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8-14/ 기쁜 크리스마스 / 한경직 목사
2014-08-25 18:57:0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크리스마스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 전하여진 날입니다. 이 ‘소식’이라는 말은 현대에서는 아마 ‘뉴스’라는 말로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크리스마스는 큰 기쁨의 좋은 뉴스가 온 세계에 전하여진 날입니다. 이날 다윗의 동네에 만백성을 구원할 구주,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옛날에는 흔히 신문이나 매스컴들이 그 해의 10대 뉴스를 발표합니다. 얼마 전 어떤 잡지를 보니 금년에 제일 큰 뉴스는 인도 수상 간디 여사가 암살당한 사건이라고 말하였고, 그 다음에는 역시 인도 보팔시에서 일어난 유독가스 유출로 말미암아 2,500여 명의 생명이 무참히 사라진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이 모두가 큰 뉴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뉴스들은 기쁨의 뉴스는 아닙니다. 슬픔의 비극의 뉴스입니다. 반가운 뉴스가 아닙니다. 불행한 뉴스입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뉴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뉴스요, 가장 기쁜 뉴스요, 가장 반가운 뉴스요, 누구나 꼭 들어야 할 뉴스요, 알아야 할 뉴스입니다. 왜요? 이날 만민을 죄에서 구원할 구주가 탄생하셨습니다. 이 뜻깊은 날 기쁨의 크리스마스의 내용을 잠깐 생각하십시다.

먼저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친히 말씀합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가정에 나시고 외양간에서 나시고 그 아기의 첫 보금자리는 구유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사렛 가난한 여성의 가정에서 자라났고 어릴 때부터 목수 일을 배워 또 그 일로 온 가정이 생계를 유지한 모양입니다.

그분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도 그에게 모여든 사람들은 거의 다 가난한 어부들, 농민들, 가난한 대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큰 이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이기도 하였습니다. 배고프고 굶주린 자에게는 먼저 먹을 것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크리스마스 정신으로 복음을 전파한다고 하면 먼저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헐벗은 이에게 옷을 주어야 하고 특별히 외로운 이, 돌봄이 없는 고아들, 무의무탁한 노인들, 외로운 나그네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크리스마스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금년 크리스마스에는 가난한 이들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고 저 멀리 아프리카, 특별히 에티오피아의 굶주린 이들을 돕기 위해서 전 한국 교회가 성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 귀한 일에 빠지지 마십시다. 여기 우리는 모두 동참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눈먼 자들을 보게 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에게 나온 환자마다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수많은 병자들에게 큰 기쁨의 뉴스가 전하여진 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비로소 이 땅 위에 병원이라는 제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가는 곳마다 예배당만 지은 것이 아닙니다. 병원을 또한 지었습니다. 의료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목사만 양성한 것이 아닙니다. 의사도 길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첫 병원, 곧 서울에 설립된 광혜병원이 선교사들로 말미암아 비로소 세워졌습니다. 또 이 병원을 중심해서 의사도 양성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곧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오늘의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의과대학입니다.

중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피가 필요한 때가 많다고 합니다. 피는 곧 인간의 생명으로서 시장에서 사실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중환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금년부터 특별히 우리 한국 교회에서 먼저 헌혈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런 말도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헌혈을 해서 그리스도인의 피로 우리 동포들의 혈맥에 넣어주면 그들이 다 앞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깊은 의미에서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는 문자 그대로 십자가 위에서 흘린 그 보혈로써 우리를 깨끗게 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고 눌린 자를 해방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20세기를 문명 세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사실은 아직도 이 세계는 포로 된 자와 압박당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모든 공산 체제 아래에 있는 국민의 생활을 생각하여 보세요. 그들에게 무슨 자유가 있습니까? 신앙의 자유, 집회? 언론? 출판의 자유는 말할 것도 없고 거주와 직업의 자유가 있습니까? 그런 사회에는 인권이란 말은 아마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북한 땅은 가장 어두운 곳입니다.

그런데 소위 자유 진영에 속하는 국가들의 사정을 살펴보면 아직도 자유가 억압되고 인권이 유린되는 실례가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유 진영 안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위한 운동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다만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운동을 할 때에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의 원칙을 따라서 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근로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동시에 또한 기업주들에게 똑같은 책임이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해야 하며, 이러한 운동은 언제나 기독교의 원칙을 따라서 할 것이요, 들리는 말대로 소위 해방 신학 운운하여 반 기독교적 원리가 혼합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앙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따릅니다. 크리스마스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큰 뉴스가 선포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왔노라”

모든 사람의 가장 큰 적은 한마디로 죄입니다. 이 죄악의 저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는 불안과 공포와 기근과 전쟁과 온갖 재난에 허덕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된다고 하나 죄악의 세력은 더 커져서 모든 과학의 혜택을 인류의 복지보다도 전인류의 파멸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에서 해방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죄의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 죄의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만 죄악의 사슬과 구속에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는 죄로 말미암아 슬픔과 절망에 허덕이는 모든 인간들에게 가장 기쁜 소망의 뉴스입니다.

크리스마스의 별은 인간의 소망의 별입니다. 그리스도 아래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죄에서 해방되고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이 크리스마스 계절에 주님께 나아가 새 사람이 되시고 참 자유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에 예수를 전하는 귀한 성경 구절을 우리는 잊지 마십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간의 육신 생명은 제한이 있습니다. 근년에 생활의 개선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좀 연장되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인간은 결국은 죽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후길 노소없이 뫼로가’하는 노랫가락의 말도 인간은 결국 그 육신 생명은 무덤으로 마칠 수밖에 없음을 알려 줍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결국은 무덤으로 덮이게 됩니다.

이 사망의 세계에 예수께서 오신 것은 이러한 인간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곧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주님 말씀 그대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죽어도 사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생명을 얻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 생명입니다. 오직 인간들에게만 부여된 생명입니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 같은 육신의 생명만 믿고 살지 마세요. 그러한 생명은 언제 꿈같이 사라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원자탄이 산처럼 쌓이고 도처에 가스가 폭발되고 화재가 일어나고 교통사고, 산업재해, 비행기 납치, 테러 사건 등이 그치지 아니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우리의 육의 생명은 참으로 무상합니다. 허무합니다. 언제 안개처럼 사라질는지 누가 압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사망과 절망과 슬픔에 싸여 사는 모든 인간들에게 참된 영원한 삶을 주시기 위하여 하늘의 보좌를 내려놓으시고 나아갈 수 있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탄생하실 때에 하늘에서는 천군천사들이 노래를 불렀고, 어두운 밤하늘에는 소망과 생명의 상징인 큰 별이 나타났습니다. 천군천사의 노래를 자세히 들읍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세요.

이것은 오직 구주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참된 생명을 얻는 자에게는 언제나 평화가 깃들입니다. 이 증오와 갈등과 의구와 슬픔과 싸움의 세계에서 평화를 얻는 길은 오직 사랑과 평화의 왕이신 주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시고 섬기려 오셨습니다. 그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을 영접하여 일생을 오직 겸손과 사랑으로 봉사의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 참된 평화가 있고 최대의 행복이 따릅니다.



저는 본래 이북 땅 한 작은 농촌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날 무렵에 유명한 개척 선교사 가운데 한 분인 마목사라고 하는 분이 우리 작은 촌에 오셔서 한 자그마한 교회를 세워주었습니다. 또 제가 국민학교에 들어갈 만큼 자랐을 때에는 역시 한 젊은 선교사 방목사라고 하는 분이 때때로 와서 그 작은 교회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그 젊은 선교사 방목사에게 첫 크리스마스 노래를 배웠습니다. 그분은 그때 한국말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우리말로 크리스마스 찬송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분, 그 찬송을 짐작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잘 아는 찬송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참으로 크리스마스는 기쁜 날입니다. 구주가 오신 날입니다. 만백성 모두 나와서 영접할 날입니다. 오늘 이 크리스마스 기쁜 날,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우리의 가정을 열고, 우리의 온 민족이 이미 남북한으로 얼어붙은 이 땅의 백성들이 모두 주님을 영접하고, 참된 평화가 이 땅 위에 정착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사랑과 평화의 주님, 이 땅은 아직도 미움과 싸움과 갈등과 의구와 슬픔과 눈물의 세상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사는 이 한반도는 작은 나라인데 이렇게 38선으로 말미암아 갈라진 지가 거의 40년이 되어 옵니다.

우리 남한에서는 이렇게 기쁘고 즐겁게 주님을 영접한 이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우리의 동포들은 이북의 동포들은 아직도 참으로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슬픔 가운데 이날을 맞는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어서 속히 평화 통일을 허락하여 주셔서 우리 북녘에 있는 동포들도 다 같이 기쁨으로 우리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축복을 어서 속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시고 우리 가정에 오시고 이 나라 위에 오시고 온 세계 위에 새롭게 임재하셔서 이 땅 위에도 참된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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