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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2:13-21/ 한 어리석은 부자 / 한경직 목사 2014-08-25 19:38:54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누가복음 12장 20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오늘 아침 읽은 말씀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무리 중 한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자기 집 재산을 자기 형과 나누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준엄한 어조로,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말씀하시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이야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흔히 다른 사람들이 무슨 도움을 청할 때에 늘 도와주셨습니다. 때로는 제자들은 물리치려고 하였어도 주님은 늘 도우셨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예수님 자신이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거절하실 뿐더러 탐심을 물리치라고 교훈하시면서 사람의 삶이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비유를 통하여 삶의 깊은 진리를 계속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어떤 농촌에 한 부자가 살았습니다. 어떤 해에 큰 풍년이 들어서 소출이 많아지자 이 부자는 그 곡식을 모두 쌓아 둘 곳이 없어서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좁은 곳간을 헐어 버리고 큰 곳간을 새로 짓고, 그곳에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집에 평안히 누워서 자기 영혼에게 스스로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였답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은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주님께서는 이 간단한 비유를 통하여 인간이 꼭 깨달아야 할 깊은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왜 이 부자를 어리석다고 하셨습니까? 첫째는, 이 부자는 그 재산이 온전히 자기의 소유인 줄로, 그래서 온전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온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천지만물 모든 것이 실상은 하나님의 소유요, 인간은 이 세상에 잠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소유를 맡아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이라는, 곧 성경의 말씀대로는 ‘청지기’란 원리를 가르칩니다. 이 부자는 그 땅도 온전히 자기의 소유요, 그 곡식도 자기의 소유라고 생각하며 자기 뜻대로, 늘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 이것은 깊은 견지에서 생각하면 착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부자를 다만 ‘어리석은 자’라고 불렀습니다. 현대인들이 이 청지기의 원리를 얼마나 깨닫고 살까, 생각하여 볼 때에 사실상 현대에도 이러한 어리석은 이들이 너무나 많지 아니할까 염려됩니다. 우리 믿는 이들만은 먼저 이 청지기의 원리를 깨닫고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재산이란 오늘 있다가도 내일 어떻게 될는지 누가 압니까? 재산이 많든지 적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충성된, 그리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 부자는 자신을 향하여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하였습니다. 이 생각도 사실은 오해입니다. 물건이 많다고 모두 평안히 쉽니까? 모두 마음이 즐겁습니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물건이 많으므로 밤잠을 잘 못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 도둑이 뚫고 들어올는지 늘 마음이 오히려 불안하기 쉽습니다. 재산이 많다고 반드시 마음이 평안합니까? 깊이 생각할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풍요한 사회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풍요한 사회는 또한 풍요한 데서부터 일어나는 고민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청소년들이 타락합니다. 성도덕이 문란하여집니다. 이혼은 격증합니다. 불량소년, 소녀도 큰 사회문제입니다. 히피니, 마약중독자니, 알코올 중독자 등 온갖 문제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경제는 발전하고 성장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착각하지 맙시다. 윤리와 도덕이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 참된 신앙이 부흥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 부자는 자기 생명 자체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깊이 생각하면 우리 생명이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생명을 도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재산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까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이 엄숙한 사실을 알고 살아야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합니다. 옛날 바벨론 나라의 마지막 왕 벨사살 왕은 어떤 저녁에, 그 나라의 고관대작 수천 명을 청하여 놓고 질탕하게 노는 가운데 심지어 일찍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하던 거룩한 그릇들까지 내어다가 술을 마십니다. 화려한 차림의 여자들이 춤추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정신없이 놀았습니다. 바로 그때에 그 왕궁 넓은 벽에 한 손가락이 나타나 이상한 글자를 썼습니다. 긴 이야기를 피하고, 그 글자는 히브리 글자이었는데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 그 뜻은 ‘왕의 때는 이미 끝났다. 저울에 달아 보니 이미 부족하다. 네 나라는 곧 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으로 메대 사람들에게 바벨론은 망하였고, 그 왕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알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하나님을 높이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잠깐 사는 동안에도 금생과 내생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는, 이 부자는 풍년이 들어 곡식이 많아질 때에 그 곡식을 어디다 쌓아둘까? 하는 생각만 하고, 그 이웃의 많은 가난한 이들을 전혀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미 말씀대로 우리가 물질의 축복을 받으면, 다만 그것을 나만 위하여 쌓아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청지기들인데, 물질이 많든지 적든지 그것을 내 가난한 이웃과 같이 나누며 불우한 이웃을 도와서 같이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이 부자는 이 물질의 사회적 사명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내게 무슨 물질이나 재능이나 지식이나 기술이나 지위나, 무엇이 있으면 거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도우라는, 특별히 불우한 형제와 자매, 이웃, 모든 약한 이들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점에 대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헐벗고, 병들고, 외롭고, 불쌍한 이들을 항상 돌보시며, 그의 자녀들이 이들을 돕기를 기대하시면서 온갖 축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아니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섯째는, 이 부자는 현세만 알고 내세를 몰랐습니다. 이 세상에 늘 살 줄 알았습니다. 따라서 육신만 알고 영혼을 몰랐습니다. 육신이 그저 영원히 살 줄 착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왜 모를까, 생각도 되지만, 그러나 실제는 이 서울 거리에 넘치는 우리 동포들 가운데 몇 분이나 이 인생의 깊은 뜻을 알고 사는가? 염려될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이 세상도 가고 그 정욕도 갑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세세에 있을 것입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우리 주님은 엄히 경계하십니다. 이 탐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은 여러 가지 유혹과 죄악에 빠집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연달아 일어나는 소위 대형 금융사건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범죄가 이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심에서 일어납니다. 우리 주님은 산상보훈에서도 엄히 경고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 24절을 읽어 보세요. 또 주님께서는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시면서 삶의 깊은 진리를 한 가지 더 지적하십니다. 곧 “사람의 삶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인간의 삶이 그 재산이 많은 데 반드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이 큰 재산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참된 삶의 뜻과 참된 행복은 깨끗한 마음, 깨끗한 생활, 평안한 양심, 진실과 정의와 사랑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에 가장 많이 봉사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가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가 참 부자입니다. 산상보훈에 있는 주님의 교훈을 직접 한 번 더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의 영혼도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로 21절까지 읽어 보세요. “귀 있어 들을 자는 들을지어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도합시다. 긍휼과 자비하심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사오니 이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저희들이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도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의 참된 삶이 어디 있는가를 분명히 깨달아서 우리의 가진 것이 많든지 적든지 내가 받은 은사가 많든지 적든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회를 섬기며 교회를 봉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이 잠깐 되는 삶을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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