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딤후3:10-17/ 내 발의 등: 성경/ 한경직 목사 2014-08-23 08:28:17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一一九․一0五) 주의 말씀은 이와 같은 인생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 발에 등이 되고 우리 길에 빛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주의 말씀의 뜻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창천무언(蒼天無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푸른 하늘이 말이 없다』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푸른 하늘이 우리 사람처럼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 十九편 一절 이하를 잘 기억합니다.『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穹蒼)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만물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 세계에도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들을 만한 귀를 가진 이는 들을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 속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간의 양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선과 악을 분별케 해주시고 선을 행할 때에 결려하여 주시고, 악을 행할 때에 경고하여 주시고 책망하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 속에서 주의 말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귀가 있어서 들을 만한 자는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주의 말씀」이라는 뜻은 이런 뜻이 아닙니다. 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자연계와 인간 속에 주의 말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마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타락된 이후에는 이 음성을 바로 듣지 못합니다. 로마서 一장 二十一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양심도 부패하여 화인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특별한 백성을 택하시고 특별한 사람들을 택해서 친히 그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고, 그 사람들을 선지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세례 요한에게 이르기까지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 말씀들을 수집하여 놓은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서입니다. 그러나 그뿐만 아닙니다.『옛적의 선지자들에게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에게도 또한 말씀하셨습니다.』곧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그의 인격과 가의 성품과 그의 생활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한 복음 一장 一절에는『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했는데 이 말씀이 곧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신 모든 말씀과 거기에 대한 사도들의 해석을 수집한 책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읽는 신약성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주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신구약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특별히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신구약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행로를 걸어가는 우리 인간에게 등이 되고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성경이 인생행로를 걸어가는 인간에게 어떠한 빛을 주시는가? 우리가 잘 알지마는 간단하게 몇 가지로 기억할 수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요한 복음 五장 三十九절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이 가운데 영생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사도 요한 이 요한 복음을 다 써내려 가다가 二十장 마지막 절에 이런 말씀을 기록했습니다.『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한 것입니다. 신명기 三十장 十九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 줍니다. 시편 三十四편 十二절 이사를 보면『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詭詐)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이를 따를지어다.』생명의 길이 어떠한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온 성경의 중심이 되는 요한 복음 三장 十六절을 우리가 기억합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산상보훈에서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사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문이 넓고 길이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험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이가 적으니라.』 그것이 생명의 문이니 생명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생명의 길을 분명히 알게 하여 줍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는 것이로다.』 『나는 길이요 지리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신구약 성경은 죽을 인간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 줍니다. 살고, 죽지 않고, 잘 살고, 옳게 살고, 풍성히 살고, 아니 영원히 살기 위하여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민족 전체가 이 말씀의 빛을 받는다고 하면, 우리 민족의 모든 생활이 더 풍성하여질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든 방면에 더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길을 옳게 찾아서 걸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로 이 주님의 말씀은, 성경을 읽는 이는 다 기억하고 계신 줄 알지만 사랑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나시니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아버지께서 그 아들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여러분, 이런 말씀을 세계 어떤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이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비추어 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하면 보기에는, 냉혹한 물질의 우주 같지마는, 우주의 중심 핵 속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생활의 근본 원리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여러 가지 계명이 많지마는 제일 큰 계명은 한 마디로 사랑인 것입니다. 두 마디로 말한다면『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생의 근본 원리입니다.『형제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워 줍니다.『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한 말씀 가운데는 인간이 말하는 윤리와 도덕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고린도 전서 十三장의 일부를 읽을 때에 사랑이라고 하는 말 가운데 어떻게 도덕적 교훈이 포함되어 있나 생각해 보세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리라.』 사랑은 생의 원리입니다. 인간이 사랑을 떠나면 살 수 없습니다. 지금은 과학이 극도로 발달된 시대입니다. 방금 이 시간도 우주시대로서 미국 사람 둘이 제미니 제七호를 트고 지구의 대기권을 선회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아마 계획대로 잘되면 인공위성이 또 하나 올라가서 대기권에서 서로의 랑데부가 오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시대입니다. 즉 과학의 시대요, 과학 혁명 시대요, 과학이 극도로 발달된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대에 왜 월남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대량으로 피차에 죽이려고 합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생의 근본원리인 사랑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의 사상에는 사랑이란 없습니다. 냉혹한 물질을 중심 한 사상이 전 세계 인류의 三분의 一을 현재 지배하고 있습니다. 오늘 二十세기가 공포의 세기로 화하게 된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인류는 잔존합니다. 요사이 서울 주변을 보면 주택을 아름답게 짓는 이가 많이 있습니다. 아주 현대식으로 매우 아담하게 그리고 그 내부 장식도 보면, 매우 호화롭고 찬란한 아름다움 주택을 짓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주택을 지었다고 아름다운 가정이 됩니까? 아무리 집은 아름답게 지어 놓았지마는 그런 집 가운데서 부부가 눈을 흘기고 싸움하고 마지막에는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하는 일이 왜 일어납니까? 집은 잘 지었지마는 사랑이 없습니다. 어떤 집에는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썩어져 가는데 어찌하여 이 사회에 굶주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랑이 부족합니다. 성경에 주님의 말씀은 사람의 빛을 비추어 줍니다. 사랑이 생의 중심이라고 말입니다. 인간이, 아니 전 인류가 사랑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의 빛이 이 세기에 필요합니다. 셋째로 이 하나님의 말씀은 소망의 빛을 비추어 줍니다. 생활은 향상되고 문명은 증진되지마는 우리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어느 나라에 가 보든지, 상심하고 낙심하여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소망을 잃은 까닭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소망의 빛을 비추어 줍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돋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리려 찬송하리로다.』소망의 빛을 비추어 줍니다.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 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 시요. 나의 구원이 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하나님께 소망을 품은 사람은 요동치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기록했습니다.『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矜恤)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으니』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十五장 四절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소망을 가지게 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우리에게 기록하여 주신 것입니다. 소망을 잃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그리하여 타락합니다. 그리해서 자포 자기 합니다. 그리해서 흉악한 범죄에 빠집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의 생명을 스스로 끊습니다. 절망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절망의 시대에 이 말씀만이 영원한 소망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줍니다. 인생의 가는 길이 다 어둡지마는 어떤 때는 특별히 더 어두운 때가 있습니다. 환난의 밤이 있습니다. 질고의 밤이 있습니다. 실패의 검은 밤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독의 밤을 지날 때도 있습니다. 무서운 유혹의 밤도 있습니다. 슬픔의 밤도 있습니다. 죽음의 밤도 또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이는 어떤 밤을 지내든지 생명의 빛과 사랑의 빛과 소망의 빛을 풍성히 받아서 어떤 밤이라도 넘어지지 않고 담대히 밟고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 제二차 대전 때에 독일의 나치스 지도자들이 전쟁 범죄자로 물려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면서 감방에 있을 동안, 그들의 대부분이 무슨 책을 찾았는고 하니 성경책을 찾았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좀 들여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무서운 죄를 지었지마는 성경을 읽는 이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재생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령한 눈을 들어 잠깐 주의를 살펴보세요. 여러분의 주변에 인생행로에서 쓰러지고 거꾸러지고 썩고 해골이 된 불쌍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 가를 보세요. 특별히 五十이나 六十세쯤 되신 분은 여러분의 동창들 가운데, 여러분의 친구들 가운데 살펴보세요. 인생행로를 걷다가 쓰러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 가를 보세요. 쓰러진 정치가도 많습니다 쓰러진 실업가도 많습니다. 거꾸러진 지성인도 많습니다. 장년들도 부지기수입니다. 학생들도 많습니다. 남자도 많고 여자도 많습니다. 왜? 발에 등이 없이 어두운 밤을 걸어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길에 빛도 없이 어두운 밤을 걸어갑니다. 아닐세라 넘어지지요. 밤에는 반드시 등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각각 자신을 살펴보세요. 이 말씀이 내 발에 등이 되었습니까? 내 길이 새로워집니까? 그렇게 하려고 하면 여러분이 성경을 사서 책꽂이에 꽂아 놓았다고 여러분의 발을 비추어 줄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을 읽어 나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밝은 빛을 말 아래 두지 맙시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이 오래 전에 쓰였으니 낡은 책이라고, 낡은 등이라고 업신여기는 사람이 혹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 되었다고 반드시 낡은 것은 아닙니다. 태양은 얼마나 낡았습니까? 여러분이 세상에 나기 전에 태양은 있었습니다. 단군 할아버지도 그 태양 아래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그 태양 아래서 살았습니다. 그 태양이 지금까지 비추고 있습니다. 오래 되었다고 빛이 낡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의 빛은 영원히 새롭습니다. 오히려 오랜 빛이기에 신임할 만 합니다. 여러분이 성서주일에 성서에 대한 얘기를 듣기만 하지 마세요. 보통으로 어떤 기회에 성경을 읽습니까? 고 물으면, 네, 읽습니다. 어떤 때에 읽습니까? 생각하면 읽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제일 많습니다. 그렇게 읽어 가지고 등불이 되겠습니까? 밤길을 매일 매일 가는 사람으로, 이따금 생각하면 읽어서 들불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이 성서주일부터 매일 매일 읽으세요. 읽기만 하지 말고 공부도 하세요. 성경 반에 들어가 공부도 하세요. 여러분이 혼자 공부하실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우리 교육 제二부에서 문답지를 매달 인쇄해서 여러분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집에서 혼자라도 공부할 수 있어요. 매일 읽고 성경을 공부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내 발에 등이 됩니다. 그리해서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성경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에 이 말씀이 내 발에 등이 되고 내 길에 빛이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