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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3:10-17/ 성경을 아는가? / 한경직 목사 2014-08-23 08:26:03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三․十五-十七) 오늘 十二월 둘째 주일은 세계적으로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이 날 성경은 어떠한 책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물론 여러분께서 성경이 어떠한 책인 줄은 대강 아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우리가 분명히 이 시간에 몇 가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모든 책 가운데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책입니다. 사상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옛날 셀레우스(Celeus)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十八세기의 볼태르(Boltair)같은 사람과 현재 파괴적 비판자에게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공격을 하였습니다. 또 성경은 가장 박해를 많이 받은 책입니다. 로마제국에서 큰 핍박이 있을 때에, 항상 성경을 빼앗아서는 불살랐습니다. 중세기에는 천주교회에서 성경을 박해했습니다. 즉 일반이 읽지 못하게 금했습니다. 현대에는 공산당들이 성경을 박해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러나 지금도 성경은 세계의 어떤 책보다도 제일 많은 방언으로 번역된 책입니다. 제가 알아보니 현재 一천二백二十三 방언으로 번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방언으로 번역된 책은 다시없습니다. 또 성경은 지금도 세계의 어떤 책보다도 제일 많이 팔리는 책입니다. 요새 말로 베스트 셀라(best seller)입니다. 작년에 여러 성서공회를 통해서 판매된 부수가 아마 쪽 복음까지 포함해서 四천九백八十七만七천四백二十八권이라고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만 반포된 수가 九三三만五천六백六十一권이라고 합니다. 거의 一천만 권에 가깝습니다. 세계에 이렇게 많이 반포되는 책은 없습니다. 지금도 성경은 어떤 책보다도 제일 많이 읽는 책입니다. 학생도 읽고, 청년들도 읽고, 노인들도 읽고, 남자 여자, 학자, 정치가, 과학자,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읽는 책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성경은 무적의 책입니다. 대적이 없는 책입니다. 十八세기 불란서 자유사상가 볼테르 같은 사람은 그 때부터 약 五十년 후에는 이런 책을 익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혹평을 하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五十년 후에는 그이가 앉아서 그 이야기를 했던 그 집이 바로 성서공회가 되어서 마루에서 천장까지 성경으로 가득 쌓이게 되었다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는 우리가 다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데모데 후서 二장 九절에 사도 바울이 기록한 바와 같이『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메이지 아니 할』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메이지 않습니다. 이런 책은 온 세계의 하늘 아래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유일무이한 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성경은 여러분이 방금 들으신 대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입니다.『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디모데 후서 三장 十六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一장 二十一절에『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만한 것임이니라』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선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요한 복음 十四장 二十六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보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가르치시고 성령이 생각나게 하신 대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책이 많지마는 이런 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이런 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근원이 하나님께로 서 났습니다. 둘째로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제가 학생시절의 신앙 경험을 회고해 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말이 제일 이해하기가 곤란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개인의 전기도 있고,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도 있고, 문학도 있고, 편지들도 있고, 여러 사람의 말들이 가득 있고, 심지어 마귀의 말도 있습니다. 어찌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가? 그런 의심이 항상 들었습니다. 그후에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온 우주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그 자신의 실재와 그 뜻을 나타낼 것만은 사실일 것입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영원히 침묵하실 것은 아닙니다. 사실 자연계를 통해서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이 자기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시편 十九편에 있는 말씀과 같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궁창(穹蒼)이 그 손으로 지은 것을 나타내어 보입니다. 날은 날에게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합니다.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가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그 뜻을 나타내십니다. 혹은 세계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공의를 나타내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구속적인 활동과 그 말씀으로써 히브리 백성을 통하여 자기를 분명하게 나타낸 기록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대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그에게 그 자신을 나타냈습니다. 이삭에게도 그러했습니다. 야곱에게도 그러했습니다. 모세를 특별히 불러서 그에게 그 자신을 나타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속하심으로 구속적인 하나님인 것을 더 분명히 나타냈습니다.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그의 고의를 나타내시고, 사랑을 나타내시고, 그의 성품을 더 분명히 나타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그 아들을 통하여 친히 자신을 나타내어 보여주셨습니다. 요한 복음 一장 十四저에는『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동색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아들을 통해서 친히 자기자신을 인간에게 나타내시고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여러 시대, 여러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계시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통하여 창조의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출애굽기를 통하여 구속의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레위기를 통하여 성결(聖潔)의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이렇게 모든 책이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구약의 역사도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개인의 전기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활동, 하나님의 모습을 정면 적으로 우리에게 분명히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결국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실 말씀을 다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전체적으로 한 마디로 말하면 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이 말씀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이 성경의 중심은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은 장차 오실 구주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신약성서는 이미 오신 구주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본 교회 이광혁 장로님께서 신약성서를 한 장에 그림으로 쓰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십니다. 신구약성서를 한 장에 쓴다고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의 얼굴과 성품과 말씀을 생활로써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성경은 십자가에서 만민의 죄를 대속(代贖)하신 그리스도를 죄와 비참(悲慘)과 슬픔과 사망에 헤매 이는 인류에게 보여주십니다.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넷째로 성경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오직 하나님입니다.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고자 하는 목적입니다. 그리해서 요한 복음 三장 十六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전기를 거의 다 써 내려가다가 요한 복음 二十장 三十一절에 이런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록을 다 쓰려고 하면 이 세계가 오히려 다 두지 못하겠지마는 『오직 이것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하나님께서 이 성경 말씀을 주신 목적을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입니다. 인간을 죄악 가운데서 구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 성경을 이렇게 지금까지 많이 읽고 많이 보급됩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구주 되시는 그리스도를 보여주십니다. 성경의 목적은 인간을 죄악 가운데서 구속해서 새 사람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고저 하는 데 있는 까닭입니다. 먼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우리가 이 성경을 읽으면 어떠한 축복을 받습니까? 물론 여러 가지 고대 역사와 고대 문화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큰 축복은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성경을 읽으면 이 가운데서 구주를 발견해서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악한 사람이 변해서 선한 사람이 됩니다. 음란한 사람이 변해서 성결한 사람이 됩니다. 거짓된 사람이 변해서 진실한 사람이 됩니다. 살인강도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그대로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세상에 물론 위대한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사이 미국 대학에서는 소위 위대한 책에 대한 과목이 있습니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책들을 통독시키는 과목이 특별히 생겼다고 합니다. 플라톤이니 아리스토틀이니 칸트니 혹은 동양의 논어니 맹자니 도덕경이니 이런 모든 위대한 책들을 한 번 읽어보도록 많은 힘을 쓴다고 합니다. 세상에 위대한 책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책을 읽어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알고 구주를 만나서 새 사람이 되는 책은 성경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 성경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새 사람이 되었지마는 아직 어립니다. 이 어린아이가 자라야 합니다. 자라기 위해서는 젖이 필요합니다. 말씀의 젖이 필요합니다. 이 성경은 도의 적입니다. 생명의 양식입니다. 성경을 계속해서 읽을 때에 심령이 자라고 건강하고 힘을 얻습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슬픈 일을 당할 때에도 위로를 받고, 사업에 실패하고 낙심할 때에도 새로운 용기를 얻고, 성경을 통해서 약할 때에도 새로운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읽는 사람은 매일 매일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과 같습니다. 강건하고 튼튼히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 신앙에 유일한 표준입니다. 전통이 신앙의 표준이 아닙니다. 이성이 신앙의 표준이 아닙니다. 이단과 사설이 횡행하는 이러한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신앙의 정로(正路)를 밟아갈 수 있는가? 성경을 읽고 그대로 믿으면 신앙의 정로를 밟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째로 성경은 행위의 정확 무오(無誤)한 표준입니다. 성경 가운데에는 지고의 윤리가 있습니다. 성경은 최고의 도덕적 법칙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열 가지 계명을 비롯해서 산상보훈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서 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해야 될 모든 규례를 분명하고 똑똑하게 가르쳐 줍니다. 행위의 정확 무오한 표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우리에게 새 사람이 되게 합니다. 우리에게 양식이 됩니다. 우리 신앙의 표준이 됩니다. 전에 라볼드 잉그솔이라고 하는 무신론자가 역시 그 때에는 믿지 않던 친구 류 월리스(Lew Wallace)라고 하는 장군에게 기독교를 반대하는 책을 쓰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 권면을 듣고 그런 책을 쓰기 위해서 붓을 잡게 되었는데, 반대하는 책을 쓰려니까 부득이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단 말입니다. 알려고 하니까 부득이 성경을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 생각이 점점 변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회개하고 오히려 성경의 감화를 받았습니다. 그리해서 그분이 결국 무슨 책을 썼는지 압니까? 한국에서도 영화로 상영되어 우리가 다 본「벤 허」라고 하는 유명한 소설을 썼습니다. 오히려 예수의 생활을 묘사하는 그런 책을 썼습니다. 선경의 감화력이 이렇습니다. 성경을 반대하고 성경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내용을 알아보면 열이면 열 모두가 성경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전에 프린스톤에 잭 윌슨 박사라고 하는 유명한 구약학자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프린스톤대학 학생 몇 명이 와서 그 윌슨 박사에게 우리는 구약의 이것도 믿을 수 없고 저것도 믿을 수 없는데 토론 좀 하려고 왔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늙은 박사가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면서 토론하는 것도 좋은데 성경을 토론하겠다니 성경을 몇 번이나 읽어보았는가 고 물어보았습니다. 학생들은 성경을 한 번도 못 읽어보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박사가 나는 적어도 四十년을 밤잠 안 자면서 몇 백 번을 읽고 연구했어도 믿지 못할 것이 없는데 우선 몇 번 읽고 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보통 성경을 읽지 않고 반대합니다. 우선 몇 번 읽어보세요. 그러면 문제는 성경 자체가 여러분에게 대답해 드릴 것입니다. 바로 내일 모래 十二월 十일이 세계 인권 선언일 입니다. 바로 이 주간이 인권옹호주간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얼마나 적절한 주간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인권이니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사상의 원천이 어딘지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이 가는 곳마다 인간을 죄에서 해방했습니다. 무지에서 해방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모든 구속에서 해방했습니다. 노예제도도 없어졌습니다. 계급도 타파되었습니다. 남존여비사상이 물러갔습니다. 만인평등의 사상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 원천이 성경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전에 토마스 훅실러는『성경은 가난한 자와 피압박자의 대헌장이다. 인간은 성경이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자유의 대헌장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은 모든 박애와 자선사업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회에서 병원이 먼저 생기고, 고아원이 생기고, 양로원이 생기고, 적십자운동이 생기고 심지어 동물에까지 친절히 하자고 하는 모든 인도주의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이 문화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을 우리가 다 기억합니다. 성경이 가는 곳에는 지적으로 인간을 해방했습니다. 미신을 타파했습니다. 학문의 연구를 권장케 했습니다. 종교개혁으로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된 이후에 자연과학고 발전되었다고 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최고의 문학과 최고의 예술과 최고의 음악은, 성경의 감화 가운데서 되었다고 하는 것도 우리가 기억합니다. 성경이 가는 곳에 그 사회도덕이 자연히 향상됩니다. 자연히 일류가 살 만한 사회가 됩니다. 범죄를 하는 사람이 적어집니다. 이렇게 성경은 국가 흥망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전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 때에 어떤 외국사절이 와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영국이 이와 같이 나라가 흥왕 하게 된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책상에 있는 한 책을 가리키면서 저 책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책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오랜 책 같지마는 항상 새로운 책입니다. 성경 가운데 새로운 진리가 무진장으로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성경 가운데 우리 인류가 찾아내지 못한 진리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十六세기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진리가 발견되어서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十八세기, 十九세기에는 온 세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는 이 진리가 새롭게 발견되어서 세계선교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성경 가운데서 발견되어서 신 구교를 막론하고 이른바 에큐메니칼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오랜 책 같지마는 항상 새로운 책입니다. 교회는 성경을 중심 해야 부흥합니다. 성경을 상고하는 교회가 발전합니다. 교회는 언제나 성경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뜻이 여기 있습니다. 중세기 전통의 구각(舊殼)을 탈피해서 성경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온 것이 종교개혁의 운동이었습니다. 지난 주가에 로마에서 제二차 바티칸회의가 폐회되면서 미사 때에 라틴말을 쓰지 않고 자기 나라 말을 쓸 수 있는 것을 허락하고, 혹은 다른 교파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허락했다는 등의 좋은 소식을 듣고 우리가 다 환영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좀 더 성서에 가까이 와야 하겠습니다. 성상문제, 마리아 예배문제, 미사문제, 교황 독재정치 문제, 이런 모든 것들이 좀더 성경에 가까이 와야 신 구교회의 합동문제는 토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중심으로 교회가 돌아와야 합니다. 개인도 그렇습니다. 개인의 신앙도 언제든지 성경을 중심 해야 됩니다. 이성을 너무 따라가지 마십시오. 감격에 너무 따라가지 마십시오. 행동에만 너무 따라가지 마십시오. 언제나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실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을 전파하고,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서주일을 맞이해서 이 몇 가지를 스스로 물어보세요. 첫째는 우리 가정에서 이렇게 귀한 성경을 매일 읽는가요? 내가 이 성경을 매일 읽는가요? 둘째로는 주일에 나와서 예배 드리지마는 성경 공부도 하는가요? 셋째는 삼일기도회에 참석해서 공부하는가요? 넷째는 성경 보급에 협력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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