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3:10-17/ 구원에 이르는 지혜, 성경 / 한경직 목사 2014-08-23 08:29:38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三․十五) 오늘은 세계적으로 성서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성경은 참 이상한 책이올시다. 아무리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베스트셀러라고 할지라도 한 十여 년 지나게 되면 그 책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근 이천 년 전에 쓰인 책인데 지금까지도 제일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 책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제일 많은 비난을 받고 공격과 박해를 받아오는 책입니다. 옛날 셀서스라고 하는 사람을 비롯해서 十八세기의 볼테어 같은 사람 그리고 二十세기에 와서 공산당에 이르기까지 항상 공격과 발해의 대상이 된 책입니다. 옛날 로마 시대에 교회를 핍박할 때에는 믿는 사람만 잡아다가 불레 태워 죽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도 찾는 대로 거두어서 불살라 버린 것입니다.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十六세기에 월리암 틴달 같은 사람은 처음으로 성경을 영국 말로 번역한 죄로 화형을 당했습니다. 영국 왕 헨리 八세 같은 사람은 누구든지 이 새 번역 성경을 읽는 사람은 한 달 이상의 금고에 처한다는 포고를 내렸던 예도 있습니다. 오늘날 문명이 더 발전되었다고 하는 二十세기에 와서도 잘 아시는 북한 같은 데서는 이 성경을 자유로이 내놓고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소위 공산 국가에서는 아직도 성경을 자유로이 출판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많은 발해를 받는 책이지마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경은 제일 많이 팔리는 책이올시다. 제일 많은 방언으로 번역된 책입니다. 一천 二백여 다른 방언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가장 많이 읽는 책입니다. 또 각계 각층의 사람이 읽습니다. 학생도 읽고 군인도 읽고 철학자도 읽고 정치가도 읽고 실업가도 읽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각계 각층이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왜? 그 대답이 우리가 읽은 이 구절 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간단히 말하면 세 가지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지막부터 생각합시다. 첫째로 이 성경은 지혜가 있게 하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이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이 가르치는 데로 서너 가지를 생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에게 친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성경은 우리 인간들에게 지혜가 있게 하는 책입니다. 잠언 一잘 一절 이하를 읽으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明哲)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공명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구약 가운데 특별히 잠언이나 전도서를 지혜 문학이라는 명칭으로 부릅니다. 왜? 특별히 지혜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 四장 七절에는『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권면합니다. 八장 十一절에는『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신약에 와서 누가복음 二장 四十절에 보면 예수님의 유년 시대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이렇게 기록했습니다.『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예수님은 어렸을 적부터 지혜가 충족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결론은 집을 반석 위에 짖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지혜라고 하는 말은 지식이라는 말과는 뜻이 좀 다릅니다. 지식이라고 하는 말은 아는 것의 총칭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지식을 바로 쓰며 범사에 바른 길을 택할 줄 아는 지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이 많지마는 미련한 사람이 있고 지식이 좀 부족하지마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이 二十세기는 지식의 세기올시다. 지식이 매우 팽창한 세기입니다. 어느 세기보다도 그러합니다. 二十세기에 들어와서 우리 인간은 원자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비밀을 탐색하게 되었습니다. 달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二十세기가 지혜의 세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앞으로 역사가들이 작정하려니와 아마 지금 같아서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왜? 二十세기에 인류들이 행한 일을 전체적으로 볼 때에 미련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二十세기 벽두인 一九一四년부터 一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귀한 생명과 재산이 말할 수 없이 많이 쓰려졌습니다. 이것도 지혜 있는 일입니까? 소련에서는 공산당 혁명이 일어나면서 수 없는 생명이 쓰러졌습니다. 이것도 지혜 있는 일입니까? 독일에서는 나치스 운동이 일어나면서 죄 없는 유태인 六백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이것이 지혜 있는 일입니까? 二차 대전이 겹쳐 일어나서는 말할 수 없는 인명과 재산이 또 다시 파괴를 당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二十세기는 가장 피비린내 나는 세기입니다. 미련한 세기라고 후에 역사가들이 기록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식을 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경제가 발달해야지요. 그러나 돈만은 부족합니다. 돈을 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권세 자리에 있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부족합니다. 권세를 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권세 자리에 있음으로 자기 자신과 나라를 망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왜? 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재능 있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부족합니다. 그 재능을 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기회를 만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젊음은 귀합니다. 그러나 젊은 시대를 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젊음으로 죄에 빠지고 자신을 망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피차에 화목해서 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이 지혜가 있게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이 성경은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에 자연히 지혜가 거기에 따릅니다. 똑바로 모든 것을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 三장 十七절에 이렇게 교훈 했습니다.『오직 위로부터 나는 지혜는 첫째 성경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 둘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이 술에 중독이 되어서 거리를 헤매다가 쓰러져 죽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까? 지식만은 부족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청년들과 학생들 분명히 아십시오. 박사학위만은 부족합니다. 그 지식을 바로 쓸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지혜를 어디서 얻습니까? 성경을 읽는 가운데서 얻습니다. 전에 어거스틴 같은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부족했습니다. 음란과 방탕에 빠진 쓸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이 성경을 읽을 때에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변해서 성 어거스틴이 되고 유럽의 천년 동안의 사상을 지배한 위대한 사상가가 된 것입니다. 특별히 그가 읽고 지혜를 얻든 성경 구절이 어느 구절인지 여러분 기억합니까? 한 번 들어보세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구절이 어디 있는지 압니까? 로마서 十三장 十二절로 十四절이올시다. 이 책은 지혜를 얻게 합니다. 어떤 지혜입니까? 사특한 인간의 지혜입니까? 둘째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이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인간은 세 가지 방면에서 꼭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첫째는 죄에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둘째는 공포와 불안에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셋째는 허무감에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씩 다시 생각해 봅시다. 인간은 죄에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요사이 항간에 들리는 말 중에는 이런 말이 제일 많습니다. 고층건물은 올라가지만 썩기는 더 썩었다 하는 말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많이 들었을 겁니다. 혹은 이런 말도 들립니다. 건물이 높아지는 것처럼 범죄율은 더 높아지더라. 그래서 사기, 횡령, 절도, 강도, 음란, 살인 등 온갖 죄가 사회를 어지럽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만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이 죄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 죄에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이 책에 있습니다. 둘째로 인간은 불안과 공포에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어느 때나 인간이 불안과 공포 가운데서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더욱 심합니다. 자동차가 많아지는 것은 교통의 편리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교통 사고의 격증도 의미합니다. 비행기 여행은 빠르고 편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큰 위험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서울 거리도 마음놓고 걸을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할수록, 기계 문명이 진보 될수록 불안과 공포심은 더 증대해집니다. 원자탄 시대, 미사일 시대, 인공위성 시대에 사는 우리는 전쟁만 나면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피난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 인류는 이 불안과 공포에 떠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불안과 공포심은 우리 인간생활에 여러 가지 악영향을 줍니다. 여러 가지 질병을 유도합니다. 유발합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현대에 많아지는 것은 정신병자입니다. 한국만이 아닙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정신병자는 더 많아집니다. 또 여러 가지 육체의 다른 질병도 많아집니다. 대부분은 이 심리적 원인입니다. 이 불안과 공포심에서 인간은 꼭 구원을 얻어야 옳게 살아야 할 텐데 여기에서 해방되어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어디 있습니까? 이 성경에 있습니다. 셋째는 인간은 허무감에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어떤 예술가가 큰 원을 하나 그려 놓고는 점을 하나 찍고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했답니다. 그게 무슨 알입니까? 인생은 허무하다는 말입니다. 전도서 一장 二절을 읽어보세요『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한문으로는 공지우공이요 허지우허(空之又空 虛之又許)라고 번역했습니다 . 인생에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서에만 있고 예술가만 그렇게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한국에 내려오는 노래가운데『낙양성동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 호걸이 몇이며 절대가인이 누군고? 우리도 늙어지면 저기 저 모양 되오리라.』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모양이 무슨 모양인지 압니까? 높고 낮은 무덤이올시다. 허무하다는 말입니다. 이 허무감에서 인간은 구원을 얻어야 옳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런 허무감에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어디 있습니까? 이 책에 있습니다. 셋째로 어떻게 이 책 가운데는 죄에서 구원을 받고 불안과 공포심과 허무감에서 구원을 받는 지혜가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이 책은 무슨 책입니까?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구약 가운데는 예수께서 장차 오실 것과 거기 대한 준비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 가운데는 예수 님께서 어떻게 오신 것과 그의 생활이 어떠한 것과, 그의 교훈이 어떠한 것과, 그를 믿는 도리가 어떠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이 책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 심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그를 믿게 됩니다. 그를 믿게 되면 먼저 죄에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도 만민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죄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十장 九절에는『네가 만일 내 입으로 예수를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후서 五장 十七절을 다 기억하시지요?『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책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우선 죄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둘째는 불안과 공포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왜? 이렇게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하고는 예수 님께서 같이 동행하십니다.『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님은 거짓말 안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할 때에 초막이나 궁궐이나 하늘나라가 됩니다. 불안과 공포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말씀했습니다.『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쳐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평화의 유산을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위험하나 주안에 사는 사람들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 뿐입니까? 셋째로 허무감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참으로 예수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고 예수 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허무감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왜?『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삵도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사는 생명을 얻습니다. 이런 생명을 얻을 대에는 허무감이 없어집니다. 왜? 죽음이 최후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생에 들어가는 입문이올시다. 이 책은 이렇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우리에게 줍니다. 이탈리아에 시실리라고 하는 큰 섬이 있습니다. 어떤 권사가 밤길에 산골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돈을 다 뺏기고, 등에 지고 가던 성경책까지 뺏어서 모닥불 속에다 넣으라고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권총을 대고 넣으라고 하니, 집어넣으려다 권사가 얼른 한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 책을 불 속에 넣겠는데 당신은 여기에 무슨 말이 있는지 모를 것이 아니요? 그러니 내가 여기서 한두 마디만 읽고 불에 넣겠습니다.』그러니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권사가 성경을 척 펼쳤더니, 시편 二十三편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 읽었답니다. 강도가 다 듣더니『아하! 그것 이상한 말이 다 있구먼. 그 책은 여기 놓으시오』합니다. 그래서 다른 책을 들면서『여기서도 한 마디 읽고 넣읍시다』하고 성경을 펼치니 산상보훈이 나오는데 어떻게 하는 사람이 복 받는다 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강도는『아하! 그것도 이상하니 그것도 넣지 마시오.』이렇게 해서 나중에는 책을 다 넣지 말라고 하더니 자기가 다 싸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그 권사는 돈도 읽고 책도 다 잃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여러 해 후에 어떤 점잖은 사람 한 분이 그 권사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손님이『당신은 언젠가 산에서 강도를 만났던 일을 기억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오』하고 대답하니까『그 강도를 기억합니까? 제가 바로 그 강도올시다. 내가 당신의 성경책을 뺏어 가지고 가서 좀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성경책을 읽는 가운데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 뿐 아니고 내가 멀리 가서 신학 공부를 하고 지금은 목사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도가 변해서 목사가 되게 하는 책이 성경책입니다. 위대한 애국자요 교육자인 남강 이승훈 선생을 기억합니다. 一0五인 사건 때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있으면서 신약 백 독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책은 안 읽고 신약 백 독을 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되었음이라.』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될 때에 우리 양심은 바른 양심이 됩니다. 바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전에 어떤 책을 보니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사다 두기는 하지만 읽지를 않아서 성경 위에 먼지가 많이 쌓여 있다더라 하는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어떤 글귀가 있는고 하니 만일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네 성경책 위에 있는 먼지를 일시에 떤다고 하면 먼지가 너무 많아서 한 三, 四일 동안 해가 가리워 질 것이다. 여러분의 성경은 어떻습니까? 한 주일 내내 가만 두었다가 주일날 아침에 먼지 털어서 가지고 오는 분은 안 계십니까? 성경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양식은 매일 먹어야 합니다. 성경은 매일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성경 문답지도 항상 준비해 돌립니다. 몇 분이나 가져다 집에서 공부합니까? 또 여기 와서 성경을 공부하라고 야간성경학교도 설립하였습니다. 몇 분이나 와서 공부합니까? 이렇게 귀한 책을 먼지가 앉게 두는 것이 얼마나 안 된 일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양심이 포로가 되기까지 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고 하면 성경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며 성경대로 말하고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죽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전파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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