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는 말을 특별히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신앙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러한 큰 위기에서도 안심하였고, 또 당황 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그는 신앙으로 모든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옛날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과 싸울 때에 젊은 다윗은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 이하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다윗도 신앙으로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해방 이후 공산당에게 가옥과 전답 그리고 전재산을 다 빼앗기고 적수공권으로 남부여대(男負女戴)로 이남에 오신 분들도 여러 분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오직 여러분 가슴 속 깊이 지닌 믿음이었습니다. ‘여호와 이레’ 곧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리라는 신앙으로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위기를 극복함에는 오직 신앙뿐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나 기도하지 아니하리오마는, 특별히 위기를 당할 때에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애굽을 탈출할 때에 앞에는 홍해로 가로 막혔고, 뒤에는 적병이 추격하였습니다. 이러한 위급한 때에 모세는 땅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아갈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홍해까지 갈라졌습니다. 때로는 물이 없어서 백성이 원망합니다. 그럴 때마다 모세는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나왔습니다. 또는 아말렉 사람과 싸울 때에 모세는 높은 산에 올라 두 손을 들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위기를 당하여 부르짖을 때에 구원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당시 천하의 막강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였습니다. 그리고 속히 항복하라며, 여호와를 비방하는 모욕적인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 들어가서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 놓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긴 얘기 다할 수 없습니다. 천하무적이라고 하던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이 하루 저녁에 송장으로 변하였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히스기야 왕이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에 간절히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15년간이나 연장해 주었다는 말도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위기를 당할 때에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기도하여야 합니다.

제가 오래 전 신의주에 있을 때에, 매우 충성된 어떤 장로에게 그 체험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농촌에서 농사하던 분인데, 자녀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재산을 다 팔아가지고 신의주로 들어왔습니다. 무슨 사업을 경영하다가 불행하게도 실패해서 한 푼도 남지 않은 빈손이 되었다고 합니다. 가족은 많은데 살 길이 아득하고 어찌할 줄 몰라서 신의주 거리를 허둥지둥 종일 헤매다가 날이 저물 때에 압록강 철교를 건너갈 맘이 생겨서 철교를 건너갔습니다. 그 뒤에 진강산이란 산이 있습니다. 거기 가보시면 다 알 거예요. 안동현 뒤에 있는 진강산, 그 산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때는 이미 어둡기 시작하는데 그날 저녁 그 산골짜기의 한 소나무 아래에서 그 솔가지를 부여잡고 울면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살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은 다음에 신의주에 다시 돌아왔는데 이상하더라고 합니다. 그다음부터는 그저 무엇을 하든지 일이 잘 되었어요. 참 삶에 조금도 염려가 없이 살게 되었고, 또 교회를 봉사하는 것은 물론 그분이 특별히 자선 사업을 많이 하였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 50편 15절 말씀을 잊지 마십시다.

셋째는, 위기를 당할수록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을 읽는 가운데서 찾을 수도 있고, 혹은 직접 성령의 지도를 우리 마음 가운데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 위에서 크게 승리하고, 불의 제단으로 크게 승리하고 바알 제사장들을 섬멸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아합왕의 독부(毒婦)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는 부득이 광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히 피곤한 가운데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떡과 물을 마시고 새로운 힘을 얻어서 먼 광야를 달음질하여 가서 호렙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는 그곳에 있는 한 굴에 들어가 유하면서 장래 일을 생각합니다. 장래에 어떻게 할까? 한번은 굴 어귀에 섰노라니 그는 크고 강한 바람이 부는 것도 보았고,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것도 보았고, 또는 큰 불이 지나가는 것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통해서 무슨 깨달음은 없었습니다. 이것들 후에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가늘고 조용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을 그의 마음 속에 지시하여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그대로 순종해서 큰일을, 그 후에도 계속한 것입니다.

위기를 당할 때에 당황하지 말고, 이성을 잃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시편 23편에 있는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는 그 양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위기를 당할수록 이 하나님의 인도를 조용히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녀들을 반드시 인도해서 위기를 극복하게 도와줍니다.



위기라는 말은 한문으로 위험하다는 ‘危(위)’자와 기회라는 ‘機(기)’자로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위기는 위험은 하지만 또한 새로운 기회도 될 수 있습니다. 위기를 잘못 당하면 물론 파멸뿐입니다. 그러나 위기를 바로 당하면 축복의 기회도 또한 됩니다.

옛날 요셉이 소년의 몸으로 팔려서 부모의 슬하를 떠나 멀리 애굽에 가는 것은 그의 삶에 있어서 큰 위기였습니다. 또 그가 젊은 사람으로서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당한 것도 큰 도덕적 위기였습니다. 또 그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것도 큰 위기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모든 위기를 바로 당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당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도리어 이 위기들로 말미암아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당한 모든 위기들은 합하여 큰 축복으로 변하였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그러합니다. 누구든지 위기를 바로 당하면 곧 믿음으로, 기도로, 성령 지도를 따르면 위기는 변하여 큰 축복이 됩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러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많은 줄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위기를 당한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과히 상심하지 마세요. 불평하지 마세요. 위기가 그렇게 반가운 손님은 아니지만, 그 한편 손에는 성공과 축복의 꽃을 또한 가지고 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기억하십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위기도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선을 이룹니다.



마지막으로 이 진리는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이나 국가도 종종 위기를 당합니다. 우리 민족도 과거에도 그러했고, 해방 후에도 종종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또 지금의 이 시기도 한 위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이 위기도 바로 당하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80 세계복음화대성회도 여는 것입니다. 기도로 극복해야 합니다. 한국의 수백만 성도가 한번 같이 모여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민족의 구원과 평화통일을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국가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온 국민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모든 일을 옳게 공의와 자비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만 하면 이 민족적 위기도 반드시 큰 축복으로 전환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위기를 축복으로 전환시키는 참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사랑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여기에 앉은 우리는 개인으로도 위기를 많이 당하고 지금은 우리 전민족적으로도 위기를 당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위기를 지나가는 우리 민족, 위기를 당하는 사랑하는 자녀들, 이 시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을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나와서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황하지 말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옳은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해서 우리의 당하는 모든 위기가 변해서 큰 축복, 기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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