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1:1-9/ 믿음의 뿌리 / 한경직 목사
2014-08-25 14:01:03

이 시간 읽은 말씀은 디모데후서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또 그분이 제일 사랑하셨던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입니다. 제가 5절만 다시 읽습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 확신하노라”

사도 바울이 복음 전파를 위하여 여러 곳으로 여행하며 수고하는 가운데 그분을 도와준 이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그 중에도 사도 바울을 아버지처럼 섬기며 돕던 한 제자가 있었는데 그 청년이 디모데였습니다. 바울은 그를 흔히 아들이라고 불렀으며, 바울이 친히 쓴 대로 쉬지 않고 기도하였고 생각하였으며, 또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였으며 보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생각할 때마다 기쁨이 충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디모데의 마음 속에는 거짓이 없는 참된 믿음이 있는 연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디모데의 마음 속에 있던 이러한 믿음은 “본래 디모데의 외조모 로이스와 그의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그 믿음이 네게도 있구나”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디모데의 믿음은 그 뿌리가 있었습니다. 믿음에도 말하자면 뿌리가 있는 것 같아요. 나무는 뿌리가 튼튼해야 잘 장성하며 열매를 맺습니다.

이 시간 믿음의 뿌리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이 믿음의 뿌리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이 믿음의 뿌리를 바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기독교 신앙의 뿌리는 신구약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사상이나 혹은 고대 철학에서 찾을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천지창조를 비롯하여 인간의 창조와 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타락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신앙과 생활뿐 아니라, 세기를 통해서 모든 선지자와 신앙의 용사들의 생활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교훈과 모든 행적, 특별히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사실과 또한 그 뜻을 설명하여 주는 여러 편지들과 책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성경에서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죽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경을 공부하고 읽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또한 역사적인 종교입니다. 모든 역사는 뿌리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한 교회의 역사에서 믿음의 뿌리를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신교도들은 종교 개혁사에서 믿음의 뿌리를 바로 찾아 우리 개신교의 중심 진리를 바로 이해해야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도 우리 장로교인들은 장로교 신앙의, 말하자면 원조가 된다고 할 수 있는 존 칼빈의 신앙과 신학에서 그 사상적 뿌리를 찾을 수밖에 없고, 또한 청교도들의 생활에서 그 생활의 규범을 바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계의 혼란상의 한 가지 원인은 이 믿음의 뿌리를 바로 찾지 아니하는 데 있지 아니한가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둘째는,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우리의 믿음의 뿌리를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치 디모데의 믿음의 뿌리가 그 외할머니 로이스와 그 어머니 유니게의 속에 있던 그 믿음처럼 우리 인간은 또한 개인적으로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믿음의 뿌리가 각각 있습니다.

몇 해 전 본인이 미국을 방문할 때에 LA에 이르니, 제가 본래 이북 신의주 제2교회에 있을 때에 그 교회를 전적으로 충성스럽게 봉사하던 한 장로님의 후손들이 어떤 저녁에 다 모였는데, 그 수가 어린이들까지 합하면 약 100명쯤 되는 것 같아요. 아마 우리 가운데도 그 장로님을 짐작하실 분들이 혹 계실지 모릅니다. 다른 분 아닙니다. 김기범 장로님이올시다. 그 장로님의 후손들이 그렇게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분들과 같이 예배를 드릴 때에 제 마음 속에 들어오는 한 가지 생각은 실로 감사한 생각과 같이, 이들이 모두 젊은이들인데 그러나 그 할아버지의 신앙을 기억하고 모였다 하는 그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이 비록 고향을 떠나 멀리 미국에 와서 살면서도 할아버지의 신앙을 생각하면서 모인 사실을 생각할 때에, 다시 말하면 그 자손들이 지금은 비록 먼 나라에 와서 살지만 믿음의 뿌리를 찾고 기억한다는 사실에 실로 감격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믿음의 뿌리를 찾을 뿐더러 개인적으로 내 믿음의 뿌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각각 다를 것입니다.

제가 바로 지난 주일에 대구 영락교회에 초청을 받아 그 교회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대구 영락교회도 크게 발전하여 넓은 대지와 큰 예배당을 신축하였으며 교인도 2부 예배에 약 1,000명쯤 모인 것 같았습니다. 그 교회에서 지난 주일 특별히 본인을 초청한 것은 그 주일이 바로 창립 36주년 기념 주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1951년 6?25때, 다시 말하면 1?4 후퇴 후 대구에 피난 간 영락교우들로 말미암아 2월 첫 주일부터 모이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대구 영락교회도 역시 믿음의 뿌리를 찾는다고 하는 그런 느낌이 제가 같이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 속에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지금 남한에는 6?25때에 설립된 부산 영락교회, 제주 영락교회, 대구 영락교회 이외에도 영락교회란 이름을 가진 교회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역시 그러합니다. LA에 있는 나성 영락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 미국은 물론 캐나다, 남미에 까지 영락교회란 이름을 가진 한인교회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이 교회들이 서울 영락교회와 무슨 유기적 관계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여간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이름뿐 아니라 사실 본 영락교회의 믿음의 뿌리를 계승하는 교회들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사실 본래 영락교회 교우들은 순전히 이북에서 공산당에게 숙청을 당하고 간신히 생명을 보존하여 이남에 피난하여 온 문자 그대로 피난민들의 집단이었습니다.

이북에 가족과 친척을 남긴 이들도 많고 38선을 넘어오다가 가족을 잃은 이들도 많고, 사실 우리 영락 교우들 가운데는 순교자들의 후손과 친척들이 많습니다. 적수공권으로 38선을 넘어온 피난 교우들은 오직 마음대로 자유로 예배할 수 있었던 사실 하나만으로 감사하고 감격한 생활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라는 유명한 터툴리안의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순교자들의 직계 자손들과 믿음의 후손들을 축복하셔서 오늘의 영락교회의 모습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본 교회 교우들은 오직 성경대로 믿으며, 성경대로 말하며, 성경대로 봉사하기 위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세우며, 학교를 세우며, 고아원, 양로원, 모자원, 여러 가지 신체장애자들을 위한 사랑의 실천을 힘쓰며, 어디를 가나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봉사하고 애를 씁니다.

우리 교회와 나라의 최대 원수인 유물론 사상을 중심하는 무신론 사상인 공산주의 사상이나 그 집단에 대하여는 어디서나 용감히 싸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을 축복하셨습니다. 장래에도 축복하실 것입니다.

제가 바라기는 영락의 믿음의 아들들은 또 딸들은 어디를 가나, 어디에서 교회를 세우든지 근본 피난성도와 순교자들의 믿음의 뿌리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뿌리를 바로 찾아 바로 믿고, 바로 살고, 바로 봉사하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하나하나는 또한 믿음의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믿음의 뿌리를 바로 찾을 뿐더러, 기억할 뿐더러, 내 자신이 올바른 믿음의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1편 첫 부분에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에 복 받는 사람의 삼가는 것과 또 힘쓰는 것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지적합니다. 다시 말하면 복 받을 만한 사람은 그 믿음의 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이 형통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열매 맺는 나무가 되려면 아무래도 그 믿음의 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 92편 12절 이하에는 아마 여러분 기억하실 분도 많을 줄 압니다. 이런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황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며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우리의 신앙이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고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려면 여호와의 집에 심겨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궁정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교회를 중심하고 어디를 가나 살아야 합니다.

신약의 말로 바꾸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얻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7절을 돌아가서 보세요. 혹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하시고,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을 읽어 보세요.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 백성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받은 열 가지 계명과 모든 언약이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백성이 그 언약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열 가지 계명을 지키지 아니합니다. 다른 신을 섬깁니다. 우상을 섬깁니다. 온갖 죄악을 짓습니다. 그럴 때에는, 시내산 기슭에서 맺은 믿음의 뿌리를 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 백성을 책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채찍이 반드시 그들 머리 위에 임하였습니다. 열왕기를 읽어 보세요. 역대기를 읽어 보세요.

믿음의 뿌리를 잊지 아니해야 합니다. 믿음의 뿌리를 항상 찾아야 합니다. 내가 참된 믿음의 뿌리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썩은 뿌리가 되지 마십시다. 말라빠진, 메마른 뿌리가 되지 마십시다. 더욱이 쓴 뿌리를 항상 경계하십시다. 쓴 뿌리가 나는 수도 있습니다.

디모데와 같이 깊은 뿌리에 튼튼히 서고, 또 내 자신이 오고 오는 세대에 참된 믿음의 뿌리가 되도록 우리는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실 제 간절한 소원은 여기 앉으신 여성도들은 모두 로이스와 유니게와 같은 믿음의 뿌리가 되시고, 또 남성도 특별히 청년들은 디모데와 같은 믿음의 뿌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민주주의에도 뿌리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을 평등으로 대우하고 자유를 존중하고, 그게 민주주의 정신인데 그 사상에도 뿌리가 있습니다. 사실 사람 보면 같지 않은데요,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왜 같이 평등으로 대해야 합니까? 왜 자유를 존중해야 합니까? 그 민주주의 사상과 체제의 배후에는 뿌리가 있어요.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것은 기독교 신앙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모든 인간의 아버지로 믿습니다. 우리 모든 인류는 색깔이 다르든지, 재주가 많든지 적든지, 모두 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피차에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차에 사랑과 이해로써 화평하게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민주주의 정치가 잘 되려고 하면 언제나 이 민주주의 사상의 이 뿌리를 기억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내 형제와 자매로 알고 생각하고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여러 사람이 모였으니 의견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어디까지든지 대화와 이해와 타협과 사랑으로 결론에 이르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감정과 혈기는 우리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추방되어야 합니다. 민주정치란 언제든지 이러한 민주주의의 근본 사상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요새 특별히, 금년에 특별히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고 지나가는 중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사명은 큽니다. 어디서든지 이 근본 사상에 의지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야 합니다. 또 근본적으로 우리 온 민중이 정치인들까지 기독교 신앙을 분명히 이해하고 기독교 신앙가운데서 모든 일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하나가 우리 온 동포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어떻든지 우리 민족의 대부분이 참된 이런 신앙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의 첫째 책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민주주의의 뿌리가 어디 있다고 하는 것도 깊이 생각하면서 이 어려운 난관을 지나갈 수 있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옛날 로이스와 유니게의 마음 속에 그렇게 참된 신앙을 주었더니 그 신앙의 뿌리에서 디모데와 같은 청년이 일어났습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영락교회에 나와서 예배하는 모든 사랑하는 아버지의 따님들을 이렇게 후대에 믿음의 뿌리가 될 만한 거짓이 없는 참된 신앙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 우리 교회의 여러 청년들, 여러분들도 바울과 같은 디모데와 같은 거짓이 없는 참된 신앙을 주셔서 참으로 믿음의 뿌리가 되어서 내 자신뿐 아니고 대대손손 우리 민족 전체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이 은혜까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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