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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1:14/ 부모의 가장 큰 기쁨 / 한경직 목사 2014-08-23 19:23:2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三서 四)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 一, 二, 三서는 사도 요한이 매우 나이 많을 때에 기록한 서신입니다. 이 모든 서신을 통해서 우리는 요한의 믿음의 아버지로서의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三서는 가이오라고 하는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에게 보낸 사사로운 편지올시다. 여기에서 그는 믿음의 아버지로서의 심정을 그대로 나타낸 것입니다. 오늘은 세계적으로 지키는 어린이 주일 또는 꽃 주일이라고 합니다. 아마 그것은 어린이는 꽃과 같이 예쁘다는 뜻인 줄 압니다. 또 어린이 주일을 유월 둘째 주일로 지키는 것도 뜻이 있는 줄 압니다. 특별히 이 때는 꽃 가운데도 제일 아름다운 장미가 피는 때입니다. 이렇게 어린이들은 가장 아름다운 꽃들이올시다. 따라서 부모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가져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했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부모로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부모의 심정도 일반인 줄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부모들에게 가져오는 기쁨은 사실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어린이들의 예쁜 얼굴을 통해서 부모들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옵니다. 아마 꽃이 아름답다고 하지마는 어린이들의 얼굴보다 더 아름답지 못할 것입니다. 특별히 어머니의 생각으로는 자기 아기보다 더 예쁜 것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다 꽃과 같이 아름답습니다. 사실은 어린이들도 가만히 보면 더 예쁜 아기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어머니에게는 다 예쁩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기를 낳고서는 찾아간 손님에게 안겨 주면서 우리 아기 좀 보세요, 그럽니다. 그런 경우에 그 아기를 보고 참 잘도 생겼다고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기 얼굴을 쳐다보니 그렇게 잘 생기지 못했단 말입니다. 그래서『아기는 과연 아기 군』이라고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아기가 다 예쁩니다. 특별히 아기가 몇 달되어서 웃기를 시작하면 웃는 아기 얼굴처럼 예뿐 것이 천하 어디에 있습니까. 또 어린애가 조금 더 커서 뒤집게 되면 그것도 예쁘고 혹 배 밀기를 하면 그것도 예쁘고 벌렁벌렁 기어다니게 되면 그것도 예쁩니다. 어린이들의 동작은 다 부모들에게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러다가, 엄마 아빠라는 아기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더 예뻐집니까. 그래서 어머니들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아이들이 말 몇 마디 하게 되면 벌써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애는 못하는 말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이야 그렇지 않겠지마는 어머니들이 그렇게 자랑을 합니다. 그래서 아기가 가정에 있으면 온 가정에 웃음의 꽃이 핍니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아기가 백일만 되면 백일 잔치를 해 주고 돌이 되면 돌잔치를 해 주고 정성껏 기릅니다. 저는 경험은 없으나 제가 들으니 아기 젖먹이는 재미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또 아기 업고 다니는 재미도 대단하답니다. 제가 신의주에 있을 때에 어떤 교회 목사님이 광고하기를, 분주하니 예배당 올 때에 아기를 업고 오지 말라는 광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 광고를 듣고 아기 어머니들이 불평이 대단했다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아기 업고 예배당 오지 말라는 광고는 하지 않고 아기 업고 오는 이들은 다 딴 방으로 가라고 광고를 합니다. 제가 이따금 예배를 볼 때 한 가지 좋은 것은 그 방이 아주 명랑합니다. 가만 보면 어머니들이 강대 상은 별로 안 보고 아기얼굴만 보려고 합니다. 아기 얼리는 어머니, 싸 가지고 온 과자를 먹이는 할머니, 아이들이 문턱에 올라가면 끌어내리는 어머니, 하여간 좀 분주하기는 하지만 그 방에 얼굴을 찡그리고 앉은 어머니는 없습니다. 아주 명랑합니다. 어린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아기가 점점 커서 유치원에 가게되면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쁩니까? 혹 유치원에 가서 무슨 그림을 그려 가지고 오면 그 그림이 얼마나 잘 그렸는지, 자기 아들 그림 잘 그린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혹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게 되면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쁩니까? 그러다가 혹 상장 같은 것이라도 타 가지고 오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쁩니까? 신문에 보면 치마 바람이란 말이 더러 나옵니다.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그저 어린이들이 너무 예뻐서 아이들을 위해서는 갈 데 안 갈데 없이 분주히 돌아다니니까 자연히 치마 바람이 날것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에는 치마 바람도 괜찮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어린 아기들이 아기 때부터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그 가정에 가져오는 모든 기쁨을 돈으로 환산한다고 할 것이면 부모들이 그 아기를 위해서 쓴 모든 돈, 부모들이 아기를 위해서 고생한 그 모든 고생을 돈으로 환산하면 아마 아기 편이 더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사실 여러 부모님들이 아이를 위해서 수고한다고 하지만 무료 봉사한다고 생각지 마세요. 사실은 값 받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린이들이 가정의 화평(和平)도 가져옵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부부간에 싸움을 하고 앉아 있다가도 유치원에 갔다오는 아이가 엄마 아빠하고 들어오게 되면 성났던 것도 봄 동산의 눈처럼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다시 어린아이를 가운데 놓고 싱글벙글 웃습니다. 내가 들으니까 어떤 가정에서 부부간 싸움을 굉장히 하고는, 나는 이런 집에서 못 살겠어 하며 보따리를 싸 가지고 그 부인이 문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나가려고 하는데 댓 살 난 어린애가 놀다가 뛰어 들어왔습니다. 들어오다 보니 어머니가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갑니다. 이 아기는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엄마 못 가, 나하고 같이 살자!" 하며 매달리니 그만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어린이들이 이혼 방지하는 데는 가정법원 판사보다 나은 줄 압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혼 많이 하는 나라의 통계를 보면 아기 없는 가정의 이혼율이 아기 있는 가정의 이혼율보다 퍽 높습니다. 그게 무엇을 증명합니까? 어린이들이 단연 이혼도 방지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도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대학쯤 졸업하게 되면 더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취직을 하게 되면 더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결혼까지 하게 되면 더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어린이들이 부모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옵니다. 이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낳은 기쁨을 가져오는데 그 가운데 제일 큰 기쁨이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이 하신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세요. 여러 가지 다른 말을 듣는 것도 기쁨을 가져오지마는 자기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들을 때에 제일 기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부모도 그렇고 육신의 부모도 그렇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하는 뜻은 쉽게 말하면 참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는 뜻일 겁니다.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합니다. 복음의 진리대로 삽니다.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 뜻을 순종합니다. 그 계명을 지킵니다. 범사에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이의 생활은 성결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고 근면하고 충성되고 범사에 절제가 있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합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이런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합니다. 적극적으로 교회를 봉사합니다. 복음을 전파합니다. 교육에 힘을 씁니다. 모든 봉사를 합니다.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정성껏 일합니다. 이에서 더 큰 기쁨이 부모에게 있겠습니까? 몇 주일 전에 어떤 자매 님이 제게 봉투 하나를 줍니다. 그래서 이게 무엇입니까? 물으니까 웃으면서 우리 아이가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는데 이번 첫 달 봉급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교회에 바치겠다고 합니다 하면서 그 봉투를 저에게 줍니다. 제가 그 봉투를 받으면서 그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어떻게 기뻐하는지, 참 큰 기쁨을 어머니가 체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몇 해 전에 편지를 하나 받았는데 뜯어보니 그 속에 돈이 좀 있어요. 누구에게서 왔는고 하니 전주 예수병원에 있는 간호원에게서 왔는데, 그 아기는 본래 우리 보건원에서 자라난 간호원입니다. 여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곳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원이 되어 자기가 받은 첫 달 봉급을 보낸 것입니다. 그 편지 사연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첫 달 봉급을 본 교회에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이 걸 목사님께 보내니 이것을 교회에서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받을 때에 믿음의 부모로서 얼마나 기쁜지 이런 아이 하나만 기른 것도 보건원 세운 보람이 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애가 이렇게 믿음이 좋더니 후에 목사 부인이 됐습니다. 둘 다 미국에 가 있는데 자기 남편은 미국 교회에서 일을 보고 자기는 병원에서 간호원 일을 본다고 합니다. 『내 자녀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고 사도 요함은 말했습니다. 믿는 부모로서의 제일 큰 기쁨, 전도자로서의 제일 큰 기쁨이 무엇입니까? 내 아들이, 내 딸이, 내가 전도해서 믿는 사람이, 혹은 집사가 되고 혹은 권사가 되고 혹은 장로로 장립(將立)을 받고 혹은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서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 이것이 제일 큰 기쁨입니까? 이것은 우선 기도의 응답이올시다. 사무엘이 사사가 될 때에 한나가 얼마나 기뻐했을 겁니까? 왜? 한나의 기도가 이루어졌습니다. 방탕하던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유명한 신학자가 될 때에 그 어머니 모니카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왜? 십 오년 동안 기도하던 그 기도가 응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교육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가정교육 주일학교 교육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들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고, 기도를 가르치는 것이고, 항상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교육의 열매가 맺혔습니까? 또 이것은 부모로서 수고한 보람이올시다.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고임을 받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 부모가 기울인 수고의 보람이 결국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계승을 의미합니다. 내가 살았을 때는 내가 십자가의 깃발을 들고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서 이 깃발을 놓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깃발을 놓을지라도 내 아들, 내 딸 내가 선도한 그 청년이 이 깃발을 대신 잡고 주를 따라가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큰 기쁨이 있습니까? 그것뿐입니까? 이것이야말로 하늘 나라의 영원한 기쁨을 의미합니다. 왜? 하늘나라에 가서도 온 가족이 같이 모일 것이 분명합니다. 나만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 아니고 내 아들과 내 딸과 같이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을 생각 할 때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이 구절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치 아니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슬픔이 없도다.』 부모로서의 가장 큰 슬픔이 무엇일까요? 믿는 부모로서의 가장 큰 슬픔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다윗의 일생을 잘 알지요. 다윗의 일생에서 가장 큰 슬픔의 장면이 언제입니까? 자기 아들 압살롬이 자기를 반역하고 역적 행동을 하다가 결국 죽을 때에 다윗이『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네 대신 죽었으면 좋을 뻔하였구나』하며 대성통곡을 하지 않았습니까? 진리에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부모에게 가장 큰 슬픔을 가져옵니다. 제가 해방 후 이곳에 넘어와서 한 이삼년 됐을 때입니다. 여기서 과히 멀지 않은 시골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 교회에 장로 한 분이 계신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맏아들은 지금 무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장로가 웃으면서 아주 기쁨으로 대답하는 말이 내 아들은 서울 가서 벼슬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는 이 장로가 장로이긴 하나 아직까지 옛날 고루한 사상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후에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한번 신문을 펴보니 그 아들 이름이 나옵니다. 어떤 사건과 관련이 되어서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결국은 중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상할까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무리 벼슬을 하고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고 아무리 돈을 잘 번다고 할지라도 진리에 행하지 않는 아들은 결국 부모에게 가장 큰 슬픔을 가져옵니다. 그러기에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감사할 줄 모르는 자녀는 독사의 이빨보다 더 날카롭게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아들과 딸 때문에 마음 상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습니까? 왜 이것이 가장 큰 슬픔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께나 부모에게나 배은망덕의 자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행하지 아니하고 옳은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그 믿는 가정에 있어서는 신앙의 대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지금 십자가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있지마는 내가 이 깃발을 놓을 수밖에 없을 때에 이 깃발을 들사람이 없습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고 하면 부모에게 영원한 슬픔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가서도 온 가족이 다 모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구원을 얻었다고 하지마는 그 심령이 얼마나 외롭습니까? 우리 가운데는 젊은 자녀들도 많이 있는 줄 압니다. 이와 같은 때에 내 자신을 스스로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어떠한 자녀인가? 내가 과연 내 부모님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자녀인가? 혹은 그렇지 못한가? 내가 언제나 부모에게 웃음을 가져다주는 자녀인가? 혹은 내 부모로 하여금 때때로 눈물을 뿌리게 하는 자녀인가? 만일 참으로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자녀가 되었다고 할 것이면 이에서 더 행복 된 사람이 없습니다. 이에서 더 감사한 일이 없습니다. 이러한 이들에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특별히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이 있다고 하면 현재에 옳은 생활을 한다고 너무 교만하지 말 것입니다. 『스스로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을 품고 더욱 힘써 옳은 길을 걷고 주의 일을 봉하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기억하세요. 이러한 이는 부모에게 가장 큰 슬픔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불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교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압니까? 불효삼천에 무후이대(不孝三千 蕪後而大)라고 합니다. 불효되는 것이 삼천 가지가 있는데 후손 없는 것이 제일 큰 것이라 합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압니까? 불효삼천에 무신이대 (不孝三千 蕪信而大)라, 불효되는 것 삼천 가지가 있는데 믿음 없는 것이 제일 큰 것이라 합니다. 이런 이가 한 분이라도 있다고 하면 속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에 행하는 것만이 내게도 제일 큰 행복이 됩니다. 진리의 길은 좁으나 결국은 생명의 길이요, 세상의 길은 넓어 보이나 결국은 사망의 길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다리지 마시고 이제 돌이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해서 우선 돌이켜야 합니다. 내 교회를 위해서도 돌이켜야 합니다. 내 나라를 위해서도 돌이켜야 합니다. 금생(今生)을 위해서도 돌이켜야 합니다. 내생을 위해서도 돌이켜야 합니다. 또 부모님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떠한 자녀들입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다 진리에 행하는 자녀들입니까? 혹은 그렇지 못한 자녀를 가진 부모들도 계십니까? 진리에 행하는 자녀를 가진 부모야말로 가장 큰 기쁨의 소유자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 무엇 불편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참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면 거기서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감사하세요. 그리고 더욱 기도하세요. 더욱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기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그렇지 못한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이 혹 계십니까? 이러한 부모에게 대해서 저는 중심으로 동정을 가집니다. 이러한 부모님들을 위해서 저는 항상 기도를 드립니다. 그 상심이 어떠할 것을 저는 넉넉히 짐작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기도하시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내가 들으니 전에 잘 믿는 어머니 두 분이 자기 아들이 회개 아니하고 죄악 가운데 사니까 약속을 하고 매일 모여서 항상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十五년을 계속하는 중에 한 어머니 아들이 회개를 하였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하겠어요. 그런데 한 어머니 아들은 그냥 회개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어머니가 왜 당신의 기도는 이루어 주고 내 기도는 이루어 주지 않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 떠난 다음에 그 아들이 회개했다고 합니다. 낙심하지 마시고 계속해서 기도하시고 계속해서 힘쓰시기 바랍니다. 오늘 꽃 주일을 당해서 부모님들은 가장 큰 기쁨을 가지는 부모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 자녀들은 가장 큰 기쁨을 부모들에게 줄 수 있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길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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