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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9:28-40/ 평화의 왕 / 한경직 목사 2014-08-25 18:39:15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오늘을 흔히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다음 주일은 바로 부활주일로 지킵니다. 이 주간을 고난주일로 지키며, 바로 다음 금요일을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수난 금요일로 지킵니다. 이 한 주간을 흔히 거룩한 주간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이며, 그때에 제자들과 무리들이 종려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불러 영접하였으므로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인간을 위하여 간단히 말하면 세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선지자로서의 일, 또 하나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일, 다른 하나는 평화의 왕으로서 하신 일입니다. 첫째는, 선지자로서의 일입니다. 곧 여러 가지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 상호간에 있어야 할 윤리 등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은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자연물을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 절하며 온갖 미신과 공포 가운데서 살아왔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참 하나님을 가르치며 몸소 보여주셨고, 우리 인간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며 무엇 하러 왔는가 등 삶의 참뜻과 또 상호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윤리와 도덕을 가르쳐서 진실하고 깨끗하고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우리 인간은 무지할 뿐만 아니라, 큰 죄를 짓고 타락하여 알면서도 옳게 살 수 없으므로 인간을 근본적으로 죄 가운데서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만민을 죄 가운데서 건지시는 큰일을 하신 것입니다. 곧 친히 대제사장이 되셔서 만민의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부활주일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인간의 최후 카드는 무덤이 아니요, 영생과 천국이라는 사실을 천하 만민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간이 1년 가운데 가장 의미가 깊은 주간입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곧 종려주일은 무슨 뜻인가? 우리 주님은 이 날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큰 진리를 또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은 왕이시요, 평화의 왕이시요, 그러나 또한 만왕의 왕이시라는 큰 뜻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진리는 주님의 말씀으로가 아니요, 극적 행동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전에 선지자들도 이따금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가령 옛날 선지자 예레미야는 당시 그들의 조국인 유다가 분명히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지경이 되었지만, 당시 백성은 그 비참한 사실을 아무리 말해도 깨닫지 못하므로 큰 멍에를 깎아 자기 목에 걸고 예루살렘 거리를 오르내리며 외쳤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 주님도 종려주일에는 극적인 행동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시 모든 상황으로 보아 곧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증오와 모략 등 형편을 감안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보통 때 같으면 조용히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을 잘 아시면서도 그 날은 오히려 나귀를 타시고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에게 호위와 찬송을 받으시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습니다. 그리해서 예루살렘 시민들은 “이분이 누군가?” 서로 묻게 되었으며, 바리새인과 그 원수들은 더욱 분이 나게 된 것입니다. 무리들이 호산나를 크게 부르며 예수를 환영할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은 주님께 와서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주님의 대답은 놀랄 만합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그날 이렇게 입성하신 것은 크신 뜻이 있습니다. 구약 스가랴 9장 9절에는 메시아의 오실 광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런 예언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날 예수님께서는 이 예언대로 메시아로서 입성하신 것입니다. 이 메시아는 곧 왕이십니다.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여서 나귀를 탔습니다. 말은 전쟁 때 타는 짐승이요 평화시에는 나귀를 탑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평화의 왕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대제사장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을 다스리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간에게 평화 곧 평안을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장 27절 읽어 보세요.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를 영접하는 자마다 그 마음에 평화를 주십니다. 이 세상에 제일 귀한 것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모든 것이 넉넉하다고 하지만, 그 마음이 평안치 못하면 그는 행복한 사람은 아닙니다. 이 마음의 평화는 세상의 부귀영화로써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이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를 중심으로 환영하는 자마다 우선 이 마음에 평안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오늘날 이 세계정세를 볼 때에도 제일 필요한 것이 평화입니다. 이라크와 이란의 전쟁을 보세요. 중동의 상황은 너무나 잘 압니다. 중남미, 동남아시아, 아니 멀리 갈 것 없이 이 좁은 땅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평화가 아닙니까? 38선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남한에서도 가장 요구되는 것이 이 평화가 아닙니까? 우리의 가정, 우리의 직장, 우리의 관청, 우리의 국회, 우리의 사회에서도 가장 갈망되는 것은 평화입니다. 싸움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이 평화의 왕을 어떻게 영접할 것입니까? 옛날 제자들과 무리들은 겉옷을 혹은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펴면서 호산나를 부르며 영접하였습니다. ‘호산나’라는 뜻은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하는 의미인데, 아마 지금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만세와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도 기쁨으로 찬송을 부릅니다. 기쁨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기쁨으로 헌금도 하고, 기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 모든 찬양과 같이 아주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우리 마음 속에 우리 중심에 주님을 사실 영접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셨다고 다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 소아시아에 있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모이기는 모였지만, 주님은 문밖에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19절로 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 이러한 교회는 없을까요? 또 우리 개인 하나하나의 영적 상황은 어떠합니까? 중심에 주님을 영접하셨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의 깊은 마음 속의 생각을 다스리십니까? “천국은 너희 속에 있느니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을 당하여 우리 하나하나가 주님을 우리 중심에 평화의 왕으로 영접하십시다. 주님이 우리 마음속의 깊은 생각과 염원과 기분까지 다스리는 축복이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은 평화의 왕이시나 최후에는 승리하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세상 그리고 인간 역사 속에는 악의 세력이 때로는 팽창하고 또한 굉장히 성할 때가 있습니다. 붉은 용이 나타납니다. 인간 역사 속에 흉악한 짐승이 나타납니다. 때로는 악한 정권으로, 나타나고 악한 사상으로, 나타나고 악한 제도로 나타나고, 악한 운동으로 나타납니다. 악의 세력이 모두 일어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싸우는 장면이 요한계시록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싸웁니다. 그러나 들어보세요.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도 같이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의 말씀입니다. 최후에는 이상합니다. 어린 양이 오히려 이깁니다. 최후 승리는 평화의 왕,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주후 4세기 말에 배교자로 유명한 줄리안이란 로마 황제가 있었습니다. 이 황제는 기독교를 배반하고 우상종교를 다시 로마 제국 안에 일으키려고 갖은 애를 쓴 로마 황제였습니다. 이 황제가 당시 파사와 전쟁이 일어나 군대를 거느리고 파사를 향하여 갑니다. 그 군인 가운데도 기독교를 반대하는 이들이 상당한 수였다고 합니다. 그런 군인 하나가 잘 믿는 다른 군인에게 비웃는 어조로 “자네의 구주라는 그 갈릴리 목수가 요새는 무엇을 하고 있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믿는 군인이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하는 말이 “아마 줄리안 황제를 위하여 관을 짜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후 몇 달 후에 그 황제는 전쟁에서 중상을 입고 피를 많이 흘리다가 죽었습니다. 죽을 때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갈릴리 사람이여, 당신이 최후에는 이겼습니다.” 최후에는 주님이 승리하십니다. 줄리안 황제뿐 아닙니다. 모든 악한 폭군, 독재자, 사상가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지금도 주님은 관을 짜고 계십니다. 유명한 프랑스의 영웅이요 황제였던 나폴레옹이 일시에는 온 세계를 점령할 것 같았지만 최후로는 모두 실패하고 대서양의 한 외로운 섬 세인트 헬레나에 가서 외롭게 최후를 마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가 최후로 남긴 말 가운데 하나는 “나는 칼로 세계를 정복하려고 하였으나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오직 사랑으로 온 세계를 정복하였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대로입니다. 나귀를 타신 평화의 왕 그리스도는 온 세계를 정복하십니다. 오늘 뜻 깊은 이 종려주일에 예수님을 우리 마음 속에 영접하십시다. 우리 가정에 온전히 영접하십시다. 또 우리 교회에 새롭게 영접하십시다. 주를 영접하는 조건은 간단합니다. 첫째는 겸손하면 됩니다. 둘째는 있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영접한다면 그것은 절대 순복을 의미합니다. 왕의 명령은 꼭 순종하여야 합니다. 왕으로서의 주님의 명령은 또한 간단합니다.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빛을 발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맛을 잃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둘째는,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 이 새 계명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입니다. 사랑과 화평, 그것은 주님을 왕으로 모신 마음의 특색이요, 가정의 특색이요, 교회의 특색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명령을 잊지 말고 어디서나 복음을 전파하여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금년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계기로 하여 이 명령에 순종하도록 우리 모두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호산나! 우리 모두 예수님을 우리 왕으로, 우리 가정의 왕으로, 우리 교회의 왕으로, 온 사회의 왕으로, 아니 만왕의 왕으로 영접하십시다. 기도합시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우리 주님, 지금 저희들이 겸손히 저희들의 죄를 회개하며 주님을 영접하고자 하오니 이 시간 우리 각 사람 마음 속에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지금부터 온전히 다스려 주시고 주님의 평화를 각 사람 마음 속에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우리 가정에도 우리 사회에도 우리나라에도 우리 교회에도 온 세계에 평화의 왕으로 임하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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