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4:4-13/ 만능의 생활의 비결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34:39

『내가 비천에 처할 줄고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四․十二-十三)

오늘 아침은 주님의 날이면서 또 새해의 아침입니다. 우리는 다 새해에 새로운 축복을 기원합니다.

一九六0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과거에 속합니다. 성공이건 실패이건, 기쁨이건 슬픔이건 이미 역사에 속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새해는, 一九六一년은 윌 앞에 있습니다. 미지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 해에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무슨 일을 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무슨 일이나 어떻게 당하는 것이 실상은 더 중요합니다.

이미 읽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체험을 이와 같이 기록하였습니다.『내가 비천(卑賤)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것을 바로 당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면 무슨 일을 당하는 것을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신년에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생활의 비결을 배운다고 하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구역대로는『내가 능치 못한 것이 없느니라.』오늘 아침 이 말씀을 묵상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각 사람 심령 위에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물론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세상의 어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의 권력을 과신하고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 같은 사람, 한 번은 자기 궁전 지붕에 올라가서 화려하게 건설된 바벨론 성중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하는 말이『내 권세로, 내 권능으로 이 모든 성을 다 지었노라!』교만한 말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 말은 오래 못 갑니다. 그런 말 한 지 며칠 후에 기록한 대로 그 느부갓네살 왕은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람의 정신은 잃어버리고 짐승의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사람 사는데 살지 않고 들에 나가서 들 나귀와 같이 살며 소처럼 풀을 먹도 오래 산간에서 살아서 마지막에는 머리털이 독수리 털처럼 되었고 손톱이 새 발톱처럼 되었다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자기의 권력을 과신하고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흔히 그렇게 끝을 마칩니다.

우리가 사는 세대에서는 독일의 히틀러 같은 사람, 나치스 운동을 일으켜서 독일의 권세를 잡고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점점 마음이 커져서 교만하여져서 마지막에는 프랑스를 침략한다, 네덜란드를 침략한다.

전 유럽을 침략하기를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세계를 향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 알고 제二차 대전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말로는 불 구렁텅이에서 자살하는 비참한 최후를 가진 것도 우리 기억에 생생합니다.

오늘날 세계의 어떤 사람도 권력을 과신하고 유엔에 와서 구두 짝으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교만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만한 사람의 최후가 어떻게 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입니다.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줄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 말은 그런 교만한 사람의 말과는 온전히 뜻이 다릅니다.

또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어떤 그릇된 사상에 사로잡혀서 인간만능론(人間萬能論)을 주장하는 의미도 아닙니다. 대 철학 파 중 스토익학파에서는 특별히 주장하기를 인간의 심령 속에는 우주의 혼이 있는 부분이 있어서 모든 환경을 정복할 수 있는 내재력(內在力)이 풍부히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사상은 많습니다. 유물론적, 인본주의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우리 인간은 지력이 있고 우리 인간은 지력을 통해서 과학을 연구함으로 말미암아 이 우주 안에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주장은 한 가지를 잊어버리고 하는 주장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였다고 하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악이 있다고 하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교만한 자기 기만의 말을 하는 공상에 지나지 못합니다.

여기 사도 바울이『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이 말은 절대로 자기 스스로를 믿는 말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은 오직 할 수 없는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람의 능력을 과신하는 그런 사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것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을 보지 아니합니다. 자기도 보지 아니합니다. 오직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겸손히 하는 말입니다.

나는 비록 부족하고 약하지마는 내가 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내가 주안에 있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주님의 능력이 나를 뒷받침해 줄 때에는 나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겸손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또 이 말씀은 성경을 우리처럼 읽고 이론적으로 하는 말도 아닙니다. 자기가 주안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는 이 노사도가 지금도 감옥 가운데서, 언제 무슨 일이 있을는지 알지 못하면서 기다리는 가운데서 자기가 친히 당하는 체험을 여기에 기록한 것뿐입니다.

고린도 후서 十一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어떠한 일을 당하고 그 일을 어떻게 겪었는지 그 경험을 기록한 데가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四十에 하나 감한(三十九개입니다)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笞杖)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분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에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니라.』

사도 바울이 이런 모든 경험을 통하여 주님께서 자기에게 간단없이 능력을 주실 때에 이 모든 것도 능히 다 할 수 있었다고 하는 말은 여기에 자기의 신앙의 간증으로서 우리에게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문자 그대로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킨 사람으로서 자기의 체험을 하는 말입니다.
『내가 지내보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내가 하지 못할 일이 없더라.』견디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여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분명히 말하면 무슨 뜻입니까? 이런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본문에 기록한 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내게 오는 은혜를 받을 때에는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자족의 생활이 가능하다 하는 뜻이 있는 줄 압니다. 여기에 기록한 대로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배부른 것과 배고픈 것과 풍부와 궁핍에 처할 줄도 아는 비결을 자기가 배웠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할 때든지, 이남에 있든지 이북에 있든지,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자족의 은혜를 배워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와 찬송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그 말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비결을 배웠습니까?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자족을 배우고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또 이 말씀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시련과 핍박을 이길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지금 읽은 말씀과 같이 매도 여러 번 맞았습니다. 여러 번 죽을뻔 도 하였습니다. 유대 사람에게도 핍박을 받고 헬라 사람에게도 핍박을 받고 여러 거지로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마는 주안에서 능력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는 이과 같이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困苦)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아서 어떠한 외적, 곤란이라고 할지라도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그 말을 여기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안으로 솟아나는 모든 유혹과 시험도 주안에 있을 때에는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그 말입니다.

로마서 七장을 보면 어떤 의미에서 사도 바울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가 보니 그는 옳게 하려고 하는데 그 육신의 다른 죄의 법이 있어서 그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자주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마음 가운데는 간단없는 내적 투쟁이 있었습니다. 항상 충돌이 있었습니다. 충돌이 매우 심각해서 한 번은『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권세에서 나를 구원하랴.』한탄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결론한 말을 보면『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이 모든 것을 이긴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은혜를 받았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아직까지도 내적 투쟁으로 말미암아 고민 가운데 있는 이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능력을 받을 때에 능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고약한 성질도 있는 줄 압니다. 나쁜 습관도 있은 줄 압니다. 고약한 성질, 나쁜 습관, 다 주님의 능력 아래서 이긴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을 할 때에 여러 편견에서 해방을 받았다고 하는 뜻도 포함된 줄 압니다. 바울은 본래 편협한 종파 바리새 종파였습니다.

매우 덕이 적고 완고(頑固)와 고집이 있고 성경은 문자주의로 해석하고 독선주의와 배타주의가 충만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한번 주님의 부름을 받아서 회개하고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는 그런 모든 독선주의, 배타주의, 다 없어지고 그는 사랑과 관용과 관대(寬大)와 자비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히브리라고 하는 그 좁은 테두리 안에만 살던 사람이 그것을 타파해서 그것을 세계적 기독교 운동으로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더 자기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은혜를 주시는 가운데 이것을 했습니다.

또 주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기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는 복음 전파가 일생의 사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메섹에서도 전파할 수박에 없었고 혹은 예루살렘, 이방 각지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또 그는 각계 각층의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어떤 때는 여자들에게, 어떤 때는 아이들에게, 어떤 때는 학자들에게, 아덴에 가서는 철학자들에게, 어떤 때는 아그립바 왕에게, 어떤 때에는 벨릭스과 베스도에게, 각계각층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어떤 때는 거리에서, 어떤 때는 집에서, 어떤 때는 산에서, 어떤 때는 감옥에서까지 전파했습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주님께서 그와 같이 계셔서 그에게 능력을 주실 때에 능하지 못하신 것이 없이 어디 가나 자기의 책임을 다할 수 있었다고 하는 그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지 내가 맡은 책임을 다 합니까? 다 할 수 있습니까? 주안에서 능력을 받을 때에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다.

이 비결이 어디 있어요? 단순히 한 마디입니다.『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예수 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는 내 안에 있으라. 내가 네 안에 있으리라.』『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힐 수 없느니라.』

사도 바울은 문자 그대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었습니다. 그러므로 간단없이 나무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즙을 섭취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간단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신령한 은혜를 받지마는 특별히 은혜 받는 것을 도와주는 방법이 몇 가지 있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었습니다. 한 가지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주님께로부터 직접 은혜를 받습니다. 또 한 가지는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우리가 은혜를 받습니다.

또 한 가지는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회에 참석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접촉해서 우리가 은혜 받는 것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성례입니다.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여하는 가운데 특별한 은혜를, 그 모든 방법을 통해서 우리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심령이 그리스도와 항상 접촉하게 될 때에는 자연히 우리 마음속에 성령을 충만히 받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가 되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우리 마음가운데에 가득히 있을 때에는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성령의 열매로서 대하게 될 때에 과연 그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꼭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에는 심히 어려운 일, 위기를 당하면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기에 예수 님께서 모든 제자들을 전도하려 보내면서『너 어떤 사람에게 가 전도할 때에, 어떤 관헌에게 잡혀갈 때에 조금도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마라. 그 때에 무슨 말 할 것을 하나님께서 네게 가르쳐 주리라.』지혜를 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에 큰 전도의 문은 열렸지만 여러 가지 난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신령한 가운데 특별히 나타나서 힘을 주었다고 그랬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도하다가 순교할 수밖에 없을 때에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변했다고 그랬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스데반이 눈을 들어보니 멀리 하늘에 하나님의 보좌가 보였고 그 옆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어서서 그를 내려다보는 광경이 마음 눈에 보입니다.

전에 이그나시우스라고 하는 안디옥의 유명한 감독은 그 때 로마에서 크게 핍박할 때에 안디옥에서 붙잡혀서 멀리 로마까지 끌리어갔습니다. 로마까지 가서 지금도 남아 있는 그 굉장한 원형극장 그 속에 이그나시우스 감독을 세우고 여러 날 주린 사자를 갑자기 놓아주었습니다.

사자가 입을 벌리고 달려들 때에 이그나시우스는 두 손을 먼저 사자에게 내밀면서 하는 말이『내가 이제야 참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런 힘은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위기를 당할 때에 우리가 정말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할 것은 없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생각할 때에 한 가지 생각되는 것은 이렇게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데 요즘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 무위의 인사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여러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는 자 안에서 그 안에 있을 때에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큰 믿음이 있는 사람만 큰 일을 할 수 있고 적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적은 일만 할 수 있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스룹바벨이 큰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앞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스룹바벨이 어떻게 외쳤습니까?『큰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는 네가 평지가 되리라.』평지가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이와 같은 생활, 만능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가만히 보면 교회 안에도 그렇고 교회밖에도 그렇고 패배주의자가 상당히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할 수 없다. 공산당은 자꾸 강해만 가는 것 같고 남한은 혼란만 해지고 이거 큰일 나지 않았나, 할 수 없다.』

여러분, 전에 다윗이 골리앗이 와서 이스라엘 사람을 위협할 때에 어린 사람으로 싸우러 나가니까 옆에 있는 사람이 다 말리지 않았습니까?『아, 네가 무엇을 하려고 나왔느냐.』책망하기도 하고 말리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다윗은『내가 사자와 곰과 싸워서 이겼는데 저 할례 받지 못한 불레셋 사람이 무엇이냐? 그들은 검을 믿고 가지의 힘을 믿지마는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천도를 무시하는 이 사람들이 무엇입니까?

자유는 생의 법칙입니다. 언제든지 자유가 이깁니다.『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새해에 이 말씀을 여러분의 생의 표어로 삼고 과거에는 패배의 생활을 했지마는 금년부터는 승리의 생활을 합시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지으실 때에는 다 목적이 있어서 지었습니다. 해를 지으실 때에 빛을 비취라고 지었습니다. 나무를 만들 때에 열매를 맺으라고 지었습니다. 사람을 지으실 때에야 할 일이 있어서, 목적이 있어서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라하면『나야 무슨 힘이 있어야 하지. 못해 못해.』왜 못합니까? 믿지 않는 까닭으로 못합니다.『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곡식이 누르러서 거의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안 믿는 세계가 우리 믿는 십자가 군병을 부르고 있습니다. 황폐한 한국이 일군을 부르고 있습니다. 교회가 봉사할 사람을 부르고 있습니다. 국가가 참으로 나라를 위해서 싸울 사람을 부르고 있습니다. 패배주의자가 되지 마세요. 주안에서 만능의 인물이 되십시다.

청교도 시대에 가장 유명한 지도자 크롬웰이 있었습니다. 영국 역사 가운데서 빛나는 거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의 생활 가운데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던 맏아들이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 슬픔을 당했습니다. 모든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합니다. 크게 낙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성경을 읽다가 빌립보서 四장을 읽기 시작해서『내가 풍부한데 처할 줄도 알고 내가 비천한데 처할 줄도 알고……』

이런 말씀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하기를『나도 이런 비결을 배웠으면 얼마나 좋겠나.』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절을 읽어 내려갑니다.

十三절에 와서『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을 읽게 될 때에는 크롬웰이 갑자기 일어나면서『사도 바울의 그리스도는 오늘날 나의 그리스도가 아니냐?』외쳤습니다.

사도 바울의 그리스도는 오늘날 우리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에 위로부터 간단없이 오는 능력을 받을 때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일에서, 그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 승리하느냐, 실패하느냐, 그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주를 의지하는 가운데 만능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이 축복을 우리가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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