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1-9/ 복의 근원: 믿음의 사람 / 한경직 목사
2014-08-23 19:39:5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十二ㆍ二)

아득한 옛날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처음에는 명령이 있습니다. 너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가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창대(昌大)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지니라" 했습니다. 여기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여기 보니 본 고향을 떠나라고 그랬습니다.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보통 자기 살던 곳에 살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옛날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현대인은 어디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나 옛날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특별히 동양 사람에게 있어서는 고향을 떠난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순복(順服)하였습니다.

갈대아 우르, 오랫동안 조상이 전해내려 오면서 살던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입니다. 하란으로 이사해 갔습니다. 거기에 얼마 있다가 다시 하나님의 지시하는 땅으로, 히브리 저자의 말대로 사실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나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 해전에 제가 성지를 순례할 때에 한 번은 헤브론이라고 하는 곳에 가서 큰 모스크 회교의 성당 안에 들어가서 구경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성당 안에 들어가면 그 마루 밑바닥에 큰 구멍이 하나 뚫려 있습니다.

그리고 내려다보면 그 성당을 지은 아래 큰 동굴이 있습니다. 그것이 유명한 막벨라 굴이올시다. 일찍이 아브라함이 햇 사람에게 사라를 장례하기 위해서 산 굴이올시다.

거기에 아브라함이 묻혔고 사라가 묻혔고 이삭이 묻혔고 야곱이 묻힌 곳입니다. 내가 가던 날도 바로 요르단 나라의 왕 훗세인 왕이 와서 참배를 하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곳에는 유대 사람은 물론 전세계의 흩어져 있는 기독교인들과 회교인들, 아랍 사람들, 사실 세계 모든 민족의 순례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왜? 거기에 아브라함의 유해가 있는 까닭입니다. 놀랄 만한 일은, 옛날 약 四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이 오늘날에 와서 그대로 응하게 된 것입니다. 다 이루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그의 믿음의 자손은 문자 그대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의 이름이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많은 무리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복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의 자손 가운데서 모세가 났습니다. 선지자들이 났습니다. 마지막에는 만민의 구주가 되시는 메시야께서 나신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만민에게 복의 원천이 된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시간 복의 원천이 되는 아브라함의 생활을 잠깐 돌이켜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그의 생활은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듣고 거기에 순종한 생활이었습니다. 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할 때에 비록 갈 바를 알지 못하였지마는 그 명령에 순종해서 떠나간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죄악 세상에서의 성별을 의미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이외에 무엇을 섬기면 그것은 다 우상이 됩니다. 그래서 돈이 혹 우상이 될 수도 있고, 지위 같은 것도 혹 우상이 될 수도 있고, 향락이나 정욕 같은 것도 혹 우상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복의 원천을 만들기 위해서 제일 먼저 모든 우상을 섬기는 죄악 세상에서 온전히 떠나라고 명령하셨고 또 아브라함은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요사이 세속에 들어가야 된다는 운동이 있습니다. 그것도 좋은 운동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상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정신적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먼저 온전한 회개와 중생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사실 복의 원천이 되는 생활의 첫 걸음이올시다. 천성을 향해 가는 기독교도가 되려면 먼저 장망성을 떠나야 합니다. 죄악의 쇠사슬에서는 자유를 벗어나야 합니다. 바울 이후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존경을 받는 어거스틴의 생활을 잘 아시는 분이 여러분 가운데 많이 있을 줄 압니다.

그는 본래 천재였습니다. 문학에 재주가 있었습니다. 또는 그는 부자 집에 난 사람이올시다. 젊어서 온 세상을 다 여행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름을 높이 날릴 수 있었으나 그의 생활은 방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한번 밀란이란 곳에 가서 어떤 동산에 조용히 앉았을 때에 성경책을 펴서 읽으라는 이상한 음성이 들려 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옆에 있는 성경을 펴 보았습니다. 성경을 펴 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十三장 十二절로 十三절까지를 읽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 말씀을 읽는 대로 어두운 옛 사람의 일을 떠난 것입니다. 그는 빛의 갑옷을 입은 것입니다. 이렇게 어거스틴이 복의 원천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름은, 곧 옛 생활을 떠나라는 부름은 일찍 들을수록 좋은 일입니다.

소년, 청년 시대일수록 좋습니다. 이번 전도대회의 결신 자의 三분지 二가 청년들이란 말을 듣고 감사히 생각하였습니다. 소년 시절에, 젊었을 때에 이 부름을 듣고 옛 생활에서 온전히 떠나서 성별 된 생활을 하는 것은 복의 근본이 되는 생활의 첫 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생활을 추억해 보면 그는 일생토록 순례자의 생활을 계속하였고 그러나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순례자는 보통 여행자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순례자란 일정한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여행하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은 성경에 기록한 대로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언제나 바라보면서 그는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하란으로 가서 얼마 있다가 다시 그 곳을 떠났습니다. 세겜으로 갑니다. 벧엘로 갑니다.

혹 애굽으로도 갑니다. 브엘세바에 다시 왔습니다. 헤브론 등지로 일생을 유랑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그대로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와 같이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옛 사람을 청산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으면 이 아브라함의 생활에서 배울 것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 때, 물론 이 사회에 봉사하고 국가를 위해서 혹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 모든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의 생의 목표는 현세에 끝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사나 미래를 바라보면서 살고, 현세를 봉사하면서도 영세를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순례자의 생활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제단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위로부터 내리는 새로운 힘을 얻어서 날마다 세상에 사나 세상을 이기면서 승리 적 생활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우리가 다 복의 원천이 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세상에 사나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는 순례자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나 어디서든지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이북에서나 이남에서나 농촌에서나 도시에서나 어떤 직장에서나 제단을 그 곳에서 쌍을 줄 알아야 합니다.

변하는 환경과 변하는 시대에서, 어디서나 변치 아니하는 제단을 쌓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의 생활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동행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의 근원이 되는 생활의 둘째 걸음인 줄 생각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생각할 때에는 모리아 산상에서 그의 외아들 이삭을 번제(燔祭)로 드리려고 하던 그 사실을 기억 할 것입니다. 그 얘기는 다 잘 기억하실 터이니까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는 줄 생각합니다. 그 분이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한 이 사실은 현대인에게 적지 않은 의혹을, 혹 의문을 가져다주는 것도 사실이올시다.

우선 윤리적 견지에서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할 수가 있겠느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같으면 그런 명령은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당시에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우상숭배의 종교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몰록 이란 우상숭배자는 언제나 자기의 자식을 번제로 드리던 때입니다. 그런고로 당시의 종교적 윤리적 사상의 환경에서는 이런 명령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내 놓을 수 있는 신앙을 나타내기 위해서 아마 이런 명령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라도 하나님을 위해서는 내 놓을 수 있는 신앙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런 명령은 불가피한 줄 생각합니다.

셋째로 이런 명령을 내려서 아브라함이 신앙을 나타내는 그 즉시로 그 일을 막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원치 않는 하나님인 것을 다시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곧 아브라함은 이삭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들입니다. 독자입니다. 또 만득자(晩得子)입니다. 언약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를 심히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들도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리아 산상에서 아브라함의 이 사랑을 시험하여 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후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리라.

하나님의 뜻이면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이라도, 독자라도 드리는 신앙, 가장 사랑하는 무엇이라도 하나님을 위해서는 희생하려고 하는 신앙, 이것이 모리아 제단의 정신이요, 아브라함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이러한 신앙을 가진 이에게 복을 주시고 이런 이를 통해서 만민에게 복을 더하여 주시는 복의 원천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예수님도 일찍이 이렇게 말씀한 때가 있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그 다음에 무슨 말씀이 있는지 압니까?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오해하지는 마세요. 부모를 미워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 뜻은 세상의 누구보다 더, 아니 내 목숨보다도 주를 더 사랑해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것이 모든 순교자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참된 성도의 신앙이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복의 근원이 된 하나님의 자녀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네가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를 통해서 모든 다른 사람들까지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이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이런 이의 기도를 사회와 국가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존 낙스의 기도가 그 때의 스코틀랜드를 구원했다는 말은 우리가 다 기억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런 이들은 어디서나 다른 이들을 봉사합니다.

인생 행로에 외로운 이들, 쓰러진 이들, 이런 이들로 말미암아 일으킴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서 인생 행로를 걸을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어디서나 복음을 전파합니다. 죄악에 묻힌 생명이 이런 이로 말미암아 구주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 이런 이들은 백합화와 비슷합니다. 혹은 난초와 비슷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그 향기가 온 사회에 퍼지게 됩니다. 무언의 감화가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많으면 자연히 사회가 정화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야말로 사회와 국가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입니다. 필요불가결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엘리사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왕이 찾아가서, 이스라엘의 병거(兵車)와 마병(馬兵)이시어 하고 이렇게 부르짖으며 통곡을 하였다고 합니다. 엘리사가 무슨 마병이 되어서 전장에 나가 싸웠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같은 참된 하나님의 종의 존재가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十八세기 영국의 유명한 전도자 조지 휘트필드라는 분이 세상을 떠난 다음 장례식을 할 때에 어떤 목사가 기도할 때에 역시 이 글귀를 인용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병거요 이스라엘의 마병이 되시는, 이 하나님의 사자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고.

우리가 이렇게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께 경배하게 된 것은 우리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사람이라도 이렇게 부르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처럼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도 복의 근원이 되어서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더해 주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될지라. 다시 말하면 "복의 근원이 되어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옛 생활에서 온전히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첫 걸음입니다. 둘째는 이 세상에 살지마는 이 세상에 속해서는 아니 됩니다. 어디가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마음과 성품과 정성을 다해서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했습니다.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니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신앙을 축복하시고 이런 신앙을 가진 이를 복의 원천으로 삼아서 모든 다른 사람들까지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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