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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1:32/ 천국과 무명용사 / 한경직 목사 2014-08-23 08:41:11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 十一․三十二) 과거 二十三년 동안 어지러운 세대 가운데서 우리에게 은혜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무엇으로 다 감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 읽은 말씀은 히브리 十一장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것과 같이 히브리 十一장에는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하여 위대한 신앙의 용사들에 대한 간단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아벨로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여러분의 신앙에 대한 기록을 하여 내려오다가 三十二절에 와서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기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여기 다윗과 사무엘까지 말하고 그리고는 시간이 부족해서 선지자들의 일을 일일이 기록하지는 아니했습니다. 선지자들 가운데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위대한 신앙의 용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은 거기 나타나지 않고「선지자들」이라고 하는 무명의 신앙의 용사로서 여기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二十一장을 볼 것이면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열두 문이 있는데 그 열두 문 위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 이 새 예루살렘 성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는데 그 열두 기초 석 위에는 예수 님의 열두 제자의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성 자체를 이룬 돌들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무명의 돌들이 모여서 큰 새 예루살렘 성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의 한 상징이올시다. 교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천국에는 알려진 이름들이 혹 있으나 대부분 무명의 용사들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천국과 무명의 용사들을 중심해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신약시대 교회사를 읽어볼지라도 예루살렘 교회, 에베소 교회, 고린도 교회 같은 교회들을 누가 설립했는지 우리가 잘 압니다. 그러나 수리아, 안디옥 교회, 즉 선교 역사에 있어서 아주 귀중한 역할을 한 안디옥 교회를 누가 설립했는지 모릅니다. 또 그 위에 전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로마 교회의 설립자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소아시아에 유명한 일곱 교회가 있었는데 에베소 교회 이외에는 다른 여섯 교회 설립자는 모릅니다. 다 신앙의 무명용사들이 설립한 교회입니다. 이것은 전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무명 용사들로 말미암아 설립이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사도 역시 그러합니다. 교회 설립 뿐 아니고 전도와 교회 확포(擴布)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에도 역시 무명용사들의 공헌으로 되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로써만 사도시대 교회가 설립된 것은 아닙니다. 주후 二세기와 三세기 교회사를 보면 그 시대는 크게 핍박이 있은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용감히 순교를 하면서 복음을 전파한 영웅적인 시대입니다. 교회가 크게 확포한 시대입니다. 결국은 복음이 로마 제국을 정신적으로 정복해서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 시대입니다. 가장 장렬한 시대입니다. 물론 이 시대에 우리는 본토의 그레고리 같은 사람과 터툴리안이나 키프리안 같은 사람을 혹 기억하지만 이 시대에 있어서 교회 확포의 중심적 역할을 한 이들의 이름을 모릅니다. 대부분 무명 용사들이 이루어 놓은 일입니다. 그리고 주후 四세기와 五세기를 생각해 보면 그때에는 동방에서부터 여러 만족들이 서편 유럽을 점령하는 아주 혼란한 시기입니다. 이때는 만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서 장차 기독교 문명의 기초를 닦는 아주 중요한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혹 율필라스 같은 이름이나 페트릭 같은 이름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그러나 만족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대전도의 중요한 역사는 무명의 용사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역사를 다 훑어볼 수는 없고 최근에 내러와서 十九세기 이후에 근대선교사(史)를 보아도 역시 그렇습니다. 이 시대야말로 아시아, 아프리카, 태평양,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된 중요한 시대입니다. 물론 우리가 인도를 생각할 때에 윌리암 케리 같은 이를 기억합니다. 아프리카를 생각할 때에 리빙스톤 같은 이를 기억합니다. 중국을 생각할 때에 모리슨이나 테일러 같은 이를 우리가 기억합니다. 혹은 한국을 생각할 때에 언더우드나 아펜셀라 마펫 같은 이를 우리가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있어서 전도의 큰 사업을 한 대부분의 사람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합니다. 무명의 선교사들, 무명의 본토 교역자들, 모든 평신도들, 무명의 신앙의 용사로 말미암아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창립 二十三주년을 기념해서 우리 본 교회의 간단한 역사를 돌아다볼 때에도 물론 우리 교회에서 김 응락 장로 같은 순교자가 낫고 많은 수고를 하다가 이미 하늘나라로 간 몇 분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역사를 잠깐 돌아다 볼 때에도 우리 교회 안에 많은 무명의 용사들이, 말하자면 무명의 순교자들이 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전도하고 심방하고 봉사하는 가운데 이와 같은 축복을 받은 것을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十五장 三十一절에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나는 날마다 죽노라.』우리가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이런 악한 세상에서 옳은 생활을 하고 꾸준히 교회를 봉사하는 것은 매일 매일 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일입니다. 매일 매일에 순교의 생활을 하는 이들로 말미암아 교회는 확포가 되고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또 사실은 이 신앙의 용사들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명의 용사들입니다. 가령 우리가 사도 바울을 생각할 때에 유명한 사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서 四장 十三절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기 같이 되었도다.』세상의 찌꺼기 같이 대우를 받았다고 친히 기록했습니다. 만일 그때에도 신문이 있었다고 할 것이면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을 대서 특필로 보도했을 줄 압니까? 아닙니다. 그때에는 무명의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교회는 이와 같은 무명의 용사의 희생과 봉사로 말미암아 설립이 되고 확포가 되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내려오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八장 三절에『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께는 이들이 아시는 바가 되었습니다. 이사야 四十三장 一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내 것이라.』하나님이 지명해 불렀으니 하나님은 그들을 압니다. 요한 복음 一장에 보면 예수님이 처음으로 나다나엘을 만나서『아! 여기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랑이 있다』고 말씀을 하실 때에 나다나엘이 하는 말이『언제 나를 알았습니까?』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예수 님 말씀이『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이미 너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으나 예수님은 이미 나다나엘을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은 보지 못하나 이런 무명의 용사들을 하나님은 보시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十장 三절에는『그가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내느니라』이렇게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二장 九절에는『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의 행위도 아시고 수고도 아시고 환난도 아시고 궁핍도 아십니다. 세상은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아십니다. 세상에서는 무명의 인물이라 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유명한 인물들입니다. 또 이것이 가장 귀한 이름이올시다. 이것이 참으로 유명한 이름이올시다. 그리해서 고린도 후서 六장 九절 이하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富饒)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제가 신학생으로서 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조용한 틈이 있으면 가서 조용히 기도하던 곳이 하나 있습니다.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약 十五분간 남쪽으로 걸어가면 거기 조그마하게 두드러진 곳이 있었습니다. 사방에 소나무를 뺑 돌아 심어서 그 속에 들어가면 조용하고 누가 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종종 시간이 있으면 그 곳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 조그마한 산은 다른 게 아니고 무명 용사의 무덤이올시다. 미국 독립전쟁 때에 큰 전쟁이 그 프린스톤에서 일어났습니다. 많은 미국의 독립군과(그때는 영국하고 싸울 때입니다) 영국 군인들이 한꺼번에 죽어서 적군이나 아군의 시체를 모아 놓고 조그마한 산을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나무를 잘 심어 놓고 그 안에다 돌로 무명 용사의 무덤이라고 새겨 놓았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조용히 머리를 숙일 때마다 제 마음 가운데 큰 느낌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미국의 번영과 이 축복과 이 나라가 이렇게 자라게 된 것은 이 배후에 이런 무명의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싸운 무명의 용사들만이 있었을 뿐만 아니고 교회를 위해서 싸운 무명의 용사들도 많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이 무명의 용사들의 공헌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나라가 된 것입니다. 나라나 교회는 한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나 우리 교회도 과연 축복 받는 나라와 교회가 되려고 할 것이면 이런 무명의 용사가 많아야 합니다. 강원도 일부에 공비가 침투해서 소탕 작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신문을 펼 때마다 자세히 읽어봅니다. 감격한 것은 우리 군경과 예비군들이 용감히 나라를 위해서 싸울 뿐 더러 국민들도 그저 공비가 척 발견만 되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곧 신고를 해줍니다. 말하자면 우리 국민들 하나 하나가 무명의 반공의 용사라고 하는 것을 제가 알게 될 때에 제 마음은 아주 감격했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됩니다. 그러면 교회도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남북 통일도 바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에 헬라에 여러 작은 나라들이 있었는데 그때에 스파르타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다 성을 쌓고 사는데 이 스파르타 나라에 가니까 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 나라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는 다 성이 있는데 당신 나라는 성을 쌓지 않고 사느냐?』그러니까 스파르타 시민 하나가『우리 스파르타 나라에는 우리 국민 하나 하나가 우리 스파르타 나라를 지키는 한 벽돌이올시다. 성이올시다.』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잘 됩니다. 교회도 그와 같은 사람으로 구성이 되면 부흥됩니다. 이번 아시아대회에 가서 여러 나라 지도자들과 만나서 그 나라 사정을 다 듣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일본에서 온 파토리 박사라고 아주 열심 있는 목사와 이야기할 때에 이런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아직도 일본에는 믿는 사람의 수가 적다고 하면서 그가 계속 하는 말이『지금 우리가 힘쓰는 것은 五十만 기독교인이 하나 하나가 다 전도자가 되기를 위한 운동을 하는 중입니다. 우리 이 五十만 기독교인이 일년에 한 사람씩만 주님께로 인도하면 七년 반이면 일본 사람이 다 기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계산해 보니까 꼭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의 경우는 어떤지 아십니까? 한국은 三백만이 현재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만일에 三백만 기독교인 하나 하나가 무명의 용사가 되어서 일년에 한 사람씩만 꼭 주님께 인도한다고 할 것이면 몇 년만에 三천만이 전부 기독교로 돌아오는지 아십니까? 삼 년 반 만입니다. 사실 우리 하나 하나가 무명의 용사가 된다고 하면 온 한국 뿐 아니고 온 아시아를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산상보훈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남 보는 데서 기도하지 말고 골방에 가서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무명의 기도의 용사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구제하는 것을 가르치실 때에 세상 사람처럼 나팔을 불고 남 보는 데서 구제하지 말고 네 오른 손이 구제하는 것을 네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것은 무슨 말입니까? 무명의 봉사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금식하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너희들은 의식하는 사람처럼 얼굴에 수심 빛을 띄게 하지 말고 얼굴을 깨끗이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남 모르게 금식을 하라고 하신 것도 무명의 금식자가 되라고 하는 뜻입니다. 무명의 기도의 용사가 많고 무명의 참된 봉사자가 많고 무명으로 자기의 것을 바치는 이가 많고 우리 하나 하나가 무명의 신앙의 용사가 된다고 하면 나만 구원할 뿐 아니라, 내 가정만 구원할 뿐 아니라 온 한국을 구원하고 아시아를 다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전에 한문을 읽어보신 분은 논어 첫 페이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논어 셋째 줄에 무슨 말이 있는지 기억하십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인부지 불온이면 불여 군자호아』(人不知不溫 不如 君子呼我) 사람이 알지 못해 마음에 온유함이 없으면 군자가 아니라. 군자다운 신앙의 용사가 되라는 말입니다. 세상은 모르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무명의 용사들로 말미암아 교회는 설립이 되고 교회는 확포가 되고 교회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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